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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윤성학 尹聖學
1971년 서울 출생.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iwill@nongshim.com
김신조가 온다
게릴라들이 왔다
청와대를 향해 돌진하던 중
불꽃이 오가는 야간 시가지전투가 벌어졌다
수도경비대가 청와대 위로
조명탄을 쏘아올렸을 때
그들은 환하게 피어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짧게 한숨을 지었을 뿐
적의 중심
그 두개골을 바수려고 달려온 담대함이
스러지지 않는다
중심을 건드려 전체를 흔들기 위해
게릴라들이 밤길을 왔다
김신조가 마지막으로 생포되었다
박정희를 도끼로 까러 왔시요
중심을 강타하는
어마어마한 적의가 한반도를 휘감았다
누군가 중심을 건드리지 않아도
지금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내 가운데 갇혀
스스로를 깨지 못할 때
중심에서부터 전체가 함께 굳어갈 때
그때
그가 올 것이다
소금詩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굵은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하여
한달을 절어 있었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
내외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內通하기 적당한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