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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87년 헌정체제 개혁과 한국 민주주의

무엇을, 왜,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박명림 朴明林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교수, 정치학.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2,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음. mlpark@yonsei.ac.kr

 

 

1. 왜 헌법개혁이 필요한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하나의 중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실현이 민주정부의 능력과 사회성원들의 삶의 질 향상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왜 한국에서는 ① 민주주의 발전, ② 유능하고 안정적인 민주정부, ③ 일반민중의 삶의 질 향상 사이에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형성되고 있지 못한가? 1948년 근대 국민국가 수립 이래 권위주의 정부로 일관한 한국사회는 1987년 ‘사실상의 민주혁명’ 당시 민주 제도와 결과의 결합을 고뇌하지 않은 채 모든 열정과 역량을 권위주의 자체의 극복에 집중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 현실은 권위주의 극복과 민주제도 실현만으로는 크게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직면한 세 가지 핵심문제를 먼저 살펴보자.

첫째 87년 이후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주정부들은 중간평가 공약, 3당합당, 내각제 개헌 약속, 재신임 추진, 탄핵파동 같은 ‘헌법적’ 사태에 예외없이 직면했다. 동시에 정당질서의 인위적 재편이나 헌법적 약속, 탄핵파동 없이 여소야대―분할정부(divided government) 상태를 정상적으로 극복한 정부는 하나도 없었다. 모든 민주정부들을 관통하는 이러한 반복현상은 ‘헌법적’ 사태의 연속이 결코 민주정부들의 무능과 정치공학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제도가 정치를, 헌법이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문제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둘째 중대한 정치·사회문제들이 법원과 헌법재판소(헌재)로 넘어가 헌법적·법률적 결정을 통해 해결되고 있고, 그 결과 핵심 정치·사회의제에서 행정―입법―사법 세 기구의 이해는 종종 정면충돌하고 있다.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 ‘사회의 법률화’ 경향은 더욱 심화되어 국가보안법 개폐, 대통령 탄핵,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양심적 병역거부, 호주제 등 정치·사회·인권·대외관계의 핵심의제들은 거의 전부 헌법적 결정의 문제로 귀결되고 말았다. 또끄빌(Alexis de Tocqueville)의 통찰 이래 사법의 영향력 증대,“사법의 정치 대체” 현상은 오늘날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나타난 한국 사회와 정치의 뚜렷한 변화는 민주화와 ‘사법화(司法化)’의 동시적인 심화였다. 한국 민주주의는 비약적으로 증대되고 있는 법원과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의 ‘정치적’ 역할에 대해 이론적·실천적으로 대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 민주주의 아래에서 악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의 심각성이다. 사회양극화, 실업, 빈곤, 자살, 이념대결, 의료문제, 교육문제, 부동산가격 폭등, 기록적인 저출산 등은 민주제도의 실현이 사회통합의 해체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실망과 문제제기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의 길은 없는가? 어떻게 하면 민주정부의 리더십과 문제해결능력을 높여 그 결과로서 집합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가?

한 사회의 집합적 삶의 양태는 제도, 리더십, 사회적 조건의 3자가 만나고 길항하는 어느 지점에서 결정된다. 이 셋은 각각 매우 중요하며, 동시에 어떤 접합양식을 갖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 같은 제도가 어떤 리더십과 조건을 만나느냐에 따라, 또 같은 조건이 어떤 제도와 리더십을 만나느냐에 따라, 같은 리더십이 어떤 조건과 제도에 직면하느냐에 따라 결과로서의 민주주의 현실은 크게 달라진다. 오늘의 한국사회의 문제들은 각각 제도, 리더십, 사회적 조건의 어느 부문에서 치료되어야 하는가? 헌법과 제도의 변개 없이도 우리는 과연 반복되는 헌법적 사태와 민주정부의 능력향상을 동시에 해결,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은 1987년 등장한 헌법체제·헌정체제·사회체제, 통칭하여 87년체제의 헌법적 기원과 특징을 추출하고, 고려 가능한 범위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사회적 대안과 절차, 비전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헌법을 포함한 근본적 제도변개의 시도는 시민참여, 담론형성, 정당정치, 미래비전경쟁을 포괄하는 폭넓은 정치의 과정에 해당하는 동시에 민주주의와 정치 자체의 영역을 비약적으로 확장시킨다. 2004년 이후 일련의 헌법적 결정들은 헌법문제가 성큼 핵심 정치문제이자 사회문제로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헌법문제와 민주주의, 헌법과 삶을더이상 분리해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헌법문제는 곧 정치문제이고, 한국 민주주의는 헌법문제와 정면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헌법논의의 ‘사회화’와 ‘사회과학화’를 통해 규범과 현실을 연결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2. 87년 헌정체제의 특징

 

헌법문제를 중심으로 볼 때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핵심특성은 민주화와 헌법화(constitutionalization)의 괴리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운동의 정치와 제도의 정치, 시민사회와 의회의 현저한 단절의 문제이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는 강한 국가와 강한 시민사회의 충돌로 인해 광범한 시민저항이 발생하고 세계 민주화 역사상 희귀하게도 4·19, 부마―광주항쟁, 6월항쟁을 통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체제 ‘전부’를 운동을 통해 전복하거나 전복의 단초를 마련했다. 민주화의 주체는 명백히 시민사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구체제 해체 이후 신체제 건설과정에서는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좁은 정당정치의 채널을 통과하면서 급격히 축소되어 헌법화·제도화되는 정도는 현저히 낮았다. 강력한 운동을 바탕으로 권위주의를 전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화·헌법화의 단계에서는 갑자기 시민참여의 정도와 영역이 소멸된다.

특히 헌법을 포함한 법률과 제도의 형성과 변용에 대한 시민참여는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불가능했다. 일반적으로 민주화 국면에서는 시민사회 주도, 개방적 담론지형, 진보적―변혁적 이념공간, 포괄적 의제, 광장의 열린 정치가 나타나지만 제도화·헌법화 국면에서는 엘리뜨 주도, 폐쇄적 논의구조, 보수적 이념지형, 비포괄적 의제 한정, 탁상협상정치(Round Table Talks Politics)로 인해 정치엘리뜨간의 협소한 제도권협약으로 귀결된다. 한국에서 이런 점은 두 가지의 부정적 현상을 초래했다. 첫째는 민주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헌법화가 민주화의 내용을 충분히 담보하지 못하여 헌법체계와 민주주의가 잦은 충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둘째는 시민요구와 헌법규율, 시민사회와 정당정치,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괴리로 인해 헌법적 안정성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87년 헌법제정의 과정은 시민사회가 참여한 심의(deliberation)의 산물이었다기보다는 좁은 정치사회 내부 엘리뜨들간 탁상정치의 결과였다. 따라서 87년 헌법협약은 체결 싯점부터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탁상정치에 의한 타협은 민주화 이후 반복된 헌법정치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네 수준에 놓여 있다.

첫째로 헌법제정 참가범위의 협애성으로 인해 기존 권위주의 체제하의 정당대표들끼리 헌법협약을 체결하고 게임의 룰을 결정함으로써 ‘구헌법’체제 해체와 ‘신헌법’체제 건설의 주체가 불일치하는 문제가 있었다. 민주주의 ‘제도 쟁취의 주체’와 ‘제도 형성의 주체’가 달랐던 것이다. 즉 권위주의 체제 타도를 위한 운동은 시민사회가 주도했으나, 6·29선언 이후 개헌안이 타결될 때까지 ‘민주헌법제정’ 과정은 온전히 집권당과 반대당 엘리뜨들의 탁상협상으로 넘어갔고 시민사회는 아무런 영향을 행사하지 못했다. 헌법쟁취 국면과 헌법제정 국면의 명백한 분리구획이었다. 이론적으로 이는 민주화와 헌법화, 운동과 제도가 갖는 상반되는 본질에 직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국면의 정치는 다양한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사회가 주도하며, 정치의 성격은 참여적이고 평등적이다. 그러나 운동의 성공 이후 제도화가 진행되는 헌법적 국면(constitutional moment)으로 넘어가면 정치는 조직화한 정당에 의해 주도되며 민주화 국면을 지배했던 연대는 해체된다. 민주적 의제는 헌법적 의제로 현저히 축소되며 따라서 민주주의는 헌법적 의제의 범위로 제한된다. 현행 6월항쟁 헌법은 민주주의 발전도정에서 나타난 이러한 두 국면의 단절과 그로 인한 한계가 표징적으로 드러난 사례였다. 한국의 헌법체제가 근본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시민사회의 요구가 급격히 축소되어 헌법화한데다, 1987년 싯점의 협약이 이후의 사회변화를 담지 못하면서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을 수용하고 해소하는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헌법제정이라는 협약의 성격 문제로서, 장기적·거시적 비전과 구상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속가능한 민주헌법체제로 구축된 것이 아니라 협약이 당시 대표세력의 단기적 정치이해의 교환에 따라 절충되었다는 점이다. 헌법체계 발달사로 보면 건국헌법,제2공화국 헌법,제3공화국 헌법, 유신헌법, 전두환 헌법, 그 무엇이든 마찬가지였다. 6월항쟁 헌법 역시 안정적 민주헌법체제의 구축보다는 당면과제였던 장기집권 방지라는 구헌법체제의 극복과, 노태우·김영삼·김대중으로 대표되는 3대 협약세력의 이해교환의 산물이었다. 헌법체제 형성에서 이러한 단기적 이해교환은 항상 정략성·불완전성·불안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이들 3대 협약참여세력의 이해 충족 이후에는 심각한 헌법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셋째로 앞의 두 가지 문제로 인해 6월항쟁 헌법은 특히 권력구조 측면에서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대통령의 5년단임,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주기의 불일치가 대표적이다. 이 두 문제가 중첩되면서, 정부능력의 조기저락을 포함해 대통령과 국회지배정당이 불일치하며 집권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는 분할정부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민주화 이후 정부들이 항상 직면했던 분할정부는 3당합당, 반대당 의원 빼가기, 정치연합, 탄핵사태 같은 헌법적 비민주적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극복이 불가능했다. 이러한 반복은 민주화 이후 한국의 헌정체제, 특히 권력구조와 정당체제가 사회의 균열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요컨대 헌정체제가 내장한 근본적 문제로 인한 분할정부의 반복, 대화와 타협에 의한 의회 및 정당정치 발전의 지체, 여야관계의 파행, 정부의 수행능력 저락이 동시에 나타났던 것이다.

넷째로 권력구조를 포함하여 87년 헌법체제의 많은 조항들은 심의의 과정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62년 헌법체제 및 80년 헌법논의로 단순 회귀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사회의제와 변화들 중 많은 것들이 헌법의제와 조문으로 수렴되지 않았다. 1962년부터 1987년 사이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변화 역시 제한적으로만 반영되었다. 특히 85년에서 87년 사이에 등장했던 시민사회의 체제구상과 헌법비전들, 87년 이후의 사회변화 전망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제정방식, 제정세력의 단절이 헌법의제의 단절을 초래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87년(헌정)체제는 괄목할 만한 민주제도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다음과 같은 뚜렷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대통령제 정부형태 및 대통령-의회 선거주기의 불일치, 둘째 권력분립 및 법치국가 관념의 강화, 셋째 대의민주주의의 부활·강화와 직접민주주의의 폭발적 발전에 대한 예측 결여, 넷째 사회국가(社會國家) 및 사회적 민주화 관념의 소홀, 다섯째 지방자치·분권국가 관념의 결여, 여섯째 탈냉전 및 세계화 상황에 대한 대비 부재 등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각각 87년체제를 압축적으로 표징하는 요소들, 즉 첫째 분할정부의 반복 등장과 민주정부 능력의 저하, 둘째 사법국가로의 진행에 대한 예측 결여와 정치의 사법화 강화, 셋째 참여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충돌 빈발,넷째 노동·복지문제와 경제민주주의의 악화, 다섯째 가치와 권위의 중앙집중 지속, 여섯째 냉전·분단체제 골간(영토조항 및 국가보안법)의 지속과 이주노동자 등 비국민 거주자에 대한 고려의 결핍 등으로 귀결되었다.

 

 

3. 헌법주의·법치와 안정성·민주주의의 문제

 

최근 헌법문제가 집중적으로 대두되고 정치·사회·삶이 사법화하는 현상은 기존 정치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빈발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정치에서 매우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60~61년, 1979~80년, 1987년에 발생한 헌법문제는 기존 헌법의 작동불능 상황에서 등장했다는 점에서, 또 권위주의하에서 헌정주의의 복원을 위한 투쟁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최근 현상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즉 정상시기의 헌법문제 등장은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에서 헌법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상징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가 직면한 중대문제는 헌법과 법률을 준거로 민주주의의 성격과 미래를 맡겨야 하는 상황의 반복이랄 수 있다. 법적 판결이란 본질적으로 승리와 패배, 정의와 불의, 옳음과 그름을 가름해 법률적 승자와 패자를 판정해내는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인 균형과 타협과 공존(의 영역)을 축소시킨다. 즉 법적 판결에 호소한다는 것은 종종 정치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법이라는 문에 들어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본래적 의미에 훨씬 더 충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관들이 시민/인민의 집합의사에 우선할 수 있는가? 법치는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 결국 정치의 사법화가 한국 민주주의에 제기한 중대문제는 ‘법의 지배, 헌법주의·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의 강화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에 우리는 법치는 곧 민주주의라는 단순구도에서 한국정치를 이해했다. 법치가 권위주의를 극복하려 했던 민주화의 산물이며 또한 그것이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정(正)의 관계를 갖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이해는 이제 민주화 이후 양자의 부(負)의 관계에도 주목하여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민사회가 헌법과 헌정주의에 민주적으로 개입해야 할 논리적 근거와 이유는 여기서 비롯한다.

오늘날 이론과 실천 두 수준 모두에서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차이는 크다. 민주주의와 헌정주의는 거시적인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오랜 기간 상호갈등적 관계를 보여왔다. 양자는 투표 대 법, 다수의 지배 대 법의 지배, 정치 대 법률의 충돌관계로 나타난다. 구체적 제도에서는 자주 의회 대 법원(헌법재판소 포함), 정치인 대 법관의 대결로 나타난다. 근래 들어 대체로 법원·헌재가 일반적으로 승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의회의 결정을 법원이 단순한 대리인으로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이 민주적 경쟁의 규칙을 수정하려는 행위자로 행동하려 할 때 정치는 사법화하며, 이는 특히 정치적 교착국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다수의 지배(민주주의) 대 법의 지배(법치) 사이의 갈등은 각각 투표와 법을 자신들의 기간(基幹)으로 삼는 행위자들의 갈등이다. 이때 의회와 법원 둘 중 누가 특정 상황을 주도하느냐는 결국 ‘정치’에 달려 있다. 따라서 법의 지배가 있더라도 그것은 법이 정치행위보다 낫기 때문은 아니다. 법은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사실 하버마스(J. Habermas)가 말하듯 “원칙적으로 법치국가는 민주주의 없이도 가능하다.” 즉 민주주의와 법치는 일치하지 않는다. 초기 민주주의는 법치로 인해 발전했으나 오늘날 법치는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동시에 심대하게 제약한다. 이 문제야말로 한국 민주주의가 돌파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할 때 중요한 문제는 일종의 헌법불변주의 또는 헌법정전(正典)주의 신화이다. 헌법은 제정 당시의 정신과 원칙이 불변적 규범이나 정전의 성격을 갖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해석, 재해석되면서 시대상황에 맞게 적응되어가는 것이다. 헌법학과 정치학의 최근 이론들이 경험적으로 증명하고 있듯 “최고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판결은 ‘최고’(supreme) ‘최종’(final)의 결정”이라는 오랜 관념은 잘못된 신화라는 점이다. 이는 동일한 사안이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법적 판결이 근본적으로, 때로는 거의 정반대로 달라졌던―예컨대 우리 사회의 호주제나 국가보안법 판결처럼―현실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다. 소수자 보호, 인권수호, 평등원칙 고수 등 중대한 민주주의 원칙 역시 법원보다는 선출직에 의해 더 많이 발전했다는 사실도 역사적으로 실증되고 있다. 특정 헌법이 엄격성과 불변성으로 인해 그 유연성과 적응성을 상실한다면 그 헌법은 사회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최초 제정시기의 가치와 지향만을 대변함으로써 현실과 괴리된 죽은 코드가 되는 것이다. 다시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리면,모든 헌법은 하나의 프로젝트이며 이 프로젝트는 입법의 모든 차원에서 끊임없이 계속 추진되고 있는 헌법해석이라는 양태 속에서만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 형성된 기존의 체계는 법적 안정성을 충분히 보장할 수도 없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헌법적 정당성은 형식적·법적 준거에 의해서보다는 정치사회적 현실에 의해 타당성을 갖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이 말은 헌법불변주의나 헌법정전주의가 아닌 헌법현실주의가 민주적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헌법의 역할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법치에 의해 제약받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실정에서 바람직한 현실적 대안은 고래의 ‘헌정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가 아니라 ‘민주헌정주의’(democratic constitutionalism)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전자에서는 헌법화가 민주주의에 우선하여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로 민주주의가 제한된다면, 후자에서는 민주화가 헌법의 형태를 규정하여 민주주의가 헌법적 제약을 넘어선다.

헌법에는 또한 좋은 사회를 향해 질서나 제도, 가치 등을 창조하고 주조(crafting)하며 디자인하고 구성―재구성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바, 이러한 의미규정은 헌법의 현실적응성이나 가변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헌법과 법률이 갖는 사회안정화라는 근본기능을 수용하더라도 그렇다. 즉 (헌)법과 입법화의 기본적 의미를 고찰할 때 민주적 입법절차가 지니는 정당화의 힘은 오로지 시민들의 공동삶을 규제하는 규칙들에 관하여 시민들 스스로 수행하는 상호이해의 과정에서만 도출될 수 있다. 즉 법이 민주적 절차에 기반하여 사회적 통합력과의 내적 연관을 보존할 때 비로소 안정화라는 기능을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호헌―개헌을 둘러싼 1987년의 대투쟁 그리고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최근의 격돌에서 볼 수 있듯, 법의 (사회)안정화 기능은 부정되거나 매우 허약해진다. 오늘날 한국에서 법치·헌법주의를 들어 ‘법적 결정’에 의지해 민주주의의 진전을 역진시키려는 움직임들은 민주성의 결여로 인해 사실은 법이 제공하는 최소한의 안정화 기능조차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제도와 헌법 자체를 교정하려는 민주주의의 제고 없는 헌정주의의 발전과 법적·제도적 안정화는 불가능한 것이다.

 

 

4. 헌법개혁의 원칙과 절차

 

가장 먼저 대답해야 할 물음은 지금 꼭 헌법을 바꾸어야 하느냐는 싯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우리 사회의 헌법과 민주주의 상황에 비추어 헌법개혁 논의는 필수적이다. 최근의 개헌논의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주체가 정치권 중심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가 권력구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정치권을 넘어 시민사회로 헌법논의 주체를 확장할 것과, 권력구조 문제를 넘어 미래 만들기로서의 헌법 만들기, 즉 헌정체제 전반에 대한 개혁의제로 내용을 확장할 것을 주장해왔다.

앞서 지적한 근본문제들 이외에 헌법 및 헌정체제 개혁 문제가 지닌 시의성을 지적하자면, ① 현싯점에서 권위주의가 재등장할 우려는 없다는 점 ② 네 차례 민주정부의 실험으로 거의 모든 장단점이 다 드러났다는 점 ③ 차기 대선과 총선이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겹친다는 점 ④ 현행 헌법하에서 다시 대선과 총선이 겹치려면 2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점 등이다.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 현행 헌정체제를 다시 20년 이상 지속하는 것은 헌법개혁을 통해 얻을 이익에 비해 국가적·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그 점에서 노무현정부 아래에서의 헌법개혁이 가장 적기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헌법개혁 시도가 사회혼란으로 이어지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가 민주적 대화와 통합의 능력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둘째로 사회적 의제와 헌법적 의제 사이의 관계 문제이다. 한 사회의 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회적 의제가 헌법적 의제가 될 수는 없다. 둘은 어떻게 같고 다르며, 헌법화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걸러져야 하는가? 인민의사는 대표들에 의해 항상 반영되고 있는가? 또 사회진화에 따른 사회적 의제의 탈락과 추가는 곧 헌법적 의제의 배제와 확대를 의미하는가? 이 점을 판별하는 지혜 역시 헌법개혁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셋째로 누가 헌법을 주도하고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즉 ① 어떤 대표들로 ② 어떤 규모로 ③ 어떠한 방식을 통해 ④ 얼마의 기간 동안 헌법개혁의 주체(기구)를 구성하여 활동하느냐의 문제이다. 헌법엘리뜨주의와 헌법민중/국민주의의 충돌인 것이다. 여기서 헌법제정과정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중요해진다. 87년 6월항쟁 헌법의 등장과정과 그후 한국 헌법민주주의의 한계를 고려할 때 제정과정에서의 시민들의 참여는 민주주의를 헌법주의의 한계로부터 비약적으로 확장시키는 핵심문제가 된다. 만약 시민사회가 헌법개혁논의를 외면하거나 참여에서 배제된다면 한국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는 더욱 유리되고 그 결과 정치권의 헌법논의들은 정치엘리뜨간의 전통적인 탁상협약방식으로 귀결, 결국 헌법개혁이 아니라 권력구조 변경에 제한되는 과거의 모습을 반복할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의 시민사회 성장을 부인하고, 정당정치를 더욱 퇴행시키며, 헌법개혁의 내용 역시 87년 이후의 민주주의 발전을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로 연결될 것이다.

따라서 헌법개혁의 과정과 절차는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참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시민사회는 이제 독자적인 민주주의 및 헌법 구상을 가다듬어 의회에 구성될 헌법제정기구에 반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의회에서 대표들의 입법행위에 앞서 정당과 시민대표가 의회 내에 헌법논의기구를 합동으로 구성하는 방식은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민주화와 헌법화, 민주주의와 헌법주의를 이상적으로 결합하기 위한 바람직한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필자가 시민의 자기결정 의지와 참여를 이렇듯 강조하는 것은 인민주권을 정부와 대표들의 협애한 위임적 입법행위로부터 독립시켜 사고하려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출발에 대한 고려 때문이다. 또한 중대한 입법행위에 시민이 참여함으로써 정당정치가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연계를 높임으로써 결정적으로 강화·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주화와 헌법화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공급자 중심의 헌법논의구조’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헌법논의구조’를 고려하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음의 3중 헌법제정과정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시민사회, 정당, 국회의 논의를 결합하는 3중 헌법개혁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법제정과 개혁은 엘리뜨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또한 고도로 비대중적·전문적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회적 의제가 헌법적 의제가 될 수는 없더라도 엘리뜨들의 폐쇄적 탁상협상정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수준의 헌법논의를 먼저 진행한 뒤 정치화 단계를 거쳐 헌법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1단계(사회화단계): 헌법문제 및 의제의 사회화, 곧 사회적 (개혁)의제로서의 헌법논의를 시민·사회단체, 학계, 정당 수준에서 진행한다. 아래로부터의 논의구조를 만드는 중요한 단계로서 민주헌법제정을 위한 시민사회 연대기구를 형성하여 토론과 합의를 추구한다.

•제2단계(정치화단계): 국회에 시민대표로 구성된 민주헌법연구회를 설치, 정당·학계·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쌍방향의 심층 논의를 진행한다. 사회적 의제의 정치화를 통해 민주적 수렴의 기능을 수행한다.

•제3단계(헌법화단계): 민주헌법연구회의 논의를 국회의 헌법화(조문화, codification) 논의에 반영, 국회의원 및 시민대표 합동으로 가능한 한 단일헌법안을 만든다. 시민대표의 참여는 이 단계에서 종료된다. 최종 단계에서는 입법권을 갖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통해 최종 헌법안을 제정한다. 그리고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확정한다. 최초의 출발점, 즉 주권자인 국민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요컨대 헌법화 과정을 과거처럼 협애한 제3단계에만 한정하지 않고 1~3단계 전과정을 포괄, 이를 통해 헌법제정논의를 시민·국민에게서 시작하고, 그를 수렴하여 최종입법권한은 대표인 국회에 주며, 마지막으로는 다시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이상적인 민주적 과정으로 추진한다. 민주화와 헌법화의 단절이 아니라 민주화의 연장으로서 헌법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참여, 대화, 쌍방향, 심의 민주주의의 네 원칙은 충분히 견지되어야 한다.

 

 

5. 헌법개혁의 내용과 비전

 

어떤 헌법을 만들 것인가는 곧 어떤 사회와 국가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와 같다. 따라서 미래에 어떤 체제를 추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는 현재의 싯점에서 어떤 범위까지 헌법개혁과 개정을 이루어낼 것이냐의 문제와 일정하게 중첩된다. 그것은 곧 21세기에 우리가 어떤 국가정체성을 갖느냐와도 연결된다. 규범과 현실에서 공히 인권, 평화, 민주, 복지, 문화, 능력과 경쟁, 국제협력 등을 누리고 추구하는 국가를 지향하려 할 때 우리의 헌법에는 추가, 강화, 삭제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변화된 현실에서 무엇을 추가, 강화, 삭제할 것인가?

 

1) 국가의 근본성격과 체제의 문제

87년 헌법조항 및 헌법체계에는 국가의 근본성격과 관련하여 몇가지 심각한 모순이 존재한다. 첫째는 헌법조항들이 규정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전문(前文)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 그리고 제8조 1항의 정당의 목적·조직·활동에 대한 규정에서 “민주적이어야 하며” 및 4항의 위헌정당 제소에 관한 규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는” 등의 관련조항이 있다. 전문과 제4조의 ‘자유민주주의’가 삽입된 것은 각각, 민주주의를 억압하기 위한 1972년 유신헌법 및 통일을 고려한 87년 현행헌법의 제정 때였다. 48년 건국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제(諸)제도를 수립하여”로 되어 있었다. 48년체제 헌법의 민주주의 규정이 훨씬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충돌은 ① 헌법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원리와 성격은 다르다는 점, ②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한 권위주의 제도화를 위한 유신헌법 제정 때 삽입되었다는 점, ③ 동일 헌법 내에서 모순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둘째는 제3조의 영토조항 문제이다. 이 조항은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한반도’라는 범위가 국제법적으로나 조약상 획정된 바 없는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역사적으로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특정 선행국가를 ‘헌법적으로’ 계승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 헌법규범이 헌법현실로서의 남북분단 및 북한의 존재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실제 적용이 불가능하다. 넷째 헌법조문 내에서 충돌이다. 제4조 “통일지향” 조항은 제3조에 대한 자기부정인 것이다. 다섯째 국제적 현실 및 결정과 일치하지 않는다. 북한은 현재 유엔회원국으로서 이 조항은 유엔헌장과 충돌할 뿐만 아니라, 유엔의 일련의 결정들은 한번도 북한에 대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관할권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1947.11.14, 1948.12.12, 1950.10.7, 1950.10.12의 결정). 통일지향의 가치, 헌법규범과 헌법현실의 충돌, 국제적 결정을 유념할 때 이 조항은 ‘순수 법리적’으로는 폐지를 고려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북한의 대남규정 엄존, 남한의 통일이상, 그리고 주변 강대국의 개입을 유념하여 존속시키더라도 다음과 같이 수정해야 앞의 여러 불일치를 해소할 수 있다(동일 사례로 구서독헌법―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 제23조를 참조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단 통일을 이룰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서 허용된 관할구역으로 한한다.”(이때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정전협정에 헌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단서조항은 “단 통일을 이룰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유효지배가 미치는 지역으로 한한다”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이러한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48년체제와 53년체제의 헌법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실제 분단현실 및 유엔 결정과의 충돌을 극복하여 적극적인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역설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셋째는 제5조 2항의 국군의 의무조항(“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 수행”)과 제60조 2항의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허용 조항 사이의 긴장을 해소해야 한다. 국토의 범위를 특정하고 있는 헌법체계를 갖는 국가로서 국토방위 수행이라는 의무와 외국 파견은 일치하기 어렵다.

넷째는 임시정부와 건국 헌법 이래 핵심가치로 지켜져온 경제민주주의 가치와 조항은 존속해야 한다(헌법전문, 제119조). 한국의 경제현실을 고려할 때 시장경제체제는 보장하되(제119조 1항), 균등경제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전문과 제119조 2항이 폐기된다면 실제 결과는 크게 부정적일 것이다. 미국의 개입으로 인한 1954년 시장경제 도입 이전의 헌법은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현행헌법보다 훨씬 더 경제민주주의를 강조한 국가자본주의 또는 사회적 시장경제 헌법으로서, 이후에도 경제민주주의 정신과 원칙은 삭제되지 않았다. 당면해서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시장개방을 반영하여 경제문제는 가장 강력한 힘겨루기 지점이 될 것이다.

 

2) 권력구조의 문제

최근 가장 많이 대두되는 권력구조 변경 문제의 경우, 앞서 말한 여러 ‘헌법적’ 사태의 반복등장과 사회해체를 고려할 때 능력있는 민주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 및 민주정부의 양대 선출기구인 대통령과 의회의 선거주기가 일치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주권과 대표의 충돌이라는 한국 헌법체계의 근본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헌법적 권한·능력과 책임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행헌법에는 양자를 일치시키기 위한, 의회책임제 같은 헌법적 상호 견제수단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점과 관련해 대선과 총선의 ‘선거주기’ 충돌문제를 해소하고 대통령 임기 사이에 국민주권을 반영할 수 있는 헌법적·제도적 계기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이후 국민들이 다음 대선 때까지 주권을 행사할 제도적 계기가 존재하지 않을 때 두 헌법기관을 구성하는 국민주권 사이의 중첩과 충돌,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사회의 열정은 제어되기 어렵다. 따라서 직접대표(대통령선출)와 간접대표(의회구성)라는 국민주권의 서로 다른 수준 사이의 교차적 행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잠정적 대안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 임기는 4년중임으로 변경한다. 국무총리제를 폐지하고, 부통령제를 부활하며 대통령선거에서 러닝메이트로 출마한다. 대통령선거와 지역대표 국회의원선거를 일치시킨다. 비례대표의원을 지역대표의 2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증가시켜(양원제도의 고려) ‘중간평가’로서 이들 비례대표선거를 정당명부제를 통해 대통령 임기 중반에 실시한다.” 이상의 장치로 임기 불일치, 선거주기, 분할정부, 정당발전 문제를 동시에 접근하여 주권 중복과 충돌, 책임성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정당정치와 정당리더십의 발전은 이러한 헌법체계의 가장 의미있는 산물이 될 것이다.

 

3)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는 헌법조항의 강화와 부활

87년 헌법이 담고 있는 이상적인 규범과 조항으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걸맞게 사회현실에서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살려내야 할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① 국가의 인권보장 의무(제10조) ② 신체의 자유: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제12조 1항) ③ 고문 금지(제12조 2항) ④ 형사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제27조 4항) ⑤ 여자 근로(제32조 4항), 연소자 근로(제32조 5항), 모성보호 노력(제36조 2항) ⑥ 국회의원의 청렴 의무 및 국가이익을 우선한 양심에 따른 직무 이행 조항(제46조) ⑦ 복지국가 및 사회국가 조항들(다수 조항).

 

4) 지나간 시대와 사회에 대한 조항의 개정

① 지나치게 고색창연하고 어색한 헌법의 전문은 좀더 현대적이고 보편적이며 일관되고 깊이있는 철학과 비전을 담도록 세련되게 개정해야 한다. ② 경제조항들(제9장 경제. 제119~127조)은 거의 농업위주 단계의 경제에 대한 내용이라고 할 만하므로 수정해야 한다. ③ 국회의원들에 대한 특권인정 조항들(제44조 1~2항)은 전면 폐지해야 한다. ④ 제9조의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은 국가의 근본역할과 관련이 없으며, 국제협력의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문화와 민족문화에 대한 막연한 강조이기 때문에 수정 또는 폐지해야 한다.

 

5) 새로 추가되어야 할 내용

① 21세기 최근의 헌법 경향(EU헌법과 스위스헌법)을 고려할 때 평화권, 생명권, 인격권 등의 삽입을 고려해야 한다. ② “국민의 권리와 의무”로 되어 있는 제2장의 제목은 “기본권과 시민권”으로 변경하여 이주노동자 등 급증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거주자들에 대한 인권보장을 규정해야 한다. 예컨대 주요 인권 및 기본권 사항에 대한 주어의 교체 또는 추가를 통해 ‘국민’으로서 보장받는 사항(‘대한민국 국민’)에 더하여 ‘국민’이 아니어도 ‘거주하는 모든 인간’이 보장받아야 하는 사항(‘누구든지’)을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③ 인권의 강화(소수자 보호, 프라이버씨 규정 등), ④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경제적 삶과 관련하여 경제부문의 전면 조정 및 조항의 추가(재정 금융 경쟁 기업 주택 보건 의료 연금 보험 실업 등), ⑤ 단 2개조에 불과하여 형편없이 미약한 지방자치 규정의 대폭 강화(국가의 보장,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 지방정부 협의체 건설, 역할 등), ⑥ 헌법적·법률적 권한을 넘어 정치적·정책적 권한이 급증하고 있는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기제에 관한 사항들이 필요하다.

 

 

6. 맺음말

 

헌법을 포함한 제도를 바꾼다고 곧바로 현실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법과 정치의 영역이 항상 맞물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모든 제도적 대안은 사회현실과 만나면서 크게 수정되거나 변질된다. 따라서 헌법문제가 정치사회 현실과 유리되어 독립적 차원에서 대안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견해는 수용되기 어렵다. 특히 한국처럼 제도와 현실의 간극이 극적으로 컸던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필자는 제도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른바 제도최대주의를 수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변화를 우선시하는 제도최소주의에 가까운 편이다. 헌법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조문위주의 헌법개정보다는 헌법개혁이 중요하며, 헌법개혁보다는 헌정개혁이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조항이 헌법조문에 있다 해도 실제의 현실에서 작동되지 않으면 그 조항은 의미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헌법현실을 개혁하는 헌법개혁이나 사회개혁 없는 헌법개정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제도를 수정하는 헌법개정은 헌법개혁의 한 핵심부문이 되며, 나아가 헌정개혁과 사회개혁을 위한 중대한 단초가 된다. 헌법변화는 사회변화의 한 조건이자 미래설계의 출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한 헌법개정 논의를 ‘좋은 사회’를 위한 헌법개혁과 미래설계로 승화시키기 위한 시민적 지혜의 결집이 절실한 때이다. 길게는 1948년 이후, 짧게는 1987년 이후의 헌법 철학·정신·경험을 안고 또 그것을 넘어 민주 ‘제도’와 ‘현실’이 조응하는, ‘좋은 사회’와 ‘삶의 질 향상’으로 안내할 아름다운 고안물을 창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