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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롯까쇼무라와 일본 핵위협
홍성태 洪性泰
상지대 교수, 환경사회학.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저서로 『생태문화도시 서울을 찾아서』 『지식사회 비판』 『생태사회를 위하여』 등이 있음. rayhope@chol.com
1. 롯까쇼무라를 막아라
2005년 7월 초, 참여연대 평화군축쎈터로 한통의 이메일이 왔다. 보낸 사람은 일본 원수금(原水禁,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의 타꾸보 마사후미(田窪雅文). 내용은 롯까쇼무라(六ヶ所村) 핵재처리공장의 가동을 막기 위한 운동에 ‘연대’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요청에 적극 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자격으로 7월 12일 일본 토오꾜오로 가서 2박 3일간 일본의 운동가들과 함께 토론회에 참여하여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에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기 시작했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가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우라늄235를 폭약으로 사용한 최초의 핵폭탄이었다. ‘리틀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폭탄의 위력은 TNT약 15,000톤에 해당되었으며, 이 폭격으로 7만명이 죽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사흘 뒤인 8월 9일에는 나가사끼에 플루토늄239를 폭약으로 이용한 핵폭탄이 떨어졌다. ‘팻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폭탄의 위력은 TNT약 21,000톤에 해당하며, 이 폭격으로 2만명이 죽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핵폭탄은 그야말로 두 도시를 박살내버렸다. 6일 뒤인 1945년 8월 15일 히로히또(裕仁) 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 아래서 일본 시민은 핵폭탄의 문제에 대해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런데 1954년 초 일본 시민의 대대적 저항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3월 1일 미군은 남태평양의 작은 산호섬 비키니에서 수소폭탄 폭발실험을 했다. 그때 부근 공해에서 제5 후꾸류우마루(第五福龍丸)라는 일본 어선이 참치잡이를 하고 있었다. 이 배의 선원 23명은 물론이고 이들이 잡은 참치까지도 모두 방사능 낙진에 오염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억눌렸던 일본의 반핵폭탄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원수폭금지서명운동전국협의회’가 조직되었고, 1955년 초까지 무려 2500만명의 일본인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로써 전후 일본에서 ‘시민운동’의 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원수폭반대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1955년 8월 6일 일본에서는 첫번째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열렸다.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핵폭탄이 투하된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이런 성과를 통해 같은해 9월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가 결성되었다.
그러나 그 뒤 일본의 반핵폭탄운동은 제국주의의 핵폭탄만을 반대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모든 핵폭탄을 반대해야 한다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그 결과 전자는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로 남았고, 후자는 새롭게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를 결성했다. 전자는 공산당 계열의 조직이 되었고, 후자는 사회당 계열의 조직이 되었다. 공산당과 사회당은 일본의 대표적인 ‘혁신정당’이지만 정치적 힘은 그다지 크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그나마 사회당은 1996년 ‘사회민주당’으로 개명하면서 사실상 해체되고 말았다. 원수폭 문제는 갈수록 큰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에 대처할 일본 시민운동의 힘은 오히려 계속 약화되었다.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은 한국은 물론 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시민운동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서 이 공장의 가동을 막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롯까쇼무라 문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과연 어떤 문제이며, 우리는 왜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의 가동을 막아야 하는가? 또한 어떻게 그 가동을 막을 수 있을까?
2. 롯까쇼무라의 실체
롯까쇼무라는 토오꾜오에서 동북쪽으로 700km 떨어져 있는, 아오모리현(靑森縣)의 작은 도시이다. 인구는 12,000명 정도이고 원래 농축수산업이 주산업인 한적한 도시이다. 그런데 1960년대 말 이 도시의 운명을 바꿔놓는 결정이 멀리 토오꾜오에서 이루어졌다. 중앙정부가 이곳에 국가석유비축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15년 뒤인 1984년에는 갑자기 계획을 바꾸어 핵시설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저준위폐기물만 처리한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핵재처리공장까지 세워버렸다. 주민의 동의도 제대로 얻지 않고 건설된 이 위험천만한 핵시설단지를 한국의 찬핵세력은 텔레비전 광고까지 동원해서 낙후지역을 개발한 복지시설이자 문화시설인 것처럼 선전했다.
현재 롯까쇼무라에는 우라늄농축시설(1988년 착공, 1992년 가동), 중저준위핵폐기물 영구처리장(1990년 착공, 1992년 가동),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처리장(1992년 착공, 1995년 가동), 그리고 핵재처리공장(1993년 착공, 2006년 가동)이 있다. 한국의 찬핵세력이 선전하듯 상대적으로 안전한 저준위폐기물처리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핵발전소를 제외한 온갖 핵시설이 다 모여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롯까쇼무라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고의 위험은 말할 것도 없고 군사공격이나 테러의 위험도 안고 있다.
이러한 핵시설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핵재처리공장이다. 핵발전에서는 방사능에 오염된 각종 핵폐기물이 발생한다. 그중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사용후핵연료’로, 이것은 ‘연탄재’처럼 연료를 태우고 남은 재가 아니다. 특수한 화학적 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극히 위험한 핵물질이다. 플루토늄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원소로 원자로에서 우라늄에 중성자 반응을 일으켜서 만든다. 우라늄238에 중성자를 하나 덧붙여서 플루토늄239로 만드는 것이다.
한 백과사전은 플루토늄이라는 이름에 대해“이 신원소는 태양계의 행성인 명왕성(Pluto)의 이름을 따서 플루토늄이라고 명명되었다. 이것은 92번 원소인 우라늄과 93번 원소인 넵투늄이 각각 천왕성(Uranus)·해왕성(Neptune)의 이름을 땄기 때문에, 이들에 계속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유래보다 우리는 로마신화에서 플루토가 ‘죽음의 신’을 뜻한다는 사실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름에 걸맞게 극독성 물질이며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기 때문에 플루토늄은 국제적으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플루토늄은 이른바 ‘고속증식로’의 연료로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핵발전소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플루토늄을 원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동시에 더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찬핵세력은 고속증식로를 가리켜 ‘꿈의 원자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고속증식로는 일반 핵발전소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하다. 따라서 세계 어디서도 아직까지 실용화되지 않았다. 그 실상은 이렇다.“선진국들은 지난 50년 동안 100MW급 이상의 고속증식로 개발에만 20조원 이상을 소진했지만 기본적인 냉각재 관리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는 자국 고속증식로 개발사업에 대한 투자를 오래전 중단했으며, 10년 만에 몬쥬(文珠, 일본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고속증식로)의 재가동을 앞둔 일본이 유일하게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석광훈 「검증 없이 또 덤비는 언론」, 한겨레신문 2006.2.17). 고속증식로는 정말로 ‘꿈의 원자로’인 것이다.
고속증식로 개발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프랑스와 일본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현재 플루토늄은 핵발전이 아니라 핵폭탄의 원료로 가장 확실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또는 ‘핵재처리공장’은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대량생산하는 ‘플루토늄 생산공장’이다. 따라서 이 공장의 가동은 핵무장으로 이어지는 문을 활짝 열 수 있다. 핵재처리공장은 환경적으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시설인 것이다.
3. 일본 핵위협의 문제
핵재처리시설은 심각한 환경적 위험을 안고 있다. 플루토늄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방사능 물질들을 대기와 바다로 배출하기 때문이다. 롯까쇼무라가 태평양 쪽에 있기는 하지만 바람과 해류를 타고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이미 명확히 밝혀졌다. 이 문제에 관해 2005년 4월 28일 환경운동연합과 그린피스 공동주최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숀 버니(Shaun Burnie) 그린피스 반핵정책국장은 롯까쇼무라에서 나온 방사능 물질이 1년 안에 북반구 전체로 퍼질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군사적 위협이다. 이것은 일본이 핵폭탄을 만들어 핵무장을 할 가능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일본이 플루토늄을 대량생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세계적인 핵군확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일본은 2차대전의 ‘전범국’이다. 독일, 이딸리아와 함께 2차대전을 일으켜 아시아 각지에서 2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세력은 ‘전범’이라는 개념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에는 오직 승자와 패자만 있고, 일본은 패자이기 때문에 ‘전범’으로 몰렸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일본의 지배세력은 패전이라는 말조차 부정하고 오직 ‘종전(終戰)’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하려고 한다. 요컨대 일본의 지배세력은 반성을 모른다. 막강한 경제력과 미일동맹을 최대한 활용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은 지속적으로 재무장의 길을 걸어온 결과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2004년 7월 현재, 일본의 국방예산은 460억 달러로 한국의 158억 달러, 북한의 79억 달러, 중국의 250억 달러를 합한 것과 비슷하다.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일본은 러시아와 북방 4개 섬, 중국과 조어도(釣漁島), 베트남·중국·대만 등과 남사군도(南沙群島)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한국과도 독도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본의 지배세력은 재무장을 넘어 군사대국화를 강행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이러한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미국의 지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정학적 면에서 미국에게 한국은 잠재적 전쟁터이고 일본은 전략적 교두보이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미일군사동맹의 전략적 변화를 추구해왔다. 제도적인 면에서 그 궁극적인 귀결은 ‘자위’를 넘어 무장을 금지한 ‘평화헌법’의 폐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결과 일본은 조립단계만을 남겨둔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일본의 원폭개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6.12.)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롯까쇼무라 핵시설단지 내에 핵재처리공장, 곧 플루토늄 생산공장을 건설해왔다. 그리고 국내외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6년 3월 31일 ‘시험가동’을 시작했다. 일본정부는 21조 4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완공한 이 공장에서 플루토늄을 대량생산할 계획이다. 일본정부는 이것이 고속증식로를 이용한 핵발전계획의 일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은 농축우라늄을 수입하는 것보다 6배나 많은 비용이 든다. 계산에 밝은 일본정부가 왜 이렇게 비경제적인 플루토늄의 생산을 추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한가지 답은 핵산업의 내적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것은 ‘토건국가론’과 비슷한 ‘핵산업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잉성장한 핵산업이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불필요한 플루토늄 생산을 강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러한 면이 있다. 일본은 55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고, 앞으로 15기의 핵발전소가 더 들어설 예정인 세계적인 핵발전대국이다. 미국, 프랑스에 뒤이은 세계 3위다. 이렇게 거대한 핵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사용후핵연료’를 새로운 ‘핵연료’로 만든다는 ‘핵주기(nuclearcycle)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플루토늄은 ‘평화적 가치’보다 ‘군사적 가치’가 훨씬 크다. 2005년 12월 현재, 일본은 이미 43.1톤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는 ‘플루토늄 보유 대국’이다. 2007년 5월부터는 ‘세계 최대의 플루토늄 생산국이자 보유국’이 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8kg의 플루토늄으로 핵폭탄 하나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에서는 2007년 5월부터 매년 8톤 이상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매년 1,000개 이상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4. 평화를 위한 실천
핵재처리공장은 국제적으로 엄격히 규제되는 절대적 위험시설이다. 공식적인 핵무기 비보유국들 중에서 핵재처리공장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이 점에서 일본은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 특혜는 일본의 군사적 위협을 극도로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은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킬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일본의 지배세력은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가장 영광스러운 역사로 기억하려고 한다. 일본의 지배세력은 다시는 ‘패전’하지 않도록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편으로 일본이 세계 유일의 핵폭탄 피폭국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일동맹의 강화를 통해 핵무장을 향한 길을 집요하게 닦아왔다.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은 이런 노력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두려움은 핵군확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일본의 지배세력은 북한 핵위협을 극구 강조한다. 물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대단히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숀 버니가 지적하듯 북한 핵위협보다 ‘일본 핵위협’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일본은 북한에 비해 훨씬 높은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 40~50㎏ 정도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데 비해, 일본은 이미 4300㎏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매년 8000㎏ 이상을 더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남북한과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각국에서 일본 핵위협에 대비하는 핵군확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롯까쇼무라는 일본 핵위협의 핵심이며, 동북아 핵경쟁의 뇌관이 될 것이다.
셋째, 일본이 핵발전계획을 내세워서 전개하는 사실상의 핵무장 계획은 결국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의 협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은 미국이 좌우하는 국제핵질서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핵심적 사례일 것이다. 그 가동은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의 공신력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고, 세계적인 핵군확의 길을 열어젖힐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이란과 북한만이 문제인 것 같지만 머지않아 미국의 ‘친구’들도 일본과 같은 대우를 받고자 할 것이다.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의 가동에 따른 일본 핵위협의 강화로 말미암아 동북아는 군사적으로 위험한 지역이 되고 있다. 일본정부가 1967년에 발표한 ‘비핵3원칙’과 남북한 정부가 1991년에 발표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실질화해야 할 필요는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의 문제를 널리 알리고 강력한 반대여론을 동북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이미 세계적 물리학자들과 많은 시민들이 심각한 우려의 뜻을 일본정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실천은 아직 미약하다. 더 많은 사람들의 더 큰 목소리가 필요하다.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의 건설이 시작된 15년 전에는 국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게 일어났다. 그러나 정작 그 가동을 앞두고는 『한겨레21』과 『신동아』를 빼면 거의 어떤 우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 이제라도 체계적이고 활발하게 펼쳐져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대단히 원칙적인 대응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으므로 우려를 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의 위험을 그냥 묻어두는 것은 잘못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정부의 우려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국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해서 강력한 우려의 뜻을 전해야 한다. 사실 국회에는 관련 모임이 두개나 있다. 하나는 ‘핵군축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탈핵모임’이다. ‘핵군축모임’에서 지난 2월 10명의 의원들로부터 서명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두 모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연구모임’도 함께 힘을 모아 더욱 적극적으로 많은 활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모든 의원의 서명을 받아 국회 차원의 결의안을 채택하고, 토오꾜오에 가서 일본 의원들과 함께 공동기자회견도 해야 한다.
이미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의 시민연대는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양국의 시민단체들은 함께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도록 요구하고, 나아가 플루토늄의 위험을 널리 알려야 한다. ‘꿈의 원자로’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시민연대는 당연히 중국과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럴 때 ‘동북아평화지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기반은 좀더 다져질 것이다. 롯까쇼무라 핵재처리공장에 반대하는 운동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과 후손을 지키는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