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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문제는 실감이다

『창작과비평』 2006년 겨울호 특집을 읽고

 

 

고봉준 高奉準

문학평론가. 평론집『반대자의 윤리』가 있음. bj0611@hanmail.net

 

 

1

 

지난 세기의 마지막 몇년, 한국문학을 유령처럼 떠돌았던 ‘위기론’이 ‘종언’이라는 문제의식으로 되돌아오는 가운데, 최근 2000년대 문학의 새로운 ‘경향성’과 ‘징후’를 가늠하는 기획들이 문예지들의 지면을 채우고 있다. 경향성은 일정한 형태의 반복을 요구한다. 그것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원환적 성격을 띠며, 하나의 ‘현실’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속적이지도 않다. 이처럼 경향은 순간적이지 않으면서 영원하지도 않고, 지배적이지 않으면서 주변적이지도 않다. 그리하여 하나의 경향은 종종 다른 경향과 공존 내지 충돌하면서 상쇄되기도 하고, 반대로 극적인 상승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미래파’와 ‘경계 넘기’에 집중된 2000년대 문학에 대한 평가는 많은 경향성들을 일반화하거나 ‘새로움’과 ‘징후’를 동일시하면서 진행된다는 느낌이다.

『창작과비평』은 2006년 겨울호에 여름호 특집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의 후속편을 배치했다. ‘후속편’이라 밝히고는 있지만,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마련된 ‘연속기획’이라는 존재는 이례적이다. 여름호 특집은 “2000년 6월사건의 중차대한 의미”를 강조한 한기욱(韓基煜)의 총론 「한국문학의 새로운 현실 읽기」를 필두로 네 편의 각론으로 구성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총론의 의도가 각론을 통해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다는 평가이다(홍기돈, 『창작과비평』 가을호 379면). 한기욱과 황광수가 ‘분단’이라는 민족적 현실, ‘통일시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전제하는 반면, 각론에 참여한 김형중, 차미령, 신형철의 글에서는 그런 문제의식이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특집에는 이른바 국민국가의 바깥을 사유하려는 문학적 실험에 관한 각론이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협화나 결여가 겨울호 특집의 직접적 계기는 아닐 것이다.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는 왜 겨울호에서 반복되어야 했을까? 왜 창비는 편집위원들을 대거 투입해서 여름호의 논의를 이어가야 했던 것일까?

 

 

2

 

‘진로를 묻다’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겨울호의 좌담은 2000년대 한국문학의 증상과 징후를 다양한 시각에서 검토하고, 나아가 21세기 한국문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좌담 「우리 문학의 현장에서 진로를 묻다」는 제한된 시간, 지면, 구성원이라는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좌담 특유의 긴장감에 이르지는 못한 느낌이다. 물론 2000년대 문학의 경향성을 ‘미래파’와 ‘경계 넘기’에 한정함으로써 경향의 복수성/이질성을 사상시켜버리는 여타 문예지들과 비교할 때 통일문학이나 노동시, 중견작가들의 문학적 성과에 관심을 표명하는 노력, 특히 한국문학의 외연을 남한의 자본주의적 현실에 국한하지 않고 한반도 전체로 확장하는 시야의 개방성은 높게 평가될 만하다. 그런데 “한반도 남녘 사람의 일상생활에 직격탄을 날린 쪽은 전자이지만 한반도 주민 전체의 장래에 더 결정적인 사건은 후자이고, 그런만큼 후자를 2000년대 문학의 기점으로 삼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한기욱, 여름호 209면)은 정당한 것일까? 김영찬(金永贊)이 지적하듯이, 한기욱이 언급한 “어떤 작품들은 굳이 이러한 시대규정을 들이대지 않고도 분석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시대규정과 작품에 대한 분석이 긴밀한 관련성을 갖기보다는 괴리되어 있다는 느낌”(겨울호 197~98면)을 강하게 준다. 6·15공동선언이 분단현실에 ‘통일시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가져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러한 시대규정이 곧바로 우리 일상, 그리고 최근의 한국문학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좀체 실감되지 않는다. 가령 지난 10월 북핵사태가 터졌을 때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어떠했는가를 돌아보면 이 ‘실감’의 지평은 한층 명확해진다. 이전과 달리, 분단이라는 현실은 점차 불가항력적 현상으로 간주되기에 이르고, 이로 인해 국민 대다수의 의식에서 ‘분단’은 더이상 현실을 구성하는 절박한 조건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6·15공동선언이 한반도 주민 전체의 장래에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행히도 실감의 차원에서 남녘 사람들의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친 것은 IMF였다. 『문학동네』 좌담에서 ‘분단체제론’과 ‘민족문학론’이 희화화된 반면, ‘하위문화적 상상력’과 ‘혼종성과 탈경계적인 반미학’의 유희성·불온성이 한층 높게 평가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비의 좌담에서 흥미로운 점은 2000년대의 문학을 “포스트IMF시대의 징후”로 인식하는 김영찬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및 6·15공동선언”이 문학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분기점이라고 주장하는 김영희의 상이한 시각이다. 김영찬이 민족문학론이나 6·15시대의 문학이라는 창비의 입론 바깥에서 젊은 작가들의 “유머나 환상, 유희와 공상”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려는 반면, 김영희는 그들의 새로움을 2000년대 문학의 특징이나 성취와 동일시하는 태도를 문제삼으면서 6·15공동선언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또 하나, 시대의 변화를 시의 변화에 바로 대입하는 “성급한 인식론적 단절”을 ‘기원 만들기’로 평가하면서 “앞세대와 단절되면서도 역설적으로 이어지는 전통의 형성”을 강조하는 박형준(朴瑩浚)과 “시적 주체의 단일성이 회의된다거나 열린 주체의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젊은 시인들의 시적 다양성을 ‘가능성의 일환’으로 평가하는 이장욱(李章旭)의 시각차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주체의 해체’에 관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논의는 더이상 진전되지 못한 채 중견시인들의 시적 성취에 대한 합의를 통해 희석되어버린다는 느낌이다. 결국 이 좌담은, 장르는 달랐다 할지라도, 연속성의 맥락에서 최근의 문학을 평가하려는 김영희와 박형준, 단절의 효과를 강조함으로써 2000년대 문학의 새로움을 평가하려는 김영찬과 이장욱의 원론적인 입장 차이를 보여주고 끝난다. 이러한 차이는 6·15시대라는 규정과 민족문학론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김영찬은 “민족문학론이 지금의 문학적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비평적인 적응력과 효율성을 잃”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영희는 “민족문학론 자체가 변화된 상황과 의미있는 문제제기에 대응”하면서 갱신을 거듭해왔음을 주장한다. 물론 김영찬이 민족문학론의 ‘기본정신’이 지닌 유효성마저 부정하진 않지만, “민족문학론이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더라도 그런 정신을 문학현장 속에서 펼쳐” 보일 수 있다는 발언은 완곡어법으로서의 부정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민족문학론의 기본정신이란 무엇인가? 딱히 민족문학론이 아니어도 “한국사회의 인간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문학”일 수 있듯이, “문학과 현실의 실천적 관계”나 “문학과 현실의 긴장” 또한 민족문학론의 기본정신 없이도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3

 

유희석(柳熙錫)의 평론 「통일시대를 위하여」는 “하나의 분단체제”와 “상극의 근대사”가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으로 인해 본격적인 잠식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전제하며, 오늘의 남북현실을 ‘통일시대’로 규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기욱의 총론을 공유·계승하고 있는 이 글은, “6·15통일시대 담론이 우리 시민사회에서 아직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도 솔직담대하게 인정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거나 “6·15공동선언이 설령 ‘최대의 금기가 돌연 최고의 성취로 둔갑하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이를 IMF사태와 비교우위의 차원에서 연관짓는 듯한 인상을 주는 논법은 피해야 한다”처럼 ‘6·15시대’라는 시대규정을 2000년대 문학현실의 최종심급으로 간주하는 일반화를 경계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해서, 그는 “문학이 그 본연의 모습으로 꽃피는 것 자체”라는 백낙청의 말을 인용하며 담론적 일반화보다는 작품의 실상에서 출발하는 귀납적 독법을 선택하지만, “한반도 주민의 이질적인 근대경험을 무리없이 해체하는 동시에 포용하는 ‘고전’”의 등장이 요원한 지금 “따옴표를 걷어낸” 통일시대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일반화를 전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물론 유희석은 이러한 개념적 일반화를 실정성이 아니라 “분단을 온전히 극복한 미래에 대한 필자 나름의 확신과 희망”이라고 언명함으로써 글에 실존적인 느낌을 강하게 불어넣고 있다. 실제로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언설”과 “남북 근대체험의 파괴적 이질성을 극복하는 문학의 꿈”을 대비하는 진술이나 “통일시대의 문학적 징후들을 모아들이면서 새로운 문학운동을 예감”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밝힌 대목에서는 ‘분단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한 한 평론가의 실존적 지평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의도의 진정성이 비평의 진정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창비가 주장하는 ‘통일시대’와 ‘6·15시대 문학’ 담론은 한반도 남쪽의 조건만을 ‘현실’로 간주하는 여타의 비평적 입장과 달리 한반도 전체(“하나의 분단체제”)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유희석이 지적했듯이, 분단 1세대와 1.5세대의 분단문학이 방북 같은 직접적 교류를 경험하면서 사뭇 다른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래서 “월경(越境)의 상상력”이 ‘타자’에 대한 인식과 공감의 지평 확장이라는 말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6·15공동선언이나 “해원과 상생이 겹치는 시간대”의 효과라는 평가는 수긍하기가 어렵다. 유희석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느껴지는 현실”이나 “실감”의 차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냉전 종식이라는 역사적 국면을 거치면서 한국문학에서 분단과 통일에 대한 형상화는 실로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윤흥길이나 김원일, 임철우 등 분단세대 문학의 현주소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장과 냉전체제의 종언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분단체제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연동되어 있다는 논리를 전제하더라도,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제기되는 ‘경계 넘기’의 문학적 사유가 곧바로 “통일문학, 나아가 통일시대라는 것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망외의 소득”과 연결된다는 논리는 실감의 차원뿐만 아니라 논리의 차원에서도 동의할 수 없다. 오늘날 ‘경계’의 문제는 민족국가 담론의 한계점에서부터 발화되고 있으며,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으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추방’이라는 대사건, 그리고 자본의 지구적 운동에 관련된 노동력의 이동성 문제를 강력하게 환기한다. 물론 강영숙(姜英淑) 장편 『리나』를 탈북자의 서사로 읽을 수 있으며, 그 맥락에서 ‘경계’의 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리나』가 6·15선언에 빚지고 있음을 증명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또 한가지, 노마드(nomad)는 종종 오해되는 것과 달리 공간적 이동의 문제가 아니다. 노마드는 이동의 주체가 아니며, 따라서 국경을 넘는 행위로 그 존재를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국가의 바깥, 즉 다른 ‘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고, ‘국가’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자신의 삶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6·15시대론’에 내포된 현실인식의 타당성”에 대한 진정석(陳正石)의 의문은 차라리 솔직하다는 느낌이다. 진정석의 「사회학적 상상력과 상상력의 사회학」에서는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긴장이 느껴진다. 그것은 창비 편집위원으로서 ‘6·15시대론’을 부정할 수도, 그렇다고 그것을 2000년대 한국문학의 “최종심급”으로 설정할 수도 없는 위치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그는 “체계적인 대안”의 부재를 인정하면서 첫째, ‘6·15시대론’이 분단체제에 대한 개념적 인식과 분단현실에 대한 일상적 실감의 낙차 문제를 고민해야 하며, 둘째, 시대적 인식의 타당성이 문학적 분석틀로서의 효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6·15시대론’을 문학에 적용하는 데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셋째, 2000년대 문학에 나타난 ‘경계 넘기’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이 좀더 복합적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유보가 곧 ‘6·15시대론’에 대한 무용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유희석의 글에서도 확인되듯이, 담론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2000년대 한국문학을 설명함에 있어서 한반도 전체를 포괄하는 ‘6·15시대론’은 많은 논자들에게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현재 『창작과비평』이 다른 문예지들과 달리 2000년대 문학의 새로움을 전적으로 긍정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약간의 과장을 허락한다면, “80년대식 ‘토대/상부구조’론의 재탕이 될 수도 있다”(『문학동네』 가을호 176면)라는 김형중의 비판은 일정한 설득력을 지니는데, “‘6·15시대의 관점’에서 2000년대 문학에 접근하는 것은 6·15를 하나의 ‘최종심급’으로 전제하고 그 기준에 적합한 경향과 작품을 선별하는 연역적 독해가 되기 쉬우며, 6·15와는 다른 맥락에서 개별 텍스트들이 달성한 인식적 가치와 상상적 모험을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진정석의 주장 역시 입론의 지나친 일반화를 경계한다는 점에서 김형중과 유사한 시각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진정석 또한, 유희석이 그러했듯이, “단수(單數)의 이념을 대체한 복수(複數)의 상상력”을 확인하는 방향을 취한다. 그렇다면 그가 ‘젊은 소설’에서 발견한 상상력의 사회학은 무엇인가? 다음의 진술을 주목하자. “그들의 작품에 현실이 있다면, 그것은 환상, 망상, 거짓말을 통해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겨우 드러나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경험한 절실한 현실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가공하고 재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실감과 실재로서의 현실론이다. 이 진술이 ‘6·15시대론’의 폐기처럼 읽히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4

 

2006년 2월, 노동문학의 상징이었던 구로노동자문학회가 오프라인 활동을 공식 중단했다. 과거 민중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노동문학이 탈산업화라는 역사적 배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막을 내린 것이다. 김수이(金壽伊)의 「얼굴 없는 노동, 자본주의의 역습」을 읽으면서, 필자는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진 노동문학과 ‘노동시’라는 용어가 ‘비물질노동’이라는 낯선 개념과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시달렸다. 김수이의 글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노동시의 함의”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그는 지난 시대의 사회학적 개념인 ‘민중’이 실상 “이념의 시대에 명멸한 강력한 신념과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며, 현재 우리의 삶이 “사상 유례없이 강력해진 자본주의”의 ‘역습’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민중문학이 갖는 현재성”을 인식하고 독려하기 위해서라도 “미확인의 ‘주체’보다 확인 가능한 ‘사건’과 ‘행위’에 촛점”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 민중이라는 요령부득의 ‘주체’에서, 지속되는 ‘행위’로서의 노동으로 발상을 전환할 때에야 민중문학이 현재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주체가 아니고 행위인가? 그는 “21세기에도 노동은 인간과 삶의 변함없는 토대이며, 이로 인해 ‘민중’이라는 이념의 주체는 폐기될 수 있어도 ‘노동자’라는 행위의 주체는 폐기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대중’이 ‘민중’으로, ‘다중’으로 거듭 바뀌어도 우리는 늘 노동의 어두운 그늘에서 살아가지 않는가. 노동이란 무엇인가? 김수이는, 네그리(A. Negri)를 빌려, ‘노동’을 “자본의 물질적이고 규격화된 이벤트에 맞서 인간이 자신의 주체성과 사물과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최상의 사건/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정말, ‘노동’이 주체성과 세계를 창조하는 최상의 행위일까?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가치를 생산하는 행위, 즉 가치화된 노동이다. 하여, 노동에는 언제나 자본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가치를 생산하려 하지만, 그것은 자본에 의해 평가되고 구매되는 한에서만 ‘노동’으로 인정된다. 이런 점에서 자본의 외부는 ‘노동’으로 환원되지 않는 ‘활동’을 구성하는 데 있다. 문학적 글쓰기는 상품화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이 아니라 ‘활동’이다. ‘활동’은 특정한 조건하에서 ‘노동’이 되지만,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네그리는 정통 맑스주의의 노동 개념이 환원적이고 자본가적인 개념이라고 비판하면서 ‘노동’ 개념 자체를 노동자의 방향으로 구부린다. 네그리의 ‘노동’ 개념은 탈산업화와 포스트포드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배치를 전제한다. 그리하여 그는 사용가치 대 교환가치의 적대, 주체적 노동 대 대상화된 노동의 적대를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교환가치/대상화된 노동을 추구하는 자본은 동질화를 지향하며 모든 것을 양(量)으로 환원하는 권력(pouvoir)적 속성을 지니지만, 사용가치/주체적 노동을 추구하는 노동은 다양성과 이질성을 추구하며 양으로 환원되지 않는 역능(puissance)적 속성을 지닌다. 네그리와 하트(M. Hardt), 라짜라또(M. Lazzarato)는 포스트포드주의로 요약되는 탈산업화시대에 더이상 삶과 노동은 구분되지 않으며 자본주의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동/작업/행위를 구분하는 아렌트(H. Arendt)나 육체노동과 지적노동의 이분법에 기초했던 짐멜(G. Simmel)의 이론에 반대하고, 포스트포드주의하에서 비물질노동이 의사소통의 생산/재생산, 주체성의 생산/재생산을 포함하여 생산적 협업을 확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비물질노동은 유적 협력관계의 현실화과정인 셈이다. 맑스가 생산과 맺는 관계 속에서의 주체의 근본적 변형에 주목했듯이, 그들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산업사회에서의 ‘착취’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 즉 주체성의 형성과정을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첫째, 노동과 노동 아닌 것, 생산시간과 향유시간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총체적 생활시간이 도래했으며, 둘째, 그로 인해 “협력과 소통”으로 압축되는 새로운 주체성이 생산된다. “노동은 인간이 자본주의 씨스템에 연결된 핵심적인 선이지만, 바로 그 이유에 의해 강력한 탈주의 선이 될 수 있”다는 김수이의 주장은 네그리의 주체성 생산/재생산을 환기한다.

네그리와 라짜라또는 포스트포드주의 모델이 상징하는 탈산업화시대가 ‘비물질노동’과 ‘정동적 노동’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한다. 가치를 구체적 노동의 척도로 고려할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보화의 진행 자체가 자본주의의 극복 및 공산주의의 도래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보를 지성으로 역전시키는 다중의 구성활동이 코뮤니즘으로의 이행을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탈산업화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정보, 소통 같은 공통재의 생산이다. 그리고 공통재의 생산에서 지성들 사이의 협력, 즉 함께 창조하고 실현하는 협력과 소통의 증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동적 노동, 비물질노동은 단순히 물질을 생산하던 과거의 노동과는 달리, 써비스, 지식, 소통, 사회적 관계 등의 비물질적 재화와 주체성을 생산한다”라는 김수이의 진술이 바로 그것이다. 정동적 노동이 생산하는 것은 사회적 네트워크들, 공동체의 형태들, 삶능력(biopower)이다. 네그리는 『다중』(multitude)에서 ‘민중’과 ‘다중’을 분명하게 구분하는데, 민중이 다양성을 하나의 통일(unity)로 환원하고 주민을 단일한 동일성(정체성)으로 만드는 하나(일자)인 반면, 다중은 결코 단일한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수한 내적 차이들로 구성된 다수성(multiplicity)이다.

김수이는 이들의 이론에 근거해서 “노동의 주체가 되는 것 혹은 노동함으로써 주체가 되는 것은 이제 인간에게 남은, 자본주의 씨스템을 교란하고 부식시키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민중’이라는 ‘주체’ 대신에 ‘노동’이라는 ‘행위’를 강조해야만 했던 이유인 셈이다. 아무튼 그는 네그리의 ‘노동’ 개념을 빌려 “노동이 소홀히 되거나 부정될 수 없는 우리 문학의 현안”임을 강조한다. ‘노동시’라는 명칭에 대해 거부감을 지닌 이들마저도 ‘노동’이라는 ‘행위’ 자체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네그리에게 노동은 곧 삶이다. ‘노동’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삶-문학’(조정환)이라는 개념이 말해주듯이, 노동과 삶, 노동문학과 노동문학 아닌 것은 논리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네그리의 ‘노동’ 개념이 부정되고, 구분할 수 없다면 ‘노동시’나 ‘노동문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노동 아닌 것이 없는데 왜 ‘노동시’라는 개념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므로 ‘노동시’라는 명칭에 대해 거부감을 지닌 이들‘마저도’‘노동’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 바깥이 없기에 ‘노동’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또 하나, 김수이는 80년대에는 자본주의가 “비판과 저항”의 대상이었지만 2000년대에는 “자발적 투신과 내면화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IMF를 경험하면서 삶의 조건이 극단적으로 불안정해지고, 경제 및 성장 제일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남으로써 국민들의 정치적 보수주의가 심화된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통일’을 경제의 논리로 환원한다.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통일’의 무의미함을 주장하기도 하며, 탈북자나 조선족을 ‘동포’나 ‘민족’이 아니라 고용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산업예비군’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김수이의 글에 등장하는 ‘우리 사회’의 외연이 어디까지인가를 확인할 순 없지만, 자본주의는 80년대나 지금이나 비판과 내면화의 대상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00년대 문학을 점검하는 기획들에서 종종 나타나듯이, 그는 80년대와 2000년대의 차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의도적으로 과장 또는 축소한다. 80년대의 상징인 5·18민중항쟁이나 87년 6월항쟁은 결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가 기계에서 생체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맞지만, 그것이 곧 “자발적 투신과 내면화”라는 패배주의적 태도와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자체의 진화와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설령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할지라도 동일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김기택(金基澤)의 「사무원」이 “세기의 전환기에 일어난 정치·사회적 변화의 배후에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특히 노동자)의 생물학적·존재론적 전회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날카롭게 간파”한 작품이라는 김수이의 평가에 대해서는 수긍하지 못한다. 네그리는 사무노동을 비물질노동의 하나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기택의 작품이 그것의 시화(詩化)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주체성의 생산, 특히 “협력과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오히려 김기택의 시는 ‘고행업무’에 투신해 ‘30년간의 장좌불립(長座不立)’을 달성한 ‘사무원’의 ‘육체’가 점차 ‘의자’의 다리와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진화되는 과정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채플린의 영화가 그렇듯이, 노동자의 육체에 각인되는 자본과 기계(노동)의 흔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이는 “인간과 기계의 위상 역전이 기계-신과 노동자-신도의 종교적 단계에 이르렀음을 반어적 어법”으로 노래하는 유홍준(劉烘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포스트포드주의시대에도 근대적 노동은 여전히 잔존한다. 그것은 다만, 지배적 경향이 아닐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무직 노동자가 사무노동을, 육체노동자가 육체노동을 시적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5

 

90년대 이후, 비평계는 “상생의 창조성” “협동과 경쟁” 같은 “비판의 윤리성”을 상실한 채 긴 평행선을 달려왔다. 임규찬(林奎燦)의 지적처럼, “출판사-작가-비평가라는 구도”가 제도화되면서 작품에 대한 판단은 다수결투표나 상업적 의도에 따라 결정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비평은 자주 스캔들의 한가운데에 위치했다. 임규찬의 「비평의 윤리와 최근의 비평」은 최근 『창작과비평』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민족문학진영”을 겨냥한 『문학동네』의 좌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소위 2000년대 문학의 ‘새로움’을 고평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민족문학론의 “무능력”을 부각시킨 이광호(李光鎬)와 김형중(金亨中)의 비평에 대해 “비판적 개입”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개입’은 구체적으로 이광호와 김형중을 겨냥한다. 그는 이 좌담에 참여한 비평가들의 “문학적 베팅”이라는 수행효과에 주목해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그러한 비평전략에 대해 “책임의 윤리”를 묻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마디로 “의도 확대의 오류”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현장평론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그가 왜 주요 문예지의 편집위원들이 포진된 좌담에 대해 메타비평을 시도해야 했을까? 좌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좌담이 민족문학론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을 것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정말, 임규찬은, 오직, ‘문학적 베팅’의 불공정성과 책임윤리의 부재를 비판하기 위해서만 이 글을 쓴 것일까? 그렇다고 믿기에는 그의 ‘개입’은 너무도 늦게 시작되었다. 임규찬도 지적했듯이, 이 좌담에 참석한 평론가들이 굳이 이 좌담에서만 민족문학론이나 리얼리즘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개입’은 이미 오래전에 시도되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그것은 이들의 ‘베팅’이 노골적으로 창비의 문학적 의제를 폄하하거나 비판하면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광호는 2000년대에 민족문학과 리얼리즘을 말한다는 것은 “문학적인 생산성이 없다는 의미에서, 힘이 없는 헛것하고 싸운다는 느낌”이라고 하며(『문학동네』 가을호 173면), 창비의 리얼리즘 갱신론 또한 “이념의 보존을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한다. 창비의 문학이념이 한국문학에 대한 현실적 독해력을 상실했는데도 이념적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백낙청 선생께서 지금 시대를 ‘통일시대’라고 규정하신 것이 일종의 상위논리가 되고 그에 따라 최근의 문학 텍스트 가운데서 ‘통일시대’를 읽어내려고 하는 식의 기도가 뒤따른다면, 그건 정말 힘든 일이 될 겁니다”(같은 글 181면)에서처럼 그 이념적 권력인 백낙청 비판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창비 편집위원들이 발표한 글들이 백낙청에게서 촉발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광호는 한기욱이 아니라 백낙청의 비평적 입장을 공격하고, 이에 임규찬은 “민족문학(론)은 자주 등장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극단적인 ‘무시’를 당하는 역설의 포로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이광호의 논법이 “‘1980년대’를 부정함으로써 ‘1990년대’를 정당화하고 ‘리얼리즘’을 비판함으로써 ‘모더니즘’을 정당화하는” 네거티브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90년대 이후의 모든 문학적 가능성을 미적 모더니티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흡수해버리는 이광호의 논법이 ‘80년대라는 유령’의 재구성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비단 이광호만이 아니다. 2000년대 문학의 새로움과 가능성에 주목하는 대부분의 글들은 암묵적으로 80년대 혹은 90년대 문학을 ‘잿더미’로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그들은 비평을 통해 ‘차이’를 사유하지만, 종종 그것은 ‘차별’이라는 흉기로 둔갑되어 사용된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임규찬의 ‘개입’에는 몇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먼저, 비판의 근거와 정당성을 다른 평론가들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이른바 ‘각주의 정치학’으로 일관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홍기돈을 내세워 김형중의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 인용을 비판한다. 또 방민호를 호출하여 이광호의 ‘무중력공간’론을 비판하고, 권성우와 한기욱을 불러와 종언 이후의 문학에 대해 말하고, 유희석을 등장시켜 류보선의 근대성 개념을 비판한다. 한기욱이나 유희석이라면 몰라도 왜 방민호, 권성우, 홍기돈인가? 그리고 어느 순간 창비에 가해진 이광호의 비판을 “민족문학진영”에 대한 비판과 등치해버린다. 그는 90년대 이후 민족문학론이나 리얼리즘론이 ‘진영’ 개념을 탈각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광호의 비판을 진영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인다.

다음으로 임규찬은 이광호가 민족문학‘진영’의 ‘게으름’을 ‘무능력’과 동일시하고, ‘성실성’을 내세워 자신의 ‘과도한 해석’을 숨긴다고 지적한다. 이런 반론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곰브리치(E. Gombrich)를 인용하여 “해석의 부족은 작품내용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았다는 결점은 있지만, 작품 자체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다소 엉뚱한 논리를 펼친다. 그 스스로가 “모든 비평적 논의의 핵심은 작품해석과 평가에 관한 문제”라고 적시하면서도 해석의 과잉보다는 차라리 결핍이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 해석의 과잉을 문제삼는 것이야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곧 해석의 부족이나 비평적 게으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해석의 부족과 과잉은, 동전의 양면처럼, 마찬가지로 비판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규찬은 “민족문학진영”의 나태함을 ‘해석의 부족’이라는 도덕성(?)을 내세워 덮어버린다. 물론 가능성을 성급하게 현실성과 등치하거나 문학적 성취보다는 새로움에, 예술적 형상화보다는 담론적인 차원에만 눈을 돌리는 비평적 행태에 대해서는 비판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른바 ‘감수성’과 ‘감식안’에 근거해서 “무수히 쏟아져나오는 작품 하나하나”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을 “작품의 호적부”를 작성하는 작업쯤으로 폄하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물론 비평의 본질이나 지향점이 개별 작품의 해석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해석의 과정 없이 “진리탐구”가 가능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임규찬이 말하는 “개별 작품에 대한 엄정한 분석과 독자적인 문학적 성취를 통한 진리탐구”는 바로 쏟아져나오는 작품들을 세밀하게 읽어내는 정신적 피로를 감당하면서, ‘감수성’과 ‘감식안’을 동반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그는 민족문학진영, 아니 창비의 비평적 무능을 은폐하기 위해 개별 작품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를 “해석의 과잉”이라고 몰아붙인다. 이러한 논법은 2000년대 문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80년대, 90년대를 폄하하는 전략과 결코 다르지 않다. 임규찬은 이광호가 사용한 방법과 전략 그대로를 이광호에게 되돌려주고 있는 셈이다. 임규찬의 글이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반복적으로 이광호의 비판이 ‘부당함’을 강조하고, 나아가 이광호나 김형중 비평이 과도함을 비판함으로써 창비의 비평적 현실을 정당화한다.

결국 핵심은 “해석의 과잉”에 대해 “해석의 부족”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비평이 ‘해설’과 ‘호적부’라는 비판을 넘어서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때 비평적 글쓰기는 당대성과 현실성을 동일시하는 좁은 안목에서 벗어나 “진리탐구”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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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문예지들이 2000년대 한국문학을 ‘징후’의 차원에서 의미화하려는 기획을 내놓고 있다. 징후 읽기는 현재 속에 존재하는 미래의 시간을 개시(開示)한다는 점에서 유용한 비평적 독법이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최근의 비평들에서 이 의미화의 방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지는 듯하다. 젊은 작가들의 미학적 새로움을 21세기 한국문학의 경향성과 동일한 것으로 평가하는 태도가 그 하나라면, 한국사회의 변화된 현실을 강조하고 한국문학의 시야를 한반도적 시각으로 넓히려는 태도가 다른 하나이다. 전자에서 담론에 관한 문제의식은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지 못하며, 후자에서 담론의 정당성은 개별 작품에 의해 보증되지 못한다. 작품의 예술적 성취에 대한 평가 없이 담론의 새로움만을 주장하는 비평적 태도가 문제이듯이, 작품에 근거하지 않은 입론은, 한국사회의 조건은 해명할 수 있을지언정 문학적 현실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두가지 태도 모두 변화된 ‘현실’의 중요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전자의 ‘현실’은 너무 좁고, 후자의 ‘현실’은 지나치게 넓다. 물론 이는 ‘현실’이라는 것이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중력’의 신화를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현실’이라고 간주하기에는 우리의 삶과 문학적 현실이 지나치게 근대적이며, 한반도 전체가 ‘현실’의 범위라고 주장하기에는 한국문학과 우리의 일상이 과도하게 한반도의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시대에 남한만의 현실이라는 것이 한갓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2000년대 문학에서 한반도적 시각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설령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곧장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지배적 경향과 동일시하는 것은 맹목적 일반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중력의 신화와 한반도적 시각 모두는 IMF사태라는 삶의 조건에 의해 제어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담론과 조건이 아니라 작품의 실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개별 작품들이 담지하는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들, 그것이야말로 ‘실감’의 차원에서 우리를, 고통스럽지만 무한한 잠재성을 지닌 현실과 대면하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