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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SCN 기획 『담장 허무는 엄마들』, 봄날 2007

‘엄마들’의 보살핌노동과 그 사회적 확장

 

 

허성우 許聖尤

성공회대 연구교수 songwoohur@hotmail.com

 

 

담장『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자녀의 장애가 엄마의 책임인 양 “미안하고 미안해서 한시도 아이를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엄마들”이 “드러내면 행여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봐 (…) 품속에 꼬옥꼬옥 숨겨왔던 아이들”을 “담장 밖 세상으로”(11면) 내놓으려는 첫 시도이다.‘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이 책의 제목이지만, 라디오 방송프로그램 이름이기도 하고, 엄마들의 모임 자체이기도 하다. SCN성서공동체 FM대구 달서구 성서지역 방송국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후 3~4시에 중증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이 직접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이 책은 최근 일년반가량의 방송내용을 엮은 것이다. 중증장애 자녀를 키우며 느끼는 엄마들의 막막함과 이를 넘어서려는 용감한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은 초등학생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여성도 남성도, 학력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특별한 지적 배경이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평이하다. 그러나 그 서술의 평이함을 넘어 어려우면서도 의미있는 질문들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새롭고 특별하다.

이 책의 첫번째 화두는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담장’넘기이다. 장애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비장애‘엄마들’의 목소리는 장애와 비장애 간의 경계를 흐려놓는다. 공부시간에 심한 콧소리를 내며 늘 조는 통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지만 전동휠체어 운전면허증을 따내고 기뻐하는 아이,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따뜻한 농담도 건네고 장난치고 애교도 부리면서 엄마를 감동시키는 아이.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며 마음이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다.‘엄마들’은 장애 자녀들을 돌보며 인간에 대한 감각과 이해의 범주를 끝없이 확장한다. 자기 모습이나 사물이 거울에 비치는 것을 싫어하는 승현이는 거울이나 심지어 유리창마저도 깨버리곤 한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에게 분명 그만의 “세계가 있”을 거라는 것을 감지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49면). 그리고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를” 지녔으나 말은 거의 하지 못하는 승현이는 엄마에게 “가끔씩 선심 쓰듯” “눈을 맞춰”주는 것으로 소통한다(52면).

내가 아는 어느 비장애인은 한때 자신이 무척 혐오했던 사람을 연상시키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갑자기 불안과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왜 그가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지 못하고 그 자신도 그에 대해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상황은 매우 당혹스러워진다. 많은 비장애인들 역시 수많은 말을 하지만 그 말들이 다 소통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말하면서 눈을 맞추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매우 많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배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동일한 연속선상에 선 불완전한 인간들의 여러가지 모습일 뿐이다.

책 속에 삽입된 밝은 얼굴들 혹은 딱히 웃는 얼굴이 아니더라도 선명하고 밝은 색감과 움직임으로 가득한 아이와 엄마의 이미지들은 재미있고 따뜻하다. 이 역동적이고 활기찬 이미지들은 거리에서 잠시 스쳐가는 장애인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던져왔던 싸늘한 이질감과 무관심에 대한 미학(美學)적 고발이자 역전이다.

이 책의 두번째 화두는‘엄마들’의‘보살핌노동’과 그 한계에 대한 인식 및 그 의미의 사회적 확장이다.‘엄마들’은 학교 2층까지 45도가 넘는 경사로로 마치 곡예하듯 아이가 탄 휠체어를 밀고 다닌다. 장애 자녀의 존재를 자신이나 가족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면서도 이들을 살아 있게 하기 위해‘엄마들’은 학교로 장애치료기관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아이들을 보살핀다. 장애는 운명적인 것도 개인적인 실수도 수치스럽고 감춰야 할 것도 아닌데 비장애인들의 권력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어왔다. 2007년 현재 전체 장애인 200만명 중 중증장애인은 54만명인데, 이들을 위한 시설은 이 가운데 고작 2만명도 보살피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기서‘엄마들’은 54만명 중 단지 몇명에 불과할 뿐이다.‘엄마들’은 장애인이 누릴 권리가 자신들의 헌신적인 보살핌노동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은 형제자매와‘아빠들’을 포함한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가 보살핌의 책무를 실천하는 데서 진정으로 향유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엄마들’에게는 장애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아를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의 가혹한 태도”(135면)와 “거부감”(221면)이 더 큰 문제이다. 그래서 이런 담장을 부수고자 한다. 경사로와 싸우는 대신 학교에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고, 특수학교의 열악한 상황을 고치기 위해 전경들과 싸우며 대구시 교육청의‘담장’을 넘는다.‘엄마들’은 교육청에서 “1억도 없다는 예산을 60억이나 받아내서 새로 학교”를 짓게 만들었다(144~45면). 특수학교조차 다닐 수 없을 만큼 장애가 심한 아이에게는 개별지도 교육체계도 필요하다. 장애복지기관들에서는 장애유형별, 연령별 프로그램이(108면), 기초수급자가 아닌 가족의 장애 자녀들이 특수학교 졸업 후에도 보호받고 생존할 수 있는 시설이, 장애 자녀들의 교육을 도와줄 수 있는 활동보조원이, 장애아들의 상황에 따라 개별적인 특수교육과 통합교육을 선택해 받을 수 있는 권리들이 필요하다.

이 책은 비장애‘엄마들’의 목소리지만, 여기에는 다른 모습의 엄마들의 목소리도 어우러져 있다. 장애 자녀들을 돌보는 장애·비장애 교사들, 장애문제연구 전문학자, 그리고 성서방송국 PD들의 목소리는‘엄마들’의 목소리와 한데 녹아들어 있다. 그들은‘엄마들’처럼 보살핌노동을 하는 사람들로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엄마들’의 범주는 사회적으로 확장된다. 민주화 이후 국가적으로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사람을 돌보는 일/노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엄마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기보다는 모두가 다른 모습의‘엄마들’이 되어 빈곤, 환경, 전쟁의 위협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시기이다.

그러나‘엄마들’에게 두가지 의문점이 든다. 방송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방송작가 아무개보다 아무개엄마로 불리기를 원하는 엄마들. 한 엄마가 올린 댓글에는 엄마들 이름 대신 아이들 이름이 씌어 있다. “광수, 진곤, 건이, 웅이, 현준이”(145면). 한 개인으로서의‘엄마들’의 삶은 무엇인가. 자녀를 사랑해 고된 보살핌노동을 해나가지만‘엄마들’의 삶도 더 자유롭고 더 인간다워야 한다는 것을 누가 대신 말해줄 것인가. 슬프지만 이것 역시‘엄마들’의 몫으로 남는다.‘엄마들’이 한 인간으로서 자기를 표현하고 분출할 수 있는 통로는 어디인가. 장애자녀 돌보기에서 이런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사치일 뿐일까.‘엄마들’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그에 대한 표현 또한 보살핌노동의 사회적 확장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또 하나의 길이 아닐까.

다른 한가지는 이 책에‘아빠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빠의 목소리가 나오는 곳은 총 299페이지 중 단 한페이지에 불과하다. 아빠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장애 자녀 돌봄은 오로지‘엄마들’의 몫인가. 아빠들은 공적 영역만 책임지면 된다는 관념 아래 장애 자녀 돌보는 일을 전적으로‘엄마’에게 맡겨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빠들도 자녀를 돌보고 싶지만, 공적 영역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매일을 살고 있는 것일까.‘아빠들’은 보살핌노동으로 온종일 바쁜‘엄마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장애 자녀들은 아빠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혹 엄마 없이 장애 자녀를 홀로 돌보는 아빠들도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이 책은 말해주지 않는다.

‘담장’은 장애와 비장애 사이, 역동적이고 복잡한 현실과 박제화된 사회적 제도 사이, 가정과 학교/사회 사이뿐만 아니라 보살핌노동을 하는 여성과 보살핌노동과 분리된 채 살아가는 남성 들을 용인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남성성 사이에도 가로놓여 있다. 이 담장도 마땅히 허물어져야 할 담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