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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명훈 李明勳
1961년 청주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2003년 『문학사상』 장편문학상 수상. iles0215@hanmail.net
줄
고층유리 닦는 남자가 내려온다
전깃줄이 가슴께를 지난다
순간의 줄십자가
아슬하다
온몸으로 쓸고 온 허공이
맑게 닦여 있다
살아 있는 시체 하나
조심조심 십자가를 내려오고 있다
바라보거나 들여다볼 수 없는 窓
수직의 매정한 단면이 그의 길이다
전깃줄이 유리를 자르고 있다
케나1
케나라는 피리가
새의 뼈로 만들어졌다는 말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몸이 삭도록 일만 해
종잇장처럼 가벼웠던,
끝내는 다리뼈가 부러지고도
너무 약해 붙일 수 없어
마룻장을 기어다니던 날개 잃은 새
인골로 만들기도 했다는 케나
지하철 혜화역에서 남미의 사람들이
엘 콘도르 빠사를 취한 듯 연주할 때
죽음 저편에서 불어온 듯한 스산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외로운 영혼 속을 흐르는 경이로운 소리
툇마루 끝에 바람으로 빚어진 한 여인
날아오르지 못하고
콘도르처럼 앉아 있다
소리가 그녀 몸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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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나(quena): 남미의 피리로 「엘 콘도르 빠사」를 연주할 때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