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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경제사와 민족운동상의 결합? 글쎄…
오미일 『한국근대자본가연구』, 한울 2002
주익종 朱益鍾
서울신용평가정보 수석연구원 ijjoo@lycos.co.kr
『한국근대자본가연구』는 경제사와 민족운동사를 결합해 한말 일제하의 한국인 자본가를 연구한 야심적인 책이다. 600면에 가까운 책의 두께는 저자인 오미일(吳美一)의 10년 적공(積功)을 말해주는 듯하다. 평자는 그 시도가 어떻게 열매맺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책을 펼쳤다.
이 책의 특징은 “경제사와 정치사상사 및 운동사적 측면”에서 조선인 자본(가)에 총체적으로 접근하며(25~26면), 평양·대구·부산 등 지역단위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 사회계급, 집단의 물적 토대와 그 정치운동·이념이 조응한다는 고전적 입장에서 한말 일제하 조선인 자본가의 물적 토대가 어떻게 달라졌고, 그에 따라 민족운동의 전개양상 및 노선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구명(究明)했다.
저자는 이 책의 제1부에서 조선인 자본가층의 축적조건 및 평양·대구·부산 등지에서의 산업자본가의 등장을 설명하였으며, 제2부에서는 한말의 자강운동, 1910년대의 비밀결사운동, 1920년대의 실력양성운동 등에 나타난 자본가층의 정치사회적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제3부에서는 그들의 운동논리와 사상을 다루었다.
저자가 각종 신문, 잡지와 인명록 등을 샅샅이 뒤져서, 거의 잊혀졌던 각지의 수많은 중소지주, 상공업자들의 내력과 품고 있던 생각들을 살려낸 것은 이 연구서의 큰 공적이다. 특히, 제3부에서 3·1운동 이후 조선사회의 진로와 당면과제를 둘러싸고 조선인들 사이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했던 견해들을 잘 정리한 것은 이 책의 백미(白眉)다. 이 부분은 1920년대 전반의 민족운동에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1910년대 중후반 조선인 산업자본이 성립했고 그것이 한국사에서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는 저자의 주장은 문제제기로서도 중요하다. 저자의 큰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지만 몇가지 실증상의 의문점들, 그리고 서술형식상의 문제점들이 우선 눈에 띈다. 실증면에서, 예컨대 저자는 1910년대 말 조선인 산업자본의 성립조건으로서 1차대전으로 인한 수이입(輸移入)의 감소를 들고 있지만(77면), 이것은 착오다. 1910년대 후반에 수이입은 급증했고, 바로 이를 아우른 조선경제의 호황 속에서 조선인 산업자본이 성립했다. 또한 저자는 근대자본가, 산업자본가 등의 용어를 별다른 검증 없이 쓰고 있는데, 그 실체가 용어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고작해야 종업원 10여명 정도의 공장들이 생긴 것을 산업자본의 성립이라 규정하기는 어렵다. 자산가나 상공업자 또는 기업가 등의 용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1910년대의 비밀결사운동을 자강운동이나 실력양성운동과 같은 반열에 놓을 수는 없다고 본다.
서술형식상으로는 우선, 기존 연구를 취급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금언도 있거니와, 모든 연구란 기존 연구들을 딛고 그 위에 작은 것을 보태는 것이다. 저자는 이미 다른 연구에서 언급되었을 내용까지 일일이 다시 서술함으로써, 책의 분량은 방대해지고 저자의 기여 부분은 모호해졌다. 또한, 복잡한 표와 세세한 서술도 독자들에게 부담스럽다. 좀더 간결하게 전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평자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저자의 중심적인 작업, 곧 경제사와 운동사를 결합해 조선인 자본가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겠다는 시도에 있다. 우선 양자는 대응이 안된다. 저자가 말하는 산업자본가의 출현과 운동의 전개 사이에는 연관관계가 매우 약하다. 예컨대 구한말 지주·상인의 자본축적과 자강운동 간에, 그리고 1910년대 새로운 상공업의 태동과 비밀결사운동 간에 무슨 관련이 있었던가? 둘째로, 대응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저자가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자본가가 출현했고 그들의 운동논리가 민족운동에도 반영되었다는 것이라면, 이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역사연구란 수많은 사실의 편린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일진대, 저자는 수많은 사실들을 언급하면서 이런저런 군상들과 그 행태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들을 하나의 주장으로 집약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론까지 다 읽고 난 뒤에도 미진한 느낌이 든다.
왜 경제사와 민족운동사를 결합해서 연구하는가? 종래의 민족자본론은 각기 별개의 연구대상일 수밖에 없는 경제사와 민족운동사를 결합하려 했기 때문에, 조선인 자본가의 타협성 운운하며 낙인찍기로 끝나고 말았다. 이 책은 그런 유치한 낙인찍기는 그만두었으나, 조선인 자산가의 민족주의적 활동과 당대 지식인들의 민족운동론을 소개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한국근대자본가연구’로서는 빗나갔다. 문학사 연구자가 이효석이나 정지용, 이태준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긴 당대의 작가들을 연구할 때, 그들이 작품으로써 혹은 가외로써 민족운동에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중심 문제로 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일제하의 자본가, 기업가 연구는 그들의 본연의 경제활동, 기업활동을 구명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경제사를 포함하여 식민지시대의 각 분야사를 매번 민족운동사와 결합해 연구한다면, 그 결과는 자못 심각할 수 있다. 식민지시대의 우리 조상들을 민족해방에의 복무 여부라는 잣대로 평가한다면, 해외망명자 등 소수는 저항했고, 압도적 다수는 타협 굴복했다는 역사상밖에 나오지 않는다.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는 한국사 연구의 결과가 이런 왜소한 부정적 역사상이라면, 심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식민지시대에는 침략과 저항 혹은 굴복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각 방면에서 놀라운 민족적 자각과 성찰, 훈련과 성장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해방 이후 세계사상 으뜸가는 한국사회의 발전, 성취를 가능케 했다. 우리가 민족해방에의 복무 여하라는 하나의 잣대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훨씬 더 풍부하고 긍정적이며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이상의 비판은 평자가 이 책의 저자와 시각을 달리하는 데 따른 것이다. 사실의 발굴과 정리 면에서 저자의 공적이 크다는 것과 그를 위해 저자가 기울인 수고가 엄청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저자의 변함없는 정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