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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허수경 許秀卿
1964년 경남 진주 출생.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등이 있음. su-huh@hanmail.net
눈 오는 밤
오래전에 죽은 젊은 시인 돌아온다
기침소리
살아 있을 때 기침 한번 하지 않았던
젊은 시인
저 빛 같은 어둠의 눈송이 사이에
맹렬하게 지나가는 바람의 귀
추운데 외투라도 입고 있나, 싶은데
마치 그가 갈 때처럼 추우면 어쩌나, 싶은데
눈 오는데 따뜻한 땅 밑에 들어 있지, 싶은데
술 데울 아궁이 하나 없어 어쩌나, 싶은데
저러다 저 눈 비 되어 진탕 되나, 싶은데
저러다 저 비, 진눈깨비 화살 되면 어쩌나, 싶은데
눈빛 아래 혼자 돋아나는 발자욱
발자욱 속에 먼 늑대 우우거리는 소리는 고여들고
돌아오는 젊은 시인을
기다리는 밤
마늘파 씨앗
슈퍼마켓에서 씨앗을 삽니다
마늘파 씨앗, 봉지에 활짝 피어 있는
흰꽃, 마늘파꽃
3월부터 8월까지 20센티의 간격을 두고
뿌려서는 땅에다 물을 자주 주라고 합니다
까치나 까마귀가 지나가면
다 먹어버리니 땅 30센티로 흙을 돋우라고 합니다
15도에서 18도 사이의 온도에서
10일에서 15일이면 싹이 튼다고 합니다
6월에서 첫서리가 올 때까지
마늘파를 거둘 수 있다고 합니다
씨앗봉지 속에 든 씨앗들이 잠을 깨면
그 작은 머리를 햇빛에 들이밀면
아주 잊어버리지 않았던 벗님이여, 먼 길 오소서,
느리게 자라나는 저 잎에 꽃 듭니다
꽃은 무슨 별인 양, 아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