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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6·15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역사적 실험으로서의 6·15시대
유재건 柳在建
부산대 사학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 「맑스와 월러스틴」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미국 패권의 위기와 세계사적 전환」 등이 있음. jkyoo@pusan.ac.kr
1. 머리말
2000년 6·15공동선언에는 으레 ‘역사적’ ‘획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것이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분단 후 최초로 남북 정상이 만나 화해와 교류를 통한 평화적 통일에 합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만하고 여기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난 지금 그 선언을 ‘6·15시대’라는 시대구분의 한 기점으로 삼는 것은 합당한 것일까? 물론 6·15선언은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알게 모르게 한반도의 안전지대화에 일조하면서 양측 사회에 어느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그 변화가 양측 사회 전반의 일대 쇄신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고 게다가 북핵문제 등 평화정착에도 많은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다.
이런 판에 한반도를 단위로 한 ‘6·15시대’론은 통일운동가들이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다짐의 표현은 될지언정 적어도 우리 사회과학계에서 큰 호응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대체로 자기가 살고 있는 당대를 규정하는 일은 오늘의 역사적 좌표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과제를 자각하는 방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6·15시대’론은‘분단시대’론과 마찬가지로 남북을 아우르는 하나의 시대를 설정함으로써 남북관계 및 통일에 결정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초에 한겨레신문에서 개최한‘선진대안포럼’대토론회는 오늘의 한국사회의 과제를 모색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첫 모임이었지만 이를 게재한 신문지면 4면 전체를 보더라도 한반도 단위의 사고는 물론이고 남북관계가 아예 시야에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1 그렇다고 여기에 참여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분단과 통일의 문제, 한반도 평화의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한국사회의 핵심과제를 다룰 때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일단 사회과학적 시야에서 배제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선 남과 북이라는 너무 이질적인 두 사회의 동시대성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시대든 6·15시대든 그것이 한반도 단위의 의미있는 시대구분인 한, 이질적인 두 사회를 포괄하는 공통의 틀, 혹은 두 사회의 주민이 동일한 체제에 살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깔고 있다. 우리의 진보담론이 분단과 통일의 중요성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사회과학적 시야에서 이 문제를 제쳐놓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어 보이는 이런 전제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한가지는 통일의 문제가 진보적 사회과학이 지향하는 세계사적 보편성과 민중성의 차원에서 본질적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이다. 권혁범(權赫範)이 잘 지적했듯이, 남북이 하나의 단위가 된다는 의미의 통일은 그 자체 한반도 주민의 보편적 목표나 기본적 전제가 되기에는 너무 편협하며 인류가 근대사의 우여곡절을 통해서 합의한 기본적 가치의 하위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2 특히 민족주의가 철 지난 조류가 된 지구화시대에 통일이라는 민족주의적 목표에 과도한 시대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전지구적 자본주의시대에 한반도 전체에 대한 자본주의적 시장논리의 확대를 근간으로 한 통일과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데 대한 비판도 있다. 그래서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선 현재의 통일과정 자체가 신자유주의 물결에 대항하는 민중적 대응전략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견해도 종종 나오는 실정이다.
설사 위의 보편적 차원과 민중적 차원의 획기성은 없을지라도 만약 6·15선언으로 통일이 되었다면 ‘통일시대’라는 규정은 큰 의의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6·15선언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고 남북한간의 심각한 격차로 인해 통일의 시도가 평화를 해칠 수도 있는 터에, 6·15시대라는 시대인식과 미래의 과제 설정은 통일지상주의에 조급증까지 가세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이 글은 이같은 의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분단시대’와 ‘6·15시대’라는 시대인식이 실천적으로나 사회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지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2.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냉전
한반도의 분단은 흔히 동서냉전의 산물이라고 이야기된다. 분단에 의한 남북한 대립체제가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양대 진영의 적대를 고스란히 구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냉전구조의 성격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때 탈냉전으로 전쟁의 시대가 가고 평화의 시대가 오리라는 기대가 있긴 했지만 이제 탈냉전시대의 세계가 불안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두루 실감되고 있는 편이다. 오히려 냉전시대가 이데올로기적 적대와 군사적 대치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였다는 인식이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냉전시대의 양극화된 국제정치구조는 개별국가에 강제된 만큼이나 기본적으로 불안한 안정을 보장한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냉전(Cold War)의 시대는 사실상 홉스봄(E. Hobsbawm)의 말대로 ‘냉평화’(Cold Peace)의 시대였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 불안정과 동요가 만연하고 국지전이 빈번한 것은 냉전기에 안정적으로 고착된 모종의 지배체제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정황은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결이 냉전구조의 핵심적 갈등이라는 시각 자체를 수정할 필요를 제기한다. 냉전에서 미소의 대결을 핵심으로 보는 인식에는 미국과 소련의 힘이 비슷하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두 국가간의 힘의 격차는 실제로 상당히 컸으며 바로 이 격차로 인해 냉전은 미소간의 암묵적 묵계와 봉쇄가 하나가 된 체제였다. 냉전구도는 미국이 소련과의 공존을 전제로 세계적 패권을 수립하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전략적 장치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은 2차대전 후 경제회복이 절실했던 소련에도 이익이 되는 것으로서 미국은 소련으로 하여금 공산진영의 패권을 유지하도록 허용했다. 미국의 공산권 봉쇄정책 자체가 미국 패권주의 기획의 일부인 한 그것은 사실상 적국과 동맹국 모두에 대한 봉쇄, 즉 이중봉쇄였다. 이런 의미에서 냉전의 적대적인 지정학적 긴장은 다중적인 효과를 가지는 전략적 장치로 기능하기에 맞춤이었다.3
첫째, 세계시장의 확대에 별 도움이 안되는 공산권의 봉쇄를 통해 미국은 부담을 줄이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팽창을 주도했고 동맹국들을 하위에 둔 패권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둘째, 이데올로기적으로 냉전은 동서 양진영 내부의 통제를 통해 기존 세계질서의 위협세력을 억압하고 세계 전역에서 안보국가체제를 이루게 하였다. 이로써 냉전은 범세계적으로 모든 국가에 의한 국내 억압체제를 정당화시켰다. 셋째, 냉전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제3세계의 저항을 봉쇄하는 것, 다시 말해 남북갈등의 통제에 기여했다. 이것이 미국으로서는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차원이었고 50년대 이래 제3세계에서 탈식민지화와 발전주의 국가 형성을 그 방책으로 삼았다. 마지막으로, 냉전은 미국 국내의 지배력 강화를 가져왔고 자본/노동의 투쟁과 인종갈등을 통제함으로써 자본축적의 가속화를 도왔다. 월러스틴은 그런 갈등으로 점철된 1930년대 미국을 볼 때 국내의 냉전체제가 없었다면, 다시 말해 “만약 미국이 193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분열된 채로 있었다면 패권국가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4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요컨대 냉전은 동서적대를 통한 각 진영 내부의 통제와 더불어 북에 의한 남의 통제, 그리고 미국의 체제안정이라는 의미를 두루 갖추고 있었고 결국 이런 의미에서 미국 패권하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공고히하는 방식이었다. 만약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냉전의 핵심이라면 미국은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패권의 자본주의 세계체제 공고화가 냉전의 본질이라면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패배했다는 역설적인 주장도 성립한다. “왜냐하면 냉전은 이겨야 할 게임이 아니라 계속 추어야 할 미뉴에트 춤”5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계속 덩달아 추어야 할 춤을 상대방이 아프다고 주저앉아 진짜 게임으로 바꾸어버렸으니 이것이야말로 미국 패권에 결정타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분단은 이런 의미의 동서냉전의 일부였고 한국전쟁은 동아시아지역뿐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체제를 굳히는 데 큰 역할을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바로 이 한국전쟁과 그 교착상태로 굳어진 한반도 분단체제는 앞의 네 가지 면모를 한층 강화하면서 미국 패권하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안정화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첫째로 한국전쟁은 세계경제의 팽창기간중 엄청난 군사비지출로 팽창을 직접 자극했고 일본경제의 비약적 성장을 가능케 했다. 둘째로 한국전쟁은 미일방위조약, 일본의 자위대 창설, 유럽 냉전의 공고화에 두루 영향을 미치면서 범세계적으로 억압적인 안보국가 구축에 기여했다. 셋째로 한국전쟁은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제3세계의 저항의 측면도 갖고 있었으나 장기간의 휴전체제는 한반도를 기득권세력의 억압이 용이한 준전시상태로 상존시켰다. 한반도에서도 미국의 본질적 정책은 물론 남북한 모두를 봉쇄하는 이중봉쇄, 즉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넷째로 요즘 이라크와 북한의 ‘체제전환’(regime change)이 자주 거론되지만, 다른 의미에서 미국의 ‘체제전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그래서 커밍스는 한국전쟁이 세계사적으로 베트남전쟁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자 미국사의 한 분수령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6 미국사에서 유례없는 상황이 전개되어, 국방예산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군산복합체에 막대한 재원이 투여되었다. 한국전쟁은 미국 패권주의의 성립과 유지에 불가결한 미국내 체제를 완성해주었던 것이다.
냉전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로 본다면 한반도는 이미 승부가 끝난 싸움의 끝자락에 북한 공산주의의 시대착오 때문에 남들이 다 버린 냉전의 유물을 껴안고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유럽이 이미 해결한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한반도의 후진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냉전의 본질이 미국 패권하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공고화에 있다면, 한반도 분단체제는 냉전의 낡은 유물이 아니라 그 본질적 면모를 현재적으로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이제 후진성의 징표가 아니라 오히려 유럽 냉전의 해체로 그 존재이유가 더 뚜렷해진 것일 수도 있다. 한소·한중 수교,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으로 냉전이 해소되는 듯 보이던 때 북미·북일의 냉전 대립이 해소되지 못한 것 또한 미국의 세계전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하에 백낙청(白樂晴)은 한반도의 분단현실이 세계 어느 곳에도 유례가 없는 특이한 구조를 지닌 것은 바로 한반도 분단체제가 동서대립+제3세계통제라는 본질적 면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통일과정에서 유례없는 독특한 방식의 창안이 요구된다고 주장하고 있다.7
냉전의 본질을 이렇게 이해할 경우 오늘날 미국 부시정부의 매파집단이 현재의 세계적 혼란기를 2차대전 후 냉전시대 초반기와 견주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의 패권주의 기획과 동맹국 통제, 그리고 국내 억압체제의 유지 시도는 냉전전략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미국의 매파집단은 공산권 봉쇄 대신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미국의 세계적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라크전쟁도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증명함으로써 성격이 다른 다양한 상대, 즉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는 유럽과 동아시아, 핵 보유국 및 잠재적 보유국, 그리고 이스라엘과 대치하고 있는 중동국가들에 대한 협박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또한 패권주의 기획은 세계를 항구적인 잠재적 전시상태로 유지해 안보국가체제를 확고히하고 미국 국내 억압체제를 강화하는 전략을 포함한다. 9·11 이후 애국자법을 비롯한 반민주적인 제도가 활개를 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심지어 테러리스트의 혐의가 있다면 온갖 고문을 해도 정당하다는 논리처럼 안보국가가 전통적 자유주의 가치까지 훼손시킬 수 있게 된다. 매파집단이 테러와의 전쟁에 유혹을 느낄 만한 결정적인 이유는 또 있다. 앞의 비유를 원용하면, 테러와의 전쟁은 아예 궁극적 승리의 개념이 있을 수 없는 게임이기에 아프간이든 이라크든 북한이든 아무나 골라잡아 계속 춤을 출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미국이 처한 현재의 세계사적 정황은 냉전 초반기와 극적으로 대조적인데, 군사력을 제외한다면 경제적·이데올로기적 차원 그 어느 것을 보더라도 쇠락의 조짐이 뚜렷하다. 미국의 세계패권이 오늘날 서서히 쇠락하는 가운데 유럽과 동아시아가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고, 군국주의가 미국경제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전쟁 당시에 확립된 바로 그 체제를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이 미국 패권의 쇠퇴를 재촉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8
이렇게 보면 분단된 한반도는 세계 차원의 패권적 지배체제의 중요한 지역현장이라 할 수 있다. 남과 북이 동일한 지배체제의 일부라는 분단체제론이—남북 주민들이 아주 다른 사회 속에 살면서도 동일한 체제에 살고 있다는 논리가 일상 차원에서 납득되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사회과학계에서도 호응을 못 받고 있긴 하지만—전혀 무리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한반도란 국지적 지역에서 치열한 전쟁의 교착상태로 굳어진 남북한 억압체제의 해체 혹은 전복이고 그것이 세계 전체의 억압적인 구조와 연관이 깊은 한에선 현 세계체제 일각의 타파인 셈이다. 통일은 1945년으로의 복귀, 혹은 당시 미완의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과제의 실현이 아니다. 그 과제는 또한 남한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민족해방이 요구된다는 반미자주화의 과제도 아니다. 북한에서도 체제내 민중에 대한 억압적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며 심지어 미국의 뻬레스뜨로이까라 할 또 한번의‘체제전환’에도 일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 일이다. 분단체제의 극복으로 이해된 통일은 세계적 차원의 억압체제에 대한 일대 타격이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지배세력과의 싸움의 일환일 수 있는 것이다.
3.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시아의 지정학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 세계적 차원의 억압체제에 대한 일대 타격이라면 그것은 ‘민중적’이고 ‘세계사적’인 작업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원론적으론 거창해도 실제적인 구체화 과정은 한반도 전체에 자본주의적 시장논리가 확대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고 적절한 수준의 민족공조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가 동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15공동선언 뒤에 일부 진보진영이 보인 반응도 바로 이 점에 대한 경계였는데,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확대일 뿐이라는 것, 다른 한편 민족주의 정서를 강화해 억압적 성격의 동원체제를 가져오리라는 것이었다.9
물론 통일이 된다고 해서 한반도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벗어난다든가, 또 아무리 국가연합 등 복합적 정치공동체라 하더라도 국민(민족)국가의 시대에서 벗어난다든가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반도든 다른 어느 사회든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의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남는 과제는 그 안에서 어떤 길이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인지, 또 그 길이 세계체제를 한층 민주적이고 평등한 체제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 묻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세계체제에 제대로 적응하면서 그 극복에 일역을 담당하겠다는 모순적인 작업일 수밖에 없지만, 특히 한반도가 패권주의가 작동하는 핵심지역 가운데 하나라면, 또 현 세계체제가 혼란스런 위기국면에 들어가 있다면, 한반도와 그것을 둘러싼 동아시아가 저항의 지점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체의 지역단위 구상을 비판하는 관점들은 탈냉전시대라는 현 세계사 국면의 상을 잘못 그리고 있는 것 같다. 그것들은 냉전기의 분열 해소 이후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국가와 지역을 넘어 관철되고 있기 때문에 국지적 대응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위험하거나 반동적이라는 발상을 갖고 있다. 묘하게도 반신자유주의 진영과 탈민족주의 진영, 그리고 국경 없는 세계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진영이 이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를테면 송주명(宋柱明)은 “세계경제는 상호의존성의 진전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전세계적 규모로 확대되고 있으며 분할 불가능하다”10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구화로 인해 삶의 양식이나 문화양식까지도 지역을 넘어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을 분할해 정체성을 부여하는 지역주의적 대응은 지역간 경쟁을 초래해 세계체제에 적대적 분열을 야기할 뿐이라고 본다. 다른 한편 탈민족주의 시각에 선 임지현(林志弦)은 더 나아가 국민적/지역적 집단들의 정체성에 기초하여 저항의 거점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반동적이라는 입장을 취한다.11 따라서 송주명은 “그보다 민중적 관점에 입각한 근본적인 국제질서 재편의 상을 꾸준히 모색”해 민중의 이익에 맞게 개입하는 것이 더 진보적이라고 제안하며, 임지현은 대안으로 “개별 주체들이 고유성을 견지하면서 소통적 사회성을 구성해나가는‘다중’(multitude), 자본주의의 식민화에 대항한 소통적 사회성, 전지구적 시민권, 탈근대적 공화주의, 자율주의 운동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고 진단한다.12 이렇게 되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대안적 발전모델의 구상이나 모색이 있을 수 없고, 삶의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권력관계에 대한 분석이나 모순을 해결하는 대안적 체제구상을 내놓기가 어렵다.
이같은 발상들에는 현재의 세계가 유일 초강대국의 일극체제거나 국가/지역이 무의미해진‘제국’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경제가 분열을 통해 통합적으로 작동한다고 보는 세계체제론의 통찰이 현실적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은 하나로 통합된 세계경제가 아니라”는 것,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독자적인 동력을 지니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지정학적 분열에 시달리게 될”것이라는 주장이다.13 오늘의 세계는 경제적으로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가 아니라 주요 자본축적 지역이 미국/유럽/동아시아로 분열된 체제이며, 빈곤한 남의 지역과 부유한 북의 지역이 분열된 체제이며, 또 범세계적으로 존재하는 두 집단·운동·계층으로 분열된 체제라는 것이다. 국가/지역에 기반을 둔 두 가지 분열과 범세계적인 계층분열이 결합해 작동하는 세계경제는 어쩔 수 없이 복잡하지만, 전지구·계급·지역·국가의 차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체제 변화의 동력과 주체를 단순화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된다.
세계의 지정학적 분열에 대한 인식은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의 문제를 동(북)아시아차원에서 사고할 필요를 제기한다. 세계사의 전환국면에서 가장 활력적인 지역에 속하는 동아시아가 일본을 필두로 세계체제의 주요한 자본축적 장소로 부상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주의가 동아시아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지, 이 과정에서 다른 패권주의가 대두하거나 민족주의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는지, 거기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점검해야 한다.
오늘의 세계상황은 미국 패권의 쇠락이 다른 패권국가의 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미국 패권의 안정기에 고착된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지배구조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는 싯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때맞춰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구축과 같은 지역단위의 창조적 대응을 모색할 필요가 자주 제기되고 있다. 여기엔 새로운 지역협력의 모델이 없이는 동북아에서 냉전체제보다도 더욱 위험한 상황이 출현할 수 있고 동서냉전 해체 이후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혼란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역내 국가들의 상호의존과 평화공존에 대한 필요성이 한층 커져 협력과 통합의 구상이 계속 주요 의제로 오르고 있다면, 백영서(白永瑞)의 말대로 미국이 패권을 장악했던 동아시아질서의 균열은 불안정하긴 해도 이미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낳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동아시아질서의 미래가 당분간 미국의 일극적 주도권과 동아시아의 다극적 지역통합 노력이 타협·경쟁하는 과정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14
다극적 지역통합 노력은 한편으로 시장통합을 진전시키면서, 다른 한편 환경파괴와 사회양극화를 비롯한 숱한 난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세계체제의 진보적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시대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채 미국의 패권주의가 개입되어 있는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현실을 볼 때 그러한 지역주의의 전망이 밝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유럽이 미국 패권에 대해 어느정도 자율성을 모색하면서 미국의 지구단위 전략의 종속적 위치에서 벗어날 공동체 구조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점에서는 유럽연합에 대한 동아시아지역의 후진성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다른 한편 아직 유동적인 상태의 동아시아가 모종의 대안적 공동체를 제대로 형성할 때 갖게 될 세계체제 변화의 잠재력은 상상외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동아시아를 지금까지의 개발주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대안적 패러다임이 가능할 수도 있는 거대한 실험장으로 전망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백낙청은 위기국면에 들어간 세계체제에 대한 동아시아의 창조적 대응을 모색하면서 동아시아가 가장 활발한 자본축적 지역인데다 지역 내에 합의된 모델이 없어 유동적이며, 종전의 개발패러다임으로는 생태계 재앙의 위험이 크고 문명의 유산까지 풍부하다는 점에서 세계의 위기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의 모색에 드물게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진단한다.15 또 월러스틴은 동북아 3국이 반목을 극복하고 모종의 공동체를 구성할 경우, 앞으로 수십년간에 걸쳐 현존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새로운 다른 체제로 이행할 때 동아시아 공동체가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고 그것이 주로 동아시아인들에 달렸다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한다.16
그런데 동아시아 지역협력 모델은 우선 미국 패권주의를 약화시킴으로써 동아시아가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의 종속적 부분이 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 새로운 역내 패권주의가 대두해 긴장을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런 새로운 질서 형성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6·15공동선언으로 인한 한반도의 화해가 이미 동북아 지역협력의 시작이라는 와다 하루끼(和田春樹)의 말은 한반도 평화구축과 변혁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17 불안한 긴장의 한반도가 동북아지역의 불안정 요인인데, 한반도에서 화해의 기운이 커지면서 단절된 동북아를 연결시키는 구상이 현실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있을 수 있는 중국과 미일동맹 간의 역내 패권경쟁이 어떻게 귀결될지 역시 한반도 문제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단체제를 어떻게 허물고 한반도에 어떤 체제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문제가 동아시아의 반패권주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관건이며,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식, 그간 해온 개발주의 패러다임이 지속되는 방식일 경우 중일 민족주의를 강화해 군사력 경쟁을 야기하고 갈등을 유발할 것이다. 한반도가 더 나은 사회로 변혁되는 통일과정에서 가능해질 반패권주의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원만한 중재를 위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한반도의 변혁이 순조로울 경우 동북아의 평화와 통합에 기여하는 것뿐 아니라 그 자체가 세계체제 전체의 행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이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별 국민국가의 완성에 대한 욕망을 확대시킨 것이 되고 그 연장선에서 지역통합이 이루어진다면 그 폐해는 자못 심각할 것이다. 이 점에서 분단체제를 허물어가는 6·15시대의 과정이 어떤 성격이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어쩌면 통일보다 통일과정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자각이야말로 ‘6·15시대’개념의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6·15시대의 독특성
‘6·15시대’라는 규정은 앞으로 한반도 통일의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느냐 하는 것이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의 장래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자각의 표현이라 하겠다. 통일을 조급하게 내세우기보다 평화와 상호교류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는 가운데 각기 내부개혁에 힘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단순히 분단 이전 상태의 회복이나 미완의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과제의 실현이 아니라, 한편으로 반패권주의의 세계사적 과업인 동시에 다른 한편 양체제 내의 문제점을 해결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6·15선언이 함축하는, 한반도의 통일이 베트남식 무력통일도, 독일식 흡수통일도 아닌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어야 한다는 합의는 그 자체가 유례없는 역사적 실험을 예고한 셈이고 그렇다면 통일이 일회적 사건이라기보다 평화와 화해, 교류과정의 연장선상에 있으리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중심과제가 평화냐 통일이냐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식의 논의는 이 시대의 독특성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는 것이 된다.
가령 작년 9월 ‘민중의 소리’주최 토론회에서 발제자 민경우는 6·15시대의 중심문제를 평화/화해세력과 통일세력 사이의 각축으로 전망하고 통일세력의 헤게모니를 강조하는 논리를 제시했는데, 그런 전망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는 6·15시대의 각축지점이 북미협상을 보는 태도, 반미자주화투쟁에 대한 태도, 민간교류의 성격 등에 있으리라 전망하면서 가령 “민간교류는 평화공존,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통로인가 아니면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인가”하는 식의양자택일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18 이같은 양자택일의 발상은 통일을 교류협력과 체제혁신을 통해 남북을 아우른 한반도 지배체제를 해체시켜가는 과정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에 작년 10월 참여사회연구소 토론회에서 최장집(崔章集)은 평화가 통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는, 양자를 분리시킬 경우엔 누구라도 동의할 주장에 근거해 일체의 통일주장을 변화된 현실에 맞지 않는 민족주의라고 비판한 바 있다.19 평화와 통일을 분리시키는 관점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 주장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통일을 1945년으로의 복귀, 혹은 1948년 단정체제에 대한 안티테제로 인식하면서 분단시대론을 “통일이라는 역사적 복원의 관점”으로 단정하는 데 있다.
결국 분단시대의 억압성을 세계자본주의체제 안의 지역 지배체제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것인데, 잘 알려진 그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위기’의 문제제기는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진단한 면이 있는 한편 남한 민주주의의 현상황을 이러한 지배체제가 무너져가는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분단시대’를 고려하지 않고 서구의 이론적 틀에 근거한 설명으로는 남한의 민주화의 성취와 한계에 대해서도 균형잡힌 평가를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실질적 민주화와 정당체제의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그의 입론 자체가 나름대로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럽의 정당체제 및 사민주의 모델과 비교해 정당체제의 저발전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는 정형화된 틀로는 복합적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냉전시대 한반도의 지배체제는 준전시상태하에서 견고할 수밖에 없었고 일각이나마 그것을 뚫은 남한 민주화의 현상황을 복합적으로 판단해보면 그보다는 좀더 높은 평가가 가능하다. 정당체제가 잘 발전되어 있다고 하는 서구에서 사회주의정당과 보수주의정당 간의 정권교체는 상시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교체가 사회 지배체제의 변화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 것과 달리, 남한의 현실에서는 보수 중도 정당간의 정권교체만으로도 강고했던 지배체제의 균열에 따르는 사회적 파장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한 치열한 갈등과 분열이 정당체제로 수용되지 못하는 현실은 그것대로 비판하더라도 이런 독특한 점을 함께 감안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한국정치를 후진단계에서 서구의 정상단계로 들어서는 초입단계로만 보기 어려운 것은 한국정치가 진보정당 및 정당체제 자체의 저발전 같은 후진적 면모가 있으면서도 민중적 활력을 담아내는 선진적인 면도 상당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유럽과 달리 한반도의 냉전이 아직 청산되지 못한 것이나 동아시아지역이 유럽에 비해 아직 자율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 것을 오직 후진성으로만 치부해서는 현실에서 주어진 독특한 창조적 가능성을 간과하기 쉽다고 했는데, 이제 남한사회를 볼 때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한 창조적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간 분단시대에 익숙했던 낡은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대안적인 발전모델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남북화해와 교류가 진전될수록 분단체제하에서 고착된 패러다임의 한계와 폐해가 더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6·15시대에는 그 구상을 남북을 포괄한 한반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남한의 여러 정치·사회·경제적 과제를 한반도 차원의 변화와 연결시켜 고려할 때 한층 창의적이면서 현실적인 개혁의 전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한에서 이루어지는 개혁의 파장은 남북한을 넘어서 동아시아와 세계에까지 미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어느 모로 보나 6·15시대는 유동적인 변화와 동요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 분단시대에 적응해 유지되어온 많은 관행과 제도 들이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고 이를 둘러싼 갈등과 동요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또 앞으로 남북간 실질적인 교류가 진전되어 양자관계가 긴밀해질수록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분단시대에 살고 있다는 의식이 더 커지고 그에 따라 분단사회가 갖는 불안정성에 대한 실감도 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어느 싯점에 대중적 차원에서 통일이 당면과제로 제시되는 것도 충분히 전망해볼 수 있다. 6·15시대는 그때까지 개혁과정을 통일의 과정으로 삼는 유례없는 실험장이라 할 수 있으니, 점진적인 평화적 통일과 당면한 사회개혁 과제들을 결합하는 의제통합 노력이 절실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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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및 북한에 관한 언급으로는 박명림이 한국 진보담론의 위기상황을 규정하는 세 가지 중의 하나로“한국 진보담론의 재구성은 민족문제와 직결되어 있는데, 통일문제 및 북한의 현실에 대한 곤혹스러움이 있다. 북한의 체제이데올로기는 현재 총체적인 파탄을 맞았다”고 지적하는 한 대목이 있다. 『한겨레』 2006년 1월 3일.↩
- 권혁범 「통일에서 탈분단으로」, 『당대비평』 2000년 가을호, 159면.↩
- I. Wallerstein, After Liberalism, The New Press 1995, 180, 183면; 브루스 커밍스 「70년간의 위기와 오늘의 세계정치」, 『창작과비평』 1995년 봄호, 69〜81면; 김정배 『미국과 냉전의 기원: 공존과 지배의 전략』, 혜안 2001. 저자는 여기서 미국이 일차적으로 겨냥한 대상이 소련이 아니라 서유럽과 일본이었다고 주장한다.↩
- I. Wallerstein, 같은 책 183면.↩
- 같은 책 191면.↩
- B. 커밍스, 같은 글 80면; Chalmers Johnson, The Sorrows of Empire: Militarism, Secrecy and the End of the American Republic, Metropolitan Book 2004(『제국의 슬픔: 군국주의, 비밀주의, 그리고 공화국의 종말』, 안병진 옮김, 삼우반 2004), 83~85면.↩
- 백낙청은 월러스틴이 한반도 분단의 독특한 성격, 동서대립+제3세계통제의 복합적 면모를 간과하고 독일 분단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비판한다.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93, 179~80면.↩
- 미국 패권의 쇠락에 대해서는 유재건 「미국 패권의 위기와 세계사적 전환」, 『창작과비평』 2005년 봄호, 124~33면 참조.↩
- 이 두가지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는 유재건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창작과비평』 2002년 여름호 참조.↩
- 송주명 「탈냉전기 동아시아 태평양의 안보·경제체제와 한반도」, 『역사비평』 2000년 겨울호, 72면(강조는 인용자).↩
- 임지현 「다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창작과비평』 2002년 가을호, 185면.↩
- 송주명, 같은 글 73면; 임지현, 같은 글 201면.↩
- I. Wallerstein, The Decline of American Power: The U.S. in a Chaotic World, The New Press 2003(『미국 패권의 몰락』, 한기욱·정범진 옮김, 창비 2004), 376, 368면. (번역서에서는 ‘anintegrated’를 “통합된”으로 번역했으나 ‘하나로 통합된’으로 인용자가 고쳤음.↩
- 백영서 「제국을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로」, 백영서 외 『동아시아의 지역질서』, 창비 2005, 25~26면.↩
- 백낙청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발전전략을 위해」, 백낙청 외 『21세기의 한반도 구상』, 창비 2004, 24~25면.↩
- I. Wallerstein, “East Asia and the World: The Decades Ahead” Comment No. 157(2005년 3월 15일), Fernand Braudel Center, http://fbc.binghamton.edu/comment.htm.↩
- 와다 하루끼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일조각 2004, 130면.↩
- 민경우 「6·15선언과 조국통일의 경로」, 민중의 소리 토론회 발제문, 2005년 9월.↩
- 최장집 「해방 60년에 대한 하나의 해석: 민주주의자의 퍼스펙티브에서」, 참여사회연구소 ‘해방 60주년 기념 심포지엄’, 2005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