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이재무 李載武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등이 있음. poet8635@dreamwiz.com
저울과 시
나는 그의 정직이 때로 무섭고 싫다
싸우나탕 들러 습관처럼 몸 올려놓으며
나는 그가 깜박 속아주기를 기대해보지만
그의 정직에는 에누리가 없다
한주일간의 방만과 일탈과 게으름을
그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눈금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비굴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때로 그를 턱없이 의심하기도 하고
그에게 사정해보기도 하고
나는 또 그에게 변명을 늘어놓기도 해보는 것이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죽음만이 그대를 쉬게 할 것이다”
부끄러워 퉁퉁 부어오른 몸 슬며시 내려놓는 내게
그는 마지막 일침을 가한다
“몸을 부려야 사유가 반짝인다”
나는 그의 정직이 때로 무섭고 싫다
냉장고
한밤중 늙고 지친 한 여자가 울고 있다
그녀의 울음은 베란다를 넘지 못한다
나는 그녀처럼 헤픈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그녀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녀 몸속엔
그렇고 그런 싸구려 내용들이
진설되어 있다 그녀의 몸엔
아주 익숙한 내음이 배어 있다 그녀는
24시간 노동을 쉰 적이 없다 사시사철
그렁그렁 가래를 끓는 여자
언젠가 그녀가 울음을 그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들처럼 흔한 것도 없으니
한밤중 늙고 지친 여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울음에 주목하지 않는다
살찐 소파에 앉아 자정 너머의 TV를
노려보던 한 사내가 일어나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그녀에게로 간다
그녀 몸속에 두꺼운 손을 집어넣는다
함부로 이곳저곳을 더듬고 주물러댄다
밴댕이 구이
도봉산 입구에 가면 ‘강화도집’이 있는데
그 집 밴댕이 구이 맛이 일품이야
참기름 듬뿍 발라 살짝 구어낸 밴댕이 구이는
속도 뼈도 없어 발라낼 것도 없다네
산을 탄 날은 천원에 한마리 하는
밴댕이 구이 안주로 탁주를 마시는데
기분이 썩 좋아 뭉친 근육 풀리고
적당히 정신도 몽롱해져서 세상의
사소한 잘못 따위 쉽게 용서가 된다네
속 좁은 밴댕이들아, 속 다스리지 못해
울적한 날 있거든 기골 장대한 사내 같기도 하고
음기 센 여인 같기도 한 도봉산을 타고 오렴
어지간히 땀 들이거든 내려와
막걸리에 새우두부국에 밴댕이 구이나 먹고
팔자걸음으로 천천히 오시게나
흥얼흥얼 철 지난 유행가도 부르면서
옛적 우리들 아비가 그랬듯이
시장에 들러 간고등어 한마리
지푸라기에 매달고 넉넉히 오시게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