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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민영 閔暎
1934년 강원도 철원 출생. 195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斷章』 『냉이를 캐며』 『엉겅퀴꽃』 『바람 부는 날』 『流沙를 바라보며』 『해지기 전의 사랑』, 시선집 『달밤』 등이 있음.
石像의 노래
여인아, 그대와 내가
헌 누더기 다 벗고 저
백단향나무 아래 우뚝 선다면
이 땅에 갓 태어난 어린것들의
제삿밥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낳은 아이들이 자라
강성한 나라와 인정스러운 저자를 이룬다면
그대와 나는 초막에 누워
골짜기 너머 높은 산에서 반짝이는
흰 눈이나 바라보기로 하세.
어느결에 모진 겨울이 가고
온 누리에 아기잎 피어날 무렵
그대와 내가 사슴이 우는 언덕 위에서
푸른 이끼 자옥한 돌이 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본향으로 돌아가
쌍무지개 뜨는 하늘을 볼 수 있으리.
장터에서
행수님, 저는 이제 늙어서 등짐도 질 수 없고
파장머리의 술집 해묵은 회화나무 밑에 앉아
가지 끝에서 우는 멧종다리 울음소리나 들으며
남은 세월 한세상을 지내는 수밖에 없습니까?
동구 밖 장터에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영악한 거간꾼들이 회돌이치며 깎고 자르는 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오는데,
내 고달픈 영혼은 이제 그것조차 감내하지 못하고
능소화 핀 개다리소반 앞에 앉아서
철 지난 노랫가락이나 한곡조 부르며
술잔을 기울이는 수밖에 방도가 없습니까, 행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