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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위험한 선택의 기회비용
김형아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 일조각 2005
박명규 朴明圭
서울대 교수, 사회학 parkmk@snu.ac.kr
박정희(朴正熙)는 전생애를 통해 여러번 위험한 선택을 감행했다. 교사직을 버리고 일제의 장교로 변신하고, 해방공간에서 좌익에 가담했다가 곧 반공군인으로 전향했으며,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파병을 추진하고 미국의 반대를 피해 비밀리에 핵무기개발을 시도하는 등 그의 일생은 과감하면서도 위험한 선택들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생활방식과 체제원리는 상당부분 박정희가 추구했던 그 위험한 선택의 결과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는 한국의 압축적이고 비틀어진 근대를 표상하는 상징이다. 박정희시대를 특징짓던 정치적 독재는 민주화와 더불어 많이 약화되었지만 경제씨스템과 발전지향적 의식구조는 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여전히 강력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박정희를 독재자로만 기억하는 것은 그를 경제발전의 영웅으로 숭앙하는 것만큼이나 불충분한 인식이다. 부르주아사회의 도래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맑스가 부르주아지의 역사적 역할과 성취를 누구보다 명료하게 인정하는 연구자적 자세를 견지했던 것처럼 박정희체제의 공과를 총체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호주국립대 교수 김형아의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Korea’s Development Under Park Chung Hee: Rapid Industrialization, 1961—79, 신명주 옮김)은 한국이 절대빈곤의 상태에서 벗어나 고도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박정희가 수행한 역할을 설명하려는 연구서이다. 저자는 특히 박정희 후반기의 유신과 중화학공업화를 70년대 위기상황에 대응하려는 “양날의 선택”이었다고 파악하는데, ‘양날’이라는 표현 속에 박정희체제의 이중적 유산, 고도성장과 위기의 심화를 함께 파악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 책은 몇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담고 있다. 첫째로 저자는 한국의 성장을 시장경제의 효율성이나 세계체제의 기회구조, 식민지 유산이나 미국의 원조 같은 구조적 요인들보다 정치지도자들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정책적 선택의 결과로 파악한다. 저자는 박정희와 함께 상공부 엘리뜨에 주목하는데, 이들은 국가주의적 헌신성과 ‘엔지니어링 어프로치’에 능한 전문관료들로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신뢰가 컸던 경제기획원 관료들과는 달랐다고 본다. 전 청와대 수석 오원철(吳源哲)의 비망록을 비롯하여 방대한 관련인사들의 인터뷰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저자는 국가나 정부라는 포괄적 수준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공부와 경제기획원의 차이를 드러내고, 한국형 개발모델, 다시 말해 관리되고 통제되는 개방수출경제체제가 어떻게 입안되고 운영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공부적인 관점과 경제기획원적 시각이 구별될 수 있고 종종 대립적이었다는 착상은 한국적 발전모델을 해명하는 이론적 논의에서는 물론이고 개방경제 시대의 산업정책을 둘러싼 실천적 함의에 있어서도 중요한 논점이다. 박정희 사후 유신체제의 해체과정에서 자유주의 경제체제로의 이행이 강화된 측면을 설명하는데도 이 시각은 유용한 논리를 제공해준다.
둘째로 이 책은 자주와 예속, 명분과 실리의 딜레마를 박정희의 행적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는 박정희가 미국에 대한 경제군사적 의존상태를 매우 불만스러워했고 자주국방과 경제성장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독자적인 위상을 획득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했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한국의 개발엘리뜨들이 미국의 충고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한미간의 충돌을 야기할 만큼 독립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추구했기 때문에 급속한 산업화가 가능했다고 본다. 중요한 점은 박정희가 명분적 자주보다는 미국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힘을 강화시키려는 전략적 사고를 중시했고 이를 위해 미국의 세계전략과 자신이 생각한 한국적 이해를 결합시키려 노력했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판단한다.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나 베트남 파병이 그러한 전략적 선택의 대표적 사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고려한 계산과 구조적으로 강요된 미국 헤게모니의 힘 사이의 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아 보인다.
셋째로 이 책은 박정희의 정치적 선택은 분단체제라는 당대의 조건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박정희 모델의 핵심을 유신체제와 중화학공업화에서 찾는데, 정작 이 양자를 추동한 것은 안보위기로 촉발된 자주국방론이었다고 본다. 박정희의 대북위기론이나 군비강화론을 정치적 수사나 독재의 명분 정도로 치부하지 않고 남북대결과 군사적 위협에 대한 반응과 대응이야말로 이 시기 한국정치의 전략적 사고에 가장 주요한 환경적 요소였음을 강조한다. 군산복합적 발전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 남북대결과 미군의 철군위협을 배경으로 입안·추진되었다는 사실, 핵개발을 둘러싼 박정희 말기의 위기가 유신체제 및 중화학공업화정책 전반의 모순과 직결되어 있었다는 사실 등은 분단체제의 강력한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박정희 사후 이 계획의 전면적 폐기를 담보로 이전 무기개발계획을 총괄하던 전두환의 권력이 용인되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여러가지 새롭고 토론할 가치가 있는 견해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위험한 선택이 초래한 기회비용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전략적 선택행위의 논리와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치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위대한 정치인으로서의 박정희상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유신시대를 “총체적 개혁”기로 표현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한 정치인 박정희 이미지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의 통치체제가 초래한 어두운 측면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서술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박정희식 모델이 남긴 장기적 후유증, 재벌구조나 정경유착의 문제, 반민주적 악폐와 반체제운동의 동학, 그 시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국면적 특성에 대해서는 제한된 서술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다.
저자는 이 연구를 통해 박정희시대와 ‘화해’할 수 있었다고 썼다. 그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화해의 성격이 무엇인지, 실제 그와 같은 화해를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냉전체제와 남북대립을 불변의 상수로 간주하던 시대, 자주국방이라는 방식의 군산복합적 발전전략을 본질로 했던 박정희체제의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화해나 극복을 위한 필수적 조건의 하나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박정희체제의 극복은 단순한 정치적 단죄나 이념적 평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탈군사주의적이고 평화지향적인 대안적 발전모델을 구축해나감으로써 분단체제를 뛰어넘은 새로운 삶의 질서를 한반도에 구축할 때 비로소 박정희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