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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근대성찰적 시각의 모색, 그 가능성과 한계

박희병 『운화와 근대』, 돌베개 2003

 

 

최영진 崔英辰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choijin777@hanmail.net

 

 

한국사회는 전근대·근대·탈근대가 혼재된 중층적 구조체이다. 정치경제 그리고 가족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근본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압축적 근대화를 이룩한 동북아시아의 공통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근대’를 화두로 삼아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주목을 끄는 최근의 저작이 『운화와 근대』이다. 이 책은 최한기(崔漢綺)에 대한 수년간의 연구와 단상을 적은 글이다. 박희병(朴熙秉)의 글은 기존 연구성과를 그저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적 시각에서 보려고 하는 데에 특징이 있다.

이 책은 틀에 박힌 논문식 글쓰기를 고집하지 않지만,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문제와 방법’에서는 기존 연구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새로운 연구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한 최한기 사상의 음미’에서는 ‘서양을 보는 눈’ ‘세계주의’ ‘자연과 인위’ ‘평화주의’ ‘학문의 통일’ 등 최한기 독해를 위한 핵심주제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셋째 ‘논의의 심화와 확대’에서는 최한기의 근대기획과 구상이 갖고 있는 의의와 한계를 ‘이욕(利欲) 긍정’ ‘평등’ ‘공치(共治)’ ‘경험론’ ‘국민’ ‘국가’ ‘중국·일본의 근대구상과 비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최한기를 분석, 평가하고 있다.

그는 기존 최한기 연구는 ‘근대주의의 추인과 정당화’(18면)의 결함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사상(事象)의 의의와 문제점을 동시에”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21면).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연구방법을 기존의 근대주의적 시각의 접근법과 구분하기 위해 ‘근대성찰적 접근법’이라고 명명한다.

기존 학계의 연구를 성토하고 나선 박희병의 잣대, ‘근대성찰적 접근법’은 서구적 근대가 이룩한 성과 이면의 모순 또한 고려한다는 점에서, 근대주의적 시각의 최한기 연구와 차별화된다. 이러한 접근법이 갖고 올 효과는 근대의 압도적 패러다임으로 인해 폐기되었던, 주체적 ‘근대기획〓근대구상의 가능성’(24면)을 새롭게 확인하며, 서구근대의 입장과 눈으로 우리를 봄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사상계기’(27면)에서부터 오히려 근대를 넘어선 교훈과 시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 우리의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급물살을 타고 있는 ‘서구추수주의 행태’는 서구를 보편화하는 것을 넘어 ‘자기부정’과 ‘몰주체’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희병의 지적은 이 지점에서 연구자들의 관행에 일침을 가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것으로서 신선한 감을 준다.

척화론이 주류였던 시대에 최한기는 누구보다 서양과학 수용에 적극적이었기에 동도서기론자 혹은 개화사상의 선구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박희병은 최한기의 주장을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으로 규정하는 기존의 견해를 비판하고 동서의 상호주체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동서취사론(東西取捨論)’과 같은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32면). 또한 ‘문호개방’과 ‘대동세계’를 지향하는 주장의 선진성 이면에는 “서양 근대사회를 지배하던 자본제적 운용원리의 세계사적 의미를 통찰하지 못한 점”(35면)이 있다는 지적은 최한기의 근대사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운화와근대구체적 현실에 대한 성찰과 사유의 부족은 전통학문의 기본을 이루는 ‘무형지리(無形之理)’와 ‘음양오행’의 소거라는 내재적 계기와도 관련된다고 한다. 그런데, ‘무형지리’와 ‘음양오행’에 대한 부정은 관념적 사변성을 배제하고 과학적 합리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자리를 대체한 ‘유형지리(有形之理)’와 ‘추측지리(推測之理)’는 반대로 인간의 주체적 사유작용[人爲]을 열어놓은 지점이기도 하다. 아울러 인식주체와 세계가 소통되는 근거로서 제시된 ‘신기(神氣)’ 개념의 형이상/하 통합적 특성, 그리고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인력을 ‘기륜(氣輪)’으로 설명해내는 상상력 등에서 볼 때, 좀더 치밀한 논증이 요구된다.

박희병은 최한기 사상의 세계주의의 내용을 1)사해동포사상 2)만국평등 3)국제무역 긍정 4)일국적 관점 탈피와 세계적 안목의 필요성 5)세계일통지학(世界一統之學)의 수립과 제창 등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그러나 최한기 사상의 선진성으로 평가되었던 세계주의 이면에는 역사성·현실성의 빈곤으로 단지 이상에만 그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한다. 최한기의 ‘세계주의’의 문제점을 박희병은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반면교사로서 독해하고 있다. 즉 세계화 이전에 “우리의 삶과 진로에 대한 냉정하고도 비판적인 숙고”(68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한기 사상의 근대적 성격을 논하는 기왕의 글들은 사실, 서구 근대자연과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했다는 언급만 있을 뿐, 그 바탕의 기계론적 자연관과 상반되는 최한기의 유기체론적 자연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분석을 진행하지 않았다. 박희병은 최한기 자연관의 특징적 면모는 유기체론적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84면). 동시에, 그 내면에 자연과 인위의 분리라는 전제가 작동하고 있으며(75면), 대기운화(大氣運化)에 인간이 통섭(通涉)되는 구조 내면에는 전통철학의 ‘천인합일사상’과 다른 천인(天人)의 분한(分限)이 게재되어 있다고 한다.

박희병은 유기체론과 기계론의 접합방식을 새로운 근대기획으로 보고,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해석한다. 즉 “유기체론이라는 큰 틀 속에 기계론적 사고가 일부 들어와 있는”(88면) 것이며, 생태주의적 견지에서 볼 때 크게 시사받을 수 있는 점은 “유기체론의 체계가 기계론을 껴안을 수 있다는 사실”(88면)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의 생태사상』(1999)을 저술하는 등 생태주의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의 독창적인 시각이 투영되는 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추측지리’가 ‘유행지리’를 승순하는 구조를, “이성은 자연에 승순하지 않으면 안된다”(90면)로 환언하는 시도는 타당하다. 나아가 ‘주체와 타자, 중심과 변방, 문명과 자연 사이에 분명한 경계 설정’이 서구 근대의 산물인 반면, 최한기의 세계관 속에서는 차별과 경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나아가 문명과 자연이 대립항으로서가 아니라 문명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지배와 복종의 세계가 아니라 평화와 대동의 세계를 지향했다(91~92면)고 하여, 서구 근대사상 특히 이성중심주의적 경향과 최한기 사상의 차별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밖에 최한기의 근대적 성격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최한기가 구상한 근대기획을 강유위(康有爲)의 문명관이나 일본의 문명개화론과 비교, 분석하여 그 차이점을 드러낸 점이다. 즉 강유위의 대동세계 이상이 종국에는 인종주의와 중국중심주의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으며, 19세기 일본의 문명개화론이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화를 획책하는 데 기여한 반면, 최한기의 문명관에는 주체의 상호인정이 일관되게 피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부국강병을 위해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후대의 개화사상과도 중대한 차이를 갖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기존에 최한기를 ‘개화사상의 선구 혹은 가교’로 평가한 것이 다분히 표피적인 분석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연구자가 자신이 선택한 주제에 대해 객관성을 견지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박희병의 ‘근대성찰적 접근법’은 상당히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전체적으로 볼 때 ‘운화’ 개념, ‘실’ ‘유’의 강조, ‘무형지리’와 ‘음양오행’의 소거 문제, 전통학문과의 차별성 문제(주자학이든 기철학이든) 등에 대해서는 좀더 치밀한 분석과 논증을 거쳐야만 사상의 면모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아울러 최한기의 사회·정치사상과 관련한 ‘평등’ ‘국민’ ‘국민국가’ 등의 문제는 저자가 비판하는 ‘근대주의’ 시각에 다소 매여 있지 않나 싶다. 탈근대의 관점이나 최근 유교와 사회과학분야와의 공동연구성과 등을 고려해서 더욱 깊이를 더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은 이 책의 구성과 글쓰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저자가 제시한 다양한 시각과 문제의식은 수편의 논문으로 구성되기에 충분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후속 연구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