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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대지의 향기, 꽃속에서 터진 말

조태일론

 

 

손택수 孫宅洙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이 있음. ststo70@freechal.com

 

 

 

“대지에 탄력이 있어 널 위로 오르게 하는 거야.

발가락을 땅에 대기만 해도 대지의 아들 안테오스처럼

곧 기운을 얻게 될 거야.”(괴테 『파우스트』 2부 3막)

 

 

1

 

대나무는 온몸이 자다. 대자로 있기 전부터 대자로 살아 있다. 강골은 그렇다. 대나무는 세상을 재기 위해 뻗어올라간 몸의 마디마디 눈금을 긋는다. 우듬지 끝이 더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 마지막 마디 하나를 더 뽑아올린 곳, 아뜩한 그 너머까지 대나무 죽 푸른 금을 긋는다. 죽형(竹兄) 조태일(趙泰一, 1941~99)의 시를 읽는 일은 대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길차게 솟구쳐오른 한 그루의 곧고 곧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일과 같다. 그것은 또한 시인이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지난 연대의 질곡을 찬찬히 더듬어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의 시는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서러운 마음들을 깎아/곧음을 영원에 세우고”(「대창」, 『식칼론』) 뜨겁게 치밀어오를 때의 그 드센 기세와 달리 그는 몸속을 텅 비움으로써 옥죈 마디와 마디 사이의 공명통을 통해 서늘한 울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울림은 가혹했던 시대를 살다 간 시인의 아픔을 안팎으로 진동시켜 뽑아낸 것이라 더욱 오랜 여운을 남기고 있다.

1941년 9월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난 조태일은 196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다시 포도(鋪道)에서」와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아침 선박」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아침 선박』(선명문화사 1965), 『식칼론』(시인사 1970), 『국토』(창작과비평사 1975), 『가거도』(창작과비평사 1983), 『자유가 시인더러』(창작과비평사 1987), 『산속에서 꽃속에서』(창작과비평사 1991),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창작과비평사 1995),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창작과비평사 1999)까지 모두 여덟권의 시집을 남겼다. 바지런했던 창작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십대엔 벌써 시전문 월간지 『시인』을 주재하며 김지하, 양성우, 김준태 등 우리 시의 빛나는 첨병들을 발굴하였는가 하면 1974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회의 창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또한 긴급조치 9호 위반과 유신독재 비판으로 인해 투옥과 구속을 거듭하였다. 이처럼 선 굵은 시적 생애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모습과 달리 시인은 평소에 다감하고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시인을 기리며 작고 5주기를 맞은 지난해 9월 시선집 『나는 노래가 되었다』(창비)가 나왔다. 9월에 태어나서 “내 유서를 20년쯤 앞당겨 쓸 일은/1999년 9월 9일 이전”(「간추린 일기」, 『식칼론』)이라고 했던 자신의 예언대로 눈을 감은 그 9월에 시선집이 태어난 것이다.

참된 시는 매순간을 거듭 새로 태어나는 의미의 공터를 갖고 있다. 굳어진 의미를 빨아들여 새살을 입힌 뒤 다시 내뱉는 블랙홀 같은 것 말이다. 완전히 파악된 시는 이미 시가 아니다. 파악되면서 동시에 파악되길 거부하는 영역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노래가 되었다』와 선집에 실리지 못한 여러 작품들을 찾아 읽으며 느낀 바이지만, 조태일의 시는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아직 많이 남겨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노래가 되었다’면 그 노래가 타고 있는 음률은 어떤 것인가. 시가 살아 있길 원할 때 그 시엔 생명의 율동에 따라 호흡하는 어떤 리듬이 내장되어 있게 마련이다. 조태일의 시를 읽다보면 치렁치렁하게 휘감겨오는 리듬이 먼저 느껴진다. 그 리듬은 세련된 가성보단 분출하는 육성에 더 가까운 것이어서 언뜻 조악해 보이기도 하나 옹졸한 기교를 뛰어넘는 웅혼한 가락의 범람을 통해 즉각적인 몸의 반응을 견인해낸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 했던가. 마감질을 하지 않고 윤곽선 없이 단번에 그어져내린 몰골(沒骨) 기법을 연상케 하는 그 리듬은 “뿌리를 깊이 내리며/천지간에 감기는 리듬”(「송장」, 『식칼론』)으로서 거대한 대지의 숨결로부터 온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국토서시」(『국토』) 전문

 

시어 하나 하나가 살아 펄떡거리는 것 같다. 이 시의 생생함은 무엇보다 활자로 고정되어 있으나 시각을 뛰어넘어 청각을 지향하는 말소리의 진동으로부터 온다. 청자를 염두에 둔 구어체의 반복과 병렬은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있다는 상상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 이 시를 잠자코 눈으로 읽었을 때보다 소리내어 읽었을 때 더 큰 울림이 오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같은 형식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역동적인 이미지들과 실핏줄을 잇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즉 4연의 ‘버려진 땅’과 ‘빈 벌판 빈 하늘’은 어떤 결핍과 소외의 정서를 환기하는데,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혼은 소외감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처럼 소외로 얼룩져 황무지화된 국토의 가장 밑바닥에서 화자는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의 저항을 보고 있다. 돌멩이의 저항은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과 병치됨으로써 그 저항의지가 풀잎의 생명의지와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대지에 착근한 이같은 이미지들은 발바닥이 다 닳고, 숨결이 다 타오르는 소멸의 과정을 통해 새 살과 새 숨결을 꿈꾸기에 이른다. 그 숨결은 죽은 자의 혼에까지 스며들 수 있는 숨결, 즉 죽음까지 스며들어 살고 싶은 대지의 의지를 상징한다. 그 중심에 ‘불’이 있다. 마지막 5연에서 국토에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바쳐야 한다는 일종의 희생제의적 진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화자는 번제의식을 치름으로써 ‘빈 하늘’로의 상승을 꿈꾼다. 마치 시인의 발바닥에 있는 소용돌이무늬가 세찬 회오리바람이 되어 육중한 몸을 들어올릴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활달한 동사어군(닳다, 타오르다, 돋다, 열리다, 휘젓다, 돋아나다, 발버둥치다, 불 지피다, 일렁이다)이 회오리치는 리듬을 타고 거침없이 육박해들어올 때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와 같은 당위를 거부할 수 없게 된다. 실제 숱한 국토순례의 문을 여는 시로 낭독되었을 법한 시이기도 하지만, 「국토서시」는 시가 근육에 호소하는 경지가 어떤 것인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2

 

시인은 대지에 경배하는 자이다. 시인에게 그가 몸담고 있는 땅은 한권의 성서와 같다. 그래서 조태일은 “내가 찾는 땅을 어서 찾아가서/무릎 꿇고 긴긴 입맞춤을 하리”(「시인의 방랑」, 『가거도』)란 선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출 만큼 성스러운 땅은 어디에 있는가. 그 땅은 어떤 초월적 지평이나 총체성을 잃지 않고 있던 과거의 유기적 복합체를 향해 있지는 않은가. 당겨 말하자면 조태일의 시는 그러한 차원에서 읽히지 않는다. 시인의 시는 오히려 니체의 이중의지를 닮았다. “나의 의지, 그것은 인간에 매달린다. 그리고 사슬로 내 자신을 인간에게 묶어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초인을 향해 위쪽으로 낚아채이고 말 것이다. 내게 또다른 의지가 있어 초인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짜라투스트라를 떠오르게 한다.

 

서울의 街路樹는

敗地에 울먹이는 나의 戀歌.

 

잎은 地上의 아우성을, 所望을 所重히,

무거운 무게로 떨어져

地下에서나 울어줄까?

 

그 어느만큼서 울다 울다가 목메이면

슬픈 허리띠를 돌아, 다시 솟아줄까?

–「서울의 가로수는」 부분

 

첫시집 『아침 선박』에 실린 「서울의 가로수는」은 패배만을 안겨준 대도시에서 부르는 시인의 연가다. 패배의 땅에서 울먹이면서도 매연 먼지 속에서 뿌리를 내린 가로수처럼 시인은 이 땅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상의 아우성과 소망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같은 아우성과 소망의 짐으로 하여 가로수잎은 무거워진다. 그 무게로 하여 낙엽은 가로수의 낙루가 되어 떨어진다. 그리고 울음의 끝에서 낙하의 힘을 통해 대지의 탄력을 반동삼아 솟아오르는 걸 희망하게 된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던 게 유마거사였던가. 언제나 상구보리(上求菩提)의 비전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공유를 끝내 잊지 않는다. “티끌이 앓으면 태산이 앓고/물방울이 앓으면 바다가 앓”(「산에 올라, 바다에 나가」,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는다는 도저한 연민의 정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시인은 초월을 겨냥하되 육중한 지상의 추를 끊어버리지 않은 채 철저히 아래로의 초월을 지향하고 있다. “산들이 조이니깐 하늘은/위로만 위로만 치솟는다”(「산에서」, 『국토』)는 역동적인 이미지처럼 시인에게 비상은 육중한 지상의 삶들의 ‘조임’ 속에 있다. 이같은 시의식은 고통으로 얼룩진 지금 이 순간의 구체적 삶을 끌어안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구체적 삶 속에서 성스러움을 발견하게 된다. 시인에게 성스러움의 거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금 여기’의 불모의 땅을 떠나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너무 멀고 험해서

오히려 바다 같지 않는

거기

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쓸 만한 인물들을 역정내며

유배 보내기 즐겼던 그때 높으신 분들도

이곳까지는

차마 생각 못했던,

 

그러나 우리 한민족 무지렁이들은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마침내 살 만한 곳이라고

파도로 성 쌓아

대대로 지켜오며

 

후박나무 그늘 아래서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당할아버지까지 한식구로 한데 어우러져

보라는 듯이 살아오는 땅.

–「가거도」(『가거도』) 부분

 

너무 멀고 험해서 유배조차 보내지 않던 박토를 찾아가서 시인은 신성을 만나고 있다. 그 신성은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당할아버지까지 한식구로’ 어우러진 것으로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시인이 만난 신성은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마침내 살 만한’ 땅을 일군 민초의 강인한 생명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한민족 무지렁이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아니었던들 박토로 버려진 땅에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심지어 당할아버지까지 함께 거할 수 있었겠는가. 이같은 민중의 생명력에 대한 경의는 작품 후미의 4·19혁명 희생자를 기리는 비문을 따로 인용하면서(“길가는 나그네여!/사월혁명의 선봉이 되어/반민주 반독재와 불의에 항거하여/싸우다가 십구일 밤 무참히 떨어진/십구세의 대한의 꽃봉오리가 여기/누워 있다고 전해다오”) 역사적 문맥을 얻게 된다.

물론 조태일의 시에 다소 퇴행적 궤도이탈로 보이는 유년과 고향을 향한 회귀의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시는 유년시절의 고향에서 출발하여 전국토의 사물들과 어울리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는 신념에서 씌어진 시들이다”(『산속에서 꽃속에서』 후기)라는 시인의 말처럼 삶의 원형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시절로의 이끌림을 시편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면모는 시인의 여러 평문에서 도드라지고 있는데, 언뜻 신동엽(申東曄)의 「시인정신론」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 신동엽은 일찍이 원초적인 생명의 세계(원수성 세계)와 반생명적인 세계(차수성 세계)를 대립시킴으로써 왜곡된 근대를 벗어난 삶(귀수성 세계)으로의 귀의를 꿈꾸었다. 시에선 그것이 주로 과거적 삶에 대한 동경 혹은 대지와의 친화적 모습으로 육화된다. 역시 대지의 아들이었던 조태일이 쓴 「신동엽론」(『창작과비평』 1973년 가을호)의 한 대목을 보자.

 

그의 대다수의 시편마다 나타나는 과거 역사의 차용은 아무런 필연성이 없이 그저 추상적인 과거에의 회상이나 복귀로 보여지는 오해를 지니고 있음은 사실이나, 이는 이 시인이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유영할 수 있는 상상력의 소산으로서, 현재의 상황을 폭넓은 상상의 힘으로 과거에 밀착시켜 현재를 드러내 보이고, 또한 미래를 표명하기 위한 수단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 일일 것 같다. 이와 같은 시의 방법은 바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에서, 대지의 귀의성을 주장함으로써 현실의 모든 부조리한 요소들을 드러내, 보다 활력있는 미래에의 그리움을 나타내려고 한 방법과 동류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동엽에 대한 시인의 해석은 시인 자신의 시론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조태일은 신동엽 시의 변모과정을 애정어린 눈으로 살피면서 신동엽의 시가 처음부터 내장하고 있던 현실의 맥락이 어떻게 구체화되어가고 있는가를 살핀다. 즉 초기의 대지가 한반도로, 원초적 생명력에의 그리움은 민족주체성에의 그리움으로, 막연했던 과거역사에의 관심은 구체적인 현실상황으로 밀착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기질의 한 시인에 대한 시인의 시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조태일은 과거의 원형적인 삶을 그리되 ‘지금 여기’의 대지에 뿌리를 내린 자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의 고향 체험이 안온했던 추억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인은 고향인 「곡성으로 띄우는 편지」(『산속에서 꽃속에서』)에서 여순사건과 같은 역사적 상처로 인해 “살아남기 위해서 새벽 압록강을 건너/광주로 피난”을 가야만 했던 탈향의 아픔을 들려주는가 하면, 좌우익의 갈등 속에서 스러져간 「원달리의 아버지」(『가거도』)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것/폐허뿐이네 적막뿐이네”와 같은 비감어린 정조에 휩싸이기도 한다. 또한 「친구들」(『가거도』)에서는 “산열매로 가득 배를 채우고/찔레꽃 개나리꽃으로 입술 물들이며/ 짐승들보다 더 빠르게/신나게 뛰던” 고향의 친구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어둠속에서 두근거리는 가슴 조이며/한밤내 대창 부딪는 소리”에 밤잠을 설쳐야 했던 기억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유년체험이 시인에겐 끝없이 덧나는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귀향은 상처로의 귀향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아물지 않고 덧나는 상처를 바라보며, 이같은 아픔이 ‘지금, 여기’의 삶속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시인은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즉 삶의 원형성과 순결성을 유린하고 파괴하는 파시즘적 사회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목소리를 돋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시편을 대표하는 것이 시집 『식칼론』에 실린 ‘식칼론’ 연작과 ‘나의 처녀막’ 연작이다.

 

창틈으로 당당히 걸어오는

햇빛으로 달구었어!

가장 타당한 말씀으로 벼리고요.

 

신라의 허황한 힘보다야 날카롭고

井邑詞의 몇구절보다는 덜 애절한

너그럽기는 무등산 허리에 버금가고

위력은

세계지리부도쯤은 한 칼이지요.

 

흐르는 피 앞에서는 묵묵하고

숨겨진 영양 앞에서는 날쌔지요.

비장하는 데 신경을 안 세워도 돼,

늘 본관의 심장 가까이 있고

늘 제군의 심장 가까이 있되

밝게만 밝게만 번뜩이면 돼요.

그의 적은

육법전서에 대부분 누워 있고……

아니요 아니요

유형무형의 전부요.

–「식칼론 1」 전문

 

식칼이란 소재부터가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섬뜩해 보인다. 소재로 하필 식칼을 선택한 것은 요리를 하는 데 써야 할 칼이 제 소임에만 충실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의 무시무시한 억압 때문이다. 식칼은 ‘햇빛’이라는 원형의 질료로 달구었다. 그것은 ‘가장 타당한 말씀으로’ 벼리었고 ‘심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서 진실의 무기이다. 이런 식칼이 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독재정권의 시녀가 된 ‘육법전서’다. 아니, 육법전서와 같은 유형무형의 전부다. 그래서 시인은 “맥없이 우는 세월이나 딛고” 지배담론에 봉사하는 “허약한 시인의 턱밑에다가”(「식칼론 2」) 섬뜩한 언어의 칼날을 들이대기도 하고, 삼선개헌과 유신선포로 이어지던 독재정권의 턱밑을 노리기까지 한다(「식칼론 3」 「식칼론 4」). 그런데 식칼의 위력은 ‘정읍사(井邑詞)의 몇구절보다는 덜 애절’하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슬픔의 감정 앞에서만 유일하게 무력한 속성을 갖고 있다. 강자 앞에서는 더욱 강해지지만 약자 앞에서는 그보다 더 약해지는 게 시인이 쥔 식칼이었던 것이다. 식칼의 날카로움은 그래서 ‘눈물’(「식칼론 2」)과 함께 있다. ‘눈물’의 둥郜은 칼끝의 날카로움을 껴안으며 우는 ‘천둥’이 되고, 칼끝은 그 울음 속에서 더욱 번뜩이며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번개’가 된다(「식칼론 4」).

 

제군

연전에 파열된

나의 처녀막을 기억이나 하시는지.

 

하루에도 몇번씩 강한 열 손가락으로

나의 어린 유년을 열어젖히고

상한 나의 처녀막 근처에 꿇어앉아

산산히 쪼가리난 흔적의 민주를 자유를

感得이나 하시는지.

통곡이나 하시는지.

 

쪼가리 쪼가리난 처녀막으로

붉은 세월의 피의 꽃방석 만들어 깔고 앉아

삐리 삐릴리 삐리 삐리 삐릴리

야만의 풀피리를 불고 있네만,

쪼가리 쪼가리난 민주나 자유로

삐리 삐릴리 삐리 삐리 삐릴리

야만의 풀피리를 불고 있네만,

 

심란해라 심란해라

아이 심란해라.

 

제군

돌아오는 메아리를 향한 나의 눈을,

나의 눈을 보시기나 하는지,

아직 피마르지 않는 내 육체를

울리며 기어다니는 메아리를 보시기나 하는지.

–「나의 처녀막 2」 부분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시사에서 나는 이처럼 강렬한 색채를 지닌 시를 아직 보지 못했다. 조각조각난 처녀막으로 피의 꽃방석을 깔고 앉아 불어대는 야만의 풀피리! 그것은 군사 쿠데타 정권에 의해 유린당한 4·19 혁명의 순수성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증언한다. 그리고 “피묻은 피묻은 처녀막을 나부끼며/아프고 피비린 냄새를 풍기며/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내가 섰다 내가 섰어.//(…)/파열된 처녀막을 가지고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바리케이트를 바리케이트를 칠 일이다./자유의 철새 한마리 명랑한 철새 한마리/날아와 울어주지 않는 여기는 누구의 땅인가”(「나의 처녀막 3」) 같은 원색적인 발언을 통해 야유를 보낸다. 또한 ‘오줌’과 ‘기침’ 같은 자연스런 생리현상을 참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을 전경화하기도 한다(「나의 처녀막 4」). 육체적인 것에 대한 전통적 혐오가 제도화된 공식문화의 기본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파시즘 사회에선 위험한 여성상 대신 안전하고 편안한 여성상만이 정치적 영역으로 호출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같은 성적 이미지의 반란은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의 충동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나의 처녀막 3」에선 ‘각하’ 혹은 ‘오월의 제왕’으로 명명된 지배이데올로기와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예기치 않은 웃음을 낳기도 하는데, 바흐찐이 민중언어의 특징이라고 말했던 ‘축제적 웃음’ 혹은 ‘흥겨운 상호의존성’이 발생하는 대목이다.

제국은 야만인을 만들어냄으로써 존속한다. 실제 야만인의 존재 유무와는 상관없이 상상된 야만인이라는 타자를 설정함으로써 제국의 안존을 기획한다. 조태일이 가장 뜨거운 언어들을 폭발시키던 정치적 암흑기에 시인의 시집은 금서목록의 서두를 장식했다. 그의 시편은 ‘각하’가 듣기엔 지극히 민망한 야만인의 피리소리였다. 시인은 제국에 의해 찍힌 낙인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되받아침으로써 야만의 시대를 증언하고자 했다. 그 저항이 비록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 저항의 순간만은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

 

“대지인가 여성인가. 아니 차라리 대지와 여성이다. 위대한 몽상가는 한 가지만을 선택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건 바슐라르(G. Bachelard)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 안테오스는 발이 땅에 닿는 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국토에 뿌리를 내린 조태일의 시는 여성성에 대한 원초적 충동과 매혹을 선보이고 있어 이채로움을 띤다. 여기서 시는 언어의 에로티시즘이 되고, 에로티시즘은 육체의 시가 된다. 온통 여성적인 이미지로 짜여진 첫시집 『아침 선박』에 실린 이 아름다운 한 장면을 펼쳐보라.

 

溪谷을 빠져, 개울물 흐르고

나뭇잎, 내 가시내의 허벅지도 흐르고

뒷山 열매 익던 소리.

–「밤에 흐느끼는 내 육체를」 부분

 

여인의 허벅지와 계류를 등치시킴으로써 계곡을 여성화하고, 여성의 생산력을 뒤미처 붙은 ‘뒷山’과 결합시킴으로써 ‘열매’라는 생명을 잉태하게 되는 과정을 단 세 줄로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溪谷’과 ‘뒷山’을 굳이 한자로 처리한 것은 이들 한자의 형용 자체가 시각적으로 성적인 뉘앙스를 주기 때문이다. 계곡의 ‘谷’은 팔다리를 벌리고 드러누워 있는 여체를 상징하고, 뒷산의 ‘山’은 솟구쳐오르는 남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아름다운 합일을 통해 시인은 상처로 얼룩진 시대의 어두운 ‘밤에 흐느끼는 내 육체를’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엿보인다.

 

들꽃들과 바람들이 낮거리하는 들녘으로

 

순아,

돌아,

 

이슬처녀 저 혼자 해님 껴안고

불그레 얼굴 붉히는 길섶을 지나

흰 구름 검은 구름 몸 섞으며 떠도는

하늘을 보며

 

순아,

돌아

 

들꽃들과 바람들이 낮거리하는 들판을 지나

붉은 해 산과 신방 차리려

노을이불 펴며 내려오는

해거름 속으로

 

순아,

돌아,

 

우리 함께 가자.

들꽃의 몸으로

바람의 몸으로

낮거리하러.

–「황홀」(『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전문

 

후기시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후기시에 접어들면서 대지는 현실의 세목이 현저하게 줄어든 채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원형적인 이미지들이 ‘낮거리’를 하는 황홀한 에로티시즘의 무대가 된다. 여기서 시인이 차린 ‘신방’에 구멍을 뚫고 훔쳐볼 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생명의 황홀경을 보여주는 에로티시즘이 인위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처녀는 해님을 껴안고, 해님은 이슬 속에 들어가 몸을 섞는데, 그 뒤에 이슬처녀의 여성성 쪽으로 옮겨간 해님은 자신을 껴안던 이슬처녀처럼 산을 껴안기 위해 노을이불을 편다. 그들을 둘러싼 흰 구름과 검은 구름도 몸을 섞고, 들꽃과 바람도 몸을 섞으며 경계선이 희미해진다. 즉 대지를 중심으로 해서 물(이슬처녀)과 불(해님)과 바람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하필이면 해거름을 배경으로 한 것은 해거름이라는 시간대 자체가 낮과 밤의 경계가 뒤섞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차원은 “부산한 낮거리들과/부처님 미소가/한덩어리로 어우러져 낮거리 한창이다”(「부처님 손바닥에서」,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라는 구절이 보여주듯 성속(聖俗)의 경계마저 훌쩍 뛰어넘는 진경으로까지 발전한다. 이 싱싱한 혼돈과 창조적 혼돈은 딱딱하게 굳어져버린 질서를 거부하는 정신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하면서, 참된 생명을 잉태하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시 중 하나가 「씨앗」(『창작과비평』 1999년 겨울호)이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깝게 시집에도 선집에도 실려 있지 않은 이 시를 보자.

 

큰 바위 밑

응달진 곳

한줌도 안되는 흙 위의

 

외톨이.

 

어디서 날아왔을까

저 바위 밀어 굴릴 수 있을까

 

눈감고

수행하는 이

 

수백 수천 미터

밑에서 조잘대는

물소리 듣고

뿌리 내린다

 

전율의

발광체.

–「씨앗」 전문

 

큰 바위가 한줌도 안되는 흙 위에 터를 잡은 씨앗의 여린 생명을 짓누르고 있다. 그 씨앗은 더욱이 ‘외톨이’다. 도저한 단독자 의식을 한 연으로 처리했기에 임박한 죽음 앞에서 황막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시인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더욱더 처연하게 느껴진다. 그를 짓누르는 바위는 아마도 시인이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고난의 연대를 상징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어디서 날아왔을까’에서 알 수 있듯이 그를 박토로 몰아간 바람의 시련은 여전히 불어대고 있다. 그런 시련 앞의 삶을 ‘눈감고 수행하는 이’라고 한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곡성 태안사 스님의 아들이기도 했던 그는 산문(山門)이 아닌 세상으로 출가를 했던 수행자였던 것이다. 수행자로서의 씨앗은 바위를 등에 진 채 까마득한 지하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물소리를 듣고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온몸으로 ‘전율의 발광체’가 된다. 이 떨리는 빛 앞에서 마치 바위도 전율하고 있는 것 같다. 씨앗의 힘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은 씨앗이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이면 어디든 자신의 고향을 삼으리라고 했다. 아니, “멈출 곳 없어 언제까지나 떠다니는 길목”(「풀씨」,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이라도 좋다고 했다. 길목이라면 안식의 열망과는 무관한 공간이다. 그런데 그런 길목이라도 좋다고 한 것은 고향의 뜻넓이가 물리적 공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러 말하자면 시인에게 고향은 씨앗의 생명성이 구현되어 있는 어떤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생명의 충일감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씨앗의 발아를 위해서 자주 ‘터진다’. 그의 시에 ‘터지다’ ‘터뜨리다’ 같은 확장적 파열음 계열의 술어가 수없이 등장하는 것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누가 누구를 미워하리

어느 것 하나라도 버릴 수 없고

어느 모습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절정에서 취해 취해

몸살을 앓는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어서

 

쓰러지고 일어나며

두근거리는 가슴 고이 간직

나 여기까지 와서 비틀거리는구나

 

온통 시샘하는 이것들 속에서

향기는 향기끼리 붙어

온 세상은 춤으로 출렁이고

온갖 자태를 뽐내며

꽃잎들은 다투어

온 세상을 밝히는구나

 

나 여기 기대어

순간이 순간을 낳고

틈새는 틈새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순간에 기대어

영원 속에 내 말들을 흩뿌리리라

 

푸른 하늘로 얼굴 가려

춤이나 한껏 추고 나면

이 몸 향내 나는

폭죽으로 터질까

 

꽃속에서 터진 말

하늘까지 사무칠까

–「꽃속에서」(『산속에서 꽃속에서』) 전문

 

시인은 지금 대지가 피워올린 꽃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 시간은 숱하게 쓰러지고 일어나길 거듭하며 온갖 신난고초를 겪은 뒤에 찾아낸 시간대이다. 꽃속에 든 시인은 이제 절정에 취해서 사랑을 몸살이라고 말한다. 이 뜨거운 몸살 속에서 시인은 어질머리를 앓으며 비틀거리고, 그 비틀거림은 이내 춤동작으로 이어진다. 대지의 절정이 주는 흔들림 위에서 추는 춤! 그것은 무엇보다 순간에 대한 몰입으로부터 온다. 그것이 ‘위대한 순간’인 것은 역사적 공간인 대지 위에서 신화적 시간대인 영원까지 닿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시간 개념은 순간을 오직 하나의 추상적 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해버리지만, 직관의 형식으로서 시적 순간은 과거와 미래가 모두 모여 수렴될 수 있는 창조적 시간이 된다. 이같은 시간은 ‘틈새’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숨구멍처럼 뚫린 그 틈은 또하나의 틈을 낳으면서 조금씩 벌어져간다. 꽉 닫힌 꽃망울 속에 있던 시간이 이내 파열된다. “외로움도, 가난도/찬란한 영광으로 터지”(「벌판으로 가자」,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고, 돈오(頓悟)적 순간의 절정에 기대어 파열된 존재는 하늘까지 사무치는 말을 꿈꾸다가 종국엔 “깨끗한/침묵으로/아문다,//어머니의/임종처럼”(「꽃들이 아문다」,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조태일은 어느 시에선가 대지의 침묵을 ‘살아 있는 침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인의 말대로 한알의 풀씨가 되어 국토로 돌아간 시인의 침묵은 아직도 끝없이 살아 움직인다. “무슨 말인가를 할 듯 할 듯 하다가/얼면서 끝내 입을 다문 채” “함성으로 살아 터지는”(「성에」, 『자유가 시인더러』) 꽃, 성에의 결정처럼 입을 다문 채 말을 건네온다. “피어서 뿜어주고/아물어서 침묵”(「꽃사태」, 『자유가 시인더러』)했던 한 시인의 그 서늘하고도 뜨거웠던 꽃사태 아래 나는 오래 서 있을 것이다. 그 꽃사태와 씨앗이 만들어낸 들깻잎 향기에 코를 킁킁거리며, 밤비를 맞고 바다를 잠재우며 깨어나는 대지의 향기를 그리워하며.

 

돌무더기 주위엔

파도소리 바쁘고.

 

땅끝은 끝이 없어라

향기 끝은 끝이 없어라.

 

들깻잎 위에 밤비 내리고

들깻잎 향기 바다를 잠재운다.

–「해남 땅끝의 깻잎 향기」(『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전문

 

 

4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양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이 시대 시에서 나는 어떤 공허를 느낀다. 적어도 시의 제작에 있어서 이 시대 시인들은 그 어느 시대 시인들보다 뛰어난 숙련공이 돼버린 것 같다. 우리 주위엔 너무도 흔한 ‘좋은 시’가 있고, 완성도 높은 시를 쏟아내는 시인이 많다. 그런데 시라는 것이 과연 숙련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숙련되는 순간 시는 멀어지고 만다. 자기 배반과 자기 유배와 공들여 만든 자기 문법의 붕괴야말로 시의 오랜 생명력이다. 시는 스스로 황무지를 찾아가고, ‘좋은 시’가 되길 거부하며, 자기의 언어로부터 끝없이 탈주한다. 이 시대 시는 지나치게 자신의 언어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시인은 가장 많이 흔들리는 돌들로 음악의 신전을 짓는다.” 파란과 곡절이 많았던 조태일의 시를 만나면서 릴케의 「오르페에게 부치는 소네트」 중 한구절이 떠오른 건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나는 정주하길 거부하고 끝없이 살아 있고자 했던 시인의 의지를 엿보았는지 모른다. 시와 그가 몸담고 있던 시대 사이에서, 말과 침묵 사이에서, 꽃망울의 터짐과 움츠림 사이에서 모순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채 멈추지 않고 흔들리는 진자운동의 동력학을 우리 시대 시의 엔진으로 끌어오고 싶었는지 모른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땅 위에서 그래도 끝까지 살아보려고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의 그 철저한 움직임이 시인 것이다”(「고여 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 『창작과비평』 1970년 여름호)라던 시인의 말을 거듭 되새김질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