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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윤영 金倫永
1971년 서울 출생. 199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루이뷔똥』 『타잔』이 있음. yoon2828@paran.com
그린 핑거
우리집 정원에는 뭔가가 부족해 보였다.
토론토에서 이 정도로 잘 가꾼 정원은 드물다고들 하지만, 또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원더풀 가든이라며 감탄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뭔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꽃이나 나무가 모자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은 솎아내야 할 형편이었다. 전에 살던 부부가 심어놓고 간 늠름한 호두나무, 개암나무, 서향나무, 벚나무 등은 무럭무럭 자라나 여름이면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고, 내가 이사와 심은 라일락이며 스노우드롭 등 온갖 꽃나무나 구근식물도 다 잘 자라주었다. 현관 계단 옆 쎄이지나 로즈마리, 라벤더, 타임 등 허브들은 유독 진한 향기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그저 바닥에 대충 꽃씨를 뿌리기만 한 블루데이지나 백일홍 등도 너무 잘 피어나 빈 땅이 안 보일 정도였다. 남편은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며 내게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곤 했다.
남편은 자기 일에 만족해했고 나도 한가롭게 홈스테이를 하며 사는 이 생활에 만족한다. 우린 둘다 건강하고 우리 부부에겐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 심지어 삼십 평생 불만이었던 내 얼굴에조차 요새는 별 불만을 못 느끼며 살고 있다.
남편이 출근하고 2층 학생들의 아침을 챙겨주고 나니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햇볕이 꽤 따갑다. 이런 날은 조심해야 한다. 모자도 안 쓰고 잡초를 뽑거나 다른 정원일을 하다 쓰러진 적이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꼭 일사병이라곤 할 수 없지만 나는 햇볕에 그리 강한 체질이 아닌데다가 정원에 나오면 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이 사다준 챙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거울 앞에 서보았다. 여기 오기 전에는 코밑에 분이라도 톡톡 찍어 바르지 않으면 절대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는데 지금은 로션조차 잊고 산다. 오늘따라 밋밋한 인중이 꽤 탄력있게 보이고 윗입술의 선도 가지런해 보인다. 콧방울의 좌우대칭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목장갑을 끼고 현관 계단을 내려오는데 길 건너 브라운 부인이 날 보고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뭐라고 얘기하는 듯하지만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브라운 부인은 흰 곱슬머리를 나풀거리며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우리집까지 올 것이다. 그리고 새로 핀 프리지어나 튤립을 보고, 오, 어메이징, 러블리, 판터스틱, 언빌리버블…… 하며 감탄사를 마구 남발할 것이다. 그녀가 늘 쓰는 말이다. 아니면 그 옆 텃밭의 파슬리나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에 눈독 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도 칭찬을 해대길래 한번 쎄이지와 샤프란을 듬뿍 꺾어 갓 딴 컬리플라워 한 바구니와 함께 안겨주었더니 그 뒤로 이 여자는 톡톡히 재미를 붙인 듯했다. 틈만 나면 한가한 부인네들을 떼로 이끌고 우리집 정원을 구경한다며 놀러왔고, 차 한잔씩 마시고 가는 그들에게 나는 새로 딴 피망이나 차즈기, 양상추 등을 쌜러드 해먹으라고 한 바구니씩 들려 주었다. 때로는 직접 딴 버찌로 만든 잼이나 오이피클, 양파피클, 그리고 모처럼 만들어본 애플파이나 루바브파이 등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얼굴들이었다.
내가 이런 할 일 없는 백인 할머니들과 호호거리며 어울리게 되리라곤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이런 기특한 정원을 내 손으로 가꾸게 될 줄도 상상해본 적이 없긴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치기한 호두나무를 보고서, 20년간 정원사 일을 했다는 단골 그로써리 주인은 어떻게 안 배우고도 이런 모양을 낼 수 있냐며 신기해했다. 야채밭에 고랑을 낸 모양을 보곤 이런 좋은 손재주를 물려준 부모님께 감사드리라고 했다.
내 손끝이 야무지다는 소리는, 아주 어릴 적 코흘리개 시절부터 듣던 말이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면 단칸방에 혼자 앉아 찬밥을 간장에 비벼먹으면서 종이인형을 만들어 놀곤 했다. 책받침에 있는 캔디나 꽃천사 루루를 본떠 그리는 건 처음엔 너무 어려웠지만 점점 솜씨가 늘었다.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드레스를 수놓고 깃털 달린 모자나 모피코트를 그리다보면 어느새 와이셔츠 상자 하나 가뜩 종이인형과 옷 들이 쌓여갔다. 나와 놀아주지 않던 동네 여자아이들은 내가 만든 인형을 보고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에 있기 너무 답답해 와이셔츠 상자를 들고 나와 햇볕을 쬐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와 진짜 같다, 이거 그냥 팔아도 되겠다. 캔디랑 정말 똑같다. 그중엔 나만 보면 입술을 까뒤집으며 내 흉내를 내고 놀리던 세탁소집 딸이 있었다. 아이들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그 아이가 꽃천사 루루를 집어들더니 목을 톡 분질러버렸다. “미안해서 어떡하냐? 누구처럼 병신이 돼버렸네.” 바닥에 루루의 머리와 몸뚱이가 따로따로 흩어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루루가. 엄마와 내가 그 동네를 떠나 서울로 이사갈 때쯤 그 세탁소엔 불이 났다. 세탁소집 딸은 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나는 조금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등포시장 한구석으로 이사를 온 후 엄마는 작은 가게를 열었다. 순대국과 감자탕을 함께 파는 엄마의 가게는 다행히 꽤 인기가 있었다. 서울 아이들은 훨씬 냉랭했고 여전히 자기들끼리 놀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 인생에서 친구란 단어는 이미 빛이 바랜 지 오래였다.
그때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감자탕 오백그릇을 팔면 입천장수술을 시켜주고 또 오백그릇을 팔면 턱수술을 해주겠다고. 나는 서울에 온 지 2년 뒤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을 포기했다. 내가 지원한 신촌의 그 대학에 다니는 여대생들은 너무 화려해서 딴세상 사람들 같았다. 등록기간 마지막 날까지 엄마는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며 나를 설득했지만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난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엑스큐즈 미 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터번을 두른 인도인 택시기사가 이민가방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 유 써니? 롸잇? 그의 뒤엔 호리호리한 젊은 여자와 계집아이 한명이 서 있었다. 예스, 예스 하며 나는 얼른 울타리의 문을 따주고 여자의 가방 하나를 들었다.
“저, ……문집사님이 전화로 말씀드렸다고 들었어요. 열흘쯤 묵겠다고……”
젊은 여자가 따라 들어오며 떠듬떠듬 얘기했다.
“아 맞아요. 어제 집사님이 전화로 말씀하신 분 맞죠? 제일 좋은 방 하나 치워달라고 하셨죠. 어머 꼬마 아가씨도 있네?”
장시간 비행을 해서인지 시든 오이처럼 축 처진 엄마와 달리 아이는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네살은 돼 보이는 통통한 아이의 뺨이 매킨토시 사과처럼 윤이 나고 발그레했다. 빨간 모자가 달린 케이프까지 둘러서 마치 핼러윈데이에 사탕을 얻으러 온 동네 아이처럼 보였다.
2층에는 어학연수 온 학생 세명이 묵고 있었는데 낮에는 거의 없었다. 여름 성수기가 아니라 방은 넉넉했고, 나는 그중 남향으로 창이 난 환한 방으로 그 모녀를 안내했다.
“엄마 엄마 저거 봐. 강아지야!”
가끔씩 정원에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들어오곤 하는데 마침 아이가 그걸 봤나보다.
“저건 강아지가 아니야. 너구리란다.”
아이는 너구리를 보고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그림책에 나오는 너구리를 처음 봤다고 난리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새 두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창가 바로 앞 사향나무 가지에 앉아 지저귀기 시작했다. 아이의 관심은 새들에게 옮겨갔다.
“아줌마, 저 새 이름이 뭐예요?”
“응, 저건 위스키 잭이라고 해. 꽁지가 참 이쁘지?”
새 이름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아이와 엄마와 나는 2층 창가에 쪼르르 앉아 한참동안 새를 바라보았다. 바람결에 풍겨온 사향나무 향기가 매우 진했다. 봄꽃 중 가장 향기가 달콤해서 문을 열고 자면 꿈까지 달콤하게 취하게 할 정도였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그 향에 아이 엄마는 푹 빠진 듯했고 아이는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다. 새삼, 이런 집의 안주인이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아이의 이름은 희주였다. 여자는 자기를 그냥 희주 엄마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내게 전화를 한 집사님은 처지가 딱한 여자니 잘 대해주라고 당부했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한동네 사는 그 집사님에게 종종 신세를 진 터라 자주 연락하고 지냈다.
희주 엄마는,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것처럼 걸걸한 목소리에 내숭 따윈 모른다는 듯한 표정을 늘 짓고 있었다. 꼼꼼히 뜯어보면 오목조목하니 꽤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인중 역시 야무지게 생겼다. 나는 아직도 사람을 볼 때마다 제일 먼저 인중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습관은 고치기 힘든 법이다.
“희주야, 그러면 안돼! 아저씨 옷이 다 젖잖니……”
희주 엄마가 거실 밖을 쳐다보며 외쳤다. 정원에서 남편과 희주가 함께 꽃에 물을 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남편과 인사를 하자마자 희주는 그날부터 남편이 오기만 하면 찰싹 붙어 떠나질 않았다. 워낙 구김살 없이 하는 짓이 예뻐서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 토실토실한 뺨을 꼬집어주고 싶어지는 아이가 희주였다. 아이도 자기가 그렇게 귀여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한번도 저래 본 적이 없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까르르 웃으며 남편에게 무동을 태워달라고 조르는 계집아이의 얼굴에 내 어린 시절이 잠시 겹쳐 보였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아파도 약을 지어먹고 계속 일을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언청이로 태어났다고, 가난하고 무식해서 몰랐다고, 엄마는 자책하곤 했다. 그래도 엄마는 내 손을 잡아끌고 초등학교 다닐 때 두번이나 수술을 받게 했다. 선천성 기형은 보험 혜택을 받는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고 했다. 수술로 코와 입이 완전히 분리돼서 수술 직후엔 꽤 나아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구순구개열이라 불리는 이 기형은, 나이가 들고 새살이 돋으면서 상처가 아물어야 정상이건만 오히려 더 벌어지거나 수술한 티가 확연해졌다. 합죽이나 주걱턱 같은 하관, 펑퍼짐하고 내려앉은 콧날, 크기가 다른 두 콧구멍, 삐뚜름한 윗입술, 억지로 만든 인공인중 등은 표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다 교정하는 수술은 보험이 안되었다.
엄마가 감자탕 오백그릇을 팔면 수술을 시켜준다고 했지만 오백그릇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엄마는 큰맘을 먹고 가게를 크게 넓혔다. 복불복이야. 빨리 왕창 벌어야 너 서른 되기 전에 다 고친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하루종일 감자를 깎고 돼지뼈를 고고 순대를 삶으면서 내 이십대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스물여덟이 되던 해에 나는 성형외과를 찾게 되었다.
제일 먼저 입천장 깊숙이 박힌 생니 두개를 그대로 뽑아냈다. 남들은 잇몸에서 이가 나는데 나는 저게 저렇게 아무데나 박혀 있었구나…… 새삼 나 자신이 징그럽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다음엔 골반뼈를 잘라냈다. 그리고 그걸 잘게 부수어 잇몸에다 집어넣었다. 수술 후 한달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씹지도 말라고 했다. 골반에서 뼈를 잘라낸 탓에 나는 목발을 짚어야 했다. 졸지에 언청이에다 벙어리, 다리병신까지 된 셈이었다. 침을 삼키지 못해 잘 때엔 베개에 두꺼운 타월을 깔아야 했다. 옆으로 침이 질질 새어나왔다. 나중엔 눈물까지 따라 질질 흘렀다.
그다음엔 전부터 벼르던 치아교정을 본격적으로 했다. 원래 안면기형인 사람에게 충치가 잘 생기긴 하지만 나는 더 엉망이었다. 몽땅 썩어서 뽑아야 할 이가 자그마치 네개나 되었다. 어떻게 이걸 참고 살았냐고 중년의 치과의사는 혀를 찼다. 그러고 나서 받은 수술은 튀어나온 주걱턱을 깎고 볼 옆으로 뭘 집어넣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다 하는 데 2000cc차 한대 값이 다 들어갔다.
다음 단계인 코수술과 입수술은 견적을 내기 힘들었다. 경차 한대 값이 될지, 벤츠 한대 값이 될지는 선택하기 나름이었다.
그렇게 턱수술을 받은 지 두달이 되어갈 때, 캐나다로 이민간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삼촌의 아들이 곧 결혼을 한다며 비행기표를 끊어줄 테니 엄마와 함께 와보라는 소식이었다. 이십년 전에 맨손으로 이민간 삼촌은 이제야 작은 주유소를 차려 먹고살 만해졌다고 했다. 삼촌은 우릴 위해 초청 이민을 신청한 지 칠팔년이 돼가는데도 승인이 안 난다며 미안해하고 있었다. 난 사실 이민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 얼굴로 외국에 가 산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몇달 동안의 수술로 사람들은 내가 몰라보게 예뻐졌다고들 했다. 감자탕집 단골들은 이제 탤런트 시험을 봐도 되겠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조금 예뻐진 언청이, 그게 나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차 이름이 뭐죠? 맛도 좋고 향도 참 좋네요.”
희주 엄마와 정원 벤치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는 중이었다. 희주는 여전히 정원에서 남편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기 저기 풍뎅이 봐요. 와, 개구리다, 아저씨, 나비!…… 우리집 정원엔 툭하면 개구리가 모여들었고 고추밭 버팀목엔 이상스레 잠자리들이 꼬였다. 볼품없는 채송화나 백일홍 근처에도 나비랑 벌이 꿀을 찾느라 수시로 날아들었다.
“캐모마일이에요.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허브죠. 많이들 마신답니다.”
“네…… 전 이런 거 처음 먹어봐요. 설탕 프림 두 숟갈씩 꽉꽉 넣은 다방 커피가 제 취향이거든요.”
나는 좋은 안주인으로 남고 싶었다. 희주 엄마에게 악의 없이 웃어 보이면서 찻물을 더 따라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이혼녀가 틀림없어…… 일주일 동안 지켜본 결과 얻은 확신을 난 절대 내비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을 쥐고 있다는 게 이렇게 사람을 너그럽게 만드는지 지금까지 나는 모르고 산 셈이다.
“다음주에 밴쿠버로 떠나신다고 했죠?”
“네, 전에 같이 일했던 언니가 밴쿠버에 큰 미용실을 차린다네요. 원래 여기 코리아타운에 샵이 있었는데, 벌써 언니 식구들은 다 떠났고요. 어쩌다 일정이 꼬여서 제가 여기로 먼저 오게 됐어요. 그 언니가 여기 소개해주신 집사님과 잘 아시더라구요. 써니네 민박이 제일 조용하고 좋다고 권하시더래요.”
그러면서 찻잔을 들고 콜라 마시듯 훌훌 마시는 순간, 그녀가 미세한 곁눈질로 날 훔쳐본다는 걸 나는 알았다. 흠, 이제야 알았구나, 생각보다 둔한걸.
아무리 수술이 잘됐다 하더라도 기형의 흔적을 다 감추는 건 불가능했다. 이상하게도 한국에는 언청이가 많이 태어난다고들 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만큼 언청이를 금방 알아보는 민족도 없었다.
나는 선수를 치는 게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 얼굴 좀 티 나죠? 아시겠지만.”
여자는 당황한 듯 우물쭈물했지만 예의 그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잘 모르겠어요…… 그냥 보면 작은 상처처럼 보여요…… 게다가 원체 고우시잖아요…… 이런 식의 얘기를 나는 예상했다. 한국여자들의 말주변은 창의력이 없으니까. 그런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다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어요? 전 더 심한 언청이도 봤는걸요.”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에 해로워요. 그런 거 다 신경 쓰고 사시면.”
우리 앞엔 데이지 화분들이 몇개 있었고 언제 왔는지 개구리 한마리가 내내 망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자리 한마리를 날쌔게 잡아 꿀꺽 삼켜버렸다. 녀석은 맛있게 그걸 먹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곤 폴짝 뛰어 사라졌다. 내가 아무 말 없이 개구리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희주 엄마도 나를 따라 멀뚱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좋은 집에 사시고…… 남편분도 자상하시고…… 뭐 바랄 게 없겠네요. 자식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나는 찻잔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다 식은 차는 더이상 마시기 싫었다. 캐모마일티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지만 과연 그런지는 나도 믿기 힘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희주와 남편은 클로버꽃을 꺾어 목걸이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엉성하게 만든 꽃목걸이를 희주 목에 걸어주고 남편은 우릴 보고 손을 흔들었다. 좋아서 깔깔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정원 곳곳에 울려퍼지는 동안, 나는 남편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꼭 저런 표정을 지었는데. 그때도 귓불이 저렇게 발개졌고……
남편을 처음 본 건 삼촌의 주유소에서였다. 그의 첫인상은, 영등포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참 흔한 인상이었다. 삼촌이 우릴 보고 말했다.
“여기는 브라이언 박이야, 그리고 여기는 내 조카 순희. 인사들 하지.”
그가 내민 손은 예상과 달리 투박하고 거칠었다. 내 손처럼. 그가 내 눈길을 피하며 영어로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삼촌이 그의 등을 툭툭 치는 걸 보고 좋은 뜻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는 한국말도 잘하지만 긴장하거나 떨리면 영어부터 튀어나온다고 했다. 내 눈으로 그를 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날 보고 진심으로 수줍어하는 남자가 있다니. 내게 수작을 건 남자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건 내가 언청이에다 감자탕집 딸이라 만만히 보여서였을 것이다.
안 그래도 나는 처음 와본 캐나다 땅 자체에 놀라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영등포시장에서만 이십여년 살아온 내게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공기의 촉감조차 달랐다. 삼촌이 우릴 데리고 나이아가라 카지노에 갔을 땐 금발의 남자직원이 날보고 틴에이저냐고 물었다. 내가 트웬티나인이라고 답하자 그는 리얼리, 어쩌구 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브라이언이 말했다.
“쟤네는 동양여자 나이를 거의 못 맞혀요. 게다가 미인이면 더욱요.”
그 말을 할 때에도 그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관광을 하러 쏘다닐 때에도 캐나다 남자들은 종종 장난스럽게 윙크를 해대거나 별거 아닌 대화에도 휘파람을 불곤 했다. 처음엔 날 보고 그런다는 것도 몰랐다. 생전 처음 입어본 최신유행의 대담한 원피스에 새 구두, 공들인 화장 탓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삼촌은 이왕 온 김에 푹 쉬고 가라며 우릴 계속 붙잡았고, 그러다보니 엄마와 난 한달이나 거기에 머물렀다. 나는 마치 열두시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다. 전의 내 모습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본래부터 활달하고 인기있는 처녀인 듯이 거만하게 활보했다. 브라이언이 틈만 나면 나를 만나러 와주었기에 나는 더 그 마법에서 벗어나기 싫었다. 곧 감자탕집 딸로 돌아가야 하는 재투성이 아가씨,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적금을 깼다. 그리고 곧 병원에 예약을 했다. 벌어진 양 콧구멍의 크기를 똑같이 맞추면서 오므려주고 휘어진 콧대를 바로 세우는 것, 거기에다 인중과 윗입술선을 더 뚜렷이 만드는 수술이 내가 원하던 바였다. 엄마는 일년도 안돼 또 얼굴에 칼을 대는 건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난 하루라도 더 빨리 변하고 싶었다.
수술이 끝났을 때, 부분마취라 통증은 더 예리했다. 게다가 수술 후에도 달고 있어야 하는 코 교정기는 최악이었다. 매일 여섯시간씩 그 답답한 걸 자그마치 육개월이나 끼고 있으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참을 수 있었다. 브라이언이 석달 뒤에 한국에 들어올 거란 얘기를 꼭 믿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와 상관없이 나는 변하고 싶었다. 금단의 열매를 맛본 사람만이 기분을 아는 법이다.
그리고 정말 석달 뒤 브라이언이 우리 가게에 나타났고 나는 그에게 특제 감자탕을 끓여주며 언청이였던 내 과거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뼈다귀에 붙은 살점을 뜯어내며 말했다. “그런 줄 몰랐어. 코에 단 그것만 빼면 지금도 모를 거야.”
육개월이 안됐지만 나는 코 교정기를 벗어버렸다. 붓기는 다 빠지고 내 인상은 전보다 더 자연스러워졌다. 소형차 한대 값이 더 들어간 결과였다. 이제는 천연미인이라고 박박 우기면 속을 사람도 있을 성싶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브라이언이지만 조부모님은 한국 땅에 살아 계셨고 날 보고 참한 규숫감이라며 칭찬했다. 그는 곧 내게 청혼을 했고 나는 당연한 듯이 그걸 받아들였다. 그때 의논을 하러 전화를 건 엄마에게 삼촌은 이렇게 말했다.
“시쳇말로 말이야…… 순희가 거기서 뭐 엄청난 신랑감을 물 수 있겠냐? 네가 뭘 모르는데, 여기 캐나다에선 미캐닉이 최고라고. 그리고 캐나다 시민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냐? 순희가 대학을 나왔냐 집안이 좋냐 애비가 있냐? 얼굴 다 뜯어고쳤어도 한국 사람들은 언청이 며느리 절대 안 보지. 유전이 아니래도, 2세가 안 그러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잘 생각해봐. 브라이언은 집도 있지 하는 일도 확실하지 뭘 바래……”
우리는 결국 영등포 구석의 초라한 예식장에서 식을 올렸다. 시장 사람들이 후하게 부조를 했지만 나는 별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악의는 없지만 툭툭 던진 한마디들이 내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전혀 모르는 그들. 사악한 사람은 피하면 되지만 둔한 사람은 경멸스러웠다. 오히려 늘 뿌옇고 흐린 영등포의 밤공기가 그리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남편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느 구질구질한 뒷골목 한 모퉁이에서 나는 남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야 이 째보야, 너 우리가 꼬아? 손 한번 잡자는데…… 병신,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그러면서 한명이 치마를 확 잡아당겼다. 어쩌다 뒤에 숨긴 내 손에 깨진 병이 쥐어져 있었는지는 모른다. 치마 속으로 그놈의 손이 들어오는 찰나 나는 그 병조각으로 남자의 얼굴을 확 그어버리고 다른 손으로 다른 한명의 눈을 찔러버렸다. 마지막 한명은 뒷걸음치고 있었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 손의 병조각은 기어이 날아가 그의 뺨에 박혀버렸다.
너무 생생해서 깨고 나면 몸서리가 쳐지는 꿈이었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타나는 그들, 물론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희주네 간대잖아. 웬 낮잠을 그렇게 자?”
남편의 말투는 늘 한결같았다. 영어를 쓸 때에는 빠르고 유연한 악센트, 한국말을 쓸 때에는 느리고 투박한 충청도 억양. 그가 중학교 때까지 살았다는 고향의 말씨는 듣기 좋았다.
거실로 나오니 희주가 쎄일러 칼라가 달린 새 원피스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어제 씨어즈까지 가서 사다준 선물이었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뛰어와 안기며 소곤거렸다. “아줌마, 보고 싶을 거예요.”
이 아이는 정말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같았다. 어떻게 저런 여자한테 요런 딸이 생겼을까. 여전히 시든 오이처럼 피곤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오는 희주 엄마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여자는 마침 목감기에 걸려 계속 콜록거리고 있었고 황금빛 스카프를 목에 둘둘 감고 있었다.
“정들자마자 이별이네요. 가까이 살면 말벗도 되고 좋을 텐데…… 밴쿠버가 워낙 머니……”
난 여전히 옅게 웃어 보였다. 그새 희주는 남편 손을 붙잡고 정원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이는 특별히 내 허락을 받고 마음껏 꽃을 꺾을 수 있어 좋아라 했다. 아이는 막 피어난 붓꽃과 마거릿, 패랭이꽃, 금어초, 데이지 등을 골고루 섞어 자기 몸만한 꽃다발을 만들고 외쳤다. “아줌마 너무 행복해요.”
난 다가가 아이를 안았다. 비누향이 섞인 아이 특유의 살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세상 어떤 꽃향기보다도 뭉클한 냄새였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면……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사이 희주 엄마는 짐을 챙긴다고 몹시 허둥대고 있었다. 남편은 희주 엄마가 가방을 들고 내려오자 얼른 손잡이 하나를 나눠 들었다. 그걸 보며 난 생각했다. 그래, 나는 저 여자한테 없는 걸 가졌잖아.
희주 엄마는 트렌치코트를 대충 껴입고 비행기티켓을 다시 확인하면서 부산을 떨었다. 출발해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나 있었다. 나는 준비해두었던 작은 라벤더 꽃바구니를 희주 엄마에게 들려주었다.
“자기 전에 요 가지 하나를 코에 살살 문질러봐요. 잠도 잘 오고 답답한 코에도 좋답니다. 아침까지도 그 향이 남아 있을 거예요.”
그걸 받은 희주 엄마의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에 난 만족했다.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고마워서 어쩌죠…… 저 같은 여자한테 이렇게 잘해주시고……”
희주 모녀를 태운 차가 떠나고 나와 남편은 오랜만에 정원에 오붓하게 앉아 박하차를 마셨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희주와 유난히 정들었던 남편이 허전해하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도 어서 저런 예쁜 딸을 가져야 할 텐데. 그치?”
그도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매엔 여느 때처럼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배란기가 되면 이번달엔 어느 쪽에서 난자가 나오는구나라는 것까지 알 수 있다. 예민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결혼 4년이 다 돼가도 애가 없어서 우리는 집사님이 소개한 클리닉에 가보기도 했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클리닉에 세번째인가 갔을 때 내가 배란촉진제를 놔달라고 나서자 남편은 순리에 따르자며 나를 말렸다. 그리고 바로 그날, 남편이 의사와 한국말로 상담하다가 뜬금없이 영어로 뭔가를 질문했던 걸 기억한다. 단답식으로 쭉 대답을 하던 의사가 순간적으로 나를 흘끔 쳐다보며 자세하게 한참 설명을 했다. 그의 설명 중에 harelip이란 단어가 나온 걸 나는 알아차렸다. 남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진 것도 내 착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난 남편에게 무슨 얘기였냐고 묻지 않았다. 그도 부러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날 이후 딱히 뭐가 이상해졌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냥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도 항상 그대로일 수만은 없고 꺼끌거리는 뭔가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그러나 우리 둘다 입밖에 내진 않았다. 내게는 가꾸어야 할 정원이 있었다, 그에게 일이 있듯이. 벌레를 잡고 가지를 치고 씨를 뿌리고 구근을 심고 물을 줘야 할 나의 자식들.
가끔씩 그가 농담삼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은 나보다 풀포기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애.” 가만 생각해보니 요즘은 통 그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연못을 만들까봐.”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간만에 둘이 마주한 저녁 식탁이었다. 윗층 학생들이 며칠 전 다 귀국을 해서 이 큰 집에 우리 둘밖에 없었다. 풍성한 정원은 늘 반찬거리를 제공해주긴 하지만 오늘은 더 특별했다. 그가 좋아하는 깻잎이 애 주먹만큼 자라나 고운 놈만 수북이 뜯어왔고 역시 그가 좋아하는 우엉을 캐서 왜간장을 넣어 졸이고 풋고추도 따 반은 졸이고 반은 된장 쏘스와 함께 내놓았다. 이런 쌈밥에 내가 고안한 영양식인 튀긴 가지와 잘 익은 오이김치까지 곁들여 내놓으니 식탁은 풍성했다. 비록 기름진 음식은 없지만 그는 내 채식식단에 불만이 없었다. 건강에 좋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야채밭 옆에 구덩이를 파고 작은 연못을 만들까봐. 어때?”
그는 뭐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그가 즐겨 쓰는 말이었고 그 말을 하고 바로 식탁에서 일어났다.
나는 자려고 하는 그에게 오늘이 배란기라는 걸 달력을 가리키며 강조했다. 와, 농사 달력이네요, 하고 희주 엄마가 감탄했던 한국산 복덕방 달력이 거실 한 벽에 걸려 있었다. 일년 내내 씨 뿌리는 시기나 구근, 모종, 포기 심는 시기며 거둬들이는 시기 등 잡다한 원예 일정이 적힌 이 달력엔 달리아나 백일홍 같은 꽃이름 옆에 내 이름 써니도 나란히 적혀 있었다. 나의 아기씨가 나오는 시기. 물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알았다고 하고선 그는 거실 TV앞에 가 앉았다. 이 시간이면 스포츠뉴스를 본다는 걸 알기에 나는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리다 나와보니 그는 TV를 보다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곁에는, 내가 질색하는 인스턴트 라자냐 접시가 뒹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혼자 방으로 돌아와 잤다.
그날은 퇴비를 만들려고 그로써리 주인에게 야채찌꺼기와 생선뼈 등을 푸짐히 얻어온 날이었다. 나를 볼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쳐들어 보이며 내 정원을 칭찬하던 그 주인은 혹시 그린 핑거라는 말을 들어보았냐고 했다. 그의 영어는 간혹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그 말만은 확실했다. 써니, 유 아 그린 핑거……
집으로 와 나뭇가지와 잡초들, 며칠이나 모은 음식찌꺼기와 개 고양이 분뇨에 얻어온 찌꺼기를 잘 섞었다. 또 며칠은 남편이 싫은 소리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퇴비 썩을 때 나는 냄새가 향기롭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유독 그는 퇴비 냄새에 질색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거름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코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이 고약한 냄새가 안 나?”
한번은 그가 이렇게까지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그는 그때야 아차 싶었는지 사과를 했다. 말 그대로 코가 어떻게 된 채로 이십여년을 산 사람에겐 심한 욕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를 만큼 그는 둔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잘 섞은 퇴비에서 서서히 수분이 빠져나가고 푹푹 썩기 시작하면 열이 올라오고 영양 많은 거름으로 변해갈 것이다. 몇달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이 거름 덕에 우리 정원이 늘 보기 좋게 유지된다 생각하니 입이라도 맞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편이 근무하던 정비소가 리모델링과 증축에 들어가면서 그는 뜻하지 않은 휴가를 받게 되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나이아가라 쪽 플라워마켓이 그렇게 좋다는데……”하고 내가 운을 떼면 그는 그냥 뭉그적댔다.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듯이 그는 TV앞에서 쉬는 걸 원하는 듯했다.
내가 한참 진땀을 흘리며 퇴비를 만들고 거실로 들어오니 그는 마침 전화를 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의 앞을 지나가자 고개를 스윽 돌리면서 네네, 하고 뭐라고 대답하곤 전화기를 급히 내려놓았다.
“누군데?”
그는 TV볼륨을 다시 키우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씨트콤 프로였다.
“희주 엄마야.”
“그런데?”
“뭘 두고 간 것 같다고. 혹시 봤냐고.”그는 여전히 시선을 TV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뭘 말이야?”
“뭐 스카프라나.”
내가 곁으로 다가가자 그는 코를 움켜쥐며 소리를 질렀다. “안돼, 씻고 와! 그리고 제발 그것 좀 나 없는 날 하면 안돼?”
내가 30분이나 샤워를 하고 거실로 와 앉았을 때에도 그는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계속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기분 나쁠 때면 일부러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썼다.
일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암만 냄새나는 퇴비를 만지고 들어와도 그는 나를 안아 침대로 데려가곤 했다. “알아? 여기선 파슬리 냄새가 나…… 여기선 라벤더 냄새가 나는데……”하며 오래오래 내 몸을 더듬고 냄새를 맡던 그였다.
나는 소파로 가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린 핑거가 뭐야? 그로써리 주인이 나보고 그러던데…… 좋은 말이야?”
내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자 그도 내 어깨를 싸안으면서 말했다.
“뭐, 풀이나 그런 걸 마법처럼 잘 키우는 손이라는 뜻인데, 그런 마법사나 마녀…… 그런 사람도 그렇게 부르고.”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그럼 칭찬이네. 내가 그 정돈가?”
그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좋아? 마녀래도?”
순간 그답지 않게 비꼬고 있다는 걸 난 알아차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세웠다.
“무슨 말이 그래? 왜 그렇게 뾰족하게 굴어?”
“내가 뭘?”
“몰라서 물어?”
“응, 늘 과민하게 구는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거든.”
“그래서 애를 갖기도 싫은 거야?”
“여기서 갑자기 왜 애 얘기를 꺼내? 이것 봐, 당신이 늘 이런 식으로 꼬투리를 잡잖아.”
“나 닮은 애를 낳을까봐 겁나?”
내 마지막 말에 그가 웃어넘기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하고 넉살 좋게 나왔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만 하고 일어났다. “관두자, 써니.”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은 건 사실이지만 내가 먼저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는 절대로 먼저 시빗거리를 만드는 남자가 아니었다. 때로는 그것이 교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부가 한집에서 이틀이나 냉랭하게 지낸다는 건 고역이었다.
그와 말하기 싫어 연못을 만들 구덩이를 나는 혼자 힘으로 파기 시작했다. 삽질에 꽤 익숙하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모종삽이 아닌 큰 삽은 힘에 부쳤다. 누가 건드리면 왈칵 눈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이틀 동안이나 각방을 쓰고 제대로 눈을 붙이지도 못해 더 그런지도 몰랐다.
그때 누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남편이었다. 그는 이미 손에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삽 줘.”
나는 말없이 그걸 내밀었다. 남편이 어른 키만한 크기까지 구덩이를 팠을 때 나는 그만 하자고 했다. 그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인부를 시켜서 할걸, 땅 파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라고 내가 말했지만 괜찮다며 조금만 더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목욕물을 받아놓겠다고 하고선 먼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욕실에 들어와 물을 틀고 생각해보니 오늘 저녁 쌜러드 만들 야채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다시 정원에 나가려던 나는 남편과 현관 입구에서 마주쳤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그는 내 팔을 꽉 잡고 물었다.
“이게 뭐야? 당신은 알겠지?”
너덜너덜해진 천조각이었다. 나는 그의 그런 험악한 태도를 처음 봤기에 놀라서 가슴이 콩닥거리기까지 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희주 엄마가 말야.”
그제야 노리끼리한 금빛 문양이 눈에 약간 익은 듯 보였다.
“잃어버리고 갔다는 바로 그 스카프지. 보여? 여기 가위질돼 있는 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나는 모르는 일이래도.”
“그럼 스카프에 발이라도 달렸나? 어떻게 이게 양배추밭 속에 들어가 있지?”
“여보, 난 정말 몰라.”
“………”
“도대체 왜 내가 그런 짓을 했겠어? 당신은 날 그렇게 몰라? 남편이라는 사람이……”
“내가 당신을 아니까 이러는 거야. 나도 처음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당신은 늘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고선 시치미를 뚝 떼잖아. 정말 기억을 못하는 거야? 당신은 정말 자기한테 불리한 건 다 잊어버려? 원래 뇌 구조가 그래? 장모님 말씀대로 당하고만 살아서 그렇게 이상하게 변한 거야?”
“엄마 얘긴 하지 마.”
“당신, 계속 희주 엄마를 못마땅해하고 싫어했던 것 내가 모를 줄 알아? 그거 의부증인 거 알아?”
“그건 당신이 몰라서 그래. 그 여자가 먼저 나한테 언청이가 어쩌고 하면서 날 깔봤다고.”
“………”
“그 표리부동한 년이 정말 그랬다고!”
“………”
“그렇게 보지 마. 왜? 내 얼굴이 이상해? 코가 비뚤어지고 있어? 잇몸에서 뼈라도 튀어나왔어? 왜 그렇게 봐? 말해!”
“써니, 아니 순희야……”
그가 놓았던 손을 다시 잡았다.
“난 정말 못 견디겠어. 네 얼굴은 멀쩡해. 비뚤어진 건 얼굴이 아니고 네 마음이야. 난 점점 네가 무서워…… 처음 만났을 때 넌 이러지 않았어. 이런 성격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
“그래서…… 결혼한 게 후회돼?”
“때로는.”
남편의 말을 듣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나는 주저앉았다. 그도 옆에 같이 앉았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자.”
“………”
“정원일은 제발 그만 하고…… 거기에 매달리고 나서 너는 정말 더 이상해지고 있어.”
“정말…… 나 닮은 애가 태어날까봐 겁나? 말해줘.”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가식이 없는 남자였다.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하고 빈말이라도 한마디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말이야.”
그가 내 손을 꼭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나도 좀 생각할 시간을 줘. 나, 여행 좀 갔다올게. 그렇잖아도 말하려고 했어. 갔다와서 다시 얘기하자 응?”
“안돼! 갔다 언제 오려고! 싫어!”
그는 솔직하고 친절한 사람이지만 단호할 땐 단호했다. 그가 욕실에 들어가고 난 후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문득 성남의 단칸방 집을 떠나기 전날, 세탁소에 불이 난 기억이 떠올랐다. 멀거니 불구경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어슴푸레 생각난다. 불이 옮겨붙는 과정은 정말 신비롭고 황홀했다. 그런 멋있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내 머리채를 끌고 들어와 종아리를 걷으라고 했다. 나는 아무 짓도 안했다고 했지만 엄마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누가 봤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다 누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난 너무 억울하고 엄마가 미웠지만 다음날이면 그 거지 같은 동네를 떠날 수 있어서 참기로 했다. 그 계집애네 집에 불을 내버리는 꿈은 몇번 꾼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랬을 리가 없다. 다른 사람을 해치다니…… 상상만 해도 무섭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작은 가방을 싸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는 말없이 속옷을 개켜넣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빼앗았다.
“당신 왜 이래? 당신이야말로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굴어? 부부싸움 한번 했다고 짐을 싸?”
그는 나를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런 눈은 싫다. 이 언청아, 너는 어쩌다 그렇게 태어났니…… 하는 동정의 눈.
“말했잖아. 당분간 떨어져 있자고. 나 여행 좀 하고 싶다고.”
“………”
“헤어지자는 게 아니야.”
“알겠어.”
그제야 난 이해가 됐다.
“밴쿠버로 갈 거지? 희주 엄마한테로…… 어제도 그 전화였지? 옳아, 그래서 그 여자가 헤어질 때 울고 짜고 오바를 한 거였구나. 일말의 양심은 있었나보지?”
가슴속에서 작은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말도 안되는 소릴…… 이러니 내가 당신 때문에 미치겠다고 하잖아!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하고 맘대로 생각하고!”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렇게 갑자기 짐을 싸면…… 어느 여자가…… 아무리 당신 말이 맞아도…… 너무하잖아……”
목이 메어오고 눈앞이 흐려졌다. 남편은 그제야 당황한 듯, 자기가 좀 경솔했다며 진정하라고 날 달래기 시작했다. 그리고 쌌던 가방을 저만치 밀쳐놓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눈물범벅인 나를 침대에 뉘고 이불까지 잘 덮어주었다. 나는 그의 팔을 베고 울다울다 결국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깜깜한 밤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한 느낌이었다. 방을 나와 집 안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았는데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넋 나간 얼굴로 식탁 한구석에 앉아 있는데 잠시 후 현관 구석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방을 맨 그가 현관문을 따고 들어와 신발장 위에 놓인 지갑을 집는 순간,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미안해, 써니.”
“………”
“갔다와서 얘기하자. 전화할게.”
“………”
돌아서는 그의 가방을 내가 낚아채려 하자 그는 가방 끈을 잡고 버텼다. 그러더니 그는 현관 밖 계단으로 황급히 내려갔고 나는 그의 등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가 조금 휘청거렸다. 나는 얼른 계단 밑으로 내려와 바닥에 있던 삽을 손에 들었다.
“못 가.”
“너 정말 미쳤니.”
“브라이언, 나한테 이러지 마……”
그가 가볍게 내 손에 있던 삽을 빼앗았다. 맨손이 된 나는 그의 얼굴을 한대 갈겼다. 그의 얼굴이 돌아가면서 순간적으로 그의 눈에서 불꽃이 번쩍했다.
“우리 이러지 말자.”
그가 삽으로 날 칠 듯했다.
그리고 하늘이 나를 덮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써니, 써니…… 아 유 오케이?”
브라운 부인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내 방 내 침대였다. 브라운 부인과 그 친구들이 날 둘러싸고 있고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집사님이었다.
“걱정했어요. 햇볕도 따가운데 또 모자도 안 쓰고 일하다 쓰러졌다고…… 한두번도 아니면서……”
목이 말랐지만 나는 집사님에게 먼저 물었다.
“브라이언은요?”
집사님 얼굴이 약간 난처한 듯 보였다. 어제 좀 싸웠어요…… 혼자 여행 간다고 해서……라고 내가 한마디 덧붙이자 그제야 집사님 얼굴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 됐다.
“저기, 저 부인이 어젯밤 정류장에서 브라이언이 버스 기다리는 걸 봤다네요. 인사를 했는데도 모른 척하더라고.”
그가 서 있는 걸 봤을 뿐이지만 모두 브라이언이 떠났다고 확신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제야 난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이 과부인 이 노부인들이 왜 그렇게 날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는지. 내게 수시로 싱싱한 피망과 차즈기와 양상추, 잼이며 피클, 파이 등을 얻어먹은 그들이 왜 몰려와 있는지. 하지만 난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에게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몸싸움까지 하고 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난 생각한다. 내가 삽까지 들었으니 그도 많이 놀랐겠지. 마음정리가 되면 전화할 거야…… 나는 이해해주기로 맘먹었다.
연못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자리에 남편이 좋아하는 체리토마토 묘목을 잔뜩 심었다. 그 구덩이를 어떻게 다 메웠는지 내가 했지만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미친 듯이 했으니 아침에 탈진해 쓰러졌겠지. 그와 그렇게 싸우고 나니 연못이고 뭐고 다 필요없단 생각이 들었고 난 일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잘된 거지만.
브라운 부인과 그 일당들은 전보다 더 자주 놀러왔고 새 체리토마토 밭을 보고 놀라워했다. 도대체 여기다 뭘 줬기에 체리토마토가 이리 크냐고, 꼭 사과알만 하다고.
물론 사람들은 내가 직접 퇴비를 만들어 쓴다는 걸 다 알고 있다. 이번에 유난히 냄새가 심한 것도 생선뼈를 많이 넣어서 그럴 거라고들 했다. 내 야채들이 그걸 먹고 저리 탱글탱글하게 열매를 맺게 됐으니 비린 생선뼈 하나도 내겐 그저 고맙기만 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어서 묻히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 안에서 이름모를 식물들을 무럭무럭 키우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왠지 경건해지곤 했다. 자연의 순리에 대해 겸허해지는 순간은 이렇게 사소한 정원일에서도 문득문득 다가오는 것이다. 남편과 함께 이런 경험을 나눌 수 있다면 더없이 감사할 텐데.
이 정원에 부족한 게 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건 바로 사람이다. 남편과 나의 아이들. 희주처럼 마음껏 뛰어놀 어린아이들, 피가 돌고 맥박이 뛰고 나의 자궁에서 싹이 터 자라난 나의 아이들. 필요한 것은 꽃도 나무도 연못도 아니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남편에게 내가 언청이인 사실을 끝까지 숨겼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이는 여러 명 낳았을까. 그리고 별탈 없이 잘살고 있을까.
아직도 나는, 째보라고 병신이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피해다니는 어린 나를 꿈속에서 보곤 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긴 하지만, 가끔은 깬 줄 알았는데도 여전히 꿈속에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남편이 돌아오면 그의 말대로 상담도 받고 그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다. 그리고 어서어서 예쁜 아이들을 가져야지. 이 싱싱한 체리토마토를 다 따기 전에 그가 와야 할 텐데. 남편이 올 즈음엔 퇴비 썩는 냄새도 한결 덜할 것이다.
그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니, 그는 곧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