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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성란 河成蘭
1967년 서울 출생.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장편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등이 있음. gaeulhae@yahoo.co.kr
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
태초부터 이곳에는 돼지들이 있었다. 크고 작은, 누르스름하거나 점박이인 이천여 두의 돼지들이 빈둥거리면서 하루를 난다. 분홍색 콧구멍은 거칠게 뿜어대는 콧김으로 축축하고, 납작한 코언저리는 굳기름을 핥은 듯 기름기가 돈다. 코로 지푸라기들을 헤집다가도 벌러덩 드러눕는다. 바닥으로 쓰러질 때의 충격은 두꺼운 비곗살이 고스란히 흡수한다. 사료를 실은 외발수레들이 돈사로 들어서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부리나케 사료통으로 달려가느라 미처 깨지 못한 동료 돼지의 몸통이나 귀를 밟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헐레벌떡 뒤늦게 서둘다가 발을 접질리고 다시 바닥에 나뒹구는 일도 다반사다. 사료통이 채워지기도 전에 머리를 들이미느라 밀고 밀린다. 그 바람에 사료가 머리통으로 쏟아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길쭘한 주둥이를 밀어넣어 반쯤 썩은 사과나 옥수수 대궁을 건져 우적우적 씹어댄다.
배가 차면 돼지들은 한가롭게 짚더미에 누워 바닥에 등을 긁어댄다. 늦잠을 잔다고, 살이 찌니 조금만 먹으라고 핀잔을 줄 사람이 없다. 이럴 땐 정말 돼지가 되고 싶다. 이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돼지들의 낙원이다. 돈사의 스피커에선 하루종일 모짜르트 교향곡이 흘러나온다. 모짜르트가 돼지들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돼지들은 하루가 다르게 피둥피둥 살이 쪘다. 가죽 밑에 두툼한 비곗살이 끼었다. 돈사 맨 안쪽 돈방에서 태어난 돼지들은 차츰차츰 입구 쪽의 돈방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잔병치레를 하거나 돌림병이 도는 일만 없으면 육개월 남짓 걸린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돈방까지 밀리고 나면 그다음은 출하다.
돈사 앞 공터에 울타리를 박는 작업이 한창이다. 인부들 사이를 굴러다니듯 재게 걸으며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하는 사람이 엄마다. 일이년 사이 웰빙이라는 단어가 급부상했다. 재래종 돼지들을 방목해 키우려는 생각이다.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관광코스로 꼭 토종 흑돼지집을 찾는다는 데서 착안했다. 하지만 울타리를 박으면서도 엄마는 구시렁거린다. 칠십여년 전만 해도 농가에는 몸집이 작고 털이 검은 재래종 돼지 일색이었다. 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았다. 재래종 돼지들은 한배 새끼수가 많고 고기 근수가 많이 나가는 요크셔종과 교배되었다. 빠른 세대교체를 겪으면서 이제 어느 돼지에서도 재래종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어졌다. 그런데 별안간 토종 돼지라니, 엄마의 눈에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는 중이다.
돼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한다. 암퇘지는 21일 간격으로 발정을 되풀이해서 일년에 두 번에서 두 번 반, 여덟 마리에서 열한 마리가량의 새끼를 친다. 그 새끼가 다시 새끼를 칠 수 있는 성돈이 되기까지 예닐곱달밖에 걸리지 않는다. 삼십년 전, 젊은 엄마는 트럭 짐칸에 웅크리고 앉아 품속에서 꿈틀대는 두 마리의 새끼 돼지를 어루만졌다. “이제 반년 뒤면 암퇘지가 열 마리의 새끼를 낳을 거야. 고놈들 중에서 암컷이 다섯 마리라고 쳐, 고것들이 자라 다시 다섯 마리씩의 암컷을 낳는 거야. 6×5, 30×5, 150×5……” 비포장길을 달리던 트럭이 자갈돌을 밟고 거칠게 튀어올랐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암산은 끊어졌다. 엄마의 상상은 돼지들이 돼지우리를 콩나물시루같이 채운 뒤에도 계속되었다. 엄마는 어둠속에서 흰 이를 드러내고 소리없이 웃었다. 그런 상상력이라도 없었다면 엄마는 그 시절을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달랑 돼지 두 마리만 몰고 이곳에 들어왔다. 그 시절 젊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막연히 읍의 교회에서 나눠주던 엽서가 생각난다. 엽서에는 키보다 큰 지팡이를 짚은 예수님이 서 있다. 그 주변에는 털실 뭉치 같은 양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예수님이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준 것은 여름성경학교의 선생이었다. 나는 ‘기다린다’라는 말이 좋았다.
엄마의 돼지들은 예수의 양들처럼 조용하지도 고분고분하지도 않았다. 새끼 돼지들은 쉴새없이 바스락댔다. 하지만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돼지들보다 아버지를 구슬려 이곳까지 몰고 오는 게 더 힘들었다고 엄마는 삼십년이나 다 된 일을 어제 일처럼 말했다. 트럭이 가지 못하는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엄마는 돼지들 때문에 죽살이쳤다. 새끼 돼지들은 곧잘 길을 샜다. 할 수 없이 양손에 한 마리씩 돼지를 부둥켜안았다. 놀란 돼지들이 질금질금 엄마 옷에 오줌을 지렸다.
엄마와 인부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일이 왜 이리 더디냐는 엄마의 말이 화근이었다. 인부가 들고 있던 연장을 내던졌다. 엄마의 키는 일꾼의 겨드랑이에 겨우 닿을까 말까 했다. 엄마는 뛰어오르면서 인부에게 삿대질을 한다. 인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두 팔을 허리에 올리고 고개를 돌린 뒤 침을 뱉었다. 호락호락 물러설 엄마가 아니다. 엄마는 숱한 수퇘지들의 불을 깠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엄마 앞에서 오금을 못 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반한 건 단지 아버지의 큰 키 때문이었다고 했다. 아침 조회시간, 공장 마당에 늘어선 올망졸망한 공원들 틈에서 다른 이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더 컸던 아버지는 한눈에 띄었다. “내가 엄말 고대로 뺐으면 어쩔 뻔했수?”라고 물으면 엄마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짧은 두 팔을 내저었다.
엄마는 인부들을 일렬로 세워놓았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인부들은 프리킥 찰 선수에게서 골대를 수비하듯 두 손을 바지춤에 모으고 있다. 기어이 인부에게서 사과를 받고 물러난 엄마는 기세등등 집으로 올라간다.
750×5, 3750×5…… 엄마의 상상 속에서 돼지들은 계속 새끼를 친다. 금방 돈사가 넘쳐난다. 돼지들은 앞마당을 채우고 개울 건너 감자밭과 옥수수밭 너머까지 들어찬다. 그대로 두면 지구는 돼지로 가득 찰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H가 말했다.
“회원 여러분, 단 두 가지만 명심합시다.” 동호회 번개모임에서 H가 말문을 열었다. 신선한 돼지고기는 연한 분홍빛을 띱니다, 절대 상한 돼지고기를 먹어서는 안됩니다, 돼지고기는 밝은 회색이 될 때까지 반드시 익혀 먹읍시다. H의 말이 끝나자 식당 곳곳에서 산발적인 박수가 터지다 말았다.
동호회원 수가 오천 명이 넘었다. 마포구를 대상으로 한 번개모임에만 사십 명 가까운 회원이 모였다. 동호회 사람들이 삼겹살집을 점거했다. 가끔 가게 안으로 들어오려던 손님들이 문밖에서 돌아갔다. 회원들은 불판 구멍이 뚫린 스테인리스 원탁에 바투 앉았다. H는 다른 식탁들까지 봐두었다가 고기나 밑반찬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문을 하곤 했다. H는 귀가 드러나도록 짧게 머리를 쳤다. 귀 밑으로 이어지는 날렵한 턱선은 방금 면도를 했는지 파르스름했다.
H가 집게로 고기를 뒤집었다. 비계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인공 숯 위에 떨어지면서 타다닥 사방으로 튀었다. 젓가락으로 고깃점을 뒤집으려는데 H가 집게로 내 젓가락을 톡톡 쳤다. “상큼레몬님, 오늘은 내가 할 테니 다음에 해요.” 맞은편의 안경 쓴 대학생이 웃었다. “첨이라 잘 모르시나봐요.” 번개모임이나 정기모임에서 삼겹살을 먹으러 가면 회원들 가운데 한 명이 그날 삼겹살을 굽는 ‘삼돌이, 삼순이’가 된다,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거들다보면 쓸데없이 고기를 여러 번 뒤집게 될 뿐 아니라 뒤집는 시간을 놓쳐 태울 수도 있다, 말을 마친 안경잡이가 검지 끝으로 안경 코받이를 추켜올렸다. “삼겹살은 딱 두 번만 뒤집어야 해요.” H가 말하는 그 순간에 또 타다닥 기름이 튀었다.
식당 안은 열두 개의 불판에서 나는 연기로 금방 부예졌다. 연기가 눈을 찔렀다. 부연 연기 사이로 열심히 삼겹살을 굽는 사람들이 보였다. 삼겹살 마니아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연령대도 직업도 다양했다. 뜨거운 불판 탓인지 회원들은 쉽게 술이 올랐다. 고기가 익는 속도가 더딘데다 테이블당 사람수가 너무 많다보니 고기보다는 술을 더 들이켠 탓도 있었다. 식당 구석에서 누군가 들고 있던 맥주잔을 놓쳤다. 시멘트 바닥에서 유리컵이 산산조각났다. 사십대로 보이는 한 사내가 원탁에 둘러앉은 대학생들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일생에 기회는 딱 세 번 온다 이거야. 기회가 올 때 잡아야 한다 이 말씀이야, 알았어?” 사내가 소주를 따라주자 대학생들은 고개를 돌리고 술을 홀짝였다.
남자들은 식당 바닥에 담배꽁초를 비벼끄고 침도 뱉었다. 맞은편의 안경잡이는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소리없이 씩 웃었다. 안경알이 점점이 튄 기름투성이였다. 술버릇도 가지가지였다. 남자들 사이에 끼여 앉은 단발머리 여자가 훌쩍였다. “라푼젤님 왜 우세요?” 당황한 남자가 허겁지겁 천장에 매달린 휴지를 말아 여자에게 건넸다. “돼지사랑님 고마워요.” 여자가 휴지 끝으로 눈가를 찍더니 언제 울었냐는 듯 까르르 웃었다. 사십대 사내는 횡설수설했다. 그러다가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하란 말야, 이 자식들아!”라고 고함을 치더니 스테인리스 원탁 위 파무침과 기름장이 놓인 접시에 털썩 머리를 박았다.
H를 가게 밖으로 불러냈다. 봄밤이었다. H의 스웨터에 밴 고기 냄새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직장동료 S는 곁에 앉은 남자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렵게 운을 뗐다. “이런 모임인 줄……” H가 말허리를 잘랐다. “아하, 재테크 동호횐 줄 아셨구나? 십년에 일억 만들기 뭐, 이런 거.” H는 크고 건장했다. “그런 사람들 꽤 있어요. 동호회 이름이 돈방석이니까 곧잘 그런 오해들을 하죠. 하지만 다 그런 거 아녜요? 그렇고그런 숱한 오해들……” H가 주먹 쥔 양손에서 검지를 펼치더니 거리를 향해 사정없이 난사했다. 길 가던 사람들이 움찔했다. 우연히 올려다본 가게 간판에 동호회 이름이기도 한 ‘돈방석’이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가게 안에서 안경잡이가 얼굴을 내밀고 웃었다. “혀엉, 이제 슬슬 파장합시다.”
동호회 번개모임은 회비를 걷어 식사비를 계산한 뒤에도 한참을 질질 끌었다. 진작에 숯불이 빠진 불판은 차갑게 식었다. 검게 탄 삼겹살 몇점이 허연 기름을 묻힌 채 오그라들어 있었다. 식당 주인의 통사정으로 가게를 빠져나온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골목을 휩쓸고 다녔다. 같이 왔던 동료는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전봇대 밑에서 기회는 세 번뿐이라던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기라도 한 듯 전신주를 힘껏 부둥켜안고 있었다.
직장동료 S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돈방석의 정기모임에 가는 눈치였다. 가끔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면 삼겹살에 관한 이야기를 흘렸다. “삼겹살 같이 먹는데 가장 얄미운 사람이 누군지 알아?” S는 뜸을 들이며 천천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까부터 먹으려고 찜해둔 고기를 날름 가져가는 사람!”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회사 근처의 삼겹살집에서 부서회식이 있던 날, 붙여 만든 삼겹살을 먹고 온 뒤에 나는 ‘돈방석’에 접속했다. 돈방석의 번개모임이 있던 그날 밤에 ‘금빛돼지’란 회원이 누군지 모를 회원들에게 뭇매를 맞은 모양이었다. 날짜 간격을 두고 올린 마지막 글은 ‘이번이 세번째 기회다. 이번에도 나타나지 않으면’이라는 두 줄의 문장 뒤에 세 줄 연이어 느낌표가 찍혀 있었다. 문득 전봇대를 붙잡고 씨름하던 사내가 떠올랐다. 세 줄이나 되는 느낌표들은 그 누구에게도 위압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고 그 뒤로 금빛돼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와인삼겹살집 강추!’라는 글 위에 ‘유사 삼겹살 조심하세용’이란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었다. 매번 직장동료 S가 나보다 한발 빨랐다. 그 글 위에 ‘모짜르트 삼겹살’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건 S의 올 풀린 스타킹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심사였을 것이다. 엄마는 음악마다 돼지들이 다 다르게 반응한다고 했다. 그래서 유심히 지켜봤는데 피아노협주곡 10번에서 21번으로 바뀌었지만 돼지들은 어느 음악에나 그저 빈둥거릴 뿐이었다. 돼지가 되고 싶다가도 하루종일 모짜르트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정신이 돌아왔다. 우스갯감이나 안되면 좋을 텐데, 글을 올려놓고 전전긍긍했는데 다음날 접속하니 H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대체 무슨 맛이에요? 어디 가면 그 삼겹살을 맛볼 수 있나요?’
‘돈방석’이라는 체인 삼겹살집 간판은 유흥가마다 꼭 하나씩 걸려 있었다. 번개모임이 있던 날 밤에는 미처 보지 못했는데 간판 한쪽에 꼬리가 돌돌 말린 흰 돼지가 한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면서 웃고 있었다. 돈방석이라는 상호를 지은 건 H였다. H가 그런 작업을 하고 있고 그런 것을 일컬어 네이밍이라고 한다고 안경잡이가 알려주었다. H와 안경잡이는 각별한 것 같았다.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는 다른 동호회원들과는 달리 안경잡이는 H를 형이라고 불렀다. 안경잡이는 ‘돈방석’이 H의 첫작품이라는 말은 했지만 그후로 이렇다 할 만한 이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토종 흑돼지는 이미 한 고장의 브랜드로 굳어져버렸어요. 흑돼지 하면 그 고장의 바다와 바람, 돌 그리고 옛날 변소와 연결된 돼지우리가 꼬리를 물며 떠오르게 되거든요.” 흑돼지가 변소와 연관된 것까진 알겠는데 바다는 뭐고 바람은 뭐람,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H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H가 먼 눈빛으로 천천히 농장을 훑었다. 멀리 개울을 경계로 감자밭과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감자와 옥수수란 무릇 모든 돼지들의 양식이었다. 그것으로는 변별력이 없었다.
H는 모짜르트 돼지를 맛보기 위해 동호회원들을 몰고 농장에 왔다. 회원들이 돈사로 몰려갔다. 돈사 안에는 때마침 협주곡 21번이 울리고 있었는데 돈방 구석에 서로의 등을 대고 누워 지푸라기를 우물대고 있는 돼지의 모습과 딱 맞아떨어졌다. 초콜릿여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21번 협주곡 속에서 두드러졌다. “돼지들이 정말 음악을 듣고 있어!” 회원들은 돈방 앞에 서서 돼지들과 같이 21번 협주곡을 끝까지 들었다. 돼지 때문인지 협주곡 때문인지 아니면 먼 나들이의 피로감 때문인지 회원들은 죄다 나른해 보였다. 그사이에도 길을 잃은 회원들이 전화를 해댔다. S도 전화를 했다. 농장으로 들어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왔는데 농장은 보이지 않고 수천 평의 논이 앞을 가로막았다며 짜증을 냈다.
회원들은 울타리 여기저기에 둘러앉아 모짜르트 삼겹살을 구웠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인부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모닥불에 삽을 올려 삼겹살을 구웠다. 그게 신기해 회원들이 몰려들었다. 고기 냄새가 퍼지자 묶어둔 개들이 땅에 코를 박고 킁킁대거나 발로 땅을 팠다. 다 늦게서야 S의 차가 농장으로 들어섰다. 회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가 박수를 치며 반겼다. S가 호들갑을 떨었다. “오른쪽이다 생각하고 달렸는데 또 왼쪽과 오른쪽을 헷갈린 거 있죠. 자동차 방향등을 넣을 때도 여러 번 생각해야 한다니까요.” 회원들이 박장대소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좋아하는 여자였다.
돈방석에는 온통 모짜르트 삼겹살 이야기뿐이었다. 서울에서 맛보던 삼겹살과는 완전히 다른 맛(돼지사랑), 육즙도 풍부하고 고기에서 탄력이 느껴져(슬픈늑대), 고기를 씹을 때 돼지 특유의 향이 나는데 역겹지 않고 향긋해(초콜릿여자). 하지만 ‘모짜르트 삼겹살이 브랜드화될 수 없는 이유’란 제목의 글에서 H는 조목조목 따져놓았다. 뛰어난 삼겹살의 맛이 농장의 일급수 물과 유기농으로 재배한 감자와 옥수수 때문일 수는 있지만 결정적으로 음악이 돼지고기 맛에 기여한 역할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심증만 갈 뿐 물증이 없다. 그리고 H는 글 끝에 덧붙였다. 돈사 근처의 지하수는 대부분 돈사에서 흘러나오는 오물로 오염되어 있기 십상.
울타리는 회원들이 삼겹살을 먹고 간 날 이후로 방치되었다. 상품성이 없다는 H의 말이 한몫하기도 했지만 그 무렵 돼지들 사이에 돌림병이 돌았다. 폐에 염증이 생긴 돼지들이 고열에 시달렸다. J시 해안에 위치한 일곱 개 농가의 돼지들이 폐사했다고 했다. 이런 때 재래종 돼지를 분양받는 것은 엄마 말처럼 휘발유통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었다. 농장에는 일절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일손이 부족해도 타지에서 온 인부를 살 수 없다. 이럴 때면 돌림병이 도는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조차도 신경이 쓰인다. 트럭에 묻어온 병균이 돈사를 휩쓴 적이 있었다. 돼지들이 픽픽 쓰러지는데도 엄마는 속수무책이었다. 돼지들 절반이 죽어나갔다. 그러니 당분간은 돼지 출하도 할 수 없다. 출하를 목전에 둔 돼지들이 일주일 넘게 사료를 축낸다.
돌림병보다 더 무서운 건 돌림병이 잠잠해진 뒤에도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돼지고기 소비가 제 수위에 오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생후 일년을 넘긴 돼지들은 최하등급으로 급락했다. 비계가 줄고 살코기가 질겨지기 때문이다.
농장 마당에 설치한 울타리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인부들의 트랙터는 울타리를 에둘러 돈사를 드나들었다. 돌림병이 사라지고 돼지 출하를 위해 들른 트럭 운전수는 트럭을 후진시키다가 울타리를 넘어뜨렸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돈사를 드나드는 인부들은 동선이 늘자 불평을 늘어놓았다. 인부들은 할 수 없이 울타리를 넘어 마당을 가로질렀다. 제일 불편한 사람은 엄마였다. 성미 급한 엄마는 구르듯 뛰다가도 울타리 앞에만 오면 멈춰서야 했다. 한 발을 울타리 턱에 올리고 다시 반대편 울타리에 한 발을 옮겼다. 울타리 끝에 엉덩이를 찔리고 펄쩍펄쩍 뛰는 엄마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오피스텔에서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만 세 개의 삼겹살집이 있었다. 도서대여점이 있던 자리는 한창 목공사중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이 깨 내다보니 그 자리에 삼겹살집이 또 들어섰다. 젊은 여자 둘이 삼겹살집 이름이 적힌 긴 고무풍선 인형을 사이에 두고 춤을 추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는 대체 몇개의 삼겹살집이 있는 걸까, 지난 일 년 남짓 H와 함께 정모 장소가 될 삼겹살집을 찾아다녔지만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난립하듯 들어서는 삼겹살집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돼지들이 번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삼겹살집이 이렇게 각광받기 시작한 건 IMF사태 무렵부터야.” 회원 하나가 추천한 된장삼겹살집을 답사하러 가는 길이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삼겹살집이 새로 생겨나지만 그만큼 많은 삼겹살집이 문을 닫고 있다며 H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서울 시내의 삼겹살집 수는 늘 현상유지라고 했다. 한숨을 쉬어서일까 H의 옆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지갑보다는 덜 소중하지만 그래도 꼭 챙겨야 할 소지품을 길에 흘린 표정이었다. 뭘 잃어버렸냐고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기분을 전환할 겸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요즘은 어떤 이름을 지었어?” 사람 무안하게 H는 아무 말도 안했다.
기껏 답사까지 해놓고 금요일 정모에 H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언질도 없었냐고 안경잡이가 내게 물었다. 내가 물어볼 말이었다. 안경잡이는 문 열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출입구를 살폈다. 된장을 발라 숙성시켰다는 삼겹살에는 은근히 된장간이 배어 있었다. 그렇게 열심이던 S는 어느 금요일부터인가 나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가끔 등산장비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 회사 산악회에 든 모양이었다. 반찬으로 나온 오징어채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생각했다. 왼쪽, 오른쪽 잘 구분해서 다녀라, 산에서 길 잃지 말고. S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젠 속마음까지 읽나 싶어 화들짝 놀랐는데 눈을 샐쭉하게 뜬 S가 물었다. “돼지들은 잘 커?” 돼지란 말이 우스웠는지 동료 몇이 웃었다.
술이 오르자 안경잡이는 안경의 코받침을 자꾸 밀어올렸다. 안경은 금세 제자리로 미끄러졌다. 안경잡이가 주먹 쥔 제 손을 식탁 위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목을 돌리면서 자신의 손을 감상했다. “……이 손으로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뭘 해야 할까요?” 그는 졸업반이었다. 3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왔지만 사회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대기업에 원서를 냈지만 취업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남자 손치고 곱상한 안경잡이의 손을 나도 따라 감상했다. 불현듯 맛있는 삼겹살이나 찾아다니는 이런 일 따위가 무척 부끄러웠다.
정모는 슬픈늑대가 돼지사랑의 멱살을 잡으면서 끝이 났다. 식탁이 엎어지면서 한 귀퉁이가 불에 눌은 멜라민 접시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식당 여주인은 그동안 볼 것 못 볼 것 다 보았다는 듯, 힐끗 쳐다보고 말았다. 여자회원 몇이 눈치를 보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안경잡이는 드잡이하는 두 회원 사이에서 울상을 지었다. “슬픈늑대님 참으세요. 왜 이러세요, 돼지사랑님.” 안경잡이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슬픈늑대는 돼지사랑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돼지사랑이 뒤로 밀리면서 의자들이 와르르 넘어졌다. 슬픈늑대의 코를 가격한 건 돼지사랑이 아니라 안경잡이였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안경잡이와 나란히 앉았다. 그는 슬픈늑대를 친 오른손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옷에는 고기 탄내가 뱄다. 앞자리에 앉은 중년 여자가 고개를 돌리고 흘낏 우리를 바라봤다. 현란한 간판들이 허공에 걸려 있었다. 간판들을 유심히 보게 된 것은 H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경잡이가 일어서서 출입문 쪽으로 갔다. 뭔가 말하려는 듯 나를 돌아봤지만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오피스텔로 가는 동안 네 개의 삼겹살집을 지났다. 같은 삼겹살인데도 어느 집의 손님들은 불판을 놓고 심각했고 어느 집의 손님들은 박수까지 치며 웃어댔다. 아주 잠깐 모짜르트 음악을 듣고 자란 돼지들을 먹는 사람들은 유쾌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피스텔 문을 여는 순간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신발 바닥에 붙은 껌처럼 성가셨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집으로 오는 동안 한번도 ‘돈방석’이라는 간판을 본 적이 없었다.
트럭 짐칸이 열리고 널빤지가 걸쳐졌다. 돼지들을 트럭 짐칸까지 유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짐칸에 먹이를 뿌려두자 돈사를 빠져나온 돼지들이 코를 킁킁거리면서 방향을 잡았다. 출하 때가 되어서야 돼지들은 비좁은 돈방을 벗어난다. 생전 처음 가장 먼 길을 걷게 된다. 돼지들이 널빤지로 발을 올려두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육중한 몸을 떠받친 세 개의 발목이 바르르 떨린다. 육개월에서 일년, 고기 근수를 최대치까지 밀어붙인 돼지들은 갈비나 삼겹살, 항정살로 혹은 햄과 쏘시지로 가공되어 거듭난다. 그것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돼지의 일생이다.
짐칸 가득 돼지가 실렸다. 돼지들이 피둥피둥 살찐 엉덩이를 흔들어댄다. 돼지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실려가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먹이에만 관심이 있다. 돼지들은 양껏 먹은 먹이가 채 소화되기 전에 도살당한다. 트럭 운전사에게 물어보았는데 돼지들은 감전사시킨다고 했다. 순식간이라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잠깐 돼지들의 영혼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무거워도 그 영혼만큼은 가벼울 것이다. 후진하던 트럭 바퀴에 울타리 두 개가 깔려 부러졌다. 트럭 운전사는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이제 엄마는 울타리에 신경도 안 썼다. 돈 들인 일이라 일부러 뽑을 수는 없지만 트럭이 그렇게라도 울타리를 없애주었으면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돈사에 돼지 냄새가 뱄다. 천장에 달린 대형 송풍기들이 사시사철 24시간 내내 냄새를 밖으로 빨아내지만 찌든 냄새는 어쩔 수 없다. 잡식성의 돼지들은 먹는 족족 똥과 오줌을 눈다. 수시로 방귀를 뀌어댄다. 분뇨 섞인 짚더미가 썩으면서 고약한 가스가 발생한다. 몇년 전 봄, 이 일대가 정전이 되면서 돈사의 송풍기가 멈췄다. 빠져나가지 못한 가스가 돈사 안에 가득 찼다. 그 가스에 새끼 돼지들을 잃었다.
모짜르트 협주곡 테이프는 한 부분이 늘어났다. 그 부분은 돼지 소리와 비슷하다. H는 그날 이후로도 정모에 나타나지 않았다. 메일에 답장하지 않았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이면 정모에 가는 대신 집으로 내려왔다. 엄마는 돋보기 너머로 나를 수상쩍게 올려다보았다.
안경잡이는 안경이 물리지도 않는지 자신의 아바타에도 커다란 안경을 씌워놓았다. H가 여섯달 동안 돈방석의 정모에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개인적인 일이 있겠죠,라며 우물거렸다. 안경잡이도 오랫동안 H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돈방석에도 잠수중인 H를 찾는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형을 만나고 싶다면 회전목마로 가봐요. 가끔 댓글이 올라오는 걸 보면 그쪽에는 모습을 보이나봐요.”
‘회전목마’는 놀이공원을 찾아다니면서 스릴 만점의 놀이기구만을 골라타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H는 동호회의 소개글에 ‘어린이대공원에서 처음으로 88열차를 탔을 때의 흥분감으로’라고 썼다. 회원들은 놀이공원에 새로운 놀이기구가 생겼다는 소문만 들리면 그곳으로 몰려다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몇년 동안 전국에는 새로운 놀이공원이 생기지 않았다. 놀이기구도 몇년째 그대로였다. 그래서 지금은 싸이트를 관리만 하고 있었다.
H는 싸이트에 올라와 있는 시시콜콜한 질문에 답을 달았다. ‘지금 L월드에 가려는데 가벼운 점퍼 차림으로 가면 춥지 않을까여?’ H는 일주일 전에 다녀왔는데 실내는 괜찮지만 실외로 나가면 아직 춥다고 답했다. ‘놀이공원에 배낭을 지고 가는 건 괜찮나요’라는 질문에는 요즘 놀이공원 입구에 간단한 짐을 맡길 수 있는 사물함이 있으며 사용료는 500원이라는 것과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을 탈 때는 호주머니 속에 동전을 넣고 있으면 안된다고 알려주었다. H는 놀이공원 입장권을 싸게 파는 싸이트를 알고 있었고, 다른 놀이기구는 형편없지만 말솜씨가 뛰어난 DJ가 있어 놀이기구를 타는 내내 흥을 돋운다는 시 외곽의 놀이공원도 알았다. 중의와 유머, 반어로 이루어진 ‘돈방석’과 ‘회전목마’란 이름에서 어렴풋이 H의 생활패턴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틀 전 올라온 새 글에 H는 E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가 긴 시간의 수리를 마치고 이번주 토요일에 다시 운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도 이번주 토요일 그 기구를 타러 갈 거라고 했다. 그 글 옆에 콧수염을 달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H의 아바타가 일초에 한번씩 윙크를 해대고 있었다. 아바타 H는 여전히 활기찼다.
벤치에서 고개를 들면 롤러코스터의 얽히고설킨 철구조물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빼고 두 바퀴 돌고 순식간에 레일 끝으로 사라지는 기차의 꽁무니를 쫓았다. 기차는 매번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꼬리처럼 달고 사라졌다. H가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기차가 연속 회전할 때면 공중에서 후드득 소지품들이 떨어졌다. H는 오지 않았다. 얼마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나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바람이 서늘해졌다. 돌아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롤러코스터의 운행간격이 뜸해졌다. 운전실에서 머리를 내민 남자가 내게 소리쳤다. “괜찮아요, 안 무서워요. 무서우면 내가 책임질게요.”
롤러코스터는 빨랐다. 바람 때문에 눈알이 시렸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휘갈겼다. 소리치지 않으려 이를 앙다물었는데 두 번 회전하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도착지점에 기차가 섰지만 내리지 않았다. 운전실의 남자는 핀잔을 주지 않았다. 그는 내 손목에 둘러진 자유이용권 팔찌를 봤고 롤러코스터를 타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롤러코스터가 회전코스에 들어서기 전에 호주머니의 지퍼를 열었다. 회전하면서 백원짜리 동전 두 개가 떨어졌다. 다음에는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와 어디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단추가 떨어졌다. 손거울이 떨어졌다. 롤러코스터가 회전할 때마다 내 소지품들이 떨어졌다. 롤러코스터에서 내리는데 잠깐 몸이 흔들했다. 운전실의 남자가 웃었다. “것봐요, 하나도 안 무섭죠.” 일부러 흘린 것이 아니었는데 머리를 묶은 핀이 달아나고 없었다.
H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앞에서 안경잡이와 만났다. 놀이공원에 다녀온 날 저녁, 회전목마에는 H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일곱 번 곤두박질, 두 번의 아찔한 회전, 단연 세계 최곱니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했죠.’ H는 그날 놀이공원에 오지 않았다. 안경잡이는 지문이 너저분한 안경알 너머로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았다. “사적인 문제라 제가 끼여들 수가 없었어요.” 13층에 내려 복도를 걸었다. 안경잡이가 초인종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었다. “또 자나보네.” 안경잡이가 연거푸 초인종을 눌러댔다. 그렇게 십여분쯤 초인종을 누른 후에야 안에서 잠이 덜 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섭이, 너냐?” 안경잡이가 대답을 하자 발소리가 현관 쪽으로 가까이 왔다. 문이 열리고 H의 얼굴이 나타났다.
문 뒤에서 나타난 얼굴은 도저히 H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안경잡이는 따라들어오지 않고 돌아갔다. 그는 졸업했지만 아직 실업자였다. 그는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H의 집은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다. 개수대에 씻지 않은 냄비와 유리컵, 컵라면 용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고인 물에서 악취가 났다. 식탁 의자에는 옷들이 겹겹이 걸쳐 있었는데 한눈에도 철 지난 옷들이었다. 거실 겸 부엌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곳에 H가 보다 던진 책들이 널려 있었다. H는 브리태니커사전 12권과 전국철도여행 책자, 한불사전을 밟고 가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H의 무게만큼 침대 매트리스가 내려앉았다. 턱선은 사라졌다. 눈과 코가 살에 파묻혔다. 정말 내가 아는 H일까, H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아주 잠깐 밑그림처럼 H의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졌다. 나는 새끼 돼지가 단 6개월 만에 200킬로가 넘는 성돈으로 자라는 것을 쭉 보아왔다. H의 체중은 6개월 만에 고작 40킬로가 불었을 뿐이었다. 돼지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요란 떨 만한 일도 아니었다.
개수대 속에서 냄비를 꺼내 닦고 라면을 끓였다. H는 라면 세 개를 혼자 다 먹었다. 살이 겹친 곳에서 땀이 흘렀다. H가 뒤에서 나를 안았다. 문득 사랑을 나누던 돼지 한 쌍이 떠올랐다. 사람 손을 많이 탄 돼지들은 사랑도 쉽게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암퇘지들은 인공수정으로 새끼를 가졌다. H는 우리집 돼지들처럼 사랑도 제대로 못했다.
아침해가 눈을 쏘아대는 바람에 눈을 떴다. 잠을 자는 것도 피곤한지 H는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었다. 자장면 곱배기를 두 그릇이나 먹은 H는 다시 잠들었다. H 옆에 누워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방 안의 공기는 혼탁했고 자꾸 잠이 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밖은 어두컴컴했다. 브리태니커 12권을 밟고 한불사전은 건너뛰었다. 영어사전을 밟다가 발목이 삐끗했다. 책 속에서 찾아낸 수많은 단어들은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H는 아무 말도 안했다. 안경잡이의 말처럼 사적인 일에는 쉽게 끼여들 수 없다. H가 고민하는 건 자신의 재능이고 재능이란 사적인 부분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부분이었다. 어머니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H의 무단결근에도 회사에서는 전화 한통 없었다. 최소한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안부전화는 해야 하는 거 아냐? H는 화가 났다. 노여움이 가시자 창피했다. H는 창피하다는 그 말을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그 말을 내뱉게 될까봐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곯아떨어진 H는 내가 옷을 입고 머리를 빗고 나가는 것도 알지 못했다. H의 집에서 돌아온 날 회전목마에 접속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는 어느 나라에 있냐는 질문을 띄웠다. 다음날 H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리들러의 복수란 걸로 캘리포니아에 있습니다. 하지만 무서움만큼 주관적인 게 있을까요.’
그뒤로 나는 회전목마에서 H와 만났다.
엄마는 다른 날과는 다른 돼지들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직 해가 뜰 시간이 아니었는데 창밖은 붉은 기운이 가득했다. 엄마는 맨발로 뛰쳐나갔다. 엄마에게 다리를 밟힌 아버지가 깨었다. 울타리 너머 돈사가 있는 언덕을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불길에 휩싸인 돈사의 유리창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돈사로 뛰면서 컨테이너에서 자고 있던 인부들을 깨웠다. 인부들은 바지도 채 꿰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엄마는 공이 구르듯 돈사까지 달음박질쳤다. 입을 벌린 채 불타는 돈사를 보고 있던 아버지의 눈앞에서 엄마는 허리까지 올라오는 울타리를 높이뛰기 선수처럼 단번에 뛰어넘었다.
불이 번진 돈사의 천장 한쪽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돼지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델 듯한 열기가 앞을 막았다. 엄마는 수통에 담겨 있던 물을 온몸에 끼얹었다. 그리고 돈사로 뛰어들었다. 입구 쪽은 아직 불이 붙기 전이었다. 돈방의 문을 열었다. 돼지들이 앞다퉈 돈방을 뛰쳐나왔다. 뒤쫓아온 그들은 다른 쪽 돈방의 문을 열었다. 검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 속에서 엄마는 불이 붙은 돼지들이 튀어오르며 구르는 것을 보았다. 털 그슬리는 냄새와 고기 탄내가 진동했다. 돼지들은 금방 붉은 불덩이가 되어 도깨비춤을 추었다. 고기 익는 냄새가 얼마나 멀리 갔는지 아주 먼 곳의 개들까지 짖어댔다. 돈사 안쪽에는 새끼 돼지들과 임신돈, 종돈들이 있었다. 엄마는 불 속으로 한 손을 뻗었다. 쇠철책에 손이 닿자 손바닥이 짝 눌어붙었다. 문의 고리를 겨우겨우 찾아 열었다. 꼬리와 몸 한쪽에 불이 붙은 돼지들이 엄마를 밀치고 뛰쳐나갔다. 인부들이 엄마를 끌어냈다. 그들은 수도 호스를 끌어와 불붙은 돼지에게 물을 뿌렸다. 한쪽이 검게 그슬린 돼지들이 마당 곳곳에 나뒹굴었다.
돈사는 태울 것이 없을 때까지 다 탔다. 소방차는 뒤늦게 도착했다. 물이 가닿자 벌겋게 달아오른 돈사의 철골들이 쉭, 김이 나면서 식었다. 어찌나 불이 셌는지 쇠스랑과 삽까지 녹아내렸다며 인부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소방차가 뿌려댄 물로 돈사에서는 반나절 동안 잿물이 흘러내렸다. 머리카락이 그슬리고 얼굴과 몸에 그을음이 앉은 엄마는 돈사 앞에 주저앉아 밤을 새웠다.
삼십여년 전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돼지 두 마리를 몰고 이곳에 들어왔다. 인가의 불빛은 너무 멀어 담배꽁초만하게 보일 뿐이었다. 집 아래로 개간하다 만 붉은 밭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아 밭에서 날아온 붉은 흙이 마루에 뽀얗게 쌓였다. 앞마당에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 옥수숫대들이 군집해 있었다. 엄마는 잠든 아버지의 허벅지에 다리를 올렸다. 쌔근대는 아버지의 코에 코를 바싹 갖다댔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옥수숫대가 살짝 흔들렸다. 뱀이 옥수숫대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불붙은 돼지들 때문에 풀밭의 풀이 듬성듬성 그슬렸다. 옥수수밭도 탔다. 불붙은 돼지 몇마리는 개울가에서 발견되었다. 밤새 바닥을 나뒹굴다가 죽은 돼지들이 마당과 감자밭에 널렸다. 인부 넷이 달려들어 다리를 하나씩 잡고 겨우겨우 트럭 짐칸으로 던져넣었다. 몇몇 인부들이 달아난 돼지들을 몰아 울타리에 넣고 있었다. 울타리를 없애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엄마는 엉덩이를 툴툴 털고 일어났다. 불에 덴 손바닥이 화락거렸다. 엄마의 머릿속에서 두 마리의 돼지가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엄마는 울타리로 걸어가면서 인부들에게 소리질렀다. “거봐, 힘들게 돌아다닌다고 불평들이더니, 없앴으면 어쩔 뻔했어?”
S가 텔레비전에 나왔다.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로 고립되었던 등산객들이 구조대원에 의해 구조되었다는 뉴스에서였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그러맨 줄에 그네처럼 달린 장구를 타고 S가 물이 분 개울을 건넜다. 줄이 늘어지면서 S의 엉덩이가 물줄기에 닿았다. S가 비명을 지르면서 구조대원의 팔에 매달렸다. 뉴스를 본 회사 동료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다니 S는 정말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비명을 지르며 구조대원의 팔에 매달리는 S의 모습은 그날 마감뉴스까지 몇번이나 나왔다. H의 전화는 텔레비전에 나온 S만큼 뜬금없었다. 회전목마에 접속하면 H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H는 여전히 바쁘지 않은 주말이면 놀이공원에 가서 롤러코스터로 두 바퀴 공중회전을 하기도 하고 샷드롭을 타고 12미터 상공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글이 아닌 목소리로 H와 이야기하는 건 6개월 만이었다.
H의 전화 목소리는 예전과 달랐다. 전화할 사람이 너밖에 없었다면서 H가 울먹였다. 살이 찌면서 목소리도 변했다. H는 살찐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믿기지 않겠지만 엉덩이에 뭔가 돋는 것 같아. 며칠 전부터 계속 근질근질해.” H가 공포스럽다는 듯 외쳤다. “……꼬리가 나려나봐! 믿어지니?” H는 거울로 자신의 엉덩이를 들여다보려 했지만 튀어나온 배 때문에 굴신운동이 되지 않은 지 오래였다.
한낮인데도 H는 거의 벌거벗다시피 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햇빛을 받지 않은 몸이 비계처럼 희멀겠다. 몸 곳곳이 진무른데다 붉은 종기투성이였다. 그새 체중이 더 늘어난 듯 밑그림처럼 보이던 예전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옷장에는 더이상 H에게 맞는 옷이 없었다. 놀이공원에 갔다는 건 순 거짓말이었다. H는 무거운 장롱에 깔린 사람처럼 헐떡였다. 내게 엉덩이를 보여주려 H가 팬티를 내렸다. 수치감은 남았는지 몸을 옴츠리려 했는데 젖가슴만 출렁였다.
치부에도 살집이 올랐다. 그래서 그의 발기하지 않은 성기는 더욱 왜소해 보였다. 거무죽죽한 음낭을 보는 순간 엄마가 숱한 수퇘지들에게 했듯 불을 까고 싶어졌다. H는 혼자 몸을 뒤집는 일조차 버거워했다. 매트리스가 꿈틀거리며 속의 포켓스프링들이 요란한 소리를 낸 뒤에야 내 눈 아래에 거대한 H의 엉덩이 두 쪽이 펼쳐졌다. 마치 역사의 한 장이 내 눈앞에서 열리는 듯했다. 짓무르고 종기 난 흰 엉덩이에 털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엉덩이의 갈라진 틈새에서 뭔가가 반짝 빛났다. 나는 작은 쇠붙이를 톡톡 건드렸다. 압정은 단단했다. 대체 H의 엉덩이에는 어떤 메모가 붙어 있었던 걸까, 나는 H의 엉덩이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살집에 묻힌 압정핀 위로 살짝 샌 피는 딱딱하게 말라 있었다.
H가 일어서려 사지를 버둥댔다. 매트리스 속의 포켓스프링이 요동쳤다. 나는 냅다 H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왜 이래애?” 살에 눌린 성대에서는 가늘고 쉰 목소리가 난다. 엉거주춤 선 H를 돼지 몰듯 떼밀면서 나는 소리질렀다. “피둥피둥 살이 쪘으니 이제 출하다, 출하!”
아버지는 허, 입을 조금 벌려 웃었다. 엄마는 더 기세등등해진다. 한잔 걸친 술힘 때문이다. 엄마의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던 고모가 아버지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한다. “그래도 남자 중에 우리 오빠만한 사람, 난 못 봤다!” 엄마가 아버지와 고모들을 향해 눈을 흘긴다. “떨거지들이라고 한통속이네.” 엄마의 눈이 아버지와 다섯이나 되는 키가 큰 고모들을 훑고 내 얼굴에 머문다. 엄마를 내려다보게 된 뒤부터 엄마의 어떤 말도 내게는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우리는 한통속이 되어 엄마를 몰아붙였다. 엄마는 건주정을 부린다. “난 껍데기랑 살았어요, 껍데기……” 완행기차는 역마다 정차했다. 잠이 쏟아졌지만 엄마는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정차하는 역이 너무 많아 아버지가 도망칠 기회도 많았다. 기차는 여섯 시간 후에 종착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여섯 시간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그곳도 안심되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를 데리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느 순간 자신이 데리고 가는 건 아버지의 껍데기뿐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제 놔줄 테니 당신 맘 준 데로 가슈!” 아버지도 웃고 늙은 고모들도 따라 웃는다.
돼지 멱따는 소리에 잠깐 이야기가 끊겼다. 돼지의 괴성 끝에 어쿠, 하는 사촌의 외마디소리가 따라붙었다. 양은 다라이가 요란하게 울리고 둔중한 발짝 소리가 뒷마당을 돌아 어느새 앞마당으로 건너온다. 희고 큰 물체가 창을 스쳐지난다. “엄마야!” 늙은 고모가 처녀처럼 기겁을 한다. 술이 오른 엄마는 반응이 늦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무릎을 친다. “아이고, 돼지머리……” 돼지머리가 없으면 고사도 지낼 수 없다. 새로 지은 돈사에는 돌림병도 없고 화재도 없을 것이다. 마당에 앉아 부침개를 부치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돼지를 피해 달아났다. 돼지 다리에 차인 소쿠리가 엎어지면서 다 씻어놓은 나물이 흙범벅이 되었다. 고무줄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놀라 울었다. 눈이 충혈된 돼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진득거리는 침을 질질 흘린다. 돼지 목에는 방금 사촌이 찔러넣었을 칼이 반쯤 박힌 채 꽂혀 있다. 수돗가를 사이에 두고 사촌과 돼지가 대치했다. 양은 다라이에 돼지피를 받아 순대를 만들려고 지키고 서 있던 사촌처가 그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돼지가 먼저 움직였다. 갈팡질팡 마당을 뛰어다닌다. 돼지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알아차렸다. 칼끝은 돼지비계에 박혀 있다. 고모부가 허겁지겁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돼지가 울타리 쪽으로 뛰어간다. 고모가 양단 치맛자락을 고쟁이 속에 질러넣고 돼지를 쫓아 뛴다. 돼지가 몸으로 밀치자 울타리 세 개가 우지끈 부러진다. 돼지는 울타리 안을 맴돈다. 뛸 때마다 살이 출렁거린다. 아이들이 우르르 쫓아내려갔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합세했다. 돼지는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비좁은 돈방에만 있었다. 씩씩대던 고모부가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른다. 얼굴이 벌게졌다. 사촌이 간신히 돼지 다리를 잡았는가 싶었는데 돼지 발길질에 벌러덩 뒤로 나가떨어졌다. 사람들이 배를 쥐고 웃었다. 막내고모는 아주 오래전 대학축제를 떠올렸다. 목에 리본을 맨 새끼 돼지를 잡느라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고모보다 삼년 선배인 고모부는 거기서 고모를 처음 봤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엄마의 머릿속에 전광석화처럼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래, 사람들에게 돼지를 잡게 하는 거다, 우리 돼지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거야. 농장으로 이어지는 소방도로를 만들어야지. 시에서 지원을 좀 받을 수 있을까? 농장 이름도 새로 지어야지.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길 곳곳에 팻말을 달아 사람들이 길을 헤매지 않게 해야 해. 주차장도 필요하겠는데. 옥수수밭을 뒤집어야지. 그렇게 웃고 뛰고 나면 시장들 할 거야. 한쪽에 바비큐틀을 달아둬야지. 엄마는 플라스틱 슬리퍼를 꿰어신고 울타리 쪽으로 내달린다. 슬리퍼가 벗겨져 달아난다. 술기운 탓인지 생각과는 자꾸 다른 방향으로 발이 나간다. 엄마는 짧은 두 팔을 내저으면서 소리친다. “돼지 잡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