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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명란 崔明蘭
1963년 경남 진주 출생.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1210pearl@hanmail.net
꽃 지는 소리
꽃만 피면 봄이냐
감흥 없는 사내도 품으면 님이냐
준비할 겨를도 없이 다가와서는
오래된 병처럼 나가지 않는 사내 가슴에 품고
여인은 벌거벗은 채 서 있다
가랑이와 겨드랑이와 가슴과 입술에서 동백꽃이 피어나
그만 고목의 동백이 되어버린 여인
가슴 도려내듯 서러운 날이면 입으로 동백꽃을 빨았다는
수많은 날들 소리없이 울며울며 달짝한 꽃물을 우물우물 빨았다는
장승포에서 뱃길로 이십분 거리
동백섬 지심도 동백꽃 여인
육지를 버리고 부모 손에 이끌려 섬으로 와
시집살이 피멍든 여인의 가슴은 검붉은 동백기름이 되어버렸다
시든 것들이 오히려 더 질긴 법
꽃답게 피었다가 꽃답게 떨어지는 일 쉽지 않구나
지난밤 내린 비에 무참히 떨어진 동백여인의 시들한 몸이
밀물 때린 갯바위처럼 차다
가슴을 파고드는 파도의 냉기가 무리지어 달려와
또 한번 매섭게 여인을 내리치고 뒷걸음질친다
아하! 부러진 가지에도 꽃은 핀다
여인의 가랑이에 겨드랑이에 가슴에 입술에
다시 붉은 동백꽃이 핀다
꽃만 피면 봄이냐
붉기만 하면 꽃이냐
초가을
지리산 뱀사골 졸참나무 아래
풍욕하는 한 사내가 太자로 누워 있다
맨몸을 낙엽 깔린 땅에 바싹 붙이고
하늘 향해 사지를 척 벌리고 드러누워 있다
아버지가 임종 전까지 꼭 쥐고 계시던 거
오줌 호스를 끼우기 위해 간호사가 건드릴 때마다
어설픈 한손으로 가리기를 먼저 하시던 거
그 늙은 소년의 수줍음이
거기 그 졸참나무 아래 솟아 있어
산다는 건 결국 사타구니에 점 하나 찍는 일
점이 무너지면 大자로 뻗어버리는 일
깨벗고 꽈당 드러눕기만 하면 꼿꼿이 일어서는
풍욕도 도를 넘으면 성욕이 되는 건가
단단히 점 하나 콕 찍고 누웠다가도
낙엽 하나 툭 떨어지다 건드리면
太자는 大자가 되고 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