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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개혁문화, 이렇게 만들자
정치개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민교협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대변인과 공동사무처장 역임. 저서로 『연대와 열광』 『시대유감』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등이 있음. jykim@han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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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과 2003년을 살았던 느낌은 참 대조적이다. 2002년에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 분출된 거대한 에너지를 경험했다.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이런 힘과 열정의 체험은 연말에 미선과 효순 양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기쁨의 축제에 이어진 슬픔과 애도의 추도제였다. 그 어간에 있었던 대통령선거 또한 매우 드라마틱했으며 참여의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2003년은 마치 한바탕의 축제 뒤에 맞이한 숙취의 쓰린 새벽과 같았다. 국제정치적으로는 북핵위기와 이라크파병 문제로 인해 정치적·사회적 대립이 격화되었고, 정치적으로는 고질적이다시피 한 의회와 정부 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새만금문제, 부안사태, 네이스문제 등 시민사회의 저항을 염두에 두지 않은 관료주의적 정부정책으로 분란이 계속되었다. 수구적인 언론의 흠집내기 때문에 증폭된 것이긴 해도 성마른 대통령의 계속되는 말 실수도 국민들을 실망시켰으며, 후보시절 내보였던 개혁성은 굴절되거나 후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말에 이르러서는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차떼기 사건’이 불거졌고, 대통령 측근들이 구속되고 여야의원들에 대한 무더기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더불어 거의 자해적인 상호비방과 투쟁이 정당간에 계속되었다. 경제적으로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년실업은 심화되고 비정규직은 50%에 이르렀으며, 부동산값은 치솟고 신용불량자의 급증과 카드사의 부실대출이 전체 금융시장을 압박했다.
2002년과 2003년의 이 극적인 차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필자에게는 2002년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긍정적 에너지를 대변한다면, 2003년은 그런 에너지가 담겨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갈 힘이 우리 사회에 내연하고 있으되 그것을 담아내고 방향을 부여할 적합한 제도가 없고 기존의 제도는 오히려 사회의 에너지를 억압하거나 소진시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판단이 옳다면 우리는 새로운 제도의 형성과 발전을 위해 새로운 국민적 기획을 만들어야 할 싯점에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발전전략에 터잡은 국민적 기획을 ‘어떻게’ 형성할지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설득력과 비전을 갖춘 발전전략이 청사진으로 존재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전략이 사회적 합의를 획득해 국민적 기획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이런 사회적 합의를 창출할 정당화된 절차는 민주적 과정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정하지 않는 한, 새로운 사회적 발전전략과 국민적 기획의 형성은, 사회내의 다양한 계급과 집단들의 이해관심을 반영하여 공적 논의로 승화하는 민주적 과정으로만 가능하다. 그럴 때만 새로운 발전전략이 동의에 기초한 사회적 동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요컨대 사회의 집합적 자기결정을 구현하는 정치체제가 제대로 기능할 때만 새로운 발전의 기획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발전전략을 검토하고 합의를 창출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정치체제는 엄청난 부패로 얼룩져 있으며, 정쟁만을 일삼고 있다. 왜 그런가? 1987년 민주화이행을 통해서 구성된 정치체제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혹은 정당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17대 총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정치개혁이 내실있고 비전을 가진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 그러니까 정치체제의 기능 상실의 뿌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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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체제의 문제점을 정밀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사적 경로에 대한 상세한 탐색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핵심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특히 두 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정당체제의 기본적 성격이 형성된 해방공간에서 1958년 제4대 총선에 이르는 시기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정치체제 골간이 형성된 1987년 민주화 이행기이다.1 먼저 전자부터 살펴보자.
일제에서 해방된 우리 민족의 핵심과제는 나라 만들기였다. 그런데 이 과제가 세계적인 냉전체제의 구축기와 맞물려 진행됨으로써 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냉전의 최전선에 있었기에 나라 만들기의 이념적 경쟁은 매우 격렬했다. 결국 민족은 좌우로 분열되었고, 좌우는 다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이로 인해 남한사회에서 형성된 정당은 근대적 좌우파의 스펙트럼에 따라 배열되지 않고 크게 오른쪽으로 치우쳐 형성되었다. 1958년 총선에서 확연한 모습을 드러낸 보수적 정당체제는 복잡한 이합집산을 거듭하지만 그 기본적인 성격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분단체제의 힘이 남한사회의 민주화와 전세계적인 탈냉전에 힘입어 약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분단체제 하에서 형성된 정당체제의 형태 속에 여전히 강력하게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체제는 출발부터가 대중의 참여를 배제하는 상층 편향적 엘리뜨 카르텔체제였기 때문에 당연히 전체 사회의 다양한 집단을 대의(代議)하지 못해온 것이다. 이런 대표성의 위기는 근대화가 진전되고 사회가 더욱 복잡, 다원화됨에 따라 심화되어왔다.
정당체제의 대표성 위기뿐 아니라 1987년 민주화이행을 통해 형성된 현재의 정치체제 또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민주화 경로는 퇴출에 의한 이행, 즉 민주화 이전의 구체제를 척결하고 추방한 민주화가 아니라, 구체제의 한 분파와 민주화세력 사이의 협약에 의한 이행이었다. 그런데 이 협약과정, 특히 헌법과 정치관계법 개정협상과정은 6월항쟁을 주도한 국민운동본부를 배제한 채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과 여당이던 민정당 간의 밀실협상으로 진행되었다.2 그 결과 행정부와 의회 간의 견제와 균형의 토대가 되는 대통령과 의회 간의 권한 배분 문제나 대선 주기와 총선 주기가 차이나는 문제 등이 신중하게 고려되지 않은 채 헌법개정이 이루어졌다. 특히 전자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민주화 이후 모든 정권에서 의회권력과 대통령권력 간의 투쟁과 교착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3당합당부터 시작된 정당간의 다양한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또한 1987년 체제는 민주화 투쟁기를 통해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던 시민사회와 정치사회를 분리하는 체제이기도 했다. 야당의 분열에 의한 민주화세력의 선거 패배가 워낙 기억에 뚜렷이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87년에 일어난 중요한 구조적 사건은 정치사회가 자기들끼리 경쟁의 규칙을 마련하고 그 공간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면서 시민사회를 정치과정에서 배제해나갔으며, 이후 선거국면에서는 사회운동세력을 우회하여 시민을 지역주의로 직접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분리, 그리고 정치사회에 의한 시민의 지역주의적 동원은 이후 구조화된 형태로 재생산되었다.
물론 지난 10여년의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국가 폭력기구에 대한 통제가 확립되었으며 여야간 정권교체를 통해 일정수준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작은 성과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었고, 민주화가 가족·시장·노사관계·교육·주택·환경·보건·사회복지 같은 다양한 사회영역에 확산되고 심화되지는 못했다. 민주주의 이행이 선거라는 좁은 영역에 한정됨으로써 방대한 국가관료기구의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고 국가기구 안에 응집되어 있던 구 지배블록의 성원들은 정치사회로 자리를 옮겨 존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화가 열어놓은 공간 속에서 구 지배블록의 하위 파트너였던 언론권력과 경제권력만이 높은 수준의 자유를 누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분단체제 속에서 구조화된 정당체제의 보수성, 민주화이행의 보수적 종결로 인해 우리의 정당체제는 사회의 다양한 균열과 갈등의 축에 따라 구성되고 그것을 대의하기보다는 시민사회와 분리된 정치계급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또한 정치사회는 미소(微小)하게 존재하던 지역주의적 균열을 증폭시킴으로써 사회내 다양한 균열을 은폐하고 억압했으며, 정치혁신의 실패 책임을 국민의 지역주의적인 행동에 전가했다. 그렇게 해서 정치사회는 재벌과의 부패고리를 유지하고 보수언론의 지도를 받으며 구 지배블록의 권력유지에서 핵심고리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과 정당체제 개혁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정치개혁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헌법개정을 논의하는 것은 때이른 감이 있다. 헌법개정에는 깊이있는 논의와 면밀한 검토에 더하여 광범위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과정이 요구될 뿐 아니라, 과거에 타협으로 형성된 것이긴 하지만 그런 헌정에 대한 개정 논의는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위협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3 이에 비해 정당체제의 개혁은 그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높고 기회가 열려 있다. 민주주의는 헌정에 의한 규율만으로 불충분하며 사회를 충실히 대표하기 위해서 경쟁하는 정당체제에 의해서만 심화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정당체제의 개혁은 헌법개정 못지않게 중요한 개혁과제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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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체제의 개혁은 여러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예컨대 그것은 상향식 공천제의 도입같이 정당 내부구조의 민주화를 향할 수도 있고, 정치자금의 투명화나 정치사회 내부 선거경쟁의 공정화를 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 정당체제가 처한 대표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서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것이 주로 정치부패이기 때문에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는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부패의 문제는 오히려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 곧 대중을 배제하는 정치체제에서 비롯한다. 우리 사회에 정치적 냉소주의가 만연한 것도 부패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대표를 갖지 못한 집단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사회적 균열, 예컨대 노동과 자본의 균열, 성적 균열, 수도권과 지방의 균열 등이 존재하는데, 분단체제를 내면화하여 보수적 이념에 편향되어 있고 문화적으로 가부장적이고 수구적인 정당체제는 이런 균열의 양편 가운데 한쪽만을 편향적으로 대표한다.
많은 대중의 요구와 의지를 외면하는 이런 대표성의 위기가 낳는 문제는 방대하다. 비근한 예로 중요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인 출산력 저하를 살펴보자. 출산력 저하의 원인이 하나로 귀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이다. UN이 실시한 여성권한지수 조사대상 70개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고작 63위에 그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억압적인 환경에 처해 있으며 정당한 대우를 못 받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출산력 저하는 이렇게 여성 배제적인 사회에 대한 여성들의 의식적·무의식적 저항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고작 출산장려금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식의 조잡하고 효과없는 사회정책이 아니라 여성들의 정치적 대표성 마련이 필요하다.
노동과 관련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1987년 이후의 기업별 노조체제는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대공장의 노동자 외에는 모두 가혹한 시장에 내맡겨지도록 방치하는 것이었다. IMF사태의 지속적인 여파로 비정규직이 50%에 달하며, 조직노동자들조차도 불법파업을 피하기 어려운 노동쟁의조정법 때문에 손배가압류로 자살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은 노동자와 자본의 대립 속에서 자본이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공장 조직노동자의 고임금과 이기심에 대한 비판이 많으며 그것에 설득력있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산별 노조체제를 도입하지 않는 한, 전국적 노조가 대공장 노동자의 이기심을 견제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 그리고 실업자를 포함하는 전체 노동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동시에 국민적 관점에서 자본과 협상을 벌이기는 어렵다. 노동자들의 입장이 정치적으로 대의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의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국가기구의 개혁을 위해서도 대중의 요구와 의지에 민감한 정당체제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이 점을 지난해 중요한 사회문제인 네이스나 부안 핵폐기장 문제 등과 관련해서 생각해보자. 이런 사태들은 대체로 노무현정권과 시민사회 간의 충돌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좀더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하나같이 시민사회의 반응에 대해 무감각한 국가관료들의 정책결정과 추진이 시민사회와 충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정권이 이런 국가관료제를 통제하고 소신있게 개혁적인 대안을 추진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정무직공무원들이 방대한 국가관료제를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대통령 자신을 포함해 그가 임명한 인물들의 개혁적 일관성과 능력이 신통치 않은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일은 오히려 의회가 더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다. 의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레드 테이프(red tape)를 뚫고 들어가 국가관료를 사회에 봉사하도록 통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4
사회개혁을 위해서도 개혁적인 의회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다두제(polyarchy)를 의미하는 한, 그것은 사회적 권력의 배분을 전제하며, 어떤 종류의 권력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편성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에서는 과도하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책임을 지는 재벌의 개혁이 시급하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공론장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는 과점적인 중앙언론의 개혁 또한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법률의 제정과 개정은 의회권력의 몫이다. 이렇듯이 정당체제의 대표성을 높이고 의회권력을 혁신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 해도 정당체제 자체의 개혁을 우회하고서는 어떤 개혁의 시도도 답보를 면치 못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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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제도적 장치가 이런 대표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단순히 어떤 제도 하나를 도입한다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들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몇가지 뚜렷하고 일차적인 개혁방안들을 걸러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지역비례 대표제 중심의 국회의원 구성, 소선구제, 선거국면에서의 지역주의적 동원 등이 현존 정당체제의 재생산기제임을 고려하면 대안의 윤곽은 쉽게 드러난다. 필자는 중대선거구제나 결선투표제의 도입, 정당명부식 투표제와 연계된 비례대표제의 대폭적인 확대를 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5 중대선거구제나 결선투표제에 입각한 지역대표의 선거는 출마자들에 의한 지역주의적 동원을 어렵게 하고 선거권자의 투표행위에서 선호의 독립성6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그리고 정당투표제와 연계된 비례대표제의 확대는 지역구를 통해서는 잘 대의되지 않는 사회집단(예컨대 여성이나 노동자)의 대표성 확보를 용이하게 하며, 전국적인 의제(예컨대 환경문제나 보건문제)에 대한 시민의 의사를 정치적으로 투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제도들 가운데 다가오는 17대 총선에서 도입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한 정당명부식 투표제밖에 없다. 그리고 정당명부식 투표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비례대표의 수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적어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연말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야합하여 정치관계법을 자신들에게 더욱 유리하게 개악하려 한 시도에서 보듯이, 기득권세력인 원내정당이 스스로 혁신하는 것은 가망없는 일이다. 정치개혁을 가능케 할 원동력은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총선을 앞둔 지금 정치개혁이 매우 지지부진한 까닭은 사회운동의 개혁전략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개혁과 관련된 사회운동진영의 활동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1987년 이후 정당들은 선거국면에서 예외없이 지역주의적 동원을 일삼아왔다. 정당들의 이런 지역주의적 동원에 처음으로 의미있는 제동을 건 것은 1104개 단체가 참여한 2000년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었다. 2000년 총선연대의 활동은 정치사회에 대항하여 시민사회를 동원하고 총선의 쟁점을 정치개혁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며, 실제로 괄목할 성과를 냈다. 총선연대가 선정한 낙천인사 중 43.1%가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으며 낙선운동 대상자의 68.6%가 낙선했다.
그러나 낙천낙선운동이 거둔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지금 16대 국회를 돌이켜볼 때 인적 교체가 정치사회의 혁신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된 이유는 낙천낙선운동이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낙선운동 대상자들의 68.6%가 낙선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낙선운동이 낙선시킨 후보는 59명이고 이는 국회의원 총수의 가운데 21.6%에 불과하다. 약 5분의 1의 물갈이가 이루어진 셈인데, 이런 정도로는 정당의 성격과 정당체제의 속성을 바꾸기 어렵다. 그렇다고 낙선운동이 더욱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어 무한정 낙선대상자를 늘려 반 이상의 국회의원을 낙선시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정치신인의 경우에는 별다른 정치경력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검증이 불가능하여 낙천낙선운동의 대상에서 빠졌지만, 이들도 기존의 정당들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기 마련이며 그런만큼 상당수는 별로 개혁적이지 못한 인사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세력은 17대 국회의원 총선을 겨냥한 낙천낙선운동 같은 물갈이 전략에서 정당체제 자체를 개혁하는 ‘판갈이’ 전략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의 의제를 선점하고 나선 것은 사회운동이 아니라 기존 정당들이었다. 정당들은 처음에는 범국민정치개혁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정치개혁에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할 것처럼 행동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운동세력의 독자적인 정치개혁운동을 막았다. 지지부진한 과정을 거쳐서 정치권이 만들어낸 것은 범국민정치개혁‘위원회’가 아니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였다.
범개협이 독자적으로 내놓아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안은 정치개혁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정치관계법이 정치개혁의 방향으로 개정되는 것의 관건은 합리적인 정치관계법 개정안이 아니라 기존 정당들이 기득권을 양보할 만큼 강력한 시민사회의 압력이 존재하는 것에 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사회운동진영은 적어도 범국민정치개혁‘위원회’가 무산된 그 싯점부터 판갈이를 겨냥한 독자적인 정치개혁운동을 벌여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그 효과가 큰 몇가지 개정안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압력정치를 수행해야 했다. 파병문제, 새만금문제 및 부안문제 등 지난해 사회운동이 감당해야 했던 일들이 너무나 많았고, 실제적인 문제해결의 고삐를 쥐기에는 아직 사회운동 진영의 역량이 모자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적한 개혁과제의 핵심고리에 정치개혁이 있음을 생각하면 사건의 경과는 유감스런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을 대거 구속하는 데까지 이른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국회 정개특위가 새롭게 구성되는 등 정치관계법 개정의 가능성이 남아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당명부식 투표제에 의한 비례대표자의 확대를 관철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다. 그런데 이조차 매우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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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풀린 듯이 질주하는 정치부패 수사는 대중의 정치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동시에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에 대해 ‘송짱’이니 ‘안짱’이니 하는 애칭이 생겨날 만큼 검찰에 대한 대중적 인기를 높였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보이고, 정치권이 정치개혁에 다시 나서게 만든 점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일들이다. 하지만 검찰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긍정적인 면만 가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를 불러오고, 수사의 형평성 시비를 불러들이며, 반부패담론이 정치개혁 의제를 몰수하도록 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반부패담론은 정치비용을 축소하려는 신자유주의적 멘탈리티(mentality)와 결합해 더욱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거니와 그런 우려는 상당정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으되 무엇이 그 핵심을 차지하는가 생각해보면 이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창 논의되는 것은 정치기부금의 소액다수화와 투명화, 지구당 철폐를 통한 정치비용 축소 등이다. 이런 것들이 올해 들어 새로 구성된 정개특위 안에서는 상당정도 합의 가능한 안들로 대두된 이유는 그것이 정치사회 내부의 경쟁규칙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체제 자체의 구조변화를 유도하는 비례대표제 확대 같은 문제에 이르면 기존 정당은 완강하게 저항하는데, 고약한 것은 그런 저항에 반부패담론들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좌담회 등에 출연한 정개특위 간사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들에 의하면 국민들은 정치권의 부패에 분노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치비용의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정수는 늘릴 수 없으며, 현행 지역구 숫자를 줄이는 것은 정치권 전체가 반대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인의 발언 가운데 뒷부분은 괘씸하기는 해도 솔직한 고백일 수 있다. 지역구 축소라는 양보를 기존 정당들로부터 얻어내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구 축소가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치비용 확대를 가져올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원치 않는다는 주장은 확인된 것도 아닐뿐더러 논리적으로도 비약이 심한 궤변이다. 부패를 막는 것과 정치비용을 축소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정치비용의 축소 자체는 자칫 정치 축소로 귀결될 수 있다.7문제는 검은 돈이지 돈 자체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설령 국민들이 정치적 냉소주의 때문에 정치를 무용한 것으로 생각하고 정치비용 증대를 싫어한다면 이는 사회운동세력이 비례대표 확대가 가져올 이익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어 국민들의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사회운동진영의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반부패담론의 강력한 지배력에 굴복하여 주요한 사회운동진영의 총선전략 모두가 반부패 캠페인으로 경사되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물갈이연대나 2004 총선시민연대가 그러하며 환경운동연합이나 여성단체들도 낙천자 명단을 내며 물갈이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쪽으로 사태가 진행되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선 사회운동진영이 검찰수사와 언론의 폭로성 기사에 의해서 반부패가 다른 개혁의제들을 압도하는 것을 문제삼지 않고 오히려 그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음으로 이렇게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부패 캠페인에 경도된 데엔 지배적 의제에 탈락하지 않기 위한 단체들간의 경쟁이 작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그렇다.
앞으로의 사태진행을 예단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겠지만, 가능한 씨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정치권은 계속해서 정치관계법을 미룰 것이다.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해 2003년 12월 31일까지 선거구민의 수를 1:3 안으로 재조정토록 한 헌법재판소의 판시가 있었기에 정치권은 다른 때와는 달리 지난해 말에 정치관계법을 개정하려 했다. 하지만 통상 정치관계법 개정은 총선 50~60여일 전에 ‘극적으로’ 타결되게 마련이다. 그것이 늦어질수록 기존 원내정당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에도 올 2월 말 이후에나 정치관계법이 개정될 것이며, 현재처럼 시민사회단체들이 개정방향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물갈이운동에 주력할 경우, 겉보기에 그럴듯한 몇가지 개혁안을 포함하긴 해도 기존 정당의 핵심이익은 건드리지 않는 채로 개정될 것이다. 그리고 현역 정치인의 물갈이를 향한 시민사회단체의 총선캠페인과 정치권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며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이번 총선이 우리의 정치개혁에 어떤 도움이 될까? 물론 낙선운동의 표적이 된 현역의원 가운데 특히 수도권 의원들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여성계는 좀더 많은 공천을 받아 원내에 진출할 것이며 민주노동당이 약간의 의석을 얻어 마침내 국회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사회로서는 그것이 큰 성과라고 자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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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되는 일이여서 속단하기엔 이르지만 17대 총선을 계기로 한 정치개혁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그 이유는 정치사회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민사회의 역량이 활력을 가지고 있긴 해도 아직은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에게 정치개혁을 맡기는 것은 처음부터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는 일이고, 개혁은 오직 시민사회로부터,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분리되려는 정치사회를 시민사회에 붙잡아매는 압력정치로부터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의 성과가 미진하더라도 여전히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전체 사회의 집합적 의지가 살아숨쉬고 있는 시민사회가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문화의 극복, 정치개혁, 분단체제의 극복,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압력 속에서도 사람답게 사는 평등사회를 건설할 가능성은 이 시민사회의 민주적 지향과 개혁능력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민사회의 개혁역량을 키워나갈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개혁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운동진영이 정치권에 대해 뚜렷한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회운동의 명망가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인으로 출마하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라는 말로 이런 행동들이 정당화되곤 하지만 이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만 삼권분립에 따라 운영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사회적으로도 권력분립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학계, 정치계, 언론계, 사회운동계는 서로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견제하고 협력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운동의 명망가들이 정치권이나 다양한 국가기관으로 진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의 관할 아래 있는 각종 위원회에 진출하는 것에서 국가나 기업으로부터의 경제적 후원을 받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운동진영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는 것이 옳다. 사회운동의 자산은 그것의 공익성에 대한 대중의 폭넓은 신뢰밖에는 없다. 불신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신뢰라는 자산의 형성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하면 어떤 종류의 유착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자세만이 사회운동을 성장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수구적인 중앙언론의 개혁과 대안적인 공론장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여러가지 사회적 개혁과제는 서로 맞물려 있게 마련이라 언론개혁이 이루어지면 정치개혁이 쉬워지고, 역으로 정치개혁이 이루어지면 언론개혁이 쉬워지는 법이다. 따라서 개혁을 위한 전략과 타깃은 정세에 따라 신축적일 필요가 있다. 총선국면이라면 역시 정치개혁 의제가 전면에 부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좀더 일상적인 국면이라면 언론개혁이 중요할 것이다. 이번 정치개혁의 국면에서 사회운동은 개혁의제를 생산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정치와 유착하면서 정치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생존하는 수구적인 언론들이 설정한 의제에 사회운동이 이끌려들어간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좀더 언론개혁에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90년대를 통해서 힘을 키워온 언론개혁운동이 소강상태에 빠진 현재 국면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명망가 중심적이고 이슈 중심적이고 언론 의존적인 사회운동의 체질 강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 몇가지 방안을 생각할 수 있겠다. 첫째, 사회운동에 대한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사회가 사회적 토대가 허약하고 참여배제적이라고 비판하는데, 우리의 사회운동 또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풀뿌리 사회운동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국적인 거대시장형 사회운동의 성과는 그것대로 유지하면서 사회운동의 스펙트럼을 봉사형과 권익형 사회운동으로 확산해 사회운동 전반에 대한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한마디로 사회운동사회(social movement society)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로 개혁적 싱크탱크(think tank)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사회운동은 정책형성적 기능과 운동정치적 기능 모두를 수행했다. 그러나 이는 효율적이지 않다. 사회운동 참여자들에게도 과부하일 뿐 아니라 사회운동이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의제를 형성하고 정책적 대안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책형성적 기능과 운동정치적 기능을 어느정도 분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개혁적 싱크탱크가 요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를 제안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은 지금까지 시민사회 자체의 의지를 대변하는 존재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보수적 시민단체들이 속속 출현하는 데서 보듯이 시민운동 자체가 분화하여 운동지형이 한결 복잡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민주화운동 과정 속에서 매우 독특한 형태로 성장한 시민사회의 개혁적 정체성이 약화되고 헤겔과 맑스가 정의한 시민사회, 욕망의 체계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에 근접해갈 것이다.따라서 시민운동의 개혁적 분파와 민중운동이, 연대라는 한 몸에 펼쳐진 양 날개가 되지 않는 한 사회개혁을 향한 전진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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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절의 논의는 최장집의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와 윤상철의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이행과정』(서울대출판부 1997)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 이는 민주화 이행 전에 정치사회가 비록 강권적 국가 속에 폭력적으로 포섭되어 있기는 해도 뚜렷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한 분파인 야당이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에서 일익을 담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투쟁의 국면을 지나 협상의 국면이 되면 정치권은 쉽사리 개헌논의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 정치권에서 주기적으로 불거져나오는 분권형 대통령 논의 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런 주장은 가뜩이나 대통령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가진 의회권력을 더욱 강화해 기존 정당체제를 더욱 안전하게 재생산하려는 정치적 계산에 근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주기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맞물리는 다음 대선과 총선은 개헌의 좋은 싯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총선 이후부터는 시민사회가 정치권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도록 주도적으로 개헌논의를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
- 우리의 국가관료제는 권위주의정권 시절보다 더 사익추구적이고 수구적이다. 권위주의정권은 항상 정당성의 부족을 실적으로 메우려 했기 때문에 관료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했으며, 관료의 저항은 경찰정보기구를 통해 통제했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는 말이 김영삼정부에 처음 등장한 것이 시사하듯이 민주적 정부의 관료제 통제는 훨씬 힘든 과제이다.↩
- 이밖에도 선거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과 부재자투표를 더욱 쉽게 하는 방안을 추가할 수 있다.↩
- 투표행위에서 선호의 독립성이 없는 경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선거권자가 투표를 할 때 자신이 원하는 후보의 당선가능성이나 선호하지 않는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고려하느라 선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할 경우 선호의 독립성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 개혁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지구당 폐지는 그것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지구당이 폐지되면 국회의원과 지역구민들 간의 접촉 영역만 축소된다. 비록 이 접촉 영역이 많은 정치비용을 소모하게 하는 영역이지만, 그것은 법적 통제를 통해서 줄여야 하는 문제이지 정치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 이번 총선만 해도 정당명부식 투표에 의한 비례대표제의 확대는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모두에게 절실한 것이었지만 두 운동 사이의 의미있는 연대사업이 없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