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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대화를 통한 자기성찰의 기록
우에노 치즈꼬·조한혜정 『경계에서 말한다』, 생각의 나무 2004
권인숙 權仁淑
명지대 교육학습개발원 교수 ikwon@mju.ac.kr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단순해진다. 이전에는 사람을 만나면 특성이나 능력, 기질을 가지고 평가했다. 그러나 요즘은 성찰적 능력이 있는가가 제일 궁금해진다. 성찰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이기심과 복잡한 자기욕구를 극복한 도인 같은 이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는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한발짝 떨어져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로 해당된다. 그런데 단순히 생각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관대함을 키울 때 성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찰성을 갖추었을 때 옳고 그름, 잘한 일, 못한 일, 절대선, 절대악의 이분법적 규정이 훨씬 덜해지고, 피해의식과 방어의식, 심한 우월감과 열등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다. 대안을 찾을 수 있는 힘은 성찰성에서 온다고 믿는다.
『경계에서 말한다』는 성찰을 위한 책이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집단·민족·국가도 성찰적으로 이해하려는 책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활동가인 조한혜정과 우에노 치즈꼬(上野千鶴子)가 각자 여섯 번에 걸쳐 편지를 교환했다. 국적별로 가치가 다른 학위, 자기언어와 지배자의 언어를 익히는 것의 전복적 가치, 근대적 인간으로 훈련되고 그 틀 속에서 사는 삶에 대한 분석,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피해/가해 구도의 단순성에 대한 극복 노력, 절대화된 가치를 가지는 조국을 해체하려는 시도, 국가라는 틀에 구속되어온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대한 분석, 양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출산파업에 대한 이해, 청소년 교육과 노년의 삶에서 대안찾기 등 다양한 주제를 자신들의 경험과 기억, 활동 속에서 아우르며 담담하게 생각을 펼쳐낸다.
이 책의 성찰성은 대화하는 방식에서부터 찾아진다. 조한혜정 교수가 이 책을 소개하는 TV 대담(‘김종휘의 책 읽는 마을’, 한강 케이블TV 2004년 12월 9일)에서도 밝혔듯이 이들이 대화하는 방식에는 중요한 메씨지가 담겨 있다. 이들에게 대화 혹은 논쟁은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거나 남을 이기기 위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인격있는 학자들에게서 묻어나오는 겸손함이나 상대의견에 대한 존중을 견지하는 수준에서 머무르지도 않는다. 이들의 대화에서는 사적 경험과 개인사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문제를 바라볼 때 자신의 종적·횡적 위치를 밝힌다. 대화를 통해 새로운 논의의 전제를 마련하려면 서로의 차이를 알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함이 이 책에 제대로 표현되었다. 결국 대화나 논쟁의 핵심은 상대방 주장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임을 편지글을 따라 읽다보면 차분히 공감하게 된다.
또다른 성찰의 지점은 가해자/피해자 대립구도가 강한 일한관계를 규정하는 국가적 정체성을 성찰적 개인들은 어떻게 바라보는가이다. 우에노 치즈꼬는 “국가보다 내가 소중하다. 내게는 이것이 페미니즘의 ‘기본의 기(基)’라고 생각”(141면)한다고 단호하게 국가와 나 사이에 선을 긋는다. 2차대전 이후 국가의 탈신성화, 약한 국가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형성되었던 일본이기에 우에노 치즈꼬가 가진 국가에 대한 해체적 비판의식은 강하고 도전적이다. 패배한 국가에서 여성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경험적 근거도 제시하고, 국가주의적 공적 가치가 여성을 이등시민화하고, 성녀/창녀의 이중가치를 강화하며, 여성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사적 가치를 억누르고 있음을 설명한다. 한국의 경우 조한혜정이 지적한 대로, 비판적 지식인 사이에도 국가의 탈신성화, 약한 국가의 추구는 가능한 상식이 아니었다. 식민지 경험을 통해 국가는 늘 열망의 대상이었고, 근대화의 진정한 주체로서 인식돼왔다. 조한혜정은 여성운동도 근대국가 건설의 틀 안에서 벌어진 운동이라고 분석한다. 이렇게 다른 역사적 경로를 거쳐온 한국인과 일본인이 강한 국가적 정체성에서 한발짝 떨어져 국가를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성찰적이다. 사실 국가가 개인적 경험의 양과 정체성의 대부분을 규정하면서 이것에 의해 형성된 반일의식, 반미의식은 쉽게 모든 다른 차원의 가치를 압도한다. 한줄기의 경험과 의식이 모든 개개인의 경험과 의식을 통제하고 대변하며, 옳고 그름, 절대선과 절대악의 구도에서 전체적 획일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두 페미니스트의 국가에 대한 해체적 성찰은 개인의 삶이 국가나 집단이나 가족의 도구가 아님을 이해하는 새로운 대안적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들이 가장 큰 공통점인 페미니즘은 이들의 성찰적 능력의 기초이다. 공적 가치보다는 사적 가치의 강조, 중심에서 주변부로의 이동 등을 통해 형성된 페미니스트적 주변부 철학은 매사의 가치와 대안을 찾는 노력을 낳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성찰성의 핵심은 현실과 동떨어져 학문을 위하여 학문의 소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삶을 통해서 학문적 근거와 실천을 확대해나간다는 점이다. 자신의 존재적 조건과 경험적 근거 속에서 조한혜정은 청소년 교육을, 우에노 치즈꼬는 노인을 사회적으로 돌보기 위한 개호보험(介護保險)을 실천의 장으로 선택한 것은 페미니즘의 정직함과 실천의 건강함을 지속시켜나가는 힘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이야기와 서로에 대한 감정적 배려가 많은 편지글이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한 깊은 논리전개가 안된 경우가 많다. 특히 중요한 주제인 일본·한국의 가해자/피해자 구도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한 논쟁이 없어 아쉽기도 했다. 또한 개인사 자체가 성찰성의 중요한 도구로서 사용되었음에도 조한혜정의 과거사 회고에서는 자기 가족의 특권적·예외적 지위에 대한 의미분석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색다른 변화를 추구한 교육자로서 사회변혁적인 욕구가 강했던 80년대 학생들을 가르칠 때 겪었을 법한 갈등에 대한 회고도 빠져 있다. 사상적·실천적 내용에서 자신과 다른, 맑스주의적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가진 우에노 치즈꼬와의 편지에서 좀더 구체적인 논쟁의 접점을 마련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다면 한국 여성운동에서 가장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실천과 평가에서 갈등적 요소를 제공하는 수원지였던 맑스주의적·사회주의적 페미니스트와의 관계에 대해 조한혜정의 생각을 좀더 풍부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우에노 치즈꼬 교수가 대영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이런 도둑놈’이라고 서구제국의 식민지적 역사에 분노하면서 일본은 상대적으로 패권국가의 경험이 짧았다고 이야기한 부분은 아직도 우에노 치즈꼬가 국가주의적 틀에서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자가당착적 해석 같아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경계에서 말한다』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대화의 욕구일 것이다. 이런 소중한 대화를 통해 자기정리의 시간과 사고지평 확대의 기회를 가진 두 페미니스트가 너무도 부러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쌓아올려진 우정에는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쉽게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는 나지만 삶과 사상을 정리하고, 대화 상대자의 반응과 그이의 삶과 사상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경험을 할 기회를 갖고 싶다는 욕구에 읽는 내내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