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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차창룡 車昌龍
1966년 전남 곡성 출생. 1989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등이 있음. carchang@hanmail.net
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때
강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던 고양이를 친 트럭은
놀라서 엉덩이를 약간 씰룩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북으로 질주한다
숲으로 가던 토끼는 차바퀴가 몸 위를 지나갈 때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공기가 되어가고 있다
흰구름이 토끼 모양을 만들었다
짐승들의 장례식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긴 차량행렬이 곧 조문행렬이었다
시체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도 소용없다
자동차가 질주할 때마다 태어나는 바람이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가족들은 멀리서 바라볼 뿐
시체라도 거두려 하다간 줄초상난다
장례식은 쉬 끝나지 않는다
며칠이고 자유로를 뒹굴면서
살점을 하나하나 내던지는 고양이 아닌 고양이
개 아닌 개 토끼 아닌 토끼인 채로 하루하루
하루하루 석양만이 얼굴을 붉히며 운다
남북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뒤섞이고 있을 때
출판단지 진입로에서도
살쾡이의 풍장(風葬)이 열하루째 진행되고 있다
여자의 짝은 결국 여자였다
생활고 때문에 아내와 싸운 아침
바다로 출근하는 한강물에 뛰어들고 싶다
한강이여 나를 다시 새우로 태어나게 해주련
한강은 풍덩 가슴을 벌려 나를 안는다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 여자의 자궁에서
가장 작은 생물로 태어나게 해달라 발원하는데
한강은 묵묵히 북쪽으로 달려갈 뿐이다
오두산 근방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더니
북쪽에서도 홀연 남으로 오는 여자 있어
나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또 빌어본다
당신의 자궁에서 플랑크톤이나 되게 하소서
그 은혜 현금써비스 받아서라도 갚으오리다
한도가 꽉 찼다는 걸 아시는지
두 여자 내 목소리에는 아랑곳없이
서로 껴안고 사타구니를 부빈다
여자와 여자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두 여자 온몸으로 교접하고 있을 때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나면서
서해에서는 갯지렁이와 꽃게와 낙지와 전어가 태어나고
홍합과 굴이 바위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서쪽을 향해 그토록 부지런히 달려왔던 두 여자
여자의 짝은 처음부터 여자였다
하류에 와서 한강과 임진강은 비로소 제 짝을 만나
서해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