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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영주 李映姝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 oistrak3@hanmail.net
매를 파는 노파
지하철역 입구
노파가 매를 팔고 있다
어두운 거리를 가로질러
사람들이 맨손으로 사라진다
노파는 보퉁이 속에서 파닥거리는
매의 날개를 만진다
오래전에 떠난
매는 사냥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횃대에 앉아 말라가고 있다
살을 태우고 있다
사냥하기엔 너무 늙어서
도시의 밤은 땀을 흘린다
풀어놓은 보퉁이를 끌어안고
노파가 벽에 붙어 헐떡거린다
가로등이 달아오른다
공중을 부유하는 늙은 매
노파가 가로등에 앉아 말라가고 있다
살을 태우고 있다
그녀가 사랑한 배관공
욕실 창틀에 검은 박쥐가 붙어 있다
오래된 배수관처럼 끓어오르는 심장에 손을 대고
그녀가 훌쩍인다 몸속에서
수만마리 박쥐떼가 날아오른다
그녀는 배수관을 툭툭 친다
구루룩 구루룩 심장을 두드리는 저 새까만 날개들
이제 배수관 따위에 말하는 것도 지겨워
그녀는 차가운 얼굴을 타월에 비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박쥐들은 떠나갈 거야
날개를 접듯 처진 가슴을 웅크리고 그녀는
천천히 몸을 기울인다 마모된 배수관이
아무렇게나 심장 속에서 구른다
이런 집, 태양이 없는 곳에서도 달이 뜨는지
늙은 배관공은 지하방 너머
왼쪽 골목 첫번째 건물에 앉아 있다
밤마다 둥근 달이 떠오르면 그는
덧문을 닫아걸고 사라진다
평생 잘린 날개들을 치워왔다
타일바닥에 주저앉아 그녀는
오래전에 쓴 편지를 떠올린다
첫 문장을 천번 고치면서
그녀는 천번을 퍼덕거렸다 드디어
완성된 천번의 문장들이 골목을 건너간다
밤은 아프고 잔인한 체위
낡은 배수관에서 물이 넘쳐요
새까만 얼굴을 하수구에 파묻고
그녀가 구루룩거린다
이 지하에 숨어 있는 수많은 동굴들
좁은 욕실에 쪼그리고 앉은 검은 박쥐가 조용히 운다
한 생애를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