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최하림 崔夏林
1939년 전남 목포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등이 있음.
마음의 그림자
가을이 와서 오래된 램프에 불을 붙인다 작은 할머니가 가만가만 복도를 지나가고 개들이 컹컹컹 짖고 구부러진 언덕으로 바람이 빠르게 스쳐간다 이파리들이 날린다 모든 것이 지난해와 다름없이 진행되었으나 다른 것이 없지는 않았다 헛간에 물이 새고 울타리 싸리들이 더 붉어 보였다
빗속으로
연일 장마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냉장고는 텅텅 비고 쌀독도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서 차를 몰고 중미산을 넘어갔다 양평장으로 갔다 우리는 서둘러 여주쌀과 가지 시금치 배추 고추 간고등어 들을 사가지고 오던 길로 다시 달렸다 중미산을 넘고 정배리 계곡으로 들어서자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고 기슭을 타고 내려온 빗물이 아스팔트 위로 철철철 흘러넘쳤다 빗물을 타고 작고 푸른 산개구리들이 백수십마리 길 가득 뛰어올랐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계속 빗물과 산개구리들은 소리치며 뛰어오르고 시간이 흘러 어둠이 빠르게 내렸다 차시계는 6시 47분을 가리켰다 나는 헤드라이트를 켰다 빗물과 산개구리들이 라이트 속으로 몰려들어 폴딱폴딱 뛰었다 나는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천천히 바퀴가 구르고 물과 산개구리들은 뛰어오르고 차는 속도를 내어 달렸다 물과 산개구리들은 차보다 빠르게, 차 앞에서, 뒤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눈을 감고 싶은 사방이 캄캄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