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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연준 朴蓮浚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gkwlan@hanmail.net
발과 자궁
자궁이 보랏빛 노동을 시작했다
나는 갈라터진 한덩이 마른 밭이 되었다
질 속에서 막 달아난 새끼 낙타의 등이
싱싱하게 흐느끼며 밤을 깨울 때
이 밤을 지나가는 발은 외롭다
꽃이 아름다운 건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일까?
자궁을 떠받든 채 웅크리고 있는 발은 몸의 바닥이다
몸이 누울 때는 저 혼자 수직을 고집하고
몸이 설 때는 저 혼자 수평을 고집하는
발이, 눈부시게 피어난 발이
자꾸만 딱딱해지고
나는, 보랏빛으로 밑을 씻고 잠든다
일곱살
일곱살 때 내 이름은 ‘뷰우유릎’이었어요
아무도 내 이름을 쉽게 부르지 못하도록 날마다 이름을 바꾸었어요
시 같은 게, 넙치 같은 게, 밤마다 내 목을 휘감았고
이빨은 이틀에 한번씩 부러졌지만 무섭지도 않았어요
하수구에선 나팔꽃이 새끼를 기르고 있었고
아빠의 기저귀를 갈아줘야 할 때만 코를 막고 그곳에 들어갔어요
입술이 너무 빨갛다고 손가락질 받던 동네 언니가
가끔, 내 머리통을 빠르게 쓰다듬고 지나갔어요
나는 꼭 그 언니처럼 되고 싶었어요
내 침대는 한번도 일어서지 않았어요
날마다 누워서 여러가지를 상상하곤, 나보다도 먼저 잠들었어요
글쎄, 일곱살 때 나는 꼭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자는 척했어요
어른들은 웅크리고 자는 걸 못 견디어했죠
울고 있어도 만세만 부르면 안심하곤 사라졌어요
봐요, 만세잖아요 만세, 아무 문제 없다니까요
나는 일곱살만큼 늙어 있었고, 토큰 가게 주인이 꿈이었어요
작은 가게 안으로 이따금 들어오는 낯선 손에게
토큰 두 개씩 떨어뜨려주고는, 꾸벅꾸벅 졸고 싶었죠
이빨 빠진 바람처럼 순한, 일곱살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