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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복원된 아메리카의 오디세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불의 기억』, 따님 2005

 

 

김용호 金容豪

서울대 강사, 중남미문학 joaquin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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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우루과이협상이 타결되고 1995년 WTO가 출범한 이후,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생존과 번영의 필수조건이라고 교육받은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다. 1994년 멕시코가 제1세계가 되겠다며 미국·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고, 아메리카대륙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자유무역지대를 꿈꾸는 시대에, 코카재배 합법화와 토지제도의 개혁, 천연가스와 석유산업의 국유화 등을 주장하며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폐기하겠다고 나선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후보가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1998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Hugo Chávez)에서 불기 시작한 반(反)세계화 바람이 칠레·브라질·아르헨띠나·우루과이에 이어 볼리비아까지 강타한 것이다. 이러한 위력적인 좌파의 강풍은 올해도 여전해서, 멕시코(7월)·에꽈도르(10월)·니까라과(11월) 등의 대선에서도 좌파의 집권이 유력시된다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좌파가 지금 전 아메리카대륙을 격동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도대체 왜 보편적 진리처럼 간주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민영화의 대세에 저항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메리카대륙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실패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좌파정권들이 붕괴한 이후, 일부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이상적 도래를 찬양하는 동안에도 사실 수많은 민중들은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한 채 절대빈곤으로 고통받아야만 했다. 자유경쟁이란 사실 “돈과 능력을 가진 극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는”(2권 342면) 경기이기 때문에,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은 지배층의 거짓말과 헛된 약속에 속아 굶주림을 견뎌야만 했다.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절절한 외침을 대변하는 책이 최근 번역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H. Galeano)의 『불의 기억』(Memoria del fuego, 박병규 옮김)이다. 작가는 아메리카대륙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수많은 저술에서 아메리카대륙의 역사와 그 역사를 살았던 인물들의 고민을 토로해왔다. 그에 따르면, 아메리카는 단일한 목소리가 아닌 여러 인물들의 복합적인 목소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사적 기록이란 종결점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의 출발점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란 “언제나 승자에게만 입술을 허락하는 장밋빛 베일의 귀부인”(2권 68면)이어서, 지금까지 기술된 대부분의 공식역사들은 언제나 과거를 미화하고 기존질서를 찬양하는 지배계층의 획일적 목소리만 전달하고 있다. “유럽에 쥐어짜이고 미국에 짓밟히고 전쟁과 독재정권에 갈가리 찢긴”(3권 186면), “자신들의 땅에서 추방자처럼 살고 너무나 많은 함구령에 벙어리가 되어버린”(3권 190면) 민중들의 절규에는 입을 꼭 다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갈레아노는 아메리카 민중을 기만하는 박제된 지식들에 저항하고, “빼앗긴 아메리카의 기억을 되찾기”(1권 5면) 위해 이 책을 썼다. 현실을 변혁시키는 첫째 조건은 앎이기에, 현재의 고통스런 삶과는 다른 아메리카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들의 강탈당한 기억들을 복원시켜 과거사의 감춰진 키포인트가 무엇인지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불의 기억』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탄생’으로 명명된 1권에서는 콜럼버스의 도착(1492년) 이전 아메리카 민중의 신화와 16, 17세기 약 200년 동안 진행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정복과 식민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2권 ‘얼굴과 가면’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 동안 진행된 서구 열강들의 침탈과 독립과정의 역사를, 그리고 3권 ‘바람의 세기’에서는 20세기 이후, 주로 미국에 의해 침탈당한 역사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천 권이 넘는 방대한 참고문헌에서 찾아낸 약 1,300여개의 에피쏘드 중 작가가 주목한 것은 영웅들의 개별적 목소리가 아니라 역사에서 잊혀진 민중들의 이야기이다. 서구에 의해 ‘지옥으로 왜곡된’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집단적인 기억을 연대기 순으로 기술함으로써,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근대성이란 개념을 탄생시킨 서구의 자아도취적 역사서술에 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는데, 그중 두 가지만 지적해보자. 첫째는 문헌에 기록된 것은 모두 진실인가라는 의문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1,300개가 넘는 “이야기 하나하나는 확실한 문헌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들”(1권 6면)이라고 주장하지만, 인용한 자료가 왜곡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이는 공식역사의 허구적 일관성을 해체하는 작가의 주관적 역사관을 나타내기엔 적절할지 모르나, 학문적 입장에서 보면 야사와 같은 이야기들의 복합체에 지나지 않는 한계를 갖는다. 둘째는 기존 역사서술방식과 차별화된 글쓰기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이다. 역사와 소설·신화 등을 결합한 서술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박제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점에서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라틴아메리카 지역 이외의 독자들이 소화하기에는 매우 난해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작가의 또다른 역작 『수탈된 대지』를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이 이 책을 ‘라틴아메리카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사’로 파악하기에는 모호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럼에도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사에서 가장 가치있는 저술로 평가하는 이유는 보수층이 미화하는 과거의 향수를 극복하고, 저개발상태에서 살도록 강요당한 비극적 역사를 종결시킬 연대의 출발점이 바로 ‘빼앗긴 기억의 공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배운 교육의 수인(囚人)들이다. 그 교육에 의하면 라틴아메리카는 항상 신대륙이며, 무능하고 게으른 이들이 사는 곳이다. 4, 50년대의 포퓰리즘 정권과 70년대 좌파 민중주의 정권들이 라틴아메리카의 경제를 망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망각의 역병에 걸려 다시 좌파정권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서구의 오만과 편견이 낳은 해석이다. 보편적인 것으로 위장한 지식의 당파성이 낳은 오역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경제·사회적 불평등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지금 또다시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