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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종천 崔鍾天
1954년 전남 장성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눈물은 푸르다』가 있음. ch3014eo@hanmail.net
침묵의 언어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반짝이는 것이
사람으로 치자면 말을 하는 것일까?
이 그늘 아래서라면 나는 입을 다물고
나무들이 읽어주는 경전을 들어보리라
해마다 수천권의 책이 출판되고
영화와 연극이 공연되는 대명천지에
지금은 헤어진 그녀도 나더러
주둥이 하나로 먹고살 생각을 하라고
이제 노동을 그만 하라고 넌지시 충고하는
눈부신 지식산업과 문화의 세기에
나무들은 부는 바람에 춤을 추는구나
일을 하는구나 일을 하는구나. 땅을
깊고 넓게 일구고 있구나.
말이야말로 기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 여호와에게 변명을 하기 위해 맨 처음
입을 열어 핑계를 댄 아담 정도는
되어야 말을 하는 것이다.
나의 말을 훔쳐간 한권의 시집을
지금 누군가가 읽고 있으리라
내가 생산한 의미를
누군가가 써먹고 있을 것이다
나무그늘 아래서 나무가 쓴 경전을 읽어본다
나무의 언어는 나무 자체이다
나무의 언어는 나무로 實在하고 있다
나무의 언어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인간의 언어는 사물의 말을 듣기 위한 방법이다
노동은 본래 그런 침묵의 언어였다
나는 인권 대신 物權을 주장하리라
사물이 나에게 증여한 이 언어로
소용돌이
나는 무골 호인이 아니다
나를 거스르지 말라
나를 거역하는 자에겐
가차없이 대적하리라
나는 먹을수록
배가 고픈 자궁이다
나를 범하는 자는
그 목숨을 물에 말아먹고 말리라
누구든 내 앞에서는
뼈를 세우지 말라
목에 힘주지 말라
흐름에 맡기고
송장헤엄을 쳐라
나는 삼키는 자궁이다
나는 찌꺼기를 낳는다
성공은
어떠한 고역이나 시련도 없이 성공한
사람들이 나는 두렵다
특히 그가 지도자가 되려 한다거나
굳이 예를 들자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다면
나는 그의 당선에 반대하리라
사람의 털을 벗겨버린 신의 뜻은
상처를 입으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땅마저도
상처가 아니라면 어디에
사랑을 경작하랴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定義를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