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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홍규

손홍규 孫洪奎

1975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사람의 신화』가 있음. munhac@empal.com

 

 

 

봉섭이 가라사대

 

 

우사가 무너지는 소리는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대낮이니 망정이지 한밤중이었다면 이 마을 노인네들은 전쟁이 터진 줄 알았을 거다. 점심 밥상머리에 앉아 있던 마을 사람들은 숟가락을 팽개치고 응삼이의 우사로 모여들었다. 눈은 어김없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다리를 다친 응삼이를 찾아냈으나 과연 자신들이 찾아낸 게 사람인지 혹은 사람을 닮은 소인지 잠시 헷갈려했다. 이게 시방 응삼이여, 응삼이가 키우던 소여? 종합병원으로 갈 건지 가축병원으로 갈 건지 언쟁을 벌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간당간당하더만 기어이 무너지고 말었네. 근디 응삼이는 뭐 헌다고 우사에 들어갔디야? 보상 노리고 그런 거 아녀? 설마 그러겄소? 두엄이나 내겄다고 들어갔겄지.

 

응삼이라는 사람이 있다.

‘전원일기’응삼이가 아니라 소싸움꾼 응삼이다. 응삼이는 본래 사람의 얼굴이었으나, 평생을 소와 더불어 살다보니 얼굴마저 소를 닮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응삼이와 더불어 사는 소들은 사람의 낯짝을 하고 있었다. 싸움소는 더욱 그러했다. 응삼이와 싸움소가 나란히 서 있노라면, 어느 게 사람이고 어느 게 소인지 아리송할 정도였다. 응삼이가 소싸움꾼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린 적은 없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소싸움꾼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소싸움 축제가 연례행사로 자리잡자 심심풀이 삼아 출전해보고 싶어 자신들이 기르던 소를 끌고 온 거였다. 대개는 단번에 응삼이에게 퇴짜를 맞았다.

몇번이나 말해야 알겄넌가? 사람도 날 때부텀 씨름선수가 될 놈이 따로 있드끼 소들도 싸움소가 될 만헌 놈이 있고 아닌 놈이 있는 것이여. 일소, 고기소가 따로 있는디 싸움소라고 따로 없겄넌가? 정 대회에 나가고 잪으면 진주, 청도, 의령, 이런 소싸움대회 구경 가보소. 예선에서 떨어진 놈들을 더러 내놓는 임자들이 있은게 그런 놈을 구해가지고 오소. 글먼 그때는 내가 조련을 시켜드릴랑게.

이런 핀잔을 들은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저녁 밥상머리에 앉아 낮에 들은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대체 자신에게 말한 게 응삼이였는지 혹은 그 옆에 있던 소였는지 헷갈려하게 마련이었다.

수십 평생 소잔등을 긁어준 응삼이의 손은 갈퀴나 다름없었고 손톱 하나가 오백원짜리 동전만했다. 두어 번 소발굽에 맞거나 쇠뿔에 받힌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자리가 양쪽 관자놀이 부근이었고, 그 자리에 두툼하게 죽은살이 오르고 물혹이 생겨 뿔이 돋은 것처럼 보였다. 머리칼마저 한차례 솎아낸 것마냥 건성드뭇하니 혹이 도드라져 보여 더욱 그러했다. 응삼이의 일과는 단조롭다. 싸움소들 산책이나 시키고 더러 녀석들끼리 싸움이나 붙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고작이었다. 아이엠에프 이후로는 소장수 노릇도 작파하였고 친분있는 이들의 거래에나 심심풀이 삼아 끼여드는 정도였다.

응삼이는 슬하에 일남이녀를 두었다. 첫째와 둘째도 사내였는데 병으로 잃고 셋째로 아들 하나를 건졌다. 그 아래 두 딸은 상고 졸업하고 전주와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푿소마냥 비쩍 마른 사내를 각각 꿰차고 그곳에 눌러앉았으니 걱정될 게 없었으나, 하나 남은 아들 녀석이 말썽이었다.

내가 이름을 잘못 지어준 거여. 봉섭이라, 섭이야 섭섭이가 생각나서 거시기해두 돌림자라 어쩔 수 없지만, 봉자 들어가면 난중에 부모봉양은 잘허겄지 했넌디, 자식새끼헌테 뭘 바란 것부터가 죄받을 짓이었던개벼. 콧구멍에 해삼 달고 댕기던 시절에야 이리 될 줄 몰랐지만 생각헐수록 이름자부텀 잘못 지어준 게 아닌가 싶더랑게. 응삼이의 상투적인 하소연이었다.

응삼이는 마누라를 먼저 보낸 뒤 사나흘 문고리 걸고 두문불출한 적이 있다. 그때 응삼이의 귀에는‘내가 평생을 사람허고 살았소, 소허고 살았소?’라는 죽은 마누라의 마지막 말이 매달린 채 떨어지질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응삼이는 소를 닮은 눈으로 눈물을 찔끔 흘렸는데, 마누라는 알쏭달쏭한 웃음을 띤 채 북망산으로 떠나버렸다. 마누라의 그 마지막 표정이 잊혀지질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무치던 응삼이는 비로소 삶이 무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마누라는 참 허망하게 떠나갔다. 채 십년 안쪽의 일이다. 아이엠에픈지 뭔지로 날벼락 맞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던 이들은 껑충 뛰어오른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기껏 키운 채소를 얼려 죽이거나, 하우스 안에 불을 피웠다가 통째로 홀랑 태워버리고 빚더미 위에 올라앉기도 했다. 우시장에선 반이 뚝 부러진 시세 탓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주인의 손에 이끌려 헛되이 말뚝에 묶였다가 되돌아가는 소가 많아졌다. 소를 팔아달라며 응삼이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으나 응삼이 역시 그 많은 소를 맡을 형편이 아니었다.

개장수들마저 동네에 들르지 않았다. 집집마다 개 서너 마리씩은 길렀는데, 사료값이 두배 가까이 오르자 그것마저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굶겨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사료를 대고 먹이긴 했다. 그러나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사람들은 에라 이놈의 똥개들, 사료값도 안 나오는 웬수들, 내가 먹고 말지! 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개를 잡았다. 마을에서는 개 패는 소리와 개 터럭 사르는 냄새가 그치지 않았다. 평생 먹고 남을 개고기를 그 한철에 다 먹어버렸다. 그래도 차마 제집 개를 먹을 순 없어, 처음에는 체면상이라도 다른 집과 개를 맞바꾸어 잡아먹기도 했다. 개 뒷다리 하나 양푼에 담아 마실을 나가는 건 흔한 일이었고 나중에는 누가 양푼만 들고 찾아와도 손사래를 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뉘집 개냐를 따지기는커녕 차라리 저 잡놈의 개가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기를, 누군가 몰래 잡아다가 소리없이 해치워버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응삼이는 식성도 소를 닮아 원체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많은 개장국을 처치하는 건 마누라의 몫이었다. 좋은 약도 지나치면 해로운 법인데, 제아무리 칠십 노인마저 벌떡 일으켜세울 개고기라 해도 허구한 날 먹어대니 좋을 게 없는 모양이었다. 어느날 새벽 댓바람에 우시장에 나갔다 돌아온 응삼이는 얼굴이 노랗게 질린 채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마누라를 보았다. 급체려니 했는데, 한 이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려, 서른다섯 해를 함께 살아왔으나 여전히 소와 살았는지 사람과 살았는지를 헷갈리게 하는 제 남편을 향해 당신이 정말 사람인지 소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곤 끝이었다.

 

봉섭이 돌아왔다. 이 난데없는 귀향이 처음은 아니다. 열일곱에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상경하여 나이트, 카바레 등등에서 웨이터를 전전하다가 스물하나에 돌아왔다. 봉섭의 첫번째 귀향이었다. 방위병으로 예비군 통지서 돌리던 시절에는 좀 철이 드는가 싶더니 소집해제가 되자마자 외양간에 있던 소 아홉 마리를 아비 몰래 우시장에 끌고 가 팔아넘기고 서울로 도망가버렸다. 그때 나이가 스물셋이었다. 봉섭은 아비인 응삼이와는 딴판이었다. 응삼이가 해가 갈수록 소를 닮아 속눈썹이 길어지고 우멍한 눈이 더욱 동글동글해진 반면, 봉섭은 눈초리가 점점 가늘어지며 위로 뻗쳐올라가고 원래 있던 쌍꺼풀마저 풀려 외꺼풀 눈이 되었다. 누군가 위아래로 쭉 잡아당겨 늘린 것마냥 응삼이의 얼굴은 길어지면서 갸름해졌는데 봉섭이의 얼굴은 턱관절만 기형적으로 자란 듯이 각이 지고 넓어져 전체적으로 너부데데해졌다.

봉섭은 소 판 돈으로 부천 소사역 부근에 통닭집을 차렸다. 소사역이 개통되기만을 기다려 삼년 남짓 버텼는데 역 개통을 코앞에 두고 더는 견디지 못해 두 손 탈탈 털어버리고 고향에 내려왔다. 봉섭의 두번째 귀향이었다. 그즈음 응삼이는 집 앞 텃밭을 다져 콘크리트를 타설한 뒤 철골을 세우고 슬레이트 지붕을 이은 우사를 만들어 소를 먹이고 있었다. 한쪽 벽만 블록으로 쌓고 뒤쪽과 나머지 측면은 새마을천으로 둘러놓은 것이지만 이전의 외양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제법 규모가 있는 우사였다. 봉섭은 이 우사에서 소 일곱 마리를 훔쳐 우시장에 팔아넘겼고, 이번에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시내에 삐삐다방을 차려 일년 남짓 사장 노릇을 했다. 그러다 아이엠에프로 세 내는 것마저 힘들어지자 보도방을 차려놓고 배달아가씨들을 그대로 불러와 매춘영업을 했는데 단속에 걸려 또다시 어디론가 도망갔다. 이러구러 봉섭의 사고 뒷수습을 하느라 응삼이는 있는 사람들에겐 호시절이었던 아이엠에프 때도 한몫 잡기는커녕 오히려 마누라만 잃고 만 거였다.

그즈음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 탓에 봉섭은 불심검문에 걸렸고 기소중지자임이 밝혀져 덜컥 잡혔는데 경제사범에 관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덕을 보아 벌금형으로 풀려났다. 그 뒤로도 한 오륙년 타지를 떠돌던 봉섭이 느닷없이 다시 폼 잡고 고향에 내려왔다. 그러니 이게 세번째 귀향인 셈이다. 사실 봉섭은 열흘 전에 이미 시내 모텔에 둥지를 틀고 궁리하다가 결국 제 신세 바꾸는 밑천은 아비의 소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고 고향 마을을 찾은 거였다.

고향집에 들어서던 봉섭은 흠칫 놀라 가슴이 오그라들 뻔했다. 마루 끝에 황소 한 마리가 걸터앉은 채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고개를 흔들고 다시 보니 그건 황소가 아니라 응삼이였다. 봉섭은 제 딴에는 기특한 인사를 했다.

아들 왔어라. 죽지 않고 살아 기신 걸 본게 그놈의 명줄 참말로 질기요. 오래오래 사시겄소. 제에길, 이게 사람인지 손지.

이런 자식을 기특하달 아비는 없었다. 응삼이는 소발굽 같은 주먹으로 봉섭의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봉섭은 분을 이기지 못해, 아니 원래 계획한 대로 다음날 새벽 우사에서 소 다섯 마리를 끌고 나와 우시장에 갔지만, 사정을 아는 중개인들이 거래를 트지 않아 날이 밝도록 소 한 마리 팔지 못했다. 두 손을 비벼가며 새벽 내도록 발만 동동 구르던 봉섭은 소머리국밥집에서 얼큰하게 취해서는 제가 가져온 소들의 고삐를 다 풀어줬고, 거래를 마치고 돌아가는 트럭들 사이로 마음껏 뛰어다니게 한 뒤 손뼉을 치며 껄껄껄 웃어댔다. 다섯 마리 소가 박신거리는 소떼와 트럭 사이를 비집고 다니니 우시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가운데 한 마리가 싸움소와 맞닥뜨렸다.

단 한번 뿔과 뿔이 부딪쳤을 뿐인데 뒤로 주르륵 밀려난 봉섭의 소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도망갔다. 싸움소가 뒤쫓아가자 당황한 녀석은 방향을 바꾸려다 그 사품에 중심을 잃고 벌러덩 나자빠졌다. 5백킬로그램의 황소가 불에 덴 강아지 새끼마냥 뒤집어져 소들이 내지른 똥오줌으로 질척거리는 우시장 바닥에서 바르작거리는 꼴은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새벽내 흥정에 시달린 거간이며 소 임자며 구경꾼들은 목이 부러져라 웃어젖히며 가래침을 뱉었다. 봉섭의 두 눈가가 살풋 떨렸다. 제 소가 아니라 꼭 자신이 그렇게 비웃음을,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만 같았다. 봉섭은 양손의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어 연신‘빽큐’라고 외쳤다. 빽큐는 봉섭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욕설이었다.‘빽’이라는 전통적인 욕과‘뻑큐’라는 수입산 욕을 더한 것으로 빽큐는 이를테면 퓨전음식, 크로스오버 음악, 계승과 혁신인 셈이다.

싸움소의 임자는 기특하다는 듯 제 소를 어루만져주었고 그 꼴을 보다 못한 봉섭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그자의 앞니 두 개를 날려버렸다—물론 그 탓에 봉섭은 소 한 마리 값을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날려버렸다. 분이 풀리지 않은 봉섭은 넘어지면서 다리를 상했는지 일어나려다 자꾸만 쓰러지는 제 황소의 뱃구레를 구둣발로 살천스럽게 걷어찼다. 그 바람에 쇠똥 섞인 진흙덩어리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녔고 주변의 구경꾼들은 우 뒤로 물러났다. 그때 봉섭은 황소의 눈물을 보았다. 그 허랑한 눈빛에 물기가 그득했다. 소가 우네. 봉섭의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런 눈물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봉섭은 샘골모텔 사백칠호 러브의자에 앉아 왜 자신의 손등이 시큰거리는지 생각하다가 이른바 빽큐를 재현해보았는데, 한창 열이 나서 욕지거리를 할 때는 몰랐으나, 이처럼 맨정신으로 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다른 손가락들을 쥔 채 가운뎃손가락만 곧추세우면 손등의 힘줄이 당기면서 찌릿하기까지 한 거였다. 그걸 한시간 남짓 해댔으니 손등에 무리가 가지 않을 리 없었다. 욕 안 먹고 사는 것도 힘들지만 욕하며 사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이렇게 봉섭이 중얼거리는 동안 밖에서는 싸그락 싸그락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응삼이는 소싸움꾼 이전에 소장수다. 응삼이가 소장수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내림이라 할 수 있다. 응삼이의 아비는 소몰이대회에 나가 우승한 경력이 있는 상머슴이었다. 이 소몰이대회는 당시에 꽤나 유명했으나 단 한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지주였던 최씨 집안에서 노마님의 칠순을 기념하는 의미로 잔치를 열었는데 소몰이대회도 그 잔치의 숱한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우승자에게 금송아지를 준다는 소문이 퍼져 고창, 장성, 김제, 부안, 순창에서까지 소를 몰고 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 우승자에게는 돼지 한 마리가 주어졌을 뿐이다. 소몰이대회가 열리던 날의 풍경은 이곳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멍에를 이고 달구지를 끄는 수백 마리 소가 먼지 풀풀 날리는 황톳길을 내달리는 광경이 어찌 장관이 아니었을까. 대회는 퍽 단순했는데 읍내 천변에서 출발하여 누가 먼저 최씨 집에 도착하느냐로 우승자를 가렸다. 다른 소들이 저마다 어깨싸움을 하며 황톳길을 내달릴 때 응삼이의 아비는 무지막지하게도 최씨 집 뒤란으로 닿는 산을 타고 넘었던 거였다. 어쨌든 그런 아비 탓에 응삼이 역시 어려서부터 소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목매기송아지의 코를 뚫을 때면 그 광경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기는 응삼이도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그의 아비가 응삼이의 손에 대꼬챙이를 쥐여주며 스스로 코를 뚫어보라고 하였다. 이제 갓 송아지 태를 벗은, 사람으로 치자면 개구쟁이 소년과 같은 어린 소가 응삼이를 보고 음매 울었다. 날카로운 꼬챙이를 왼쪽 콧구멍에 집어넣자 어린 소는 뒷걸음질치려고 버둥거렸다. 목에 감긴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아직은 박쥐 날갯죽지 같기만 한 여린 몬다위가 들썩거렸다. 콧구멍 사이로 거친 콧김과 콧소리가 빠져나왔고 두려움에 질린 소의 떨림이 대꼬챙이를 쥔 응삼이의 손까지 전해져왔다.

제대로 쑤셔라 잉. 단번에 못 뚫으면 소만 더 보깨니깐.

응삼이의 아비는 이렇게 말하며 채근했다. 응삼이는 질끈 눈을 감고 대꼬챙이 쥔 손에 불끈 힘을 주었다. 꼬챙이가 쑤욱 들어가는가 싶더니 허방에 빠진 듯 반 넘게 밀려나갔다. 응삼이의 미끄러지는 손을 아비가 잡았다.

이제 되았다.

응삼이는 꼬챙이를 놓고 자신이 방금 코를 뚫은 어린 황소를 넋 놓고 보았다. 두 귀를 쫑그리며 어린 황소는 나지막이 울었다. 응삼이의 아비는 능숙한 솜씨로 두 콧구멍 사이에 난 구멍으로 비자나무 코뚜레를 끼워넣었다. 응삼이는 허깨비 같은 팔을 들어 어린 황소의 잔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식구 다음간다고 히서 소를 생구라고 허는 거여. 사람 살자고 소를 멕이지만서두 사람 알아주는 건 사람이 아니라 요놈의 소여. 인자 요놈은 니가 멕여살려야 헌다. 머리를 틀어올린 마누라맨키로 보듬고 살어야 허는 거여. 알겄쟈?

어린 응삼이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첫정이 갸륵하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응삼이는 지성으로 소를 먹였다. 꼴을 베고 여물을 쑤고 두엄을 내고 짚을 깔아주고 잔등을 긁어주고 파리를 쫓아주었다. 응삼이의 소는 무럭무럭 자랐다. 대문니부터 빠지면서 앞을 틀더니 간니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응삼이의 소는 세 해를 더 자라 튼실한 나릅잡이 황소가 되었고, 응삼이 역시 겨드랑이 털이 싯누런 총각이 되었다.

그해 가을걷이가 끝난 뒤 어느날이었다. 응삼이는 읍내 싸전에 쌀섬을 부려놓고 돌아오는 길에 오래전 소몰이대회의 출발지였던 천변을 지나다가 소싸움을 구경하게 되었다. 축축한 모래밭 위에서 덩치 큰 소 두 마리가 겨루고 있었다. 붉은 머리띠를 동여맨 이가 도감인 듯 싸움을 주관하고 있었다. 구경만 하자 싶었는데, 보고 있노라니 제 소를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이 녀석이 과연 얼마나 싸움을 잘할지도 궁금했다. 다음 판을 기다리는 황소들 가운데 유난히 응삼이의 눈길을 사로잡은 덩치 큰 녀석이 호승심을 부채질한 것도 한 이유다.

응삼이는 달구지에서 소를 풀고 소싸움을 주관하는 도감에게 한판 어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도감은 응삼이의 소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응삼이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 한판만 붙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도감은 마지못해 그중 가장 약해 보이는 녀석과 한판 붙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왕이면 덩치도 크고 사나워 보이는 녀석과 붙어보기를 바랐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전문적인 싸움소들이 아닌지라 목치기, 배치기, 뿔치기, 들치기 같은 현란한 기술은 없었지만,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머리를 맞대고 밀어붙이는 모습에 절로 응삼이의 쥔 손에 땀이 났다.

잘헌다. 니가 구루마에 볏섬 댓섬을 싣고도 깔끄막을 내리막길맨키로 올라가는 놈인디 그까짓 놈헌티 밀릴 수야 없제!

응삼이는 흐뭇한 마음으로 팔을 뻗으며 제풀에 신이 나 떠들어댔다. 응삼이의 이마에 몽글몽글 땀방울이 맺혔다. 한 십여분, 그렇게 서로 이마를 맞대고 버팅기던 녀석들이 잠시 뒤로 물러날 즈음 상대편 소가 머리를 숙인 채 응삼이 소의 목덜미로 밀고 들어왔다. 양쪽으로 쫙 벌어진 옥뿔인지라 뿔에 당할 리는 없건만 응삼이 소가 주춤거렸다. 다시 이마를 맞댄 녀석들이 좀체 승부를 내지 못하자 도감이 싸움을 중지시켰다. 한창 흥이 오른 응삼이는 아쉬움을 접고 제 소의 이마와 그 이마에서 걸뜨려진 정치매를 훑어주고 손바닥으로 두 볼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소는 혀를 빼문 채 더운 숨을 내뿜었다. 연신 머리를 흔드는 품이 이상해 응삼이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제 소의 목덜미를 살펴보았다. 핏물에 젖어 엉겨붙은 터럭이 있으나 심한 출혈은 아니었다. 아까 삐끗했다 싶더니 그때 당했던 모양이다. 응삼이는 달구지에 소를 묶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응삼이는 소 임자들이 싸움에 나가기 전에 뿔을 낫으로 날카롭게 깎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응삼이는 소싸움판에 들렀다 왔다는 걸 숨긴 채 여느날과 다름없이 해떨어지자마자 잠들었고 다음날 새벽 아비의 호통에 깨어났다. 응삼이는 아비의 손에 귀를 잡힌 채 외양간으로 끌려갔다.

쟈가 왜 저런다냐? 엉? 니놈이 뭔 짓을 했간디 생때같던 놈이 어찌 저리 모가지가 퉁퉁 부어 있냔 말여?

응삼이의 소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응삼이의 아비는 퉁퉁 부어오른 소 목덜미를 낫으로 쨌다. 누런 고름이 핏물과 엉겨 지짐지짐 흘러나왔다.

황이 내린 거여. 차라리 속까장 찢어져서 피가 났으면 며칠 앓다 나을 것인디, 속에서 부어갖고 영 못쓰게 되아버렸다. 목댓줄을 상히서 암것도 못 먹을 거여. 어차피 골로 갈 녀석인게 가는 길이나 지켜줘라.

응삼이는 믿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평생을 이 소와 함께 살고, 함께 늙고, 함께 죽어갈 것이라 믿었던 거다. 이렇게 느닷없이 이별이, 죽음이 찾아오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객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던가. 응삼이도 소처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혓바닥이 까끌까끌했고 침만 삼켜도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밤이면 외양간에서 짚새기를 베고 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잤다. 억지로 소의 입을 벌리고 걸게 쑨 여물죽을 흘려넣어주기도 했으나 소는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고 콧구멍과 입으로 되쏟아내기만 했다. 사흘째도 마찬가지였고 나흘째도 마찬가지였다. 그 밤 응삼이는 목숨이 꺼져가는 소의 잔등을 어루만지며 자신을 저주했다. 응삼이는 저도 모르게 울다가 문득 생각난 듯 헛간으로 달려가 낫을 갖고 왔다. 어딜 가든 넌 인자 니 맘대로 가도 된다. 이렇게 말하며 응삼이는 코뚜레를 잘라냈다. 억지로 힘을 쓰는 바람에 제 손가락도 베었지만 아픈 줄을 몰랐다. 소야 소야 함께 가자. 응삼이는 미친놈처럼 이렇게 중얼거리며 소를 일으켜세우려 애썼다.

그런 제 젊은 주인의 뜻을 알기라도 한 듯 뻣뻣하게 굳어가던 소가 엉덩이를 치켜들고 후들거리는 뒷다리를 일으켰다. 앞다리를 일으켜세우던 소가 제 몸을 이기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그새 야위어 홀쭉해진 배가 훤히 드러났다. 그러나 소는 다시 한번 기운을 냈다. 응삼이는 힘겹게 네 다리로 서 있는 제 소의 온몸을 어루만지다가 그 등에 올라탔다. 눈부신 보름달이 노령산맥 위로 떠오른 밤이었다. 그 찬란하고 고즈넉한 달빛을 머리와 어깨와 등에 맞으며 응삼이는 집을 나섰다.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 기운을 낸 응삼이의 소는 절뚝절뚝 신작로를 걸어갔다. 동구 밖에 이르자 소는 천천히 주저앉았다. 제 등에 올라탄 주인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는 듯,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주저앉았다. 그리고 응삼이가 땅에 내려선 걸 확인하고서야 스르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응삼이가 첫정을 주었던 소는 길에서 죽었고, 그날 밤 응삼이는 소싸움은커녕 다시는 소를 먹이지도 않으리라 작심했다.

 

황소를 잃은 그해 겨울 들머리에 응삼이 또래의 사내들은 산판으로, 공사판으로 뿔뿔이 흩어져갔다. 더러는 양복기술을 배우겠다느니 학교를 다니겠다느니 하는 꿈을 품고 서울로 갔다. 그러나 응삼이는 문간방에 틀어박힌 채 나올 줄을 몰랐다.

소헌테 빚진 건 소헌테 갚아야제.

문간방 방문을 왈칵 젖뜨리고 내뱉은 곰보의 말이 응삼이의 폐부를 찔렀다. 채꾼을 구하던 소장수 곰보는 왕년의 소몰이대회 우승자인 응삼이 아비를 찾아왔다가 겨울 한철 부려먹겠노라며 응삼이를 데리고 간 것이다. 소몰이꾼이 된 응삼이는 그해 겨울을 곱다시 마방에서 지냈다. 신태인, 줄포, 고창, 부안, 김제, 익산, 순창, 남원은 물론이고 장성, 화순, 담양 저 멀리 음성, 진천, 제천까지 곰보를 따라다녔다. 적게는 서너 마리, 많게는 예닐곱 마리씩의 소들을 몰고 수십리에서 수백리 길을 다녔다. 곰보는 조랑말을 타고 다녔지만 응삼이는 걸어다녔기 때문에 매일같이 종아리가 복어마냥 퉁퉁 부었다. 그럴 때마다 응삼이는 낫으로 제 종아리를 째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해마다 찬바람이 불면 곰보가 응삼이를 데리러 왔다. 그렇게 곰보를 따라다니며 메어치고 후려치는 소장수들의 흥정 기술을 눈대중으로라도 익혔으련만 응삼이는 마방에서 짚과 여물을 챙겨주며 소를 돌보고 소를 몰고 이 장에서 저 장으로 돌아다니는 채꾼에 만족하는 듯했다. 응삼이 나이 서른이 되었을 무렵, 이미 그의 아비는 세상을 떠났고 그에게는 마누라까지 있었다. 자식복이 없는지 첫아이를 열병으로 잃었고 둘째마저 폐렴으로 잃었다. 모두 채 백일도 안된 아이들이었다. 소문은 그때 생겨났다. 공교롭게도 마누라가 아이를 낳을 즈음이면 응삼이가 곰보의 부탁으로 맡아 기르던 켤레소나 배냇소가 새끼를 낳았다. 그러니까 응삼이의 외양간에서 태어난 송아지들이 응삼이 자식들의 목숨을 대신 사는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이다.

응삼이 내외도 이 소문을 알고 있었으나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막상 세번째 아이가 들어서자 불안하기는 내외가 따로 없었다. 응삼이는 설마 하면서도 얼마 전에 들여놓은 새끼를 낳은 암소에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소문은 흉흉했다. 깊은 밤, 응삼이의 외양간에서 섬뜩한 소 울음이 들렸는데, 밧줄을 들고 그곳에서 나오는 응삼이의 마누라를 본 사람이 있다는 둥, 멀쩡한 송아지가 하룻밤새 그렇게 나자빠지는 게 될 법하냐는 둥 사람들은 응삼이네를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런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봉섭이는 별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고 그 뒤로 낳은 딸 둘도 잔병치레는 했을망정 큰 탈 없이 자라주었다. 하지만 봉섭이가 말썽쟁이가 되자 마을 사람들은 오래된 소문을 꺼내놓았다. 소를 죽이고 그 목숨을 대신 사는 녀석이라고 혀를 찼다. 아직 소년에 불과한 봉섭이였으나 그런 속닥거림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었다. 봉섭에게는 지긋지긋한 이야기였다. 경위야 어떻든, 사람 목숨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지 소 따위가 대신 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젊은 응삼이를 소몰이꾼으로 데리고 다녔던 곰보는 얼굴이 얽은 탓에 다른 소장수들이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고 인생 조지게 되는 계집질과는 담을 쌓았으나 대신 노름에 재미를 붙여 지냈다. 곰보의 말로는 여느 노름꾼과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응삼이는 계집질이고 노름질이고 전혀 흥미가 없었으나, 십수년간 억눌러왔던 소싸움꾼 기질만은 스스로도 어쩌지 못했다. 응삼이의 친척 가운데 부안에 사는 당숙부 되는 이가 있었다. 당숙부는 부안 우시장에서 쇠거간에 농락당해 헐값에 황소 세 마리를 넘겨주고 속앓이를 하던 차에 그곳에 들른 응삼이를 붙잡고 하소연하였다. 응삼이는 당장에 우시장으로 달려가 쇠거간과 한판 붙었는데 하필이면 그 작자가 소싸움을 즐기던 인물인지라 응삼이에게 내기 소싸움을 제안한 거였다. 한달 기한을 잡고 물러난 응삼이는 사흘 만에 제 눈에 쏙 드는 녀석을 찾아냈다. 장성사거리 우시장에서였다. 소 임자는 다습이라 하나 여듭은 되어 보이는 늙은 황소였다.

다습잽이? 그걸 말이라고 허요? 젖니는 한나도 없구 싹 다 간니구만. 고것만이면 여습잽이지만 요 아랫니들이 둥글둥글 갈아진 걸 본 게로 딱 여듭잽이구만. 부왕부왕헌 얘기 고만 허소.

소 임자는 제 황소의 나이를 눙치려다 응삼이가 단번에 무지르고 들어오자 씨우적씨우적 입맛만 다셨다. 그 세월 동안 쟁기질만 해온 게 틀림없으나 워낙 근골이 튼튼해 보여 조금만 다듬으면 좋은 싸움소가 될 듯했다. 가슴은 떡 벌어졌고 이마는 좁았으며 두 뿔은 크고 단단해 보였다. 무엇보다 네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품이 결연해 보인 게 마음에 들었다. 성질 사나운 찌러기가 틀림없었다. 응삼이는 그 앞에 선 채 잠시 노려보다가 헐거워져 아무도 고삐를 매지 않는 말뚝 하나를 뽑아들고 녀석의 이마를 쿡쿡 찔러댔다. 이렇게 슬슬 약을 올리자 녀석이 콧김을 훅훅 내뿜으며 고개를 늘이고 성난 시늉을 하느라 길게 울었다. 응삼이가 눈짓을 하자 소 임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삐를 풀었다.

풀긴 푸오만 어찌 돼도 나는 모르오. 야가 얼매나 성질이 더러운지, 야헌테 받친 사람만 한 두릅은 될 것인게.

응삼이는 히물쩍 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디, 그 더런 승질 한번 맛 좀 보자!

아니나다를까. 녀석은 고삐에서 풀려나자 곧장 응삼이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구경거리를 놓칠 쇠전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응삼이와 황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늙은 황소는 무작정 떠밀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치켜뜬 채 응삼이를 노려보며 한발 한발 다가왔다. 그것만으로도 제법 휫손이 있는 녀석임을 알 수 있었다. 응삼이가 옆으로 돌아가자 녀석도 고개를 돌리며 경계를 했다. 응삼이가 잽싸게 늙은 황소 뒤편으로 돌아가자 녀석도 보기와는 달리 날렵하게 몸을 틀었다. 그 순간 응삼이와 황소가 부딪칠 듯 가깝게 닿았다. 응삼이는 재빨리 코뚜레를 잡아채 있는 힘껏 치켜올렸다. 제아무리 관록있는 늙은 황소라 해도 코뚜레를 이길 수는 없는지라 응삼이가 치켜드는 대로 고개를 쳐들 수밖에 없었다. 황소의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그 순간 응삼이는 나머지 손으로 주먹을 쥐고 그 목덜미를 세차게 때렸다. 황소가 쿨렁 소리를 내며 옴찔 떨었다. 가슴패기까지 출렁출렁거렸다. 응삼이는 다시 재빨리 황소 앞다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집채만한 황소가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철퍼덕 떨어졌다.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응삼이는 다시 황소를 노려보았다. 응삼이에게 달려들던 황소는 연거푸 나가떨어졌다. 서너 번 반복되자 황소가 도망치려 했다. 그제야 응삼이는 소 임자에게 눈짓을 했다. 소 임자는 고삐를 묶으며 혀를 내둘렀다.

응삼이는 그 소를 몰고 아예 부안 당숙부네 집으로 갔다. 그곳에 주저앉아 소를 먹였다. 약속한 기한이 되어 마을 앞 냇가에서 예의 쇠거간과 소싸움판이 벌어졌다. 상대방은 한눈에 보아도 싸움에 이골이 났음직한 칡소를 끌고 나왔다.

아따 저놈은 얼룩덜룩허니 범이 따로 없네. 저런 소를 어찌 이길라고!

사람들은 칡소와 황소를 비교해가며 칡소의 승리를 점쳤다. 과연 칡소와 황소가 마주서고 보니 덩치도 덩치려니와 그 몸피에서 뿜어져나오는 기가 달랐다. 선한 눈을 지닌 보통의 소와 달리 칡소는 눈매부터 날카로웠다. 그러나 결과는 늙은 황소의 승리였다. 응삼이의 당숙부는 막걸리를 내고 즉석에서 잔치를 벌였다. 누군가 응삼이에게 물었다.

아까 자네 황소가 밀릴 적에넌 내 가심이 다 벌렁벌렁허데. 근디 참말로 궁금허네. 저 범 같은 소를 이긴 비결이 뭐당가?

응삼이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지아무리 낙지네 찹쌀떡이네 개고기네 처먹이면서 몸보신을 시켜주고 뜀박질을 시켜줘도 소는 주인허고 맴이 통해야 허는 거여라우. 나넌 한달 동안 이놈허고 한시도 떨어져본 적이 없어라. 밥도 함께 묵고 잠도 함께 잤어라. 내가 헛기침만 해도 이놈은 내가 뭔 말을 헐라는지 알아묵지라.

사람들은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고 아닌게아니라 응삼이의 얼굴이 기적 같은 승리를 일군 늙은 황소와 닮은 듯도 하다는 생각들을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응삼이는 소장수 응삼이가 아니라 소싸움꾼 응삼이가 되었다.

 

봉섭이 팔지 못한 다섯 마리의 소는 고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 가운데 싸움소만으로도 모자라 봉섭의 발길질에까지 호되게 당했던 소는 사람으로 치자면 경기(驚氣)가 들려 우시장 근처 가구점 주차장에 개처럼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걸 응삼이와 친분이 있는 소장수가 발견하여 트럭에 싣고 왔다. 경기 들린 소가 도착했을 때 응삼이는 마루에 나앉아 되새김질을 하는 중이었다. 응삼이가 아무리 소와 구별이 힘든 인간이라 해도 위장이 네 개나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되새김질이라고 해봐야 끄윽 트림할 때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신물을 되삼키는 것에 불과하지만 입맛을 다시며 우물우물하는 꼴은 영락없는 되새김질이었다. 응삼이가 이처럼 되새김질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뜻밖에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가을, 뒷짐만 지고 있던 축산 관련 단체들이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농민회와 더불어 집회를 열었다. 새벽부터 고속도로 나들목 부근으로 트랙터며 경운기 들이 모여들었다. 이런 농기계들로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농민시위는 하나의 풍속도가 된 지 오래였다. 전경들이 진입로를 막고 있어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갓길에 농기계들을 세워놓고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농민들이 트랙터와 경운기를 몰고 전경들의 저지선을 뚫기 위해 돌진했다. 그때 한떼의 황소가 먼저 나타나 눈 깜짝할 사이에 저지선을 뚫고 매표소마저 통과해버렸다. 전경이며 농민이며 모두들 궁둥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뛰어가는 황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응삼이도 그들 틈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황소들은 사실 응삼이가 몰고 온 녀석들이었다.

신응삼씨, 뭐 허요? 저놈들이 고속도로 들어가면 대형사고 납니다. 얼렁 잡지 않고 왜 그러고 서 있소? 딴 냥반들은 다들 트랙터니 경운기니 몰고들 왔는데 왜 소는 몰고 와가지고 속을 썩이요?

응삼이와 안면이 있는 순경이 이렇게 말하며 어깨를 떠밀었는데, 그 순간 응삼이는 새우처럼 허리를 숙이며 토악질을 했다. 응삼이의 입가로 주르륵 멀건 타액이 흘러나오다가 후루룩 빨려들어갔다. 그러더니 그걸 다시 우걱우걱 씹어먹는 게 아닌가. 잠시 뒤 다시 토악질을 하듯 경련을 했고 목구멍을 넘어온 것들이 입속에 가득 찼는지 응삼이의 두 볼이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입안엣것들을 꿀꺽 삼킨 응삼이가 버럭 화를 냈다.

진드기 같은 새끼가 왜 사람을 떠밀고 난리여. 안 그리도 속이 껄쩍지근해서 죽겄구만.

다행히 응삼이의 황소들은 상행선 진입로가 아닌 하행선 진입로 쪽으로 달려갔고 때마침 요금소로 들어오는, 광주에서 온 직행버스와 마주치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뒤늦게 전경들이 달려가자 황소들은 난간을 넘어 논으로 들어갔고 그 와중에 몇마리는 데굴데굴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소들이 싸지른 쇠똥만이 진입로 여기저기에 빈대떡처럼 납작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어쨌든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사람도 되새김질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응삼이는 소 다섯 마리가 없어진 것도, 그게 봉섭의 짓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부탁을 받아 조련시키고 있는 싸움소들을 끌고 나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한밤중까지 아는 이들의 트럭에 실려 나머지 소 네 마리도 무사히 돌아오긴 했으나 어디 한 군데 상하지 않은 녀석들이 없었다.

그날 밤 봉섭은 샘골모텔 사백칠호 러브의자에 앉은 채로 상념에 잠겨 있다가 퀸싸이즈 침대로 자리를 옮겨 누웠다. 벌떡 일어나 서성거리다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그날 아침나절의 일이 떠올라 부아가 났다. 봉섭은 자신도 여태 몰랐던, 소싸움꾼 응삼이에게 물려받은 어떤 기질이 치솟는 걸 느꼈다. 모텔촌의 뒤편 후락한 동네 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자오록했다. 저 멀리 초산봉으로 오르는 길가의 가로등 불빛도 끄먹거렸다. 봉섭은 오스스 떨다가 창문을 닫고 텔레비전을 켰다. 호남지역 폭설주의보 등등의 자막이 지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종일 하늘이 찌뿌둥하더니 기어이 한바탕 퍼부을 모양이다. 이러다 계획이 어긋날지도 몰랐다. 곧이어 봉섭의 단골인 미인다방 희선이 왔다. 희선은 후텁지근한 방에 들어서는 순간 콧등을 찡등그리며 투덜댔다.

아유, 발 꼬랑내! 오빠 제발 좀 씻고 살어!

이런 잡년이! 김새게 들어오자마자 어따 대고 앙알거려?

봉섭이 주먹을 들이대자 희선이 손사래를 쳤다. 희선의 머리카락이 번들거렸다. 모텔로 오는 동안 내려앉은 눈이 녹은 물이다. 희선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침대에 누웠다. 둘은 의무처럼 한차례 일을 치르고 심야토론을 멀뚱히 시청했다. 저, 저 새끼들, 어떻게 된 것이 나 학교 댕길 때랑 달라진 게 없냐. 봉섭이 실기죽한 눈으로 한밤의 토론자들을 째려보며 투덜거렸다. 오빠가 학교나 제대로 댕겼간디? 희선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맞받았으나 돌아오는 건 욕설뿐이었다. 희선은 오늘밤 봉섭이 평소만 못한 건 다 자신이 앙알거려서라 여기고 봉섭을 달랠 양으로 난 오빠 땀내가 좋더라 어쩌고 하자, 봉섭이 침대 맡에 떨어져 있던 제 양말을 주워 희선의 얼굴에 갖다대는 통에 질색을 해야 했다.

그리서 니년은 대가리에 똥만 찼다는 것이여. 내가 춘삼월 호시절에 돈 좀 만졌을 적엔 말여, 만원짜리 뿌려놓고 목욕을 허며 잔 적이 있어야. 대갈통이 깨질 것 같아서 깼는디, 나도 그때 알았지만서두 돈 냄시가 바로 발 꼬랑내랑 똑같더란 말여. 속창아리 없는 년아, 뭐? 발 냄시? 돈 냄시는 좋아험서 어떻게 발 냄시를 싫어할 수가 있다냐?

이렇게 으르딱딱했으나 봉섭은 제가 싸지른 똥조차 황금으로 보이는 판국이니, 지갑에서 돈 냄새 아니 그놈의 발 냄새 맡아본 지가 오래였다. 희선은 제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참말로 여기서 발 꼬랑내가 나네! 숨 맥혀 죽어도 좋은게 만원짜리로 도배한 방에서 한번 자구 싶다, 어쩌구 수선을 떨었다.

 

응삼이는 방문을 열고 무릎까지 눈이 쌓인 마당을 내다보다 에취, 기침을 하고 문을 닫았다. 응삼이의 소를 닮은 길고 두툼한 혀가 묽은 콧물이 흘러나오는 콧구멍을 불풍나게 들락거렸다. 인중이며 콧구멍 주변이 침으로 번들거렸다. 연이틀 폭설이 내리면서 비닐하우스며 축사가 주저앉는 일이 생기자 싸움소를 맡겨둔 소 임자들이 와서는 제 소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아닌게아니라 응삼이의 우사도 주저앉을 기미가 보였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여기저기에 금이 갔고 쇠기둥들이 휘어졌다. 이대로 더 눈이 내린다면 조만간 주저앉고 말 것이다. 그 시각에 봉섭은 모텔을 나서고 있었다. 눈은 그칠 줄도 모르고 지겹게 내렸다.

지난 이틀 동안 봉섭은 도축업자를 따라 정읍만 아니라 고창의 젖소 목장들을 찾아가 죽거나 병든 젖소를 마리당 10만원에서 30만원을 주고 사왔다. 축사가 무너져 상한 소들도 많았다. 그렇게 모은 찔찔이들이 50여 마리에 이르렀다. 눈 때문에 기동성은 떨어졌지만 그만큼 단속의 위험이 적었다. 봉섭이 겉으로는 태연한 척 그러나 허겁지겁 세번째 귀향을 감행한 건 지난 추석 대목을 노린 불법 도축업자들의 일에 끼여들었다가 단속에 걸렸던 탓이다. 그때만 해도 봉섭은 그저 트럭이나 운전하는 신세였기 때문에 불구속으로 풀려났지만 막상 고향에 내려와보니 자신도 잘만 하면 한몫 잡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렇게 도축업자를 따라다니는 것도 실은 나중의 독립을 위해서다. 봉섭은 오늘밤이야말로 늙은 황소를, 아니 늙은 아비를 껍질째 벗겨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낡은 우사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그 안의 소들을 어디론가 옮겨놓지 않으면 깔려죽을 테니 응삼이도 별수 없을 것이다.

모텔을 나서니 골목이 하얗다. 봉섭은 부르르 한번 몸을 떨곤 모텔촌 골목을 빠져나갔다. 봉섭은 터미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축업자 문씨의 승용차에 올랐다.

왜 이렇게 늦었단가? 자빠져서 자고 있는 줄 알었네.

봉섭이 투덜거렸다.

우라질 놈의 눈이 아니라구?

문씨가 싱긋 웃었다.

눈이 아니었으면 자네가 나헌테 소 팔 맴이 생겼겄는가?

쉰소리 작작 허쇼. 이러다 못 가는 거 아녀?

걱정 말어. 도축장 들어가는 길은 포장도 되었고 댕기는 차도 없고 좋은게. 자네 동네는 어떤가?

내장산 톨게이트 생기고 다방년 종아리맨키로 쭉쭉 빠진 길 생긴 거 몰라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도축장이라고 가보니 한때 오리 따위를 키우던 보온하우스였다.

이런 엿 같은 데서 뭘 헌단 말여?

그래도 구색은 갖춰져 있었다. 문씨의 도축장은 위생검열에 걸려 한달 동안의 영업정지를 받았던 거다.

여태 안 걸리고 해온 게 신기허구만.

봉섭이 이기죽거리자 문씨가 자신의 수완을 자랑했다.

수의사 새끼 멫푼 찔러주면 벨 탈 없제. 정지 먹고 그밤으로다가 바로 장비들 옮겨서 시작했은게 손해 볼 거 하나 없어. 정지 먹자마자 퍼뜩 떠오르더만. 조류독감인가 뭣인가로 폭삭 망해번 성님의 하우스면 충분히 도축장으로 쓸 수 있겄더란 말여.

하우스 바닥은 우시장 바닥처럼 소들이 싸지른 똥오줌과 도축 과정에서 버려진 것들이 엉겨 있어 끈적끈적했다. 그것들이 봉섭의 구둣발 아래서 볼칵거렸다. 귀살스러운 풍경이었다. 비린내야 그렇다 쳐도 생똥 냄새는 참기 어려웠다. 도살되는 소들이 싸지른 똥오줌 냄새는 평소의 그것보다 고약했다. 환풍기가 여남은 개나 돌아가고 있으나 소용이 없었다.

찔찔이들은 이마에 타격총을 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놔두면 대개 알아서 죽었다. 상한 사료를 많이 먹어 뱃속에 가스가 차는 고창증으로 나자빠진 소들이겠지만 사실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병으로 죽으면 당장 폐기처분을 해야 하고 당국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광우병이니 브루쎌라니 언론에만 나오면 죽는 건 소가 아니라 소를 치는 사람들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밀도살업자에게 넘겨버리는 편이 그들로서도 나은 일이었다. 문씨가 전주에서 일당 오십만원씩에 불러들였다는 칼잡이들이 부산스럽게 부위별로 발라내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는 문씨가 운영하는 도축장에서 그대로 딸려온 이들이 바쁘게 포장을 하고 있었다. 죽은 소부터 도축을 했기 때문에 바닥에는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는 소들이 여러 마리 있었다. 예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는지 소가 죽기를 기다리지 못한 칼잡이 한 명이 길쯤한 타격총을 들고 다가왔다. 무광택의 검은색 도료를 입힌 타격총을 보는 순간 봉섭은 자신의 가슴에 한기가 지나가는 걸 느꼈다. 아니 숨을 몰아쉬며 죽음을 기다리는 늙은 젖소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몸통에서 잘려나간 소머리 수십 개가 천장에서 늘어뜨려진 갈고리에 걸려 있었다. 콧구멍을 갈고리에 꿰인 채 매달린 소머리 하나를 지그시 들여다보던 봉섭은 마치 제 아비의 대가리가 그렇게 매달려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에길, 내가 저놈들 목숨을 받아서 사는 거라구? 봉섭은 입안엣소리로 중얼거리며 도축장을 빠져나왔다.

 

문씨의 트럭은 내장산 나들목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에 서 있다. 거기까지만 소를 몰고 가면 끝이다. 우시장의 쇠거간들이 거래를 트지 않으니 도축업자에게 곧장 넘길 수밖에 없다. 봉섭은 가풀막진 밭둑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갔다. 눈 때문에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서너번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지붕에 눈을 잔뜩 인 채 위태롭게 서 있는 우사가 보였다. 봉섭은 우사 옆 에움길을 따라 집으로 갔다.

쩌그 석산저수지 가는 길에 겁나게 큰 하우스 하나 있는 거 아시지라? 거 왜 오리 우는 소리가 제트기 소리맨키로 크다고 그 동네 사람덜이 난리친 적 있지 않어라? 거가 감긴지 독감인지로 폐사되어갖고 비었는디 이백 마리도 거뜬히 들어갈 만큼 커라. 우사 무너지기 전에 빨랑 옮기지라. 하루에 오천원씩, 한달치 십오만원인디 십이만원에 쇼부치고 왔어라. 잘했지라? 제에길, 내가 소허고 말허는지 사람허고 말허는지.

예상대로 응삼이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마다 응삼이의 머리털이 하나둘씩 빠져 흩날렸는데 꼭 황소 터럭 같았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그 눈을 맞으며 응삼이와 봉섭은 우사로 향했다. 응삼이가 쇠기둥에 매미처럼 붙은 스위치를 누르자 구유 위에 매달린 두 개의 알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우사 여기저기에 앉아 있던 소들이 구유 쪽으로 몰려들었다. 부자는 별말도 없이 일일이 고삐를 매고 소를 우사 밖으로 몰아냈다. 이랴 이랴, 워 워, 소를 부리는 소리가 깊은 밤 눈길 위로 낮게 퍼져나갔다. 소 울음도 함께 떠다녔다. 봉섭이 우사를 들여다보니 소 두 마리가 아직도 묵새기고 있었다.

제에길, 말뚝도 아니고 왜 꼼짝을 안혀.

자세히 보니 소는 한 마리였다. 응삼이가 그 소 곁에 서 있었다. 봉섭은 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투덜거렸다.

이젠 아주 풀만 먹고 사셔도 암시랑 않겄어라. 그대로 사시면 난중엔 아예 소가 되시겄단 말이오. 글면 내가 철창에 가둬놓고 돈 받아감서 사람들 구경만 시켜줘도 떼돈 벌겄지라.

봉섭이 마지막 남은 소의 고삐를 쥐고 우사 밖으로 끌어내려 했으나 소는 꿈쩍도 않고 버텼다. 알전구 불빛 아래 드러난 녀석의 몸통은 다른 소들보다 컸다. 이런 소가 언제부터 있었나 싶었다. 그 소는 오래전부터 응삼이가 기르던 싸움소다. 털빛도 여느 황소보다 짙은 암갈색을 띠고 있으며 골격부터가 남달랐다. 응삼이와 오랜 세월을 지내다보니 그 낯짝도 사람을 닮았다. 응삼이에게 싸움소를 맡기러 왔던 사람들이 예외없이 이게 소인지 사람인지 헷갈려했던, 바로 그 소다. 사실 소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 서넛 들이박고 도망치는 건 퍽 쉬울 것이다. 그 힘을 누가 당할까. 이 녀석도 버티기로 마음먹었다면 제아무리 봉섭이 용을 써도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봉섭은 안달이 났다. 밖에 내놓은 소들도 그러려니와 문씨가 눈을 핑계로 그냥 가버릴지도 모른다. 성질 괴팍한 늙은이를 닮은 싸움소는 빈정거리기라도 하듯 콧김을 핑핑 내뿜었다.

뭐 허시오? 싸게 이놈도 끄져내야지.

그 말에 응삼이가 콧구멍 한쪽을 두툼한 엄지손가락으로 막고 나머지 콧구멍으로 코를 핑 풀었다. 그러고는 그 기다란 혀로 콧구멍을 핥았다.

그려, 가자, 봉섭아!

그 말에 싸움소가 움직였다.

제에길, 아들도 봉섭이 소도 봉섭이, 붙여줄 이름이 그렇게 없습디여?

이놈아, 소라고 함부로 말허덜 말어. 니 형님뻘인게. 너보담 먼저 시상에 나왔고 죽은 니 형들 이름도 둘다 봉섭이였어. 봉섭이가 너보담 일찍 시상에 나왔은게 형님 맞쟈? 낄낄.

우지끈, 우사 끄트머리 슬레이트 한 쪼가리가 기어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졌다. 그 소리에 놀란 싸움소가 우중우중 서 있는 소들 쪽으로 달려갔고 몇걸음 끌려가던 봉섭은 그예 고삐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응삼이가 봉섭아!라고 부르자 싸움소는 제자리에 섰다. 눈밭에 자빠졌던 봉섭이 벌떡 일어나 싸움소로 달려가더니 이단옆차기를 했다. 싸움소는 꿈쩍도 안했고 오히려 봉섭이 다시 눈밭에 철퍼덕 떨어졌다. 봉섭은 투지가 생긴 듯 벌떡 일어나 싸움소 앞으로 갔다.

야가 눈 오는 밤에 체조를 허네. 니가 진다에 십억 건다.

응삼이가 이렇게 말하며 되새김질을 했다. 약이 오른 봉섭은 싸움소를 노려보다, 이번에는 어쩐지 이놈이 자신을 닮은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고 보니 늙은 황소지만 제법 싸움판에서 놀아난 듯 만만치 않은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이 녀석이라면 사흘 전 우시장에서 당했던 조롱을 되갚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거리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문제는 녀석을 어떻게 길들이냐는 거다. 아비인 응삼이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다룰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자면 응삼이의 얼굴을 한동안은 봐야 한다. 오늘밤은 때가 아닌 듯싶다. 봉섭은 싸움소의 고삐만 쥔 채 나머지 소들을 몰고 갔다. 이건 숫제 봉섭이 소를 몰고 가는 게 아니라 싸움소가 몰고 가는 걸 뒤따라가는 꼴이다. 정말 빽큐다. 그래도 참자. 이 녀석이 이겨주기만 한다면야 형님 소리를 못할까. 신작로에 나서자 저 멀리 아스팔트길에서 문씨의 트럭 불빛이 움직여 떠나는 게 보인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그러나 대체 이 많은 소들을 어디로 옮겨야 한단 말인가. 가다보면 어디든 빈 하우스 하나쯤 있겠지. 봉섭은 이렇게 생각하며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젊은 응삼이가 그랬던 것처럼 소를 몰며 걸어갔다. 이랴 이랴. 봉섭의 맥없는 소리가 폭설에 잠겨들고 있었다. 산모롱이를 돌아갈 무렵 봉섭은 우사 쪽을 돌아보았다. 눈발에 가려 희미하지만 알전구 아래 아비인 응삼이가 쇠스랑을 쥐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쓸쓸하게 타박타박 걷는 황소 한 마리가 보였다.

제에길, 저게 사람인지 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