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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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록 金 綠

1968년 서울 출생. 1998년 『작가세계』에 본명 김영옥으로 등단. 시집 『광기의 다이아몬드』가 있음.

 

 

 

염료 단편

 

 

내 늑골을 존재하는 인간 붓으로 한방 먹이자 요의가 느껴졌고 팔레트로 가려고 일어났다

존재하는 인간 늑골 다섯 색이 쌍으로 흐물흐물 내 일곱 색을 부축하려고 따라 일어났다

이왕이면 섞지?

나는 서서 열두 색을 짜고 당신은 앉아서 열두 색을 짜는 게 어때

존재하는 인간 검은 물감을 덜렁거리며 내 골반 한걸음 한걸음을 스케치했다

존재하는 인간 팔레트는 이미 똥색을,

광도순으로 밝은–똥색, 어두운–똥색을,

한가득 짜놓은 채였다

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석대로 섞을 채료를 내놓을 수 없었다

명도 없는 오줌으로 채도 없는 오줌으로 똥색을 밀어내고

내 골반 우유를 한걸음 한걸음 치즈로 덜렁거리면서 먹물을 갈기려는 존재하는 인간 물통을 밀어내고

팔레트를 뛰쳐나올 수도 없었다

존재하는 인간 그새 더 시커먼 물감을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당신 안료통에 한가득 짜놓고 싶어

새빨간 물감 한근으로도 내 튜브는 어차피 채워지지 않아

존재하는 인간 튜브 입구를 압침으로 찔러 시커먼 물감을 풀어놓았다

왼쪽 오른쪽 쌍으로 포옹을 하고

 

 

 

비문론

 

 

의식한다, 서 있음은 그 있음으로 앉아 있음을.

다리가 아픔은 아픔을 의식하지 않고 서 있음을 의식한다.

여기에서 서 있음은 앉아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 분명하고

다리가 아픔은 서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 분명하고, 나는 졸리다.

졸린데 졸리지 않고 안 졸린데 졸리는 의식의 장난.

앉아 갈 필요가 있는가.

앉아 가게 되면 다리가 안 아플 테고, 다리가 안 아픈데

앉아 갈 필요는 없다.

앉으면 앉아서 하는 의식으로서 안 아픈 다리를 의식한다.

그 의식은 처음부터 안 앉으면 편하다.

그러나 마침 의식이 찌푸려졌고 공교롭게 그 찌푸림 앞에 부츠가 있었다.

부츠는 딴 생각이 없고 찌푸림을 의식한다.

의식할수록 찌푸림은 왜 하필 부츠였을까.

의식한다, 부츠는 그 있음으로 공교로움을.

딴 생각은 생각하지 않고 부츠를 의식한다.

부츠는 졸리다.

부츠의 지퍼를 내리는 의식이 다시 지퍼를 올리는 의식의 함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