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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동아시아 역사 만들기

나리따 류우이찌의 『미래를 여는 역사』 비판에 대해

 

 

신주백 辛珠柏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 『미래를 여는 역사』의 기획·집필에 참가. 주요 저서로 『1930년대 국내 민족운동사』 『1920〜30년대 중국지역 민족운동사』 『분단의 두 얼굴』(공저) 등이 있음. sinjb81@freechal.com

⁎ 이 글은 한·중·일 3국 공동역사서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신문사 2005)의 기획·집필진의 공통된 의견이 아니라 필자의 개인 의견임을 밝힌다.

 

 

『미래를 여는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진정어린 비평을 해준 나리따 류우이찌(成田龍一) 교수에게 감사드린다(「‘동아시아사’의 가능성」,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참조). 나는 지금까지 나리따의 비평문만큼 이 책에 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글을 보지 못했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후속작업을 할 때 상당히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나리따의 비평은 『미래를 여는 역사』가 한·중·일 세 나라 국민국가사를 병렬적으로 조합한 책으로1 현대사 서술이 분량과 관점에서 취약하다는 정도로 간략히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기본적으로 수용한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후속작업에 필요한 지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동아시아 역내 질서가 흔들릴 정도로 역사 갈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한편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가 담론과 정책영역에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현싯점에서 동아시아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적절히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리따의 지적을 염두에 두면서 국민국가사를 극복하고 냉전과 미국의 존재를 동아시아 현대사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언급하겠다. 그런데 논의의 출발이 『미래를 여는 역사』이기 때문에 우선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한번 검토하여, ‘동아시아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방편의 하나로 ‘동아시아 역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 동아시아사를 쓰는 방식, 또는 동아시아 역사 만들기를 위한 접근이 다층적 ‘복수(複數)’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기에 얼마든지 다른 ‘출발점’에서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공동 부교재를 만들기로 한 출발선상의 현실진단부터 해보자. 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동아시아의 현대적 질서가 재편되었다. 동시에 동아시아의 냉전과 열전은 역내 문제를 놓고 동아시아인 스스로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1990년대 들어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구도가 해체되고 미국 중심의 WTO체제가 등장했다. 그런 와중에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이 제기됐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역내 갈등을 해결할 만한 경험과 신뢰가 쌓여 있지 않았다. 오히려 동북아의 국지적 정세는 냉전체제시기의 국제관계, 곧 러시아—중국—북한과 미국—일본—한국의 두 축을 중심으로 작동하면서 다자간 관계보다 쌍무적 관계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최근 동아시아에서 제기되는 역사 갈등, 곧 교과서·영토·바다명칭 문제 등이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역사가 외교를 지배하는 듯한 정세가 조성될 만큼 역사 갈등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체제 구축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독립된 변수이며, 향후 오랜 기간 반복되며 폭발력을 더욱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는 이런 와중에 제기된 것이며,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최근까지도 한·중·일 모두에게 동아시아라는 개념이 주변국과의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동아시아사 서술에 관한 논의 역시 걸음마 단계라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2 즉 한국이나 중국에서의 논의는 이제 막 출발한 수준이고, 일본에서의 연구가 두 나라에 비해 진척되었다고는 하나 그 성과를 일본사의 재구축으로까지 환원시켜 상대화하지 못한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더 나아가 1980년대 후반부터 동아시아를 넓은 시야에서 보려는 일본에서의 일련의 노력이 탈아론과 일본예외론의 입장을 강화시켜주는 데 이용당한 측면도 있다.

‘동아시아’에 대한 삼국의 불균등한 관심과 논의수준에 더하여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동아시아사에 관한 논의와 서술이 국민국가를 상대화하려는 구체적인 흐름과 맞물려 진행되지 않으면 공론(空論)에 그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21세기 들어 본격적인 우경화에 들어선 일본의 정세변화는 동북아 각국의 내셔널리즘 작동을 자극해 동아시아사의 가능성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 그 현상적 주범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며 ‘일본회의’이다. 이들은 단순히 교과서와 학교교육에서 ‘자랑스런 일본(인)’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기본법과 헌법 제9조를 개정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장기적으로는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주변국과의 공존과 공유를 거부하는 ‘새로운 역사인식’으로 무장한 국민을 양성하기 위해 왜곡된 역사를 공식화하고 있다. 이들에게서 동아시아 공동체, 동아시아사의 기본 전제인 상호 배려와 이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역사왜곡 세력은 불특정 다수 대중을 향해 자기 주장을 정당화했던 이전의 우익과 달리 주로 학교교육 개선이란 명분을 내걸고 있다. 우리가 우선 이들을 상대로, 그리고 학교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대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우익과 일부 보수세력이 학교교육의 개선이란 명분으로 위장하여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 데 반해 여기에 대응해야 할 동북아의 평화세력은 서로 단절되어 있고, 교류와 협력의 일천한 경험 또한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 비교적 안정된 직업군(群)인 연구자와 교사 들조차 역사인식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성과를 거둔 단편적인 협력의 결과도 교육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반영되지 못했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협력을 통해 교과서 서술을 개선하는 데만 촛점을 맞추는 등 단기적이고 협소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 것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였다. 이에 비해 1997년부터 시작된 새역모의 ‘제3차 교과서 공격’은 역사교과서 내용과 교과서 시장, 그리고 교육현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심지어 동북아의 국제관계까지 악화시켰다. 일국적 차원을 넘는 시민운동으로 정면 대응해야 할 정세적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우선 학교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은 새역모 등에 대한 비판의 대안으로서 교육용 교재를 제작하는 것으로 가시화됐다. 교재는 교과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각국의 교육정책과 모순되지 않는 부교재여야 했으며, 통사적 접근이 아니라 선후적이고 인과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주제별 접근이어야 했다. 3년으로 정해진 활동기간에 역사 갈등의 주역국인 한·중·일 세 나라의 관계자들이 반드시 참석해야 했는데, 오랜 기간 정기적인 학술교류나 집필 경험이 거의 없는 중국측을 끌어들이기 위해 부교재는 1945년 이전, 곧 일본의 침략사에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일본과 한국 측도 자국의 사회적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한국측 참가자들은 동아시아사로 접근했을 때 자국사의 위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대안을 갖고 있지 않았다.

출발과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미래를 여는 역사』는 자체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역사인식을 둘러싼 대화와 교과서 서술은 참가자 본인의 양식과 학자적 책임감에 입각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 논의과정에서는 자국의 학교교육에서 인정하는 공식 견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더구나 개인자격으로 참가한 한국과 일본 측 필자들과 달리 관변학자 중심인 중국측은 공식성이 훨씬 강했다. 따라서 대만측의 의견이 대변되기 힘들었고, 북한측의 의견 또한 책에 반영할 수 없었다. 이것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몽골과 다른 동남아지역 관계자들, 나아가 각국의 소수자들 목소리까지 대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삼국에 거주하는 연구자들이 모여 상호관계사를 직접 집필하고 그것을 자국의 학교교육과 연관시킨다는 원칙에 입각한다면 현단계에서 공식성의 한계, 사회적 관계로 인한 제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가령 일본에 거주하는 다양한 전공의 외국인 연구자와 일본인 연구자가 만나 동아시아사를 쓸 수는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있는 작업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리따의 표현대로“관계성의 존재방식을 탐색하면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국민국가를 넘어선 가치기준의 내용이”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같은 작업이 2005년이란 예견된 정세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접근방식이었는가는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국가와 무관한 연구자 개개인의 다양성, 연구자만으로 구성된 참가진의 한계, 그리고 담론 제기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 가지는 현실과의 괴리는, 2005년 동아시아 정세를 요동시킨 세력에 대응하는 적절한 접근방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른 나라의 초·중등 교육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부)교재로서의 역할과 연관짓는다면,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작업방식은 더욱 제한적인 의미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교육을 염두에 둘 때 국민국가 단위로 논의를 진척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의를 통해 ‘공존을 위한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민주주의의 진척을 동반하는 ‘열린 민족주의’로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 물론 자칫 ‘내셔널 히스토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공존과 공유를 향한 실천적 노력이 병행된다면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논자에 따라 근대의 극복을 주장하지 않고 근대의 완성이란 측면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언급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작업방식이 더더욱 유효하다.

그렇다고 『미래를 여는 역사』가 내셔널 히스토리를 완성도있게 재현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동아시아 역내에서 공존의 기반을 마련하고 역사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경험을 역사적으로 점검하고 한·중·일 삼국의 다양한 역동성을 특별히 조명할 필요가 있는데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이 점에서 대단히 취약한 문제의식과 서술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서장’에서는 서구가 동아시아에 밀려오기 이전 이 지역만의 역사적·공간적 특수성을 언급하고, 세계사적 안목에서 동아시아를 재구성하면서 서구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각국에 끼친 영향을 설명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어야 했다. 서구와 일본의 침략에 한국과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며 근대화를 달성하려고 했는가에 촛점을 맞추어 ‘제1장’을 구성했지만,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뀐 요인과 이후 결국 한국이 식민지가 된 반면, 중국은 반식민지가 된 상이한 역사과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설명의 기본구도도 침략에 대한 대응이란 각도에 머무를 뿐 그것의 ‘변용’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 유럽중심주의적인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화과정에서 유입되어 정착된 문명적 요소를 주제별로 언급하면서도 식민지 근대성, 일본적 근대성이란 각도에서 심층 설명을 시도하지 못했다. 이렇게 설명했다면 동아시아적 근대의 의미를 풍부하게 재인식할 수 있고, 1910년대부터의 역사를 다룬 ‘제2장’과 ‘제1장’을 매끄럽게 연결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1931년부터 1945년 사이의 역사를 언급한 ‘제3장’과 1945년 이후의 역사를 서술한 ‘제4장’을 연계하는 기획이 필요한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연속과 단절의 관점에 충실하지 않았던 탓에 나리따의 지적처럼 냉전과 미국의 존재를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 점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1945년 3월부터 시작된 오끼나와전(沖繩戰)에 관해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데서 더 나아가, 오끼나와전이 갖는 의미를 미국의 세계전략 및 냉전과 연관시키면서 전후 오끼나와가 동아시아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했다. 동시에 시야를 넓혀 오끼나와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주민학살에 이어 동아시아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난 1947년 대만의 2·28사건과 1948년 제주 4·3사건을 국가폭력과 인권의 측면에서 연관시킬 필요도 있었다. 이는 또한 미소간의 패권질서가 재구축되는 과정이자 동북아에서 냉전체제가 정착되는 과정이기도 했기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기획이어야 했다.

이러한 접근이 ‘부정적 연속’의 측면을 드러내는 기획이라면,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 실시된 황민화정책의 자기모순을 지적하는 서술은 ‘부정적 단절’의 측면을 드러내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대만, 만주에서 실시된 황민화정책은 동원정책이기도 했기에 그 기만성을 드러내는 작업도 의미있지만, 문명동화의 이름으로 민족동화의 당위성을 선전하는 것은 자체적인 취약성을 이미 갖고 있었다. 1930년대 일본의 식민지는 이미 서구적 자본주의문명에 익숙해진 사람들로 넘쳐나는 상황이었고, 식민지 조선과 만주의 주요 도시에서는 화려하고 향락적인 소비문화가 대중문화의 주도권을 장악한 상태였다. 때문에 일본제국주의가 황민화정책의 당위성을 설득한다는 것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실제 1945년 이후 한국과 대만에 남은 것은 일본식 문화가 아니라 미국식 소비문화였다.

요컨대 국민국가의 경계를 기준으로 병렬적으로 서술한다 할지라도, 중국—일본—미국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중심국가의 질서변동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은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내가 외적 충격(영향)만을 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근대 동아시아의 질서변동을 설명할 때는 서구 자본주의의 충격과 대응이란 관점 이외에도 16세기부터 시작된 전통적 동아시아 질서 자체의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같은 경우는 동아시아의 16세기부터의 변화를 ‘근대 초기’로 시기구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3 또한 대동아공영권론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의 내적 취약성을 서술함으로써 침략과 지배과정에서 심화될 수밖에 없는 자기모순을 지적하는 동시에 1945년 이후 대동아공영권이 재생될 수 없는 이유도 끌어낼 수 있다. 질서변동의 내적 요인에 주목하려는 노력은 질서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볼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백영서(白永瑞)와 최원식(崔元植)의 관점, 즉 중심—소중심(반주변)—주변으로 동아시아 질서를 구분하려는 접근이나, ‘이중적 주변의 눈’으로 동아시아의 관계를 재인식하려는 백영서의 시도는 시사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4

‘소통의 경험’과 ‘관계성의 존재방식’을 구조적으로 탐구하는 기획은 국제교과서 협력의 기본이다. 국제교과서 협력은 교류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무지와 편견, 감정적 응어리를 해소하고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면서 배려하는 자세를 갖춘 사람을 양성하는 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동아시아 역사 만들기의 과정에서 낮은 수준의 성취이며, 미완의 첫출발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으로 국제교과서 관련 교류와 협력의 수준을 점차 높여가는 가운데 동아시아사적 관점을 강화해야겠지만, 동시에 이 과정은 자국사 서술과 교육에 대한 비판을 동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판의 과정은 사회가 국가의 일방통행을 견제하고 그 영역을 넓혀간다는 관점을 견지해야 더욱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를 매개로 한 소통의 진정한 목적은 안과 밖에서의 상대화이자 공유이며, 공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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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영서도 「동아시아 평화를 앞당기는 소중한 첫걸음」(『창작과비평』 2005년 가을호)에서 이 점을 지적하였다.
  2. 일본의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에 관한 현황은 미야지마 히로시 「일본 동아시아 공동체론의 현주소」(『역사비평』 2005년 가을호), 중국의 동아시아에 관한 논의는 백영서 「중국에 ‘아시아’가 있는가?」(『동아시아의 귀환』, 창작과비평사 2000) 참조.
  3. 미야지마 히로시 「동아시아 세계 속의 한국학—한국사 연구와 동아시아적 관점」, 한림대 한국학연구소 편 『21세기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푸른역사 2005.
  4. 둘다 월러스틴(I. Wallerstein)의 세계체체론을 원용하면서도, 최원식은 ‘반주변’, 백영서는 ‘소중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논자의 일치점과 차이점은 더 연구해보아야겠지만, 최원식이 계급적 관점을 강조한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이에 대해서는 정문길·최원식·백영서·전형준 엮음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문학과지성사 2004); 백영서 외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창비 200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