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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토오꾜오의 학교에 자유의 바람을!
마루하마 에리꼬 丸浜江里子
1951년생. 토오꾜오도(東京都) 스기나미구(杉並區) 거주. ‘스기나미의 교육을 생각하는 모든 이들의 모임’ 및 ‘학교에 자유의 바람을! 네트워크’의 회원. 공저로 『日の丸·君が代處分: 東京の學校で何が起こっているか』 『學校に自由の風を!』 등이 있음. mrhmeri@vega.ocn.ne.jp
ⓒ 丸浜江里子 2005 / 한국어판 ⓒ (주)창비 2005
일본의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벚꽃이 지는 요즘, 토오꾜오는 제갈채(諸葛菜) 꽃이 거리를 수놓고 있습니다. 이 꽃은 1938년 난징(南京)대학살이 일어난 이듬해 4월, 시찰에 나선 한 일본 병사가 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뒤 충격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자금산(紫金山) 기슭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공양(供養)의 꽃’ ‘평화의 꽃’으로 널리 보급하기 위해 그 종자를 가져와 ‘자금초(紫金草)’라고 부르며 퍼뜨린 꽃이라고 합니다. 지금 일본 각지에는 보랏빛 선연한 이 꽃이 피어 있습니다.
5월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진달래꽃이 일본 곳곳을 물들일 것입니다. 월드컵 공동개최의 성공 이래, 일본에서는 「겨울연가」 붐도 일고 해서 한국문화가 누구에게나 친숙해졌습니다. 저 자신도 최근 10년간 네 차례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잔잔한 수면에 큰 돌을 던져서 파문을 일으키듯이 코이즈미(小泉) 수상과 많은 국회의원, 이시하라(石原) 토오꾜오도지사 등의 야스꾸니(靖國)신사 참배가 이어졌습니다. 또한, “(일본 역사교과서에서) 이제야 이른바 종군위안부나 강제연행 같은 용어가 줄어든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나까야마 나리아끼中山成彬 문부과학성 장관) “난징(南京)에서 삼광작전(三光作戰, 중국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잔학한 전술을 가리켜 닥치는 대로 죽이는 살광殺光, 닥치는 대로 약탈하는 창광槍光, 닥치는 대로 불사르는 소광燒光을 합쳐 삼광작전이라 부름―옮긴이)은 없었다”(아베 신조오安部晋三 의원)와 같은 폭언과,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의 검정통과 등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한국이나 중국 국민은 “도대체 일본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싶을 겁니다. 모처럼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던 차에 일본의 정치가들이 이렇게 찬물을 끼얹고 있으니까요.
일본에서는 코이즈미, 아베, 아소오(麻生), 마찌무라(町村) 등 부친이나 조부의 뒤를 이어 정치를 하는 2세 국회의원이 최근 정치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여당이 매스컴에 압력을 행사하고, 언론의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994년에 여당인 자민당의 숙원이던 소선거구제가 성립하고부터는 국회 안에서 비판세력이 현저히 줄어들어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유사법제’(有事法制, 전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위대의 출동 등 대응방침을 명시한 법제–옮긴이) 같은 악법이 차례차례 통과되는 등, 여당의 횡포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시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특히 공립학교에서 ‘히노마루(日の丸)·키미가요(君が代)’를 강요하는 이시하라 토오꾜오도지사의 행동이나 교과서 문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토오꾜오 시민의 생각과 활동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건 쇼오와(昭和)15년의 통지서가 아닌가
2004년 3월 도립학교의 졸업식은 일본의 교육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토오꾜오도 교육위원회가 헌법을 무시하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사상·양심·신앙·표현의 자유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2003년까지 도립고등학교의 졸업식에서는 개회식에 앞서, 한 교사가 “국가제창시에는 기립해달라고 부탁하겠지만, 의견이 나뉘어 있기도 하니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을 결정해주세요”라고 안내방송을 해서 ‘키미가요’를 제창 때 기립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사와 내빈과 학부모는 졸업생들을 가운데 두고 ㄷ자형으로 둘러앉고, 학생회 위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에 따라 노래·구호·주장이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졸업생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을 축하했습니다. 졸업식이 거행되는 동안, 학생들 각자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이런 학교에 자식을 보낸 것을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2003년 10월 23일, 토오꾜오도 교육위원회가 발송한 ‘통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키미가요’는 기립해서 제창할 것. 졸업식장의 좌석은 단상 정면을 향하도록 배치하고, 졸업장은 단상에서 수여할 것. 단상에는 ‘히노마루’를 좌측에 게양하고, 우측에는 토오꾜오도기(都旗)를 게양할 것. 이에 따르지 않는 교직원에게는 책임을 물을 것임”이라고 명기되어 있었습니다. 교장에게는 “생각의 자유와 관련된 방송을 해서는 안된다”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또한 제가 사는 스기나미를 비롯해 토오꾜오도와 그 주변의 많은 교육위원회가 거의 동일한 내용의 통지서를 공립 소·중학교에 발송했습니다.
정월에 세 분의 학부모와 홍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동안 등교하지 않던 아들이 졸업식 날, 자신의 그림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요. 그런데 그림을 무대에 전시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학교의 주인공은 ‘국가’가 아니라 ‘아이들’인데 말이죠.” 10월에 발송된 한통의 통지서가 졸업식에서 아이들의 그림을 단상에 장식해온 10여년의 학교 전통을 없앤 것입니다. 단상에는 ‘히노마루’와 ‘토오꾜오도기’―구립학교에서는 ‘구기(區旗)’―만을 게양해야 한다는 결정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졸업식에 관해서 이야기해봅시다”라고 제안하자, 열네 명의 학부모가 모였습니다. 한 어머니가 “에, 이건 헤이세이(平成)가 아니라 쇼오와(昭和) 15년의 통지서가 잘못 날아온 게 아닌가요?”라고 한마디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실로 예지적인 것이었습니다. 쇼오와 15년(1940년)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개시하기 한해 전이고, 헤이세이 15년(2003년)은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하기 한해 전입니다. 도교육위원회의 이 알 수 없는 강요는 ‘전시체제’를 위한 것일까? 졸업하는 아들이 국가에 구속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2005년은 ‘아시아·태평양전쟁’ 패전 60주년입니다. ‘시대의 회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급히 ‘졸업식·입학식에 관한 도교육위원회의 통지를 재검토해줄 것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작성하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네 곳의 도립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학부모 일동’이라고 학교 이름도 적어넣기로 했습니다. 요청서의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히노마루의 게양과 키미가요의 제창을 학생, 학부모, 교직원에게 강요하지 말아주십시오. 둘째,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각 학교가 독자적으로 졸업식장 시설을 설치할 자유를 인정해주십시오. 셋째, 히노마루·키미가요 문제로 교직원에게 징계조치를 절대 내리지 말아주십시오.
당초의 4개교에서 6개교, 10개교, 20개교로 확대되었고, 거기에다 도립양호학교까지 참여함으로써 이 모임은 도립학교 전체가 찬동하는 학부모모임으로 확대되어갔습니다. 2월 18일, 50개교 도립학교 학부모 802명의 서명을 가지고 도교육위원회에 진정을 했습니다. “일본에는 외국인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이 다니는 도립학교이기 때문에 강요를 해서는 안된다. 또한 교사들의 양심의 자유를 빼앗아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라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함께 대화하자고 했지만, 도교육위원회는 우리의 의견을 처음부터 ‘반대 입장’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짓고, “학습지도요령에 있는 대로”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몹시 퉁명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러나 학습지도요령에는 “국기·국가를 존중”한다고는 씌어 있지만, 그 어디에도 무대를 향해서 좌측에 국기, 우측에 도기를 게양하라고는 씌어 있지 않았습니다. “학습지도요령에 있는 대로”라는 말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육을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간을 관리하는 기사(operator)들 같았습니다.
우리는 도교육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 직접 서명해줄 것을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메일로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놀랄 만큼 움직임이 확산되어 87개교의 도립학교 학부모 5686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6월에 있을 예정이었던 진정에 대한 심의는 3월 문교위원회에서 행해졌는데, 생활자네트워크·공산당·자치시민이 찬성했지만, 자민당·공명당·민주당의 반대로 부결되었습니다. 방청중에 놀란 것은 자민당 소속의원들의 야유였습니다. “10·23 통지서에 국기는 좌측, 도기는 우측으로 씌어 있는데, 그 좌·우의 근거는 무엇이냐?”라는 공산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자민당 의원들은 야유를 연발했고, “그것은 국제적인 상식”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그럴까? 이런 강요가 국제적인 상식일까?”라는 의문이 들어 외신특파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캐치프레이즈
2004년 3월 31일, 회견이 열렸습니다. 당일 『재팬타임즈』가 1면에 기사를 실었기 때문에 회견장은 특파원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호소했습니다. “우리들은 국기와 국가(國歌)나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국기나 국가라고 해서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나찌의 깃발이었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와 동일한 시대에 똑같은 역할을 했던 이 깃발과 이 노래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토오꾜오에 사는 다양한 입장과 국적의 사람들과 사이좋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고 공생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도 이런 강요를 하지 말기 바랍니다. 10·23 통지와 그에 관련된 교직원에 대한 징계를 철회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기자들로부터 솔직한 질문이 많이 나왔습니다. 합리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도교육위원회의 대응에는 기분이 암울했었지만, 그때는 답답한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국제도시 토오꾜오에서 마음의 쇄국(鎖國)을 강요하는 도교육위원회의 불합리함이 부각된 점, 우리가 보낸 소식을 세계의 눈과 귀가 보고 듣고 있으며, 세계의 언론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커다란 성과였습니다.
다음날 이후 기자회견 내용은 『재팬타임즈』, AP통신, 영국의 『가디언』과 교육지, 『싸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네덜란드의 신문 등에 게재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지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사상과 풍부한 학식을 갖춘 교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교사에 대한 징계에 반대해왔지만, 2004년 봄 도교육위원회는 ‘징계’를 강행했습니다. ‘키미가요’ 제창 때 기립하지 않은 교사에게 1차로는 경고, 2차로는 감봉처분을 했고, 위탁교사에게는 해고라는 가혹한 조치를 강행했습니다. 거기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립하지 않았다, ‘국기·국가’에 대해서 학생회가 토론했다” 등을 이유로 담당교사를 징계하는 만행도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알 권리와 사상·신앙·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입니다. ‘징계’를 받은 300여명의 교사는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제소했습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우리는 ‘학교에 자유의 바람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집회를 세 차례 열었고, 모두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회는 520명, 2회는 1300명, 세 명의 학부모와 서로 이야기를 나눈 지 꼭 1년이 되는 날에 열린 3회에는 1900명의 참가자가 집회장에 모였습니다. 마치 릴레이라도 하듯 고등학생, 재일외국인 부모와 학생, 교사, 학부모, 저널리스트, 변호사, 학자 들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힘을 얻었다!” “모여서 이야기를 들으니 제각각의 사실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준비과정에서 교직원·시민·학부모 사이의 격의도 점차 사라져갔습니다.
그와 동시에 토오꾜오도 의회에 ‘10·23 통지와 교직원의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3개월 동안 23,000명의 서명을 모아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진정은 부결되었습니다. 도정(都政)·도의회가 이시하라 도지사, 여당 독재상태에서 도민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을 보고, 민주주의 씨스템도 참여하지 않으면 독재를 낳고, 무관심과 체념이 그 온상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번 2005년 도의회의원 선거가 기회가 될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두 토오꾜오도민에게 달려 있습니다.
교육의 우경화를 추진하는 두 개의 바퀴
“도교육위원회 여러분, 더이상 선생님들을 괴롭히지 마세요!” 이것은 올해 도립고등학교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호소한 말입니다. 학생이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에서 울부짖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하라 도지사와 도교육위원회는 올해도 키미가요 제창 때 기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3명의 교사를 징계하고, 게다가 올해 새로 개교한 ‘중고등통합학교’에서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 채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히노마루·키미가요’ 강요와 이 역사교과서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은 교육의 우경화를 추진하는 두 개의 바퀴인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스기나미구는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구청장이 교체되지 않아 2001년에 이어 지금도 상황이 아주 열악한 곳입니다. 구민에게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자매구인 서울 서초구와 시민교류를 추진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월에 서초구를 방문했을 때, 구청장을 비롯해 여러 분들의 대환영을 받았고, 또 서초구청장은 스기나미구의 방문을 약속했습니다. 얼마 전 스기나미구의 야마다 구청장에게 함께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참’이라는 회답만 보내왔습니다. 앞으로도 줄기차게 참여를 요청하겠지만, 시민교류에 등을 돌리고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한국을 방문하여 미군기지의 철거를 요구하는 가두시위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며 자기 주장을 외치는 젊은이들을 보았고, 진보적인 학자가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힘을 직접 보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격렬하고 줄기찬 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일본의 정치인들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폭언, 그들이 저지르는 폭거는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며, 일본 시민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닙니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교류를 통해 넓고 깊게 배우고 싶어하는 시민이 많습니다. 시민교류의 파이프를 굵고 크게 만들어가며, 그것을 토대로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시민교류를 확대해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올해 간행될 한·중·일 3국 공동의 역사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는 그런 시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배우고,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 역사적 사실을 마음에 각인시키며, 미래를 열어갈 젊은이들을 육성하는 교육, 그리고 순간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망언이나 허언(虛言)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사죄와 그에 따른 보상을 반드시 실현시키고자 합니다.
지금 스기나미구는 벚꽃과 제갈채와 진달래가 피어 세 나라의 꽃이 그려진 한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입니다. 5월말, 서초구 구민 여러 분과 한국의 많은 분들이 스기나미에 오셔서 깊은 교류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朴光賢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