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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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미월

김미월 金美月

1977년 강원도 강릉 출생.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welcomesnow@hanmail.net

 

 

 

유통기한

 

 

두시였다. 첫째 셋째 주의 목요일 오후 두시는 늘 빨리 돌아왔다. 경수는 습관대로 야구모자를 눌러썼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리다 말고 멈칫했다. 할머니들은 그에게 모자를 쓰지 않는 편이 더 인물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잠시 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렸으나 곧 모자를 쓴 채로 문을 열었다. 발에 무엇인가 차였다. 익숙한 동작으로 그것을 문 뒤의 라면박스로 던졌다. 백보드 슛! 오늘자 신문은 벽에 부딪힌 후 박스 안으로 골인하면서 어제 날짜 신문 위로 포개졌다. 신문사절. 현관문에 부착된 종이의 문구는 여전히 눈에 잘 띄었다. 그런데도 신문은 귀소본능이 발달한 취객처럼 아침마다 끈질기게 문 앞에 누워 있곤 했다. 언젠가 배달원이 구독료를 청구하러 올 순간을 경수는 기대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에 그것은 대단한 사건이 될 터였다.

삼월의 셋째주 목요일 오후 두시 십분.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수는 우산을 폈다. 신발장처럼 집구석에만 붙어 있던 자신이 비까지 오는 날에 외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석달 전까지만 해도 이 나들이는 그의 선배 몫이었다. 그녀는 할머니들을 한달에 두세 차례씩 이년째 방문하고 있었다. 그 행위가 진정한 봉사정신의 발로일까, 아니면 어쭙잖은 시혜의식의 소산일까 경수는 늘 궁금했다.

“육개월만 니가 대신 가라.”

그녀의 말투는 니가 대신 화분에 물 줘라, 하듯 심드렁했다. 경수는 기겁을 했다. 어쨌든 그건 봉사였다. 봉사라고는 동냥젖으로 딸 청이를 키운 심봉사밖에 모르는 그가 아니던가.

“별거 아냐. 그냥 두어 시간쯤 앉아 있다가 오면 돼.”

경수는 딴청을 피웠다.

“선배, 거긴 왜 가? 어떤 마음으로 가?”

“나도 몰라. 한번 가기 시작하니까 중간에 못 그만두겠더라. 근데 신기한 게, 가기 직전까진 진짜 귀찮은데 막상 도착해서 할머니들 얼굴을 보면 잘 왔다 싶어지는 거 있지?”

“어, 그럼 교회 가는 거랑 비슷한 거구나.”

날라리 기독교인이었던 경수는 얼떨결에 그녀의 청을 수락했다. 선배는 뉴욕으로 떠났다. 잊고 싶은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자신의 잊고 싶은 과거인 남자가 뉴욕에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경수는 그 소년의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넌 대체 못하는 게 뭐냐? 급우들은 감탄했다. 소년은 고교시절 내내 전교에서 상위 2퍼센트 이내의 성적을 유지했다. 100미터를 12초에 주파했다. 각종 백일장 및 사생대회, 영어토론대회, 정보화능력경진대회 등 무슨무슨 대회에 나가는 족족 입상했다. 이 다재다능함은 집에서도 보란 듯이 발휘되었다. 소년은 잔고장을 일으키는 가전제품들을 드라이버 하나로 제압했다. 다 죽어가는 화초들을 살려냈다. 김치를 담그는가 하면 심지어 좌포우혜, 홍동백서, 조율이시를 줄줄이 꿰며 제사상을 법도에 맞게 차릴 줄도 알았다.

그래도 여자는 웃지 않았다. 소년은 더욱 노력했다. 상위 1퍼센트 안에 들기 위해, 100미터를 11초에 주파하기 위해, 더 맛있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소년은 여자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여자를 웃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소년은 동화 속에서 공주를 웃기는 데 실패하여 참수당하는 광대들의 꿈을 자주 꾸었다. 그는 아침에 눈뜨면 기지개를 켜는 대신 목이 제자리에 붙어 있나 만져보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엄마가 죽어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수능시험을 치른 직후에 소년은 혼잣말을 했다. 그것은 진담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농담도 아니었다. 여자가 죽어버리자 소년은 정말로 편해졌다. 언제 찍어둔 것인지 모를 영정사진 속의 여자가 마침내,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섯번째 발가락처럼 잘 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웃음이었으나 소년은 그런대로 만족했다. 상복을 벗자마자 사흘을 내리 잤다. 요의도 없고 꿈도 없던 잠에서 깼을 때 그는 아침마다 제 목을 만져보던 버릇이 없어졌음을 알아차렸다. 없어진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넌 못하는 게 뭐냐’고 급우들을 놀라게 했던 많은 지식과 재능과 장기 들을 그는 도박에 진 사내처럼 모조리 잃었다. 불행히도 마지막 기말고사가 남아 있었다. 소년의 컴퓨터용 수성싸인펜은 모범운전사였다. 정답만 요리조리 피해간 그의 답안지를 그러나 선생들은 문제삼지 않았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를 사고로 잃은 충격이 오죽하겠냐며 혀를 찰 뿐이었다.

 

할머니들은 신축 빌라에 살고 있었다. 경수는 근처 슈퍼마켓에서 두유를 샀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모자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김가 왔다?”

이름이 경수라고 아무리 일러주어도 할머니들은 외우기 어렵다며 그를 ‘김가’라 불렀다. 그녀들은 우리말에 서툴렀다. 어릴 때 고국을 떠나 중국에서 오십여년을 살았으니 우리말보다 중국말에 능한 것도 당연했다. 실내는 어둠침침했다. 전기세를 아낀다고 그녀들은 흐린 날에도 낮에는 불을 켜지 않았다. 난방비를 아낀다고 추운 날에도 밤에만 보일러를 가동했다. 경수는 그녀들을 안쓰럽게 여기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집은 경수의 집보다 훨씬 넓고 아늑했다. 현관문의 잠금장치는 최신형 디지털 도어록. TV는 32인치 완전평면이었고 양변기에는 비데가 장착되어 있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준 것이 동네 교회의 후의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들은 정말 누리고 싶은 것을 마음놓고 누리지 못했다. 엄지손가락처럼 땅딸막한 왕 할머니가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법요집을 꺼내왔다. 구부러진 못처럼 앙상한 체구에 허리가 휜 조 할머니는 염주를 챙겨왔다. 경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나무상이 벽에 걸린 거실에서 두 노파는 염주를 굴리며 그의 독경에 귀기울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선배의 말대로 그가 할머니들의 집에서 하는 일은 별거 아니었다. 오후 두시에서 세시 사이에 방문한다. 반야심경을 읽어준다. TV를 본다. 저녁을 함께 먹는다. 그게 다였다. 왕 할머니가 돼지비계가 듬뿍 들어간 정체불명의 국을 끓이고 자반고등어를 기름에 지지는 동안, 경수는 조 할머니와 TV를 시청했다.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 팔십 노파와 함께 보는 프로그램은 웃겨도 웃기지 않고 슬퍼도 슬프지 않았다. 반찬들은 씹지 않아도 목구멍으로 미끄러져들어갈 만큼 기름투성이였으나 경수는 밥을 두 공기 비웠다. 두 할머니는 논에 못물 들어가는 것을 보는 농부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디저트로 나온 것은 역시 그녀들의 말다툼이었다. 둘은 평소에는 우리말 반 중국말 반으로 대화하다가 싸울 때는 백퍼센트 중국어를 썼다. 무슨 일로 싸우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경수는 빈 밥그릇만 만지작거렸다. 왕 할머니가 경수의 소맷자락을 움켜쥐었다.

“내 빗 훔쳐갔다!”

옷핀, 덧버선에 이어 이번엔 머리빗이었다. 말수 적은 조 할머니는 입을 다물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경수는 밖으로 나갔다. 슈퍼마켓에서 규격과 가격은 같으나 색깔이 다른 빗을 두개 사왔다. 두 할머니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경수는 그녀들이 잃어버린 것이 금반지나 가죽장갑이 아니어서, 옷핀이나 머리빗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빌라를 빠져나오면서 그는 모자를 도로 썼다. 난 야구모자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좋더라. 선배는 그렇게 말했었다.

 

경수는 자주 그 소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지막 기말고사는 망쳤어도 소년의 수능시험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 그는 명문대에 입학했다. 스무살. 이제 청년이 된 그는 전공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누구와도 친해지려 하지 않았고 그 어떤 동아리에도 관심이 없었다. 청년의 학점은 그의 시력보다 낮았다. 그의 인간관계는 공중전화 부스만큼 좁았다. 대학교에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었으므로 청년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한학기가 지나자 과 동기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청년이 대학 본관 앞의 초대형 잔디밭을 새로 깔아주는 댓가로 입학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그는 수강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과사무실에 들렀다.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본관 앞 잔디 말야, 니네 아버지가 까셨다며?”

그것은 딱히 질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 숨을 죽였다. 과사무실 전체가 커다란 귀가 되어 있었다.

“나, 아버지 없어.”

청년의 대꾸에 커다란 귀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곧 그의 뒤에서 정적을 건너온 한마디.

“우문현답이네.”

청년이 돌아서자 문가에 서 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그녀는 짧게 친 커트 머리에 얼굴이 희었다. 왼쪽 뺨에만 보조개가 파여 있었다. 야아, 이게 누구야? 어머, 보조개 너 언제 왔어? 정말 오랜만이에요! 별안간 떠들썩해지는 과사무실을 청년은 소리 없이 빠져나왔다. 나는 왜 대학에 다니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휴학이나 자퇴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전의 그 여학생이 누군지 알아보는 게 먼저였다. 그것은 청년이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가져보는 ‘의욕’이었다.

 

햄의 유통기한은 지난달 말일까지였다. 소시지 포장지에는 열흘 전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경수의 발 앞에 햄 두 상자와 소시지 한 상자가 쌓였다. 그 옆에는 50배로 희석한 옥살산 용액이 든 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고무장갑을 꼈다. 증명사진 크기로 잘라놓은 거즈를 왼손 엄지와 검지로 쥐고 오른손으로 옥살산 병의 뚜껑을 열었다. 두시간 후면 상자 속의 햄과 소시지 들은 새로운 유통기한을 부여받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괜찮아. 어차피 한번 훈제된 거라 날짜 좀 지나도 돼. 그게 진짜 상하는 시기는 유통기한 한두달 후라고. 니가 봐서 포장지 안에 습기가 없음 그냥 날짜 찍어. 마트 주인 사내는 겁이 많아서 말도 많았다. 우유팩에 찍힌 날짜를 아세톤으로 지우다가 발각될 뻔한 사건을 겪은 후로는 식육가공품에만 전념했다. 경수로 말하자면, 햄이 가득한 상자를 나르는 것보다는 상자에 가득한 햄의 포장지에 찍힌 숫자를 바꾸는 쪽이 쉬웠다. 게다가 지나간 날짜를 다가올 날짜로 둔갑시키는 일은 시시한 한편 흥미로웠다. 경수는 제가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된 듯한 망상에 젖기도 했다. 물론 미래의 시간을 과거로 돌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유통기한에는 과거가 없으므로. 경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과거는 힘이 없다. 현재가 인간이라면 과거는 귀신이다. 경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거즈로 닦아낸 포장지 하단의 공란에 부지런히 스탬프를 찍었다. 선배가 과거를 잊을 수 있기를 그는 진심으로 바랐다.

아르바이트가 끝났다. 창고를 빠져나오자 곧바로 통조림 진열대가 나타났다. 경수는 무심코 손에 닿는 참치 캔을 뒤집어보았다. 2013. 01. 29까지. 앞으로 칠년 후에 이것을 먹어도 된다는 얘기였다. 겨우 칠년 후인데도 2013년이 까마득히 먼 미래로 느껴졌다. 그때 자신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캔을 제자리에 놓았다. 자신은 칠년 동안 이런저런 변화를 겪으며 나이 들어갈 것이다. 아니,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참치 캔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어느쪽이 더 나을까. 경수는 한숨 쉬듯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진열대 아래쪽에서 햇반 네개를 집었다. 다섯개로 묶음 포장된 신라면과 풀무원 김치, 3분 미역국도 계산대에 올렸다. 넌 어떻게 된 게 메뉴가 만날 똑같냐? 주인 사내가 타박을 하면서 비닐봉지 안에 햄과 소시지를 넣어주었다. 경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경수야, 넌 대학 갈 생각 없냐? 마트 출입문은 자동문이었다. 열린 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경수는 웃어 보였다. 사내는 눈을 내리깔고 장부에 볼펜으로 무엇인가를 적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중에 이렇게 유통기한이나 바꾸는 짓거리 안하려면, 젊을 때 공부해야 된다. 아버지에게서도 들어본 적 없는 자상한 말이었다. 경수는 사내 앞으로 한발짝 다가섰다. 자동문이 닫혔다. 그는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목소리를 낮췄다.

“저, 사실은 대학 다녀요.”

사내가 장부에서 얼굴을 들었다. 인중에 볼펜 똥이 묻어 있었다.

“니가 무슨 대학을 다녀?”

“………”

“너, 인제대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글쎄요. 인제에 있겠죠.”

사내는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누굴 속이려고. 인제대학교는 김해에 있어. 것도 모르면서 무슨. 허풍 떨지 말고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좀 해봐. 아니, 그게 저랑 뭔 상관입니까? 전 진짜 대학생이라고요. 경수는 항변하려 했으나 그보다 빨리, 자동문이 열렸다.

집 앞에 이르렀다. 신문사절. 현관문 위의 네 글자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신문이 배달되기 시작한 지 얼추 한달쯤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는 라면박스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신문더미를 뒤져 맨 밑에 깔린 신문의 날짜를 확인했다. 한달하고도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왜 신문대금을 받으러 오지 않을까. 공연히 조바심이 났다.

 

국제전화를 세 차례나 걸었던 탓이다. 휴대폰 이용요금이 팔만원 가까이 나왔다. 돈 많이 드니까 전화하지 마. 내가 할게, 금요일 저녁 다섯시에. 여기서 한국으로 거는 건 싸거든.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 선배는 말했다. 그녀는 아주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발음을 교정하는 게 가장 힘들다던가. 맨하탄, 맨하탄 그러면 여기선 아무도 못 알아들어. 맨햇은, 이래야 한다니까. 경수는 그녀의 발음을 흉내내보았다. 맨햇은, 맨햇은. 자기 뒤통수가 찍힌 사진처럼 멍청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경수는 휴대폰 액정시계를 거푸 확인했다. 금요일 저녁 다섯시였다. 선배는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다. 삼분, 사분, 오분. 드디어 휴대폰 벨이 울렸다.

“김가 학상!”

조 할머니였다. 왕 할머니가 계단에서 넘어졌단다. 경수는 점퍼를 걸치고 야구모자를 눌러쓰면서도 휴대폰 액정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섯시 십분. 전화는 오지 않았다. 선배가 말한 금요일 저녁 다섯시는 뉴욕 시간을 일컫는 것이었을까.

경수는 괜찮다고 손사래 치는 왕 할머니를 업었다. 다행히 발목에는 이상이 없었다. 한의사는 진맥을 하더니 이만하면 건강하신 편이라고 했다. 왕 할머니가 뻑뻑한 수도꼭지를 있는 힘껏 비트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의사 선상님, 나 자궁 없습니다.”

한의사가 경수를 쳐다보았다. 경수는 왕 할머니와 조 할머니를 번갈아 본 후 의사를 향해 웃었다. 한의사가 간호사에게 차트를 넘겨주었다. 가셔도 됩니다. 젊은 한의사는 조금만 틈을 주면 자신의 한 많은 인생사를 늘어놓는 게 나이 먹은 여자들의 특기라는 것을 잘 아는 양반이었다. 진짜 자궁이 없나요? 진찰실을 나오면서 경수는 슬쩍 물었다. 진맥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고, 특정 장기의 맥이 잘 안 잡힐 때 자궁이 없나 추측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러나 할머니의 맥은 또렷하게 잡히므로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한의사는 설명했다.

“저 의사 가짜다. 중국 의사가 잘 본다. 중국 최고다.”

경수와 한의사의 대화를 들었을 리 없는데 왕 할머니가 중중거렸다. 가는귀가 먹어 왕 할머니의 말을 들었을 리 없는데 조 할머니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세 사람은 나란히 걸어 할머니들의 집까지 왔다. 왕 할머니가 양고기를 기름에 볶고 전을 부치는 동안 경수는 조 할머니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 이효리가 배꼽을 내놓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조 할머니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중국말로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채널을 돌렸다. 꿩이 알을 낳는 장면을 보면서 세 사람은 기름통에 빠졌다 나온 듯한 식탁에 둘러앉았다.

경수가 보기에 두 할머니는 그냥 평범한 노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들은 팔다리에 일본군에게 난자당한 흉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악명 높은 606호 주사 자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군의 정액이 연상되어서 우유나 요구르트를 못 먹는 경우도 있다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간부의 말이 무색하게, 그녀들은 유제품을 즐겼다. 십오년째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돼왔다는 일본대사관 앞 시위에도 관심이 없을뿐더러, 하다못해 독도 영유권 문제로 매스컴이 떠들썩할 때에도 홈쇼핑 채널 따위에 멍한 눈을 주고 있기 일쑤였다. 우리말을 잘 못한다는 것만 빼면, 그녀들이 과거에 일본군 위안부로서 끔찍한 고통을 겪었으며 해방 후에도 오십년간 국적 없이 중국땅을 떠돌아야 했다는 것을 짐작할 만한 그 어떤 특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들은 그저 의심 많고, 인색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노인성 백내장을 앓는, 이 땅의 흔하디흔한 할머니들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정대협에 연락해. 혹시 밖에 나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할머니들이 위안부라는 거 절대 티 내지 말고. 니가 먼저 위안부에 관한 얘기들을 여쭤보지도 마. 고통스러우실 테니까. 일본 얘기에 민감하시니까 말할 때 조심하고. 방문하는 날짜와 시간은 꼭 지켜. 참, 정신대라는 표현은 잘못된 거 알지? 일본군 위안부가 정확한 표현이야. 그리고 또…… 선배가 강조했던 백만 가지 주의사항들은 도대체 지킬 일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수가 숨을 멈추고 누린내 나는 마지막 양고기 조각을 삼키자마자 디저트가 나왔다. 오늘의 메뉴는 사라진 바나나였다. 두 노파는 없어진 바나나 한송이를 상대가 먹었다며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경수는 바나나를 사러 가기 위해 점퍼를 걸쳤다. 현재 생존해 있다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 이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123명은 어떤 할머니들일까.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날 경수는 할머니들의 집에서 잤다. 다치지도 않은 발목을 들이대며 상태가 밤사이 악화되면 어떡하느냐고 왕 할머니가 그를 잡았던 것이다. 저녁 일곱시면 잠드는 그녀들은 여덟시가 되자 늦었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곧장 곯아떨어졌다.

밤은 길었다. 머릿속은 맑았다. 겨우 열시였다. 경수는 소파에 누워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났다. 심심했다. 몇시간 전에 제가 사온 바나나를 먹으며 집 안 곳곳을 살펴보았다. 주방 뒤쪽의 다용도실에서 발견한 것은 고량주 병들. 이쑤시개통의 이쑤시개들처럼 그것들은 발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다용도실 바닥을 메우고 있었다. 경수는 그 어마어마한 개수에도 놀랐지만 그것들이 전부 빈 병이라는 데 더 경악했다. 냉장고에서 찾은 것은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검은 비닐봉지들. 그 안에는 한눈에도 살코기보다 비계가 더 많은 고깃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콜라 생각이 간절해졌다. 냉장고 뒤며 식탁 아래며 문틈이며 어디랄 것 없이 사방에서 숨은 그림 찾듯 끄집어낸 것은 갖은 종류의 쓰레기들. 어쩌다 흘린 것이 아니라 일부러 숨겼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그것들을 경수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씽크대 선반에서 꺼낸 것은 여러 종류의 액체가 든 플라스틱 병들. 상표 딱지에는 한자들이 잔뜩 씌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한자를 한 자씩 더듬어가며 ‘流通期限’을 찾았다. 날짜가 지난 병이 세개나 되었다. 경수는 병 속의 액체를 개수대에 쏟아부었다. 거실 베란다로 나갔다. 뜻밖에도 거기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실’정도로 큰 가방이 있었다. 속에 옷가지들이 가득했다. 새옷과, 새옷 같은 헌옷들은 모두 여성용이었다. 동네 교회의 교인들이 가져다주었으리라. 이렇게 많은 옷들을 두고 할머니들의 옷차림은 늘 단출했다. 필시 누군가에게 보내려는 거겠지. 중국에 있다던 조 할머니의 양녀? 왕 할머니의 양자와 결혼했다던 조선족 며느리?

경수는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이유 없이 귀가 먹먹했다. 소파의 등받이와 팔걸이 사이에 무엇인가 끼여 있었다. 조 할머니의 사진이 박힌 주민등록증이었다. 말도 없고 웃음도 없는 그녀. 우리말보다 중국말을 더 잘하고, 우리 음식보다 중국 음식을 더 좋아하고, 우리 의사는 못 믿어서 백내장 수술도 중국 의사에게 받겠달 정도로 중국을 신뢰하는, 그녀의 주민등록증에는 ‘대한민국’네 글자와 태극무늬 홀로그램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1925년생.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해는 2004년. 땀이 밴 경수의 손바닥 위에서, 한국인 조 할머니의 표정 없는 얼굴은 모두 아는 노래를 저 혼자 모르는 아이같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는 밤새 잠을 설쳤다. 그럼에도 아침에 그의 가랑이에는 불룩하게 텐트가 쳐져 있었다. 젠장.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옆방에서 자고 있는데 텐트라니. 생리현상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하면서도 그는 죄의식을 느꼈다. 마음속으로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어머니 은혜’노래도 불렀다. 왕 할머니가 방에서 나왔다.

“김가, 언제 또 온다?”

텐트의 바람이 빠졌다. 경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다음주 목요일에 오겠습니다, 할머니.”

“저기…… 나, 오고 싶은 데 있다.”

“가고 싶은 데요? 어디 가고 싶으신데요?”

“장충단 공원.”

‘오다’와 ‘가다’도 헷갈리는 왕 할머니가 ‘장충단 공원’이라는 지명을 똑똑히 밝힌 데에 경수는 적이 놀랐다. 다음 목요일을 기약한 후, 아침상을 차리려는 그녀를 만류하고 그는 서둘러 귀가했다.

현관문 앞. 오늘자 신문 옆에 웬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락앤락 밀폐용기 쎄트가 든 상자의 겉면에 그런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경수는 정말로 배달원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선배의 전화를 제 집에서 마음 편히 받기 위해 서둘러 오지 않았던가.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갈 수 없을 때의 심정으로 그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토요일 아침 일곱시였다. 뉴욕의 금요일 저녁 다섯시. 선배가 말한 시각. 휴대폰 액정은 달력의 풍경사진 속 호수같이 잔잔하기만 했다. 오분, 십분, 십오분.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 소년, 아니 그 청년에 대한 경수의 기억은 늘 싱싱했다.

청년은 왼쪽 뺨에만 보조개가 있는 ‘우문현답이네’여학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보조개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그녀는 청년에게 호의적이었다. 둘은 친해졌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보조개는 이미 학내에서 소문난 캠퍼스 커플이었다. 외교관의 아들과 독지가로 명망 높은 대학교수의 딸. 두 사람의 뒤를 광배인 양 받쳐주는 가문과 재력이 아니더라도 둘은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외모마저 빼어난 그들은 결혼정보회사의 광고지에서 막 빠져나온 듯 잘 어울렸다. 그런 그녀가 저에게 잘해주었으므로 청년은 기뻤고 또 슬펐다.

한 학기가 지나갔다. 후배 여학생 하나가 청년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청년은 소스라쳤다. 그다음엔 풀이 죽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십분에 한명꼴로 마주칠 만한,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평범한, 어디에서도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여학생이었다. 잘생기고 예쁘고 잘나가는 남녀가 서로 커플이 되듯이, 범상하고 보잘것없는 남녀는 또 그런 이들끼리 커플이 되는 것일까. 자신이 그저그런 여자가 좋아해줄 만큼의 그저그런 남자라는 사실을 청년은 인정해야 했다.

또 한 학기가 지나갔다. 보조개가 그 잘난 남자친구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청년은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메일을 엿보기로 마음먹었다. 학교 전산실의 구석자리에서 보조개의 아이디로 로그인을 시도했다.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면 그녀가 입력한 질문에 그녀가 지정한 답을 달아야 했다. 질문: Why do people sometimes weep at heart? 한때 영어토론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는 청년은 질문은 해석했지만 답을 영작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니까. 대놓고 우는 건 쪽팔리니까. 살다보면 속으로 울 일도 있는 법이니까. 그건…… 나도 모르니까.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문까지 터덜터덜 걸었다. 한때 100미터를 12초에 주파했던 그의 두 다리는 맥없이, 그의 아버지가 깔았다는 소문이 돈 바 있는 본관 앞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그저그런 남자밖에 되지 못했을까. 햇살 아래 교회의 첨탑처럼 빛나던 재능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청년은 그 모든 것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일어난 일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웃지 않던 어머니. 그녀는 입만 열면 한탄을 했다. 니가 딸이라면 내가 해줄 얘기가 너무 많은데. 어떤 딸도 자신만큼 딸노릇을 잘하지는 못할 거라는 게 당시 청년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가 하고 싶어하는 얘기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그녀는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다. 그녀보다 다른 여자를 더 사랑한, 자신의 남편에게 가던 길이었을까. 신호등이 깜박거렸다. 골목에서 자전거를 탄 사내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어머니는 핸들을 꺾었다. 목격자의 진술은 거기까지였다.

청년은 휴학을 했다. 집에서 종일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가 즐겨 보는 것은 부부문제를 조명하는 일종의 고발 프로그램이었다. 고부간의 갈등 편이 특히 재미있었다.

“저희 시어머니는 신혼여행지에도 따라왔어요.”

저 여자의 시어머니도 남편과 일찍 사별했을까. 저 여자의 신랑도 삼대독자였을까.

“저희 시어머니는요, 밤마다 그이와 제가 자는 방에 불쑥불쑥 들어왔어요.”

저 여자의 시어머니도 저 여자의 신랑과 동침했을까.

“문제는 그이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는 거예요.”

저 여자의 신랑도 아내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했을까. 청년은 문득 알고 싶었다.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의 시어머니와 남편과 아내. 셋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 의외로 어려운 질문이었다. 청년이 답을 찾느라 고심하던 어느날, 어머니의 남편이 그를 찾아왔다. 불과 이년 새에 머리가 허옇게 센 채로 아버지는 모든 게 오해라고 말했다. 오해 때문에 어머니가 그렇게 된 것이라면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청년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자꾸 침만 삼키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씨디롬 드라이브에서 금방 꺼낸 씨디같이 뜨거운 손이었다. 용서는 쉬웠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어려운 것은 잊어주는 것이었다.

 

장충단 공원은 노인들 천지였다. 매주 월요일 무의탁 노인들에게 점심 제공. 현수막의 글귀가 봄 안개에 젖고 있었다. 경수는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명찰이 할머니들의 목에 잘 걸려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왜 하필 이곳에 오자고 했을까. 공원 안에는 물오른 봄 나무들의 빛깔이 보기 좋을 뿐 일부러 먼 걸음을 할 만큼 뛰어난 풍광은 없었다. 조 할머니는 입에 압정을 한가득 문 듯한 표정으로 땅만 보고 걸었다. 중국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그녀에게 양녀가 오지 말라 한 모양이었다. 나쁘다. 고생해 키웠다. 딸 나쁘다. 왕 할머니가 조 할머니 들으라고 큰 소리로 중얼댔다. 경수는 두 할머니를 앞세우고 천천히 걸었다. 이곳에 오자고 한 왕 할머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발바닥 지압용 자갈이 깔린 건강 산책로에도, 화강암 돌기둥이 운치있는 수표교에도, 물줄기 사이로 무지개가 어리는 분수대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반색한 것은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세명을 발견했을 때였다. 그들의 나이가 팔십줄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그녀는 1939년에 여기 절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93년도 아니고 39년이라니. 통역을 해주려고 할머니의 뒤에 서 있던 경수는 아연실색했다. 어휘가 부정확한데다 종결어미가 죄다 평서형인데도 할아버지들은 그녀의 말을 용케 알아들었다. 사당 말이오? 육이오 때 불탔지. 그 터가 지금 저 신라호텔 자리잖소. 할머니는 사당이 아니라 절이라고 우겼다. 다른 할아버지가 아는 체를 했다. 아, 있었어요. 왜 박문사라고, 왜놈들이 세운 절이 하나 있었어. 할머니가 손뼉을 쳤다. 그녀는 할아버지들에게 동서남북 어딘가를 끊임없이 가리키며 육십칠년 전의 지형도를 기억 속에서 복원코자 했다. 일제, 광복, 육이오 같은 사전 속의 낱말들이 수시로 대화에 등장했다. 경수는 그들 뒤에 멀찍이 서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역사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읽었다.

“나 여기서 끌려갔다. 왜놈들헌티.”

할아버지들과 헤어져 말없이 걷던 왕 할머니가 나지막하게 뇌까렸다.

“나 열시살이다. 그때 여기 오지 안했으면 안 끌려갔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래서 이곳에 와보고 싶어했구나. 경수는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마신 기분이었다. 육십칠년 전 그날, 소녀가 옆집 아저씨에게 속아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또래 소녀들과 함께 옷보퉁이 하나씩 끌어안고 두 줄로 서지 않았다면. 그래서 낯모르는 사내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뜨거운 커피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왕 할머니가 걸음을 멈췄다. 경수와 조 할머니도 따라 섰다. 백내장 때문에 혼탁해진 눈동자로 왕 할머니는 공원 입구 쪽을 주시했다. 여느때와 달리,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선명했다. 사물들이 겹쳐 보이거나 나뉘어 보이지도 않았다. 이윽고 한 소녀가 검은 통치마에 하얀 면적삼을 입고 공원으로 달려왔다. 선이 고운 이마에 입술이 붉은, 아주 예쁘게 생긴 열세살 소녀였다. 오지 마. 오지 마라. 여긴 오면 안돼. 왕 할머니가 두 팔을 휘저었다. 소녀의 전 생애를 가로막을 듯 단호한 눈길로, 그녀는 입구 쪽을 보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세 사람은 매점 앞에 놓인 플라스틱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경수가 종이팩에 든 우유 세개를 사왔다. 하이고, 숨차. 왕 할머니가 제 가슴을 두드렸다. 나 허파 없다. 숨차다. 경수는 팩에 빨대를 꽂아서 할머니들에게 건넸다. 왕 할머니는 왜놈들이 자신의 허파를 떼어내고, 콩팥도 도려냈다고 식식거렸다. 경수는 소리내어 웃었다.

“전엔 자궁이 없다고 그러시더니. 한의사가 할머니 자궁 있대요.”

그는 조금 들떠 있었다. 왕 할머니의 과거사 자체보다도 그녀가 마침내 과거사를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자궁 없다.”

“할머니가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할머니 콩팥도 있을 거예요.”

“………”

“허파는 물론 있고말고요. 허파가 없으면 사람은 죽어요.”

“……죽어?”

왕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였다. 우유만 홀짝이던 조 할머니가 돌연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죽는 것보다, 더하다.”

띄엄띄엄, 그러나 분명한 발음으로 그녀는 말했다. 마지막 어절이 어째 이지러진다 했더니 그녀는 느닷없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주먹으로 경수의 어깨를 때리기 시작했다. 옆 탁자에서 맥주를 마시던 사내들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뿔싸. 이젠 왕 할머니까지 덩달아 울음을 쏟았다. 그녀도 울면서 경수의 다른 쪽 어깨를 때렸다.

“김가, 너 안다? 나 허파 없다. 자궁 없다.”

두 할머니가 때리는 대로 맞다가 경수는 우유를 탁자에 엎질렀다.

“나 중국 간다. 내 딸 있다.”

조 할머니가 던지고.

“나두 간다! 내 아들 있다! 메누리두 있다!”

왕 할머니가 받고. 두 할머니는 언제 준비해왔는지 손수건까지 꺼내 눈가를 찍었다. 중국에서 자신들은 보통 사람이었다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고, 부모형제도 자식도 친척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못 살겠다고. 매점 옆 지구대 초소 안에서 경찰제복을 입은 남자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를 울리는 것은 여자친구를 울리는 것보다 훨씬 더 악질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두명의 할머니가 우는 건 한명의 할머니가 우는 것보단 덜 살풍경하니까. 어쨌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선배가 알려준 주의사항들은 이런 순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수는 우유팩의 상단을 노려보았다. 04. 11. 12:29까지. 모든 물건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유통기한이 없는 것도 있을 것이다.

탁자의 모서리를 타고 흘러내린 우유 한방울이 경수의 운동화 코에 똑 떨어졌다.

 

전화를 하지 말라고 했다, 선배는. 자신이 걸겠다고 했다. 서울의 금요일 저녁 다섯시, 혹은 뉴욕의 금요일 저녁 다섯시. 지난주에도 금주에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경수는 메일을 쓰기로 했다. 그녀의 이메일 주소를 클릭했다. 선배, 잘 지내지? 선배, 전화 왜 안했어? 기다렸는데. 선배, 과거와는 결별했어? 설마 그 자식 만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선배, 보고 싶다…… 건네지 못할 안부들이 그의 가슴속에서 자판 두드리는 소리처럼 한꺼번에 튀어올랐다. 아침이 밝아왔다. 하고 싶은 얘기를 쓸 수 없었으므로 경수는 그녀가 듣고 싶어할 얘기를 쓰기로 했다. 선배, 나 할머니들 잘 찾아뵙고 있어. 한달에 두번씩 목요일마다 꼬박꼬박 가고 있어. 여기까지 쓰고 나자 말문이 막혔다. 사방이 고요했다. 어느 순간 문밖에서 희미한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씨멘트 바닥에 부딪는 소리였다. 맞다, 신문! 경수는 뛰쳐나갔다. 건물을 막 빠져나가려던 배달원의 앞을 날쌔게 가로막았다. 도주로를 차단당한 채 어깨를 움츠리는 이는, 뜻밖에도 아직 애티가 가시지 않은 소년이었다.

“너! 뭐, 뭐야?”

소년은 어깨를 가느다랗게 떨었다.

“죄송해요……”

소년이 말끝을 흐렸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경수는 소년의 얼굴을 보기 위해 상체를 굽혔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 왜소한 몸집의 소년이 바로, 이년 전 어머니 차 앞으로 뛰어든 자전거 위의 사내아이라는 것을 그는 한참 후에야 알아보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다니. 경수는 수저 두 벌을 식탁에 놓았다. 정말 감동적이잖아. 그는 쉴새없이 주절거렸다. 진짜야. 『좋은 생각』 같은 잡지에 보내면 틀림없이 뽑힐 거라니까. 그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소년은 제 허벅지에 손바닥만 문질러댔다. 실은 경수 자신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어떻게 날 찾아올 생각을 했지? 어떻게 이년 동안 그 사고를 잊지 않고 있었지? 라고 묻지 않기 위해 그는 분주히 움직였다. 햇반을 데우고 3분 미역국을 끓였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그가 먹다 만, 유통기한이 지난 햄과 소시지밖에 없었다. 문을 닫았다. 그러므로 반찬은 김치 하나. 마땅한 그릇이 없어서 국을 냄비째 내놓았다. 조그만 햇반 용기와 커다란 국냄비가 우스꽝스레 조화를 이루었다. 경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국그릇이 너무 크지?”

소년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아뇨, 밥그릇이 너무 작아요.”

소년은 햇반을 두 개나 먹었다.

“……우문현답이네.”

언젠가 선배가 저에게 했던 말을 경수는 소년에게 들려주었다. 아 참, 메일을 쓰다 말았군. 그런데 말이야 선배, 인간은 왜 때로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거야? 자신이 그렇게 물어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경수는 잘 알고 있었다. 소년의 좁다란 어깨 너머로 달력이 건너다보였다. 사월의 셋째주 목요일까지 꼭 다섯밤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