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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편혜영

편혜영 片惠英

1972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가든』이 있음. fragmenta@naver.com

 

 

 

사육장 쪽으로

 

 

현관문을 열자 편지 한통이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는 도시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편지는 현관 문틈에 끼워져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쑤셔넣은 듯 끝부분이 구겨진 채였다. 집 앞에는 새장 모양의 흰색 우체통이 있었다. 그럼에도 편지는 보란 듯이 문틈에 꽂혀 있었다. 별다른 무게감이 없었으나 바닥에 떨어진 편지는 시선을 끌었다. 겉봉에 씌어진 붉은 글자 때문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인근 피자집의 전단지이거나 새로 개업한 한의원에서 보낸 우편물일 거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는 붉은 글자를 보자마자 그것이 특별한 종류의 편지, 즉 경고장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천천히 편지를 집어들었다. 끝이 우그러진 편지봉투는 그들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집 안으로 쳐들어올 수 있다는 경고처럼 보였다. 배웅하러 나오던 아내가 그의 손에 들린 편지를 힐끗 훑어보았다. 이내 아내의 입에서 아 하는 짧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아내 역시 그들에게서 온 편지임을 알아차렸다. 아내는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 소리를 질렀다. 아악, 이제 어쩌면 좋아요. 당장 그들이 쳐들어오는 것처럼 겁먹은 목소리였다. 방 안에 있던 노모가 영문도 모르고 아내를 따라 소리를 질러댔다. 아내는 그 소리에 더욱 겁을 먹었다. 치매에 걸린 노모는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노모의 비명이 듣기 싫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들은 지난밤 도둑처럼 울타리를 넘어들어와 경고장을 꽂아두었다. 어쩌면 발부리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밤의 신작로에 숨어서 그가 귀가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숨어 있는 집행인을 쏘아보듯 마을 어귀로 이어지는 긴 신작로를 내려다보았다. 경고장을 꽂아놓은 사람이 아직 마을에 남아 그들 가족이 놀라는 꼴을 훔쳐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을은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았다. 단층주택의 가장들이 도시로 출근하기 위해 일제히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들은 날마다 비슷한 시각에 차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 시각에 나가지 않으면 대개 9시로 정해진 직장의 출근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가장들이 탄 차가 순서대로 신작로 너머로 사라졌다. 그중에는 그의 차와 차종은 물론 색깔까지 똑같은 차가 서너 대 끼여 있었다. 다른 때라면 그 역시 고속도로로 향하는 행렬에 섞였을 터였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서기 위해 같은 시각에 잠에서 깨어났고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비슷한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에게는 졸음이나 식욕, 성욕 따위도 시간을 지키며 찾아왔다.

아내들이 울타리에 기대서서 출근하는 가장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내들이 들어간 뒤에도 차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신작로 쪽을 쏘아보았다. 이른 아침의 신작로에는 산 쪽에서 내려온 안개가 희미하게 떠돌고 있을 뿐 경고장을 문틈에 끼워둔 이들이 숨어 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안개 너머로 고속도로의 방음벽이 드러났다. 방음벽이 있어도 덜컹거리는 차 소리는 고스란히 들려왔다. 과적 화물차나 트레일러가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신작로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는 듯이 미세하게 떨렸다.

봉투는 텅 빈 것처럼 얇았다. 그는 이깟 얄팍한 편지 한통 때문에 일상이 어그러진 것이 못마땅했다. 편지가 아니라면 이미 신작로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봉투 상단에 고딕체로 인쇄된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럴수록 그 이름들이 낯설게 느껴졌고, 그런 느낌 때문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파산은 온전히 그의 탓이었다. 언제고 집행을 알리는 통지서가 도착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경고장을 받고 나자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올랐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뭐란 말인가.

그는 봉투를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안에 든 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봉투째 갈기갈기 찢었다. 그의 이름과 주소, 붉은 글자의 경고문과 집행 날짜, 집행인의 이름이 여러 조각으로 나눠졌다. 깜짝 놀란 아내가 그를 쳐다보았다. 비명을 지르던 노모도 그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치마폭에 매달려 있던 아이도 그를 보았다. 아이는 이유도 모르고 분위기에 짓눌려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가 멍한 얼굴로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가족 중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편지를 찢는 그의 얼굴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호해 보였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태도는 묘하게도 아내를 안심시켰다. 아내는 그의 단호함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라고 해서 편지를 찢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그는 편지를 찢자마자 곧 후회했다. 집행인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알 도리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찾아가 집행을 미뤄달라고 부탁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자신이 후회하고 있는 것을 들킬까봐 찢어진 편지 조각들을 화장실 변기에 넣었다. 물을 내리자 여러 조각으로 찢긴 경고장이 소용돌이치며 빨려내려갔다. 쿨렁거리며 종이를 삼킨 변기에는 다시 말간 물이 고였다. 그는 여전히 떨리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어 감췄다.

그들은 언제 오는 거예요?

아내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거실의 커튼을 걷었다. 미처 철거되지 않은 공장 굴뚝이 드러났다. 마을은 중화학 공장 단지를 폐기한 자리에 들어섰다. 택지 조성을 하느라 공장이 철거되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건물 일부와 굴뚝이 남아 있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이 보였다. 야산 쪽에서 내려온 안개이거나 흩어진 구름일 것이다. 가동되지 않는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 없었다. 안개가 걷힌 신작로는 텅 비어 있었다. 아침 햇살 때문에 집 안을 떠도는 먼지들이 내비쳤다. 아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그것이 햇살 때문인지 그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인지 집행이 시작된다는 경고 때문인지 헛갈렸다. 그는 알 수 없다는 듯이 아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내는 침울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분명한 것은, 그는 햇빛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아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조만간 이 집에서 내쫓기게 된다는 거야.

그는 자신이 완전히 파산하였으며, 두말할 나위 없이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죽어서도 갚을 수 없을 정도의 빚이 있었다.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에게도 돈을 빌릴 수 없을 거였다. 손을 벌릴 가족이나 마땅한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돈을 빌리기 위해 파산의 이유를 장황히 설명하고 훈계를 듣는 것은 성가신 일이었다. 참고 훈계를 듣는다고 해도 돈을 빌리지는 못할 것이다. 몇가지 생각이 어수선하게 떠올랐으므로 그는 일의 순서를 정리하고 싶어졌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이라고 중얼거리다가 자신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해야만 했다. 파산통보를 받은 날까지 시간에 맞춰 서둘러 출근을 해야 하느냐는 자조어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돈을 벌어봤자 그들에게 다 빼앗길 테지만 일상을 지키는 것은 중요했다. 힐끗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때라면 이미 톨게이트 근방에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이렇게 늦어진 것은 다 그들이 보낸 경고장 때문이었다.

집행이 시작되려면 조금 여유가 있을 거야. 그동안 살 집을 마련하면 돼. 구겨진 검은 구두에 서둘러 발을 꿰어넣으며 그가 말했다. 구두는 안쪽 굽이 닳아서 조금만 걸어도 허리가 아팠다. 아내는 대꾸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내를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집행은 경고장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되어 이후 파산자의 재산을 압류하는 적법한 절차를 거칠 것이었다. 집행인이 언제 들이닥칠지 그로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쩐지 집행이 늦춰질 것이며, 그사이 새로운 주거지를 찾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 모로 보나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마을 어귀까지 내려오면서 열네 채의 집을 지나쳤다. 마을에는 모두 스물두 채의 집이 신작로를 따라 야산 방향으로, 이웃집의 채광을 방해하지 않도록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늘어서 있었다. 입구 쪽에 첫번째 홋수의 집이, 야산에 가까워질수록 높은 홋수의 집이 있었다. 그에게 주택단지를 소개한 중개인 Y씨는 마을 뒤편의 산 때문에 풍광이 좋아 입주민이 몰렸다고 했다. 야트막하기는 하지만 인근 소도시 사람들이 개암나무 열매나 밤을 주우러 몰려들 정도는 된다는 거였다. 그가 보기에는 그저그런 평범하고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했다. 신작로 쪽에서 보면 야산은 듬성듬성 소나무숲을 이루고 있었다. 곳곳에 나무가 민둥민둥한 자리가 보였는데, 그런 자리에는 흉터처럼 낮은 무덤이 누워 있었다. 더 많은 무덤이 야산 곳곳에 숨어 있을 거였다. 그는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산은 정해진 길이 없는 숲을 품고 있는데다 불쑥불쑥 무덤을 숨겨놓았다. 등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내려올 거 뭐 하러 힘들게 올라가나 하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는 걸 알았으므로 사람들에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집들은 얼핏 목조인 듯 보였으나 실은 철제 뼈대를 세워 지은 것이었다. 철제는 목조에 비해 평당 건축비가 훨씬 쌌다. 집터를 고르고 나자 집을 짓는 데는 열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조립식 자재를 사용하여 거대한 레고 블록을 쌓듯 모서리를 맞춰 나사를 조이고 자재를 끼워넣는 게 공사의 전부였다. 그렇게 지어진 탓인지 집은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공산품처럼 똑같아 보였다. 자세히 보면 창의 위치라든가 외벽의 모양이 조금씩 달랐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똑같다고 말할 수 있었다. 흰 자갈이 깔린 마당에 파라솔이 놓이고 낮은 화단은 격자형 울타리로 감쌌다. 똑같은 크기의 새장 모양 우체통이 울타리의 미닫이문 옆에 세워졌다. 날씨가 좋은 주말 저녁이면 이웃들은 대개 파라솔 밑에서 비슷한 부위의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들 가족은 상추쌈을 입에 넣다 말고 눈이 마주친 이웃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웃들도 파라솔 아래에서 비슷한 각도와 횟수로 손을 흔든 다음에야 상추쌈을 입에 넣었다.

그가 입주를 결심한 것은 단독주택을 갖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살았던 삼층 연립주택은 입주자가 많아 늘 부산했다. 산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집 뒤에 산이 있다는 것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야말로 전원에 산다는 의미이며 도시를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도시를 벗어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리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도시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도심지라 할 만한 곳에서 산 적도 없었다. 태어난 곳이나 성장기를 지낸 곳, 결혼하여 살림을 낸 곳은 다 도심 외곽의 변두리였다. 도심 한복판에 산 적도 없고 도시를 떠나본 적도 없다는 점에서 그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었다.

차가 신작로를 벗어나자 개 짖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마을 인근에는 개 사육장이 있었다. Y씨는 사육장이 무허가이므로 부지가 곧 관청에 편입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거라고 했다. Y씨는 관청 측이 사육장 이전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오히려 일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내는 사육장이 있다는 말에 이사를 꺼렸다. 그는 사육장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사육장의 개들이 서로를 물어뜯어 죽일 정도로 사납더라도 그들 가족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게 없었다. 개들은 비좁은 철창 안에서 같은 먹이를 먹고 비슷한 시간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날 것이며,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팔리고 종내에는 처참하게 그슬려 죽을 것이었다. 아무리 사납더라도 죽기 위해 팔리거나 철창 안에서 죽기 전에는 절대로 사육장을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시끄럽게 짖어대는 게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정도야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줄곧 살아온 도시에서는 소음이 침묵보다 일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개 짖는 소리는 참기 힘들 정도였다. 사육장에서 키우는 모든 개가 한꺼번에 짖어대는 것 같았다. 일단 몇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수백 마리는 될 법한 개들이 일제히 짖었다. 소리는 하루종일 멈추지 않았다. 입주민들 사이에 사육장에서 투견을 기른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것말고도 사육장에 관한 소문은 많았다. 사납게 기르기 위해 일부러 먹이를 주지 않는다거나, 개와 멧돼지를 한 철창에 가둬놓고 흘레붙인다는 것이었다. 사육장이 실은 도살장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사육장 인근의 땅이 유난히 붉고 근방에서 짙은 피 냄새가 느껴지는데, 그게 도살의 증거라는 거였다. 사육장 주인이 입주민 중 하나라는 말도 떠돌았다. 그 때문인지 아내들은 이웃집 여자에게 남편의 직업이 뭐냐고 묻고는 했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사육장에 가보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종종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개 짖는 소리는 사육장이 아주 먼 곳에 있는 듯 아득하게 들리기도 하고, 바로 이웃집인 듯 가깝게 들리기도 했다. 그나마 고속도로의 화물차 지나가는 소음과 방바닥에서 울리는 기계음에 섞였기 때문에 정확한 방향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미 출근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른 때라면 사무실에 앉아 느긋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의 늦은 출근을 염려하며 전화를 걸어주는 동료는 없었다. 그는 높은 파티션 때문에 동료들이 그의 자리가 빈 것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전에는 중요한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안건이 뭐였는지 떠올려보려 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다. 안건은 포스트잇에 적혀 모니터 한구석에 붙어 있을 것이다. 그는 안건조차 잊어버릴 만큼 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회의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들어간다 해도 그는 회의 내내 별다른 의견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부서장한테 머리통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느냐는 비난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자 더욱 초조해졌다. 차선을 바꿔 속력을 높여볼 생각으로 핸들을 돌렸다. 갑자기 요란한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얼른 원래 차선으로 돌아갔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규정속도를 지키는 소심한 운전자 중의 하나였다. 그는 고속도로가 무서웠다. 출근할 무렵이면 유독 트레일러나 총중량을 짐작할 수도 없는 거대한 화물차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을 냈다. 화공약품이나 기계 따위를 잔뜩 실은 트레일러가 뒤따를 때면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의 고속도로가 과적화물차 천지인 줄 알았다면 그는 도시를 떠나지 않았을 거였다. 규정속도로 낮추자 뒤에서 다시 클랙슨이 울렸다. 싸이드미러를 보고서야 유람선만큼이나 커다란 화물차가 바짝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화물차는 곧 차선을 바꾸어 그를 앞질러갔다. 그는 화물차의 꽁무니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에는 트레일러 한대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아예 갓길로 차를 빼고 트레일러가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차를 출발시켰으나 잠시 뒤에는 또다른 화물차가 다가왔다. 그는 할 수 없이 다시 차를 뺐다. 그런 식으로 몇차례나 갓길을 들락거리고 나서야 비로소 도시로 들어가는 톨게이트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여직원에게 통행료를 지불하면서 차창을 열어 친숙하고도 익숙한 도시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는 폐로 들어오는 도시의 공기가 반가웠다. 도시에서 그의 집은 강의 북쪽 끝에 있었다. 북쪽 끝이라고는 해도 미세먼지 측정도나 소음 측정도, 인구 밀집도에 있어서는 행정구역 안에서 손꼽히는 곳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먼지가 들끓고 소음이 끊이질 않으며, 거리를 지나다니면 모르는 사람의 어깨에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인 도시다운 곳에서 살아왔다. 그중에서도 그의 집은 연립주택이 밀집한 주택가였다. 그는 융자를 얻어 삼층짜리 연립주택을 샀다. 지하까지 몇세대의 세입자를 들였어도 융자는 만원짜리를 깔아 바닥 장판을 해도 될 만큼 많았다. 아이를 키워 대학에 보내려면 정년이 되도록 갚아도 다 못 갚을지도 몰랐다. 이자는 갈수록 늘어났고, 융자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집채만큼이나 커다란 융자에 허덕였지만, 집을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에게 전원주택 단지를 권한 것은 Y씨였다. 그는 원래 삼층 연립주택의 융자 때문에 이사는 엄두도 못 냈고, 전원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전원주택은 연립주택 매입자에게 기존의 융자를 넘기고, 집값의 절반도 넘는 융자를 다시 받아야 살 수 있을 만한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이사를 결심한 것은 Y씨가 전원주택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인의 꿈이 아니겠느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도시인이라면 선뜻 그렇다고 대꾸했을 거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나야말로 굴뚝이 달린 경사진 지붕의 새하얀 단층집이 꿈이었다고 가슴을 탕탕 내려치며 대꾸했다. 그러자 정말로 전원에 사는 것이 자신의 오랜 꿈인 양 여겨지기 시작했다. Y씨가 낮은 목소리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원주택이라는 게 왜 죄다 그 모양이냐고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 파란 하늘을 가벼이 떠돌고 있는 흰 구름이 피어올랐다. 흰 자갈이 깔린 정원의 화단에는 계절마다 다른 꽃을 심을 것이다. 집 뒤 텃밭에서 푸른 상추와 붉은 고추를 거둘 수도 있으리라. 이사를 결심한 그는 회사 동료들에게 전원주택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인의 꿈이 아니겠느냐며 큰소리쳤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객쩍음을 느낄 새도 없이 그는 자신의 집이 산을 배경으로 한, 경사진 지붕의 새하얀 단층집이라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허둥지둥 사무실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서도 그가 늦었다는 걸 알아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옆자리 동료가 지나가는 말로 어제 과음했어?라고 물었다. 그게 다였다. 모두들 자기 업무로 정신없이 바빴다. 부서장은 전산으로 처리되는 출퇴근시간이 주 단위로 보고될 때에야 그가 지각한 걸 알게 될 거였다. 오전으로 예정된 회의는 부서장 사정으로 오후로 미뤄졌다. 그는 그 틈을 타 회의 안건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려고 했다. 몇가지가 떠올랐으나 죄다 신통치 않았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무시될 거였다. 중요한 안건일수록 회의는 요식행위일 때가 많았다. 필요한 사항은 이미 회의 전에 다 결정되어 있게 마련이었다.

낮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오후로 미뤄진 회의는 결국 다음주로 연기되었다. 그는 일하는 틈틈이 주식시장의 변동을 살폈다. 주가가 올라가면 주식을 사지 않은 걸 탄식했고, 주가가 내려가면 경제가 왜 이 모양이냐는 탄식을 했다. 가지고 있는 주식이 있을 리 없었다. 단지 습관이었다. 옆자리의 동료와는 입주자를 모으고 있는 신도시에 대한 얘기를 한참 동안 나눴다. 동료는 진지하게 청약을 고려중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는 전원주택도 일종의 기획형 신도시에 가깝다고 말했다. 동료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획일적인 아파트가 지겹지 않느냐고 동료를 떠보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그런 어조는 뜻밖이었다. 그는 아파트에서 산 적이 한번도 없었다.

퇴근시간이 되자 일을 마친 동료들이 차례로 떠나갔다. 그는 지각한 탓도 있고, 업무도 많이 밀렸기 때문에 야근을 했다. 일이 아니라고 해도 도시의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게 좋았다. 그는 늦은 밤의 텅 빈 사무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전쟁을 끝낸 광장에 시체처럼 쌓여 있는 문서더미들, 정돈되지 않고 어지럽게 널려 있는 회의실 의자들, 회의 내용이 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널찍한 화이트보드, 아직 빨간 불이 반짝이는 커피메이커까지. 동료들이 일을 끝내고 퇴근한 게 아니라 볼일을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운 것처럼 보였다.

집에 돌아가기 전, 그는 창가로 가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건물마다 켜진 불이 밤의 도시를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도시가 좋았다. 특히 도심지 한복판의 빌딩 안에서 맞는 밤이 좋았다. 건물을 밝힌 불빛은 아름답고 포근했다. 그중에서도 그는 야근을 하는 밤중에 앞건물에 켜진 환한 형광등 불빛을 좋아했다. 그 불빛으로 앞건물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앞건물은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불 켜진 사무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망원경으로 앞건물 사람들이 무슨 일로 사무실에 남아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늦은 밤에도 그들을 찾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팩스번호를 눌렀다. 문서절단기에 종이를 밀어넣는 사람도 있었고 진지한 얼굴로 회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여직원들도 있었다. 그는 창가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앞건물 사람과 눈이 마주쳐 머쓱해지고 나서야 창가를 떠났다.

고속도로를 두 시간이나 달려야 도착하는 마을은 암흑 자체였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집으로 가는 신작로까지 가로등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차가 뿜어내는 전조등 불빛이 유일하게 길을 밝혔다. 그는 산의 어둠이 그렇게 짙은 줄 새삼 깨달았다. 늦은 밤, 마을로 들어설 때면 산은 덩치 큰 개처럼 시커멓게 누워 있다가 재빨리 짙은 그림자를 내밀었다. 그나마 의지가 되는 것은 사방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마을에 제대로 들어섰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개 짖는 소리를 따라 고속도로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왔고, 어두운 신작로를 더듬거리며 집을 찾았다. 개들이야말로 마을의 유일한 가로등이자 보안등이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파리한 얼굴의 아내가 문 뒤에 숨어 있다가 나왔다. 그는 아내가 왜 숨어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온 줄 알았어요.

아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하루종일 그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파산에 이른 자신에게 곧 집행인이 들이닥칠 것이며, 그리하여 이 집을 빼앗길 것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잊기 위해 여러가지로 애를 쓰고 다른 궁리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도시에서 그런 것은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여러 군데의 거래처에서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고, 파산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주식과 부동산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보니 파산과 풍요가 헛갈리기도 했다. 도시에서라면 그들을 맞는 데 좀더 담담했을지도 몰랐다. 그는 도시를 떠난 것을 후회했다.

그는 겁에 질린 아내를 달래 먼저 재운 후 어두운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깊숙한 땅속에서 기계가 웅웅거리며 작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공장을 철거하던 당시 소음이 심한 기계를 땅속에 묻어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방바닥에서 들려오는 기계 소리에는 어느새 인근 사육장의 개 짖는 소리가 섞였다. 그는 개들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컹컹 낮게 짖었다. 간간이 화물차들이 바람처럼 빠르게 고속도로를 지나갔다. 그럴 때면 신작로의 미세한 균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차츰 집이 거대한 기계처럼 느껴졌다.

 

몇대의 트럭이 신작로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아내는 낯선 차 소리를 듣자마자 안절부절못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보며 덩달아 겁을 먹었다. 그도 트럭을 보는 순간 집행인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새로운 입주민이 들어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사하기에 적당한 휴일이었다. 그는 이런 평화로운 휴일을 더는 갖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트럭이 집 쪽으로 가까워올수록 아내는 점점 핏기를 잃었다. 그는 집행인들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집을 내주리라고 생각했다. 소동을 부려 파산 소식이 이웃들에게 알려지느니 이사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나았다. 여섯 대의 트럭이 요란한 소리로 덜컹거리며 그의 집을 지나쳤다. 트럭들은 짐칸 가득 철창을 싣고 있었다. 촘촘히 높게 쌓인 철창이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아내는 트럭이 야산 쪽으로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서야 경직된 얼굴을 풀었다.

그는 집행인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해하느니 차라리 먼저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다가 이웃집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와 사내는 어색해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제야 자신보다 위쪽에 사는 집의 주인들이 모두 그와 비슷한 자세로 서서 트럭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아래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집들이 유선형으로 휘어진 신작로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단독주택의 주인들은 모두 마당으로 나와 혼자서 혹은 가족과 함께 트럭이 사라져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그는 특별히 놀라거나 경악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지켜보는 게 관심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는 건 오히려 그를 깊이 안도하게 했다. 그는 전원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도시 사람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도시에 익숙한 이웃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열네 집이 차례대로, 마치 카드 兒션을 하듯 순서대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는 그런 질서가 좋아서 입술을 끌어당겨 웃었다. 이웃들도 일제히 제조품처럼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트럭이 사라지자 아내는 안심한 듯 고무공을 가지고 아이와 마당으로 나왔다. 치매에 걸린 노모가 아내를 따라 나왔다. 하체는 벌거벗은 채였다. 아내가 황급히 노모를 감싸안았다. 노모는 신음소리를 내며 아내의 팔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화단에 물을 주기 위해 호스를 집어들었다. 수압이 낮은 탓에 물이 졸졸 새어나왔다. 어쨌거나 다행이야. 호스를 흔들어 물을 뿌리면서 중얼거렸다. 스스로도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언제고 집행인은 올 거고, 그로 인해 모든 일상적인 삶은 엉망이 될 거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그의 발밑으로 공이 굴러왔다. 그는 호스를 내려두고 아이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아이가 다시 그를 향해 공을 찼다. 공은 잘 튀어오르지 않았다. 공이 발에 닿을 때마다 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아이를 따라 웃었다.

아이와 그의 웃음소리가 개 짖는 소리에 묻혔다. 개 짖는 소리는 마을의 배경음이라 할 정도로 늘 있어오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 소리가 유난히 생경하게 들려왔다. 몇마리의 개가 야산 쪽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개들은 무엇인가에 쫓기듯 다급하게 짖어대며 달려왔다. 짖는 목청만으로 얼마나 사나운 놈들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느닷없는 개 소리에 아이가 울타리에 매달렸다. 그는 아이에게 개들이 사나우니 집으로 들어가라고 일렀다. 신작로로 접어들어 정체가 분명해진 개들은 부스럼이 인 살갗에 뭉텅뭉텅 털이 빠져나간 자리가 선명했다. 마을에는 개를 키우는 집이 없었다. 사육장의 개들일 거였다. 그는 불현듯 사육장이 야산 너머에 있는 모양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동안 개 짖는 소리가 워낙 사방에서 정신없이 들려왔기 때문에 사육장이 어느 쪽에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이가 고무공을 바깥으로 던졌다. 공이 신작로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이가 공을 잡으려고 순식간에 울타리를 넘었다. 그가 깜짝 놀라서 아이에게 달려갔다. 개들이 그보다 먼저 아이에게 닿았다. 아이는 꼼짝 못하고 개들에게 포위당했다. 개들이 아이 몸에 사나운 이빨을 박아넣었다. 그는 침착하려고 애썼다. 생각과 달리 몸이 후들거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개들을 후려칠 만한 몽둥이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당황한 나머지 눈이 흐려졌다. 우선 닥치는 대로 마당에 깔린 자갈을 개들에게 내던졌다. 아무리 맞아도 아프지 않을 거였다. 그는 절망적으로 개들을 향해 소리질렀다. 비명소리를 듣고 놀란 아내가 뛰어나왔다. 그 뒤로 벌거벗은 노모가 달려나왔다. 개들은 좀처럼 아이를 놔주지 않았다. 아내가 집 안으로 들어가 아이가 쓰는 야구방망이와 자루가 긴 빗자루를 꺼내왔다. 가벼운 알루미늄 방망이였지만 그는 닥치는 대로 개들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을 도와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잠갔을 거였다. 그도 진작 아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는 그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의 경솔함을 나무라듯 멀리서 수백 마리의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댔다. 아이를 물어뜯는 개들의 으르렁거림이 먼 데서 우는 개들의 울부짖음에 섞였다. 오늘따라 사육장의 개들은 왜 저렇게 짖어댈까. 그는 울 듯한 기분으로 방망이를 내려치며 생각했다. 자신의 방망이가 닿는 것이 개인지 아이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무턱대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개들은 아이를 지치도록 물어뜯은 후에 느릿느릿 신작로 아래로 내려갔다.

가슴과 팔뚝의 살점이 뜯긴 아이는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개에게 물린 자리가 붉게 부어올랐다. 아내는 아이의 몰골을 보자마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울고 소리치느라 정신이 없는 아내에게 담요를 가져오라고 일러, 아이를 조심스럽게 감싸고 차에 태웠다. 노모는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병원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무턱대고 신작로를 따라 마을 입구 쪽으로 내려갔다. 여섯번째 집 주인사내가 마당에 나와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는 사내에게 가까운 병원이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사내는 들고 있던 호스를 내려놓으며 다급하게 사육장 쪽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손을 들어 야산을 가리켰다. 그는 차를 돌려 야산 쪽으로 거슬러올라갔다. 혹시나 싶어 마당에 나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 열일곱번째 집의 사내에게도 병원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사내도 재빨리 사육장 쪽으로 가면 병원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다급한 이웃들의 말투에서 그들이 아이가 다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건성으로 고맙다고 말한 뒤 차의 속력을 높였다. 아이의 신음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그는 아이의 신음소리가 작아지는 것이 두려웠다. 아이를 때려서라도 비명을 지르게 하고 싶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아내는 계속 울어대고 있었다. 울음소리 때문에 길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한번도 사육장 쪽으로 가본 적이 없었다. 사육장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나침반과도 같은 개 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는 아내에게 조용히 하라고 일렀다. 아내는 울음을 삼키느라 계속 코를 훌쩍거렸다.

차는 어느새 야산 중턱까지 왔다. 신작로가 거기까지 이어져 있었다. 개들이 사방에서 짖어댔다. 그는 차를 멈췄다. 개들도 짖기를 멈췄다. 그가 멈췄던 차를 움직였다. 개들이 다시 짖기 시작했다. 개들이 짖는 것인지 그의 귀가 만들어낸 환청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여보, 지금 개 짖는 소리가 들려? 그는 귓가에 어른거리는 사나운 으르렁거림을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빨리 가기나 해요. 울먹이며 아내가 소리쳤다. 그는 울 듯한 마음으로 다시 서둘러 차를 몰았다. 개 짖는 소리에 묻혀 야산을 타넘었다. 야산을 넘어서니 그가 살고 있는 마을과 똑같은 종류의 주택단지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그의 마을이 그렇듯이, 새하얀 철제 단층주택들이 도미노 칩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마지막 주택을 눌러 쓰러뜨리면 단지 전체가 우수수 넘어질 것 같았다. 신작로는 마을 끝까지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그는 차를 멈추고, 마당에 나와 있는 한 사내에게 인근 병원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화단에 물을 주던 사내가 들고 있던 호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육장 쪽으로 가시면 큰 병원이 나옵니다. 그는 사내에게 사육장 쪽이 어디냐고 물었다. 사내는 헛갈린다는 듯이 잠시 사방을 둘러봤다. 사내는 사육장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가 야산 너머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가, 결국에는 그가 왔던 길을 가리켰다. 저 야산 너머예요. 저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는 절망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개들이 짖는 소리에 의지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아이는 잠자듯 고요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아내의 울음은 흐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아내를 따라 울고 싶어졌다. 화는 치밀어올랐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는 소리를 따라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갔다. 개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사납게 짖어대고 있었다. 개들이 워낙 사방에서 짖었기 때문에 자신이 북쪽으로 가면 사육장은 남쪽이 아닌가 생각되었고, 우회전을 하면 좌회전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그는 팔이 움직이는 대로 핸들을 돌렸다. 어떤 때는 개들이 짖는 소리가 좀더 가까워진 듯했고, 어떤 때는 희미하게 사라지기도 했다. 아이만 아니라면 사육장을 먼저 찾아가고 싶었다. 아이의 살점을 물어뜯은 개는 분명 사육장에서 기르는 것일 터였다. 철창에 갇힌 개들의 엉덩이를 후려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육장의 개가 아닐 수도 있었다. 어느 마을에나 버려진 채 배회하는 개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버려진 것들은 사육장에서 키우는 것보다 오히려 더 사나울지도 몰랐다. 그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그는 점차 자신이 찾는 것이 사육장인지 아니면 아이를 치료할 병원인지, 아이를 물어뜯은 개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신작로를 거슬러내려가다가 어느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고속도로로 접어든 이상 계속 달려야만 했다. 사육장이 야산 속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산을 타넘기만 했을 뿐, 산속의 다른 길을 찾아보지 않은 걸 후회했다. 신작로를 벗어나 야산 깊숙이 들어갔다면 사육장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후회를 할 새도 없이 개 짖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소리는 도시 전체가 사육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산만하게 흩어져서 들려왔다. 가까운 곳인 듯 크게 들렸지만 차창을 때리는 바람소리 때문에 방향은 여전히 짐작할 수 없었다.

뒤따르는 트럭이 차선을 바꿔 그의 앞으로 달려나갔다. 또다른 트럭 한 대가 덜컹거리며 그의 곁을 지나갔다. 고속도로에서 한번도 규정속도 이상으로 달려본 적이 없는 그는 앞서가는 트럭의 꽁무니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를 빨리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는 트럭을 따라가는 게 나았다. 다행스럽게 개 짖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그는 무심코 자신을 앞질러 달리는 트럭의 꽁무니를 올려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짐칸 가득 위태롭게 실려 있는 철창에 개들이 한마리씩 들어 있었다. 개들은 달리는 내내 그의 차를 내려다보며 컹컹 짖었다. 노모는 겁먹은 흰 눈동자를 크게 뜨고 몸을 덜덜 떨었다. 아내는 담요로 아이의 몸을 꽁꽁 싸매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여전히 숨을 죽이고 누워 있었다. 그는 개들이 컹컹 짖는 트럭을 쫓아 규정속도 이상으로 달리면서 종종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과연 사육장 쪽으로 잘 가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뒤쪽으로는 위협하듯 속도를 한껏 올리고 쫓아오는 차들뿐이었다. 그 차들이 어쩐지 아이를 문 개처럼 두렵게 느껴졌다. 어둠이 차들의 꽁무니를 따라 재빨리 쫓아오고 있었다.

그는 어느새 트럭을 쫓아 도시로 들어가는 톨게이트 입구까지 왔다. 톨게이트 너머로 보이는 도시는 불빛 하나 없이 시커먼 어둠에 잠겨 있었다. 여직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요금 정산표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그의 직장이 있는 도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불빛이 사라진 도시가 낯설어서, 여기가 도시인지 아니면 그가 사는 마을인지 헛갈렸다.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개 짖는 소리가 가로등처럼 그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는 그 소리를 따라 사육장 쪽으로 가기 위해 속력을 높였다. 언젠가는 길이 끝날 거였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달려가면 어딘가에 닿을 거였다. 그는 그들이 닿는 곳이 사육장 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