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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문학이란 무엇인가

 

주변성의 돌파

마샤두와 19세기 브라질 문학의 성취

 

 

호베르뚜 슈바르스 Roberto Schwarz

브라질 쌍빠울루의 깜삐냐쉬대(UNICAMP) 문학부 교수. 주요 저서로 『자본주의 주변부의 거장, 마샤두 지 아씨스』(Um Mestre Na Periferia do Capitalismo: Machado de Assis), 『잘못 적용된 개념들: 브라질 문화에 관한 에쎄이』(Misplaced Ideas: Essays on Brazilian Culture) 등이 있다.

* 이 글은 『뉴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 2005년 11-12월호(통권 36호)에 실린 “A Brazilian Breakthrough”를 번역한 것이다. ⓒ New Left Review 2005 / 한국어판 ⓒ 창비 2008

 

 

옮긴이의 말

 

이 글은 19세기 브라질이 근대를 따라잡을 국가적 임무의 일환으로 적극 모방한 서구의 문학형식들이 흔히 거기에 부여되는 성격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 양상을 브라질 사실주의 소설의 두가지 상반된 예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슈바르스는 브라질에서 근대사회의 통상적 지표들을 충실히 담고자 한 사실주의 소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식민지체제의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주변부 국가로서의 특징과 연관짓는다. 반면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마샤두 소설의 성취는 서구적 사실주의를 창조적으로‘반전’시킨 결과로 설명된다.

그의 논의가 지닌 강점은 미학적 층위와 사회·역사적 층위를 넘나들면서도 억지스럽거나 단순화하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는 특히 근대 대 전근대라는 도식을 벗어난 데 힘입은 것이다. 그는 19세기 브라질 사회에서 근대와 전근대가 갈등을 일으키지‘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런 식의 이상한 공존관계를 사실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파헤치려는 노력이 마샤두 소설의 특별한 미적 창조력을 낳았음을 입증한다. 달리 말하면, 그의 주장은‘보편적’문학형식이 주변부 국가의‘특수한’상황 때문에 굴절되었다는 식의 설명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의‘보편적’핵심을 배반하는 상황에 이렇듯 별다른 갈등 없이 적응하는 문명의 보편성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여기에 대한 답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점이 마샤두로 대표되는 브라질 문학의 성취임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사실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슈바르스가 마샤두의‘반전된’사실주의 소설의 성과로 설명하는 내용들은 국내의 리얼리즘 논의와 연결되는 면이 많다. 19세기 브라질이 직면했던 중심과 주변의 문제가 여전히 살아 있는 현재적 사안이라고 본다면 이 글에서 생각의 단서들을 많이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황정아│이화여대 연구교수, 영문학

 

 

 


마흔의 나이에 주아낑 마리아 마샤두 지 아씨스(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1839~1908)는 지방적이고 다분히 관습적인 작가에서 세계 수준의 소설가로 자신을 변화시켜줄 서사장치를 발명했다. 이 도약은 통상 전기적(傳記的)이거나 심리적인 차원에서 설명되곤 한다. 평자들은 당시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른 마샤두가 세상에 대한 환상을 잃고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옮겨갔다는 식으로 즐겨 말한다. 하지만 병에 걸려 미망을 떨치거나 새로운 문예사조를 받아들인다 한들 반드시 위대한 작가가 되라는 법은 없으므로, 이런 종류의 설명들은 초점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이 변화를 문학형식의 변화로 본다면 논의의 틀이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마샤두의 혁신은 객관적 문제에 대한 미학적 해결책으로 보이게 되며, 이때 객관적 문제란 단순히 그의 작품들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브라질 소설과 사실상 브라질 문화 전반의 발전, 심지어 어쩌면 피식민의 역사를 지닌 사회 일반의 발전에 내재한 문제들이다.

교과서를 보면 대개 마샤두 지 아씨스는 낭만주의자들 이후에 등장해 이들의 환상을 무너뜨린 한편, 후대 자연주의자들의 현세적 물질주의 또한 예술적 오류라며 거부한 사실주의 작가로 분류된다. 이같은 분류는 대번에 반박당할 소지가 많다.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사실주의적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의 조류에 비추어볼 때 마샤두의 서사 스타일은 약간 구식이었고, 이는 상당부분 18세기 영국 문학과 프랑스 문학에서 발견되는 여담과 희극적 수사의 요소 탓이었다. 겸허하게 소재가 요구하는 바를 엄밀히 따른다는 사실주의적 이상(理想)에서 마샤두만큼 멀리 떨어진 작가도 없을 것이다. 한편 심리적 동기에 관한 그의 비관습적인 감각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서간 것이다. 이 감각은 무의식의 철학을 예견하면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둘 다를 넘어선 일종의 물질주의를 탐구했으며, 프로이트와 20세기의 실험들을 예표(豫表)했다. 마샤두는 삶의 저급한 측면을 선호하는 자연주의자들의 성향을 겉으로는 피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도리어 더 아래로 뛰어들었으며, 생리학과 풍토, 기질, 유전의 예속 대신 그보다 훨씬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사회 속의 정신적 예속을 다루었다. 마샤두와 자연주의자들 사이에는 분명한 경쟁구도의 면모가 있었고, 거친 소재를 선호하는 취향을 비롯한 자연주의자들의 허세는 결과적으로 다분히 순진하고 심지어 퍽 건전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관습적인 기준을 적용하면 마샤두를 반(反)사실주의자로 부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움직이는 당대 사회를 포착하려는 야심을 사실주의의 독특한 정신이라 여긴다면, 분명 그는 위대한 사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견 반사실주의적 장치들을 활용한 사실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그의 복합성에 더 잘 들어맞을 것이다. 물론 왜 그런가 물을 필요가 있다. 이런 역설이, 다시 말해 미적 장치와 그것이 묘사하는 삶의 내용 사이의 의도적인 부조화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이 본고의 논지이다. 즉 유럽의 사회사·문학사의 경로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고 내적 필연성을 상실하는 주변부 국가에서는 사실주의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좀더 일반화해서 말하면, 근대적 형식들을 낳았고 어떤 의미에선 그러한 형식들의 전제가 되는 사회적 조건들이 나타나지 않는 지역에서 근대적 형식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형식이 우리 세계의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동일한 것을 의미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은 공간을 그토록 멀리 가로지를 때 매우 불균등해질 수 있어서, 중심부에서 이미 죽은 예술형식이 주변부에서는 아직 살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격한 차이를 두고 유감을 표시할 수도, 반대로 만족감을 나타낼 수도 있다. 더 풍부한 색채와 의미를 지녔던 삶의 옛 형식들의 이름으로 진보를 한탄하든지, 아니면 닳아빠진 옷을 벗어던지고 시대의 분위기를 포착하지 못하는 후진성을 개탄하든지, 혹은 이 양자를 동전의 양면으로 싸잡아 내치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에 뒤처지고 싶지 않았던 브레히트(B. Brecht)는 아침에 크루프(Krupp)사의 공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노동자들을 뚫어져라 본댔자 사실주의자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단순한 현실반영으로는 더이상 현실에 관해 알 수 없다는 의미-옮긴이). 일단 현실이 추상적 경제기능으로 옮겨가면 더는 인간의 얼굴에서 현실을 읽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사회적 구분이 여전히 적나라한 전(前)식민지의 삶을 관찰하는 편이 훨씬 보람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구체성 역시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세계시장의 추상성은 결코 멀리 있지 않으며 자발적 인식의 충만함이 허위임을 수시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필자가 살펴보려는 미적·사회적 영역은 국제적인 동시에 불안정하고, 문학형식을 흔히 미적인 것과는 동떨어진 상황에 뜯어맞추는데, 그 방식도 예측하기 힘들다. 문학적 사실주의와 관련된 질문들을 개별 작품이나 작품의 질에 관계없이 형식상의 꼬리표만 보고 답할 수 없다는 점은 쉽사리 수긍할 수 있다. 어쨌거나 오늘날에는 사실주의의 표면적인 특징들이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가릴 것 없이 통속드라마와 2류소설, 영화와 광고에 편재한다. 하지만 이런 특징들은 사실주의의 진면목이 상실된 양상이며 고전적 사실주의가 지닌 신뢰성과 복잡성을 멜로드라마나 상업적 유인책의 반복과 단순화된 도덕적 진술들로 바꿔놓는다. 모더니즘 작가와 비평가들이 한 세기 전에 지적한 대로, 한때 새로운 것을 파악하고 그것에 충실할 수 있었던 사실주의의 역량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사라진 것은 거꾸로 사실주의의 전성기에 포착된 사회와 사회적 동력인지도 모른다. 후대의 평자들이 그런 식의 포착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부인하고 심지어 그것이 예술적 포부라는 것마저 부인한 사실은 바로 이런 변화의 일부다.

 

 

몇몇 결정적 계기들

 

이런 상황에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가지 측면이 있다. 브라질의 비주류 문학사가들은 예전 식민지였던 이 나라가 독립국이 되면서 많은 점에서 옹호하기 힘든 (아직 브라질까지 도달하지 않은 진보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브라질 특유의 문학적 지형이 유럽의 문학 유파에 새로운 과제를 부과했고 그럼으로써 이런 유파들을 부지중에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그 변화 중 일부는 안또니우 깐지두(Antonio Candido)의 뛰어난 저서 『브라질 문학의 형성: 결정적 계기들』(Formaçào daliteratura brasileiramomentos decisivos)에서 세심하게 다루어진 바 있다.

그와같은 형성적 계기 중 첫번째인 신고전주의 양식은 식민지시기 마지막 50년 동안에 발생했다. 그리고 1822년 독립 이후 50년 동안은 낭만주의가 뒤를 이었다. 애초부터 민족주의에서 출발한 주류 문학사는, 신고전주의가 전달하는 목동과 님프들의 양식화된 이미지와 보편주의 정신은 중심부가 식민지에 강요한 소외를 대표하는 반면, 기사도적 원주민의 모띠프와 생동감 있는 현지 배경의 묘사가 담긴 낭만주의는 독립의지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자로서가 아니라 국민문학의 형성을 연구하는 사회주의자로서 글을 쓴 깐지두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가 『브라질 문학의 형성』에서 개진한 명제는, 오랜 기간 지속된 이 두 문학적 계기들은 선명한 예술적·지적 대조를 이루긴 하지만 둘 다‘독립 달성기’(Independence-in-the-making)의 자장(磁場) 아래 제각각 활용되었고 그런 점에서 어느정도는 통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주류 문학사보다 훨씬 흥미로운 그림을 제공해주며, 우리가 잘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세계사의 인력(引力)과 그로부터 발생한 다양한 변주들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신고전파의 목동과 님프는 이성과 공적 의무의 원칙, 교육적·행정적 책임의식, 자기이익과 자기통제를 동반한 계몽주의를 표현하며, 반식민주의적 색채를 띠면서 나라의 독립을 향한 최초의 모의들에 자양분을 제공했다. 이상화된 목가풍의 서사관례조차 지역적 환경과 뒤섞이며 복잡한 충성관계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시인들은 타고난 환경의 헐벗고 익명적인 후진성에 소속된 동시에 고전적 신화의 유명한 풍경에도 속하며, 이런 이상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시골생활의 시대물들은 종종 바로 그런 조합의 결과로 분열되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가장 보편주의적이고 초시간적이며 과장된 관습이 이국적 지방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독특한 시적 방식으로 구체적이고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전달한다.

낭만주의 역시 일종의 역전을 겪었다. 이 나라의 교육받은 소수계층의 일원으로서 낭만주의자들은 대개 권력에 가까운 지위를 차지했고, 국가건설의 임무에 동참하여 책임있는 관리자의 태도와 언사를 취하라는 압박을 받았으며, 신고전주의와의 연속성이 강했다. 그와 동시에, 독립과 더불어 한껏 펼쳐진 (특히 낭만적인) 지방주의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열대 국가를 대하는 유럽인들의 기대에 일정하게 굴복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브라질의 경험을 특징짓는 이런 반전에는 아이러니와 의외의 독창성이 있으며, 더 자세히 검토할 가치가 충분하다.

 

 

또 하나의 문학체계

 

나라의 독립이 연이은 두가지 상반된 문학 유파를 뒤틀어 한데 묶고 변형시켰다는 발견-이는 정녕 하나의 발견이었다-은 역사연구의 독자적인 대상을 정립했다. 탈식민과정의 구성요소로서의 국민문학 체계 형성이 그것이다. 깐지두에게 이는 상대적으로 압축적이면서도 의지가 개입된 과정이었고 자체의 논리와 목표와 희극성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연대기적 순서나 관습적인 문학사의 서술구도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형성단계는 당대 서구의 주요 유파를 터득하고 브라질의 여러 지역들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문학에 담아내면서 끝난다. 이렇게 해서 브라질의 유기적 상상력이 자기지시성과 일정한 자율성을 갖추고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당대의 경험을 이처럼 내적 토대를 갖춘 덜 수동적인 방식으로 대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갖는 가치는 자명하며 문학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가 다소 형식주의적이고 정해진 프로그램에 맞춘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브라질의 문화적 삶의 발전을 놀랍도록 정확히 재현했으며 이제껏 인정되지 않았던 현실들을 지적으로 밝혀주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두가지 예를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신고전주의적 보편주의와 낭만주의적 지방주의의 연속이라는 서구 문화사의 익숙한 유형은 과거 식민지였던 신생국의 요구에도 부합했다. 하지만 이 요구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세력장(場)에 속하며 서구적 문화양식의 배열에 그대로 흡수될 수 없었다. 대신 보편주의와 지방주의는 식민지적 고립을 탈피하여 평등하고 유능한 시민으로 서구문명 일반에 참여하는 동시에, 브라질 고유의 정체성을 갖고 국가들의 협력에서 뚜렷한 역할을 담당하길 원했던 브라질 소수 교양계층의 요구에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상응했다. 이는 언뜻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다투는 듯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보편적인 것과 지방적인 것 사이를 오가는 것이 이 나라 문화생활의 항구적인 운동법칙이었음을 뜻한다. 브라질의 문화적 현실에서 또 하나의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특징은 이 신생독립국이 자국의 교육계층에게 박물관부터 철학이론, 새로운 패션과 최신 문학형식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문명적 장비들을 가능한 한 신속히 공급할 국가적 의무를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깐지두가 지적했다시피 국민문화의 (비판보다는) 건설에 참여하도록 종용받은 지식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요청은 결국 독특한 종류의 현실참여가 된다. 이와같은 특별한 결합 때문에 가령 고답적인 쏘네트를 쓰는 학생이 스스로를 마치 애국적 임무를 수행하는 영웅처럼 느끼는 일이 생긴다.

1959년 출판 당시 『브라질 문학의 형성』은 그보다 3년 전-웰렉(R. Wellek)과 워렌(A. Warren)의 『문학의 이론』(Theory of Literature)에서 영감을 얻은-비평가 아프랑니우 꼬찌뉴(Afrânio Coutinho)가 조직하여 시작된 집단적 프로젝트, 『브라질의 문학』(A literatura no Brasil)에 대한 유물론적 반박이었다. 꼬찌뉴는 자신의 논지가 과학적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때 과학적이라는 말은 그가 사용한 시대구분의 범주가 오로지 문학적이었다는 것, 다시 말해 그 범주가 마치 역사적 상황과는 전혀 섞이지 않은 보편형식인 것처럼 양식의 문제에만 관련되었다는 의미였다. 바로크는 어디건 상관없이 바로크이고, 신고전주의는 어디서나 신고전주의이며, 낭만주의 등등도 마찬가지이고, 주어진 조건이 어떻든 이런 순서대로 온다는 식이었다. 이런 접근법의 일반적 결함은 이미 밝혀졌지만, 중심부 국가들의 발전을 반복하기 어렵다는 점 혹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주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경험을 이루는 전(前)식민지 나라들을 보면 특히 분명해진다. 브라질이 중심부의 형식과 맺는 관계에서 숨겨진 밝은 면을 찾으려 했던 브라질의 어느 재사(才士)는 한때 “모방할 줄 모르는 우리의 창조적 무능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1 푸꼬의 자기폐쇄적 인식소(self-enclosed epistemes)의 연속이라는 이름으로 이처럼 엄격한 양식상의 시기구분이 오늘날 다시금 유행하고 있다.

다른 한편 『브라질 문학의 형성』은 속류 맑스주의의 대안이기도 했다. 근대국가로서의 심각한 약점을 인식하여 유럽문명의 기본요소들을 흡수하고 해외의 새로운 발전을 따라잡는다는 애국적 과제는 하나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나 다름없었다. 현실의 압력은 실재했고 그 나름의 권위와 매력을 발휘했다. 그것은 또한 엘리뜨들에게 일정한 정통성을 부여했고 이들은 스스로를 국가적 임무를 띤 문명화세력으로 느꼈다. 객관적으로 이런 책무가 있었음은 틀림없지만 깐지두가 책을 쓸 당시 제국주의와 내부 계급관계만을 이야기하는 당대 맑스주의의 어휘에는 그것을 표현할 적당한 용어가 없었다. 세상의 새로운 것을 공유하려는 브라질의 욕망, 이 엄연한 역사적 욕구는 맑스주의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의혹의 대상이었으며, 개념상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사실상 브라질에 부과된 유럽적 발전이라는 조건에서 도망칠 방법도, 또 이를 달성할 방법도 없었다. 그 결과 브라질의 문화는 줄곧 균형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지방의 촌스러움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중심과 주변이 상호 연관된 현실임을 인식한다면 그로부터 역사적 과정 전체의 핵심적이고 종종 그로테스크한 불균형을 통찰할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것이었다.

 

 

불발된 사실주의

 

그렇다면 이런 조건에서 사실주의는 어떻게 되는가? 충실한 사실묘사와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사실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브라질 사람들에게 그리고 아마 19세기 주변부에 살던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주의 소설은 뭔가 다른 것이기도 했다. 사실주의는 근대성을 따라잡으려면 반드시 접수해야 할 새롭고 명망있는 유럽적 발전의 일부였다. 따라서 주변부 국가에서 사실주의는 근대적 현실을 향한 비판적 참여일 뿐 아니라, 그 현실을 가장 세련되게-선진적이며 계몽적으로-표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우쭐한 표지이기도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두 양상은 분리 가능하며 같은 무게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실상 사실주의가 애초의 주된 채택 이유였을 법한 첨단성의 기호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실제 상황에 속마음으로는 무관심한 채 포즈만 취하는 것으로도 비판적 참여로 행세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중요한 사실과 상황이 무엇인지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개별 사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사실묘사와 상황에 대한 관심이란 생각보다 훨씬 덜 분명한 개념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본주의 세계의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대립은 아무 내용도 없을 것이다. 문학사를 살펴보면 이 점에 관해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다.

사실주의를 진지하게 시도한 최초의 브라질 작가는 발자끄의 독자였던 주제 지 알렝까르(José de Alencar, 1829~77)였다. 사실주의적 특징을 보인 그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성취는 『씨뇨라』(Senhora, 1872)였다. 주요 등장인물, 분위기, 플롯과 갈등의 유형은 발자끄에서 직·간접적으로 빌려온 것이었다. 조연급 인물들과 모띠프는 도시적 일상의 낭만적 연대기에서 끌어냈고 지방적 색채와 어조와 관례들을 양껏 구사했는데, 더 오래전에 들여온 것이라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면서 토착적인 것처럼 여겨지기는 했어도 이 역시 발자끄만큼이나 외국산 수입품이었다. 도식적으로 요약해보면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야기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유산을 물려받게 된 아리따운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일단 부자가 되자 그녀는 부가 만들어낸 노예상태, 특히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교계의 젊은이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런 사람들 중에 가난하다고 그녀를 차버렸지만 그녀가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는 무일푼의 멋쟁이 신사가 있다. 이 신사는 여동생에게 지참금을 대주어야 하지만 빚더미에 빠져 있다. 돈만 아는 부도덕을 이유로 그와 그녀 자신 그리고 사회 전체를 벌주기 위해, 여주인공은 이 신사를 꾀어 그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돈을 댓가로 은밀히 결혼식을 올릴 계획을 세운다. 그는 곧장 덫으로 뛰어든다. 결혼식이 다가오자 그는 필요한 돈에 사랑하는 여인까지 얻게 되었음을 발견한다. 그때 그의 신부는 그가 스스로를 파는 조건이 붙은 계약서를 내민다. 완벽한 굴욕인 셈이다. 그는 보복을 위해 자기 의지가 없는 그녀의 재산으로 철저히 행동하고, 마침내 이 상황의 비인간성을 견디다 못한 그녀는 그를 사랑과 행복한 결혼생활로 다시 초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설은‘댓가’ ‘탕감’ ‘소유’ ‘몸값’이라는 제목이 붙은 네 장(章)으로 구분되어 금전적 계산이 인간적 감정에 무자비하게 우선하는 현상을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다소 유치하지만 알렝까르는 솜씨있고 활력있게 끌고 나간다. 이 글의 논지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연애결혼 대 정략결혼, 혹은 더 간단히 말해 사랑 대 결혼이라는 동시대적 긴장은 어떤 댓가를 치르든 이를 자신의 삶이 걸린 추상적인 문제로 바꾼 인물들을 통해 극적으로 극단화된다. 내용과 형식의 중간에 걸친 이런 장치는 발자끄에서 온 것이며 한계를 모르는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근대사회의 청사진에 의존하는데, 이런 사회는 오직 프랑스혁명으로만 생겨날 법한 사회다. 여기서 중대한 문학적 결과가 발생한다. 만일 이런 장치가 주변부 국가에 적용된다면 그리고 사실주의에 필수적인 현지의 소재로 채워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소설의 중심무대를 차지한 사교계의 젊은이들은 과장된 발자끄식 공식에 따라 행동하며 극단적인 사회적 선택을 실행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취하거나 현지 신문에서 각색되어 희극적이면서도 지방적인 양식으로 그려진 조연급 인물들은 추상적 원리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 한층 느긋한 느낌으로 살아 있다. 이들은 덜 역동적인 영역인 후원자-부하 관계 내지 온정주의로 이루어진 세계에 속하는데, 이는 사랑이 절대적이지 않고 돈은 부족할망정 야비한 것이 아니며 개인이 자기가 묶인 수많은 관계들을 반드시 준수하지는 않더라도 존중심은 갖는 세계이다. 다시 말해 작품의 중심적 갈등의 내용과 형식이 현장적 실감을 확보하고 사회적 경향을 전달할 임무를 띤 부차적 인물군상과 따로 놀고 있다. 발자끄 소설의 위대한 효과 중 하나인 주요 갈등과 부수적 일화 간의 근본적 통일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같은 『씨뇨라』의 상대적 실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발자끄풍의 근대적 갈등이 지방적 특색을 전달하는 인물들과 불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역사적인 성격일 수밖에 없다. 브라질의 독립은 사회적 재편을 수반하지 못한 보수적인 과정이었다. 지주, 노예, 인신매매, 대가족, 일반화된 예속적 후원관계라는 식민시기의 유산이 거의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브라질의 근대세계 진입은 식민지 구체제를 대체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를 사회적으로 공고화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되면서 전근대적 불평등이 뿌리 뽑히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서 계속해서 복제되는, 착잡한 종류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 유형이 급진적 근대주의를 선호하면서도 이를 계속 손상시키는 상반된 성향을 지닌 브라질 문화의 독특함을 이해하는 열쇠일 것이다. 최첨단의 근대와 명백한 전근대 사이에 긴장이 부재하는 이런 이상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두 용어는 난폭한 대조를 이루면서도 좋은 동반관계를 형성하며, 양자의 결합은 불균등 발전을 나타내는 다채롭고 친근한 국가적 표상을 만들어낸다. 근대화의 내적 동력은 멈칫거리는 형국이다.

알렝까르의 소설은 그런 대립들이 얼마나 건성으로 설정된 것인가를 보여준다. 현지사회와 그곳의 온정주의적 관계의 환기는 중심 플롯에 부차적이긴 해도 강력한 실감을 가진 것이어서, 이 소설에서 진정으로 사실주의적이고 근대적인 요소를 나타낸다고 되어 있는 주요 인물들의 고매한 개인주의가 거짓임을 밝히기에 충분하다. 이런 반전은 옛 방식과 새 방식의 적대가 낳은 산물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 둘은 실상 전혀 겨루지 않을 뿐 아니라, 차라리 적대 그 자체가 허위이며 주인공과 화자의 사실주의적 대담성은 유치한 속임수이자 심지어 최신 유행의 표현에 불과한, 사회비판이라기보다는 자기만족이다. 서술영역과 비율에 있어서의 이와같은 불일치는 이 시기 브라질 문학의 특징이며, 근대에 못 미치는 현지사회의 근본적인 관계를 포기하지 않은 채 첨단을 추구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뿌리깊은 이런 양가성(兩價性)은 마샤두 지 아씨스의 장기가 된 약간의 예술적 변형이 가해졌을 때, 사실주의가 요구하는 상황인식을 감당한 위대한 문학의 제재가 될 수 있었다.

 

 

비율 뒤집기

 

알렝까르보다 열살 어린 마샤두는 그의 사실주의가 지닌 약점이 무엇이고 비사실적인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마샤두 자신의 초기 소설은 전임자가 확립한 우선순위와 비율을 뒤집었다. 후원자-부하 관계가 개인적 충성심, 도덕적 채무, 굴욕 등에 연관된 특유의 복잡성과 논쟁점을 동반하며 전면에 등장했다. 반면 개인주의를 둘러싼 상류사회의 논의들은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씨가(cigar)나 양복조끼나 지팡이나 프랑스어나 피아노 연주처럼 단순히 근대를 나타내는 관습적 기호로 기능하게 되었다. 지방색이었던 것이 이제 중심 주제가 되었고, 중심 주제였던 것이 시대의 외형적 기호가 된 것이다.

마샤두가 포착하려 한 국가적 상황의 특이성은 브라질에서 예속적 후원관계와 노예제와 근대성이 예상할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결부된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대규모 노예의 존재로 인해 노동시장이 불안정했으므로 가난한 자유민들은 지주와 부유층의 보호에 의탁했으며, 이들의 후원에 생계가 달렸으니 당연히 온갖 종류의 개인적인 봉사를 댓가로 바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시골의 불한당에서 순종적인 유권자와 아그리가두스(agregados), 즉 머슴처럼 한 집안에 영원히 종속되어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다 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사회적 의존층이 도처에 존재하게 된다. 이와같이 일그러진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지위는 근대적 자유의 수위 이하에 머물렀다. 부자들은 물려받은 식민적 특권과 이 나라의 개명된 엘리뜨로서 마땅히 누릴 만하다고 자부하는 자유주의자의 이미지,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터무니없이 대단하게 생각했다.

마샤두가 이런 면을 감지하는 순간 온정주의적 권위와 개인적 종속 그리고 이것들이 야기하는 교착상태를 면밀히 분석할 길이 열렸다. 『엘리나』(Helena, 1876)나 『야야 가르씨아』(Yayá Garcia, 1878) 같은 마샤두의 초기 소설에는 일종의 아그리가두스로서 가난하지만 덕이 있는 젊은 여성이 이런 교착상태의 희생자로 나온다. 이 여성은 번번이 재산가들의 난처한 요구를 모면할 길을 찾아내려고 애쓰며,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가진자의 그로테스크한 독단성이 통렬하게 드러난다. 종속된 사람들이 벌이는 인정과 위엄을 향한 싸움 혹은 굴욕에 대항하는 싸움은 소설마다 각기 다른 양상을 띤다. 여주인공들은 소박하거나 냉소적이거나 환멸에 차 있거나 경건하거나 모질거나 하며, 이 각각은 강자들의 변덕스러운 권위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마샤두가 이 분야에 관한 상당히 체계적인 탐구에서 끌어낸 결론은 문제의 핵심이 심리적인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돈있는 집의 가부장과 가모장(家母長)의 개인적인 변덕이 아니라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는 이들의 이중적인 사회적 역할이 문제였다. 이들은 유산자이면서 동시에 노예나 다름없는 사회적 의존계층이 복종과 충성을 바쳐야 하는 브라질 대가족제도의 가장이나 상속인이었다. 부자들의 일시적인 편의에 따라 이런 역할들이 번갈아 나타나기 때문에, 그 아래 종속된 사람들은 어느 쪽을 상대하는지 끊임없이 혼란을 겪었다. 존경을 바치면 보답해줄 대부(代父)나 후원자인지, 잔인하게 대할 권위적 인물인지, 아니면 아랫사람에게 전적으로 무관심하며 낯선 사람 다루듯이 하는 근대적 유산계층인지 미리 알 길이 없었다.

다시 말해, 가부장적 온정주의는 인간적이고 계몽적일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을 노예나 다름없는 식민지 하층민으로 대하는 사악하고 후진적인 것일 수도 있다. 또 그것은 가부장적 역할을 잊고 근대적인 것으로 탈바꿈하여 의존자를 아무런 빚도 없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으로 대할 수도 있다. 불확실의 정도는 극단적이었다. 유산자와 노예 그리고 권리없는 가난한 의존자로 구성된 사회적 분자는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열망하는 자유주의적 좌표와는 맞지 않는 자체의 논리를 가졌다. 이런 것들의 일부를 포착한 문학적 성취는 자유주의적 선전문구를 진지하게 다룬 알렝까르의 경박함보다 훨씬 의미가 컸다. 하지만 누구도 마샤두의 초기 소설들을 걸작으로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온정주의 영역을 더 현실적인 세계로 강조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댓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즉 그의 초기 소설들은 전체 세계의 현재에 속하지 못한 것이다. 이 소설들은 지방적 사실주의의 전개에서 보면 명백히 하나의 진보를 나타낸다. 하지만 같은 소재가 제기하는 문제에 완전히 다른 대답을 내놓은 후기 소설이 없었더라면 마샤두의 초기 소설은 오늘날 거의 읽을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변절자 서사

 

마샤두는 1880년에 브라질 최초의 세계 수준의 소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The Posthumous Memoirs of Brás Cubas)을 출간했다.2 이‘회고록’은 이미 사망한 남자에 의해 씌어진 것으로, 오로지 망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허심탄회함을 담고 있다. 사랑, 시, 철학부터 정치, 과학, 사업 같은 삶의 온갖 거창한 개념들의 정체가 낱낱이 폭로된다. 이런 개념들을 겨냥한 죽은자 특유의 농담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알레고리에 형이상학적 무대를 제공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망자의 초연함은 화자로 하여금 독자를 농락하며 살아 있는 자들의 비열한 동기를 구경거리 삼아 태연히 늘어놓게 해주는 익살스런 장치임이 드러난다. 화자는 사심없는 망령이라기보다 하나의 뚜렷한 사회적·국가적 타입이며, 노예제와 예속적 후원관계에 푹 절어 있으면서도 근대라는 시대를 향한 권리주장으로 가득찬 부유한 게으름뱅이임이 회고를 통해 밝혀진다. 일단 화자의 이같은 측면이 나타나고 그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면, 무덤 너머에서 온 그의 수다가 일상적으로 잔혹한 상류계급의 언어라는 사실이 폭로된다. 따라서 소설 결말의 철저한 무(無)는 형이상학보다는 브라질의 상황과 더 관련이 깊다. 희화화된 인간조건의 배후에 지배계급의 경험이 지닌 무의미함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소설과 함께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소설에 담긴 천재적 일면은 서사적 관점을 상류계급의 위치로 옮겨놓은 점이다. 여태까지 마샤두 소설의 화자는 항상 불안정하고 사회적으로 의존적인 입장의 사람들에게 공감했고, 지휘권을 가진 자들의 자의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행동을 염려하며, 마치 의존적인 위치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권력자들을 개명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설득하여 모두를 위해 더 정당하고 살 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묻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선가 마샤두는 이런 과제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음이 분명했고-이는 중대한 역사적 판단이었다-따라서 지금까지의 구도를 폐기했다. 그가 생각해낸 대체물은 예상치 못한 특별한 것이었다. 약자의 편을 들어 아무 소용 없는 탄원을 거듭하는 화자 대신, 사회적 불의와 그 수혜자들의 편에 설 뿐 아니라 이들과 한통속임을 뻔뻔하게 즐기는 화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변신이 가증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이중적인 것이다. 이 변절은 겉으로 택한 바로 그 관점을 고도의 예술적 수완을 바탕으로 완벽하고 세세하게 폭로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적이면서 노예소유주인데다 가부장주의적인 브라질 유산계급의 변덕을 통탄하는 대신, 마샤두는 1인칭 단수로 이 변덕을 모방해 의존계층이 비난하고 싶어도 그럴 처지가 못돼서 삼키고 있는 온갖 악행을 탄복할 만큼 실감나는 예시를 통해 풍부하게 제시하는 일에 착수했다. 소설의 화자인 브라스 꾸바스는 온정주의적 배려에서 부르주아적 무관심으로 그리고 교양있는 선의의 자유주의에서 대부(代父)/노예소유주의 무한대의 권위로 오락가락하는, 의존계층이 겪어내야 하는 부자들의 끝없는 갈지자 걸음의 가장 사악하고 기회주의적인 양상을 실행하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의 소설의 내용을 이룬 중심적 문제인 갈지자 걸음의 놀라운 계급적 본질이 『사후 회고록』에서는 소설의 형식, 곧 서사의 내적 리듬이 되었다. 이런 식의 오락가락의 범위를 확대하고 보편화하기 위해 마샤두는 화자에게 백과사전적 지식과 수사적 비유를 부여했고, 그럼으로써 서구 전통을 뒤섞은 일종의 모조 합성물을 브라질의 계급관계를 비추는 거울로 활용했다.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서구도 그와같은 지배의 쓴맛을 보도록 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서 하나의 예술적 원리를 추출해본다면, 자족감이 절정에 이른 지점의 상류계급에 합류하여 이들을 찬양하는 척하면서 실은 깊숙이 허를 찔러 폭로하는 과정이라 하겠다.3

젊은 마샤두는 알렝까르가 그토록 몰두한 최신 자유주의적 낭만주의의 초미의 문제들보다 오래되고 친숙한 온정주의적 지배의 문제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전자를 배경 역할로 축소시켰는데, 이는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진정으로 위대한 행보는, 최신의 철학이론과 새로 발명된 장치들, 의회의 논쟁들과 금융투기 등 개인주의와 근대문명의 분위기를 대대적인 규모로 다시 들여오면서, 부도덕한 자기 계급의 즉각적인 편의에 온 세상을 주저없이 끼워 맞추는 상류계급 화자의 말과 행동을 활용한 점이다.

『씨뇨라』와 마샤두 자신의 초기 소설에서 균형을 무너뜨리던 온정주의 영역과 개인의 자기이익 영역 사이의 단절은 극복되었다. 마샤두의 새로운 화자는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은 채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태연히 오고 갔으며, 양자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양자의 가장 아름답지 못한 조합이 무대에 올려진다. 가부장주의적 권위는 유지하면서 그 책임은 거부하고, 결국 우리는 모두 합리적 개인임을 근거로 사적 이익을 부지런히 추구하지만 동료인간들은 못가진자들에 대한 가진자의 권리에 따라 대접한다. 이런 결과를 두고 개인의 됨됨이에 좌우되는 가부장적 인격주의(personalism)에 감염되었으니 근대적이지 못하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진보의 실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사적 전략

 

이런 화자는 새 지평을 연 발명품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18세기의 기발한 서사의 혼성모방인데 『사후 회고록』 서문에서 마샤두가 자신의 수사적 모델로 스턴(Laurence Sterne)과 드 메스트르(Xavier de Maistre)를 지목한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디드로(Denis Diderot), 특히 『숙명론자 자끄』(Jacques le fataliste)도 언급했음직하다. 물론 지난 세기의 뛰어난 작가들을 모방하는 것이 훌륭한 문학을 산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마샤두는 인간의 자발성에 대한 18세기적 탐구를 뛰어난 예술적 지성으로 응용하여, 노예소유와 그에 따른 사실상 강요된 개인적 예속관계가 브라질 엘리뜨층에 허락한 무책임과 방종을 파헤친 자신의 19세기적 탐구에 동원했다. 사실상 그는 18세기의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장난기 다분한 뻔뻔함을 19세기 식민지경유 사회의 계급관계의 엄혹한 현실을 향해 돌려놓았다. 이 조합의 불협화음은 당대의 진보적 이상에 훨씬 미달한 브라질 역사의 부적절함뿐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는 그렇듯 미달된 형태에 너무 쉽게 스스로를 내주는 이상 자체의 부적절함을 주목하게 한다.

이 소설의 문학적 장식들은 골동품을 수집한 듯 겉보기에는 근대적 현실과 무관한 현학적 지식을 괴상하고 심지어 속물적인 방식으로 과시하는 것이지만, 19세기 사실주의에 사용된 것들과 마찬가지로 당대 계급사회의 가혹한 형식과 관련되어 있다. 화자를 여러 등장인물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한다면 그에게서도 이와 유사한 시대와 기질의 혼합물을 볼 수 있다. 척 보기에 그는 엉터리 시인에다 아우구스티누스나 셰익스피어, 성경, 에라스무스, 빠스깔이나 다른 고전에서 따온 그럴싸한 인용구를 늘 준비하고 있는 구식 취향의 점잖고 교양있는 신사이다. 하지만 이 화자를 통해 그 자신이 터무니없고 무자비한 수혜자인 반(半)식민적 억압의 세계를 보는 순간, 이런 식의 문명의 과시가 지닌 내적 의미가 바뀐다. 계몽된 대화는 미개한 것이 되고 사회의 계몽되지 않은 형식들을 영속시키는 주범이 된다. 이같은 반전은 가장 근대적이라는 작가들보다 더 근대적이며, 사실주의가 마땅히 목표로 삼아야 할 결과다.

달리 말하면 마샤두의 신뢰할 수 없는 화자는 19세기 특유의 계급적 내용을 담지하며, 이 점이야말로 하나의 장치로서 그것이 갖는 비밀이다. 브라스 꾸바스는 하나의 사회적 유형으로, 그와 같은 세계에 사는 다른 작중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편파적이고 상황에 구속된다. 그는 자신의 수사적 전략을 휴머니즘의 일반적 레퍼토리에서 취해오지만, 그 우선적인 소속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특정 사회의 부유층, 즉 당대 세계에서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계층이라는 화자의 위치에 부응하고 또 그로부터 깊이를 얻는다. 19세기의 고도로‘개화한’신사 노예소유주의 서사적 재주넘기는 어느 누구의 것과도 같지 않다. 그의 재주는 독자를 곯려먹는 작가라는 고전적 전통의 변주가 아니라 근대 역사의 실재하는 그러나 인정되지 않은 양상에 대한 간접적 묘사이다.

『사후 회고록』에서 마샤두는 서사적 과정에서 결백한 중립성과 권위를 박탈하고 역사적 시대를 초월하여 허공에 떠 있는 추상적 서사기능이라는 생각 자체가 거짓임을 밝힌다. 여기에는 형성 도중에 있는 서사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훨씬 급진적이고 유례없는 발상이 들어 있다. 즉 고도로 세련되고 예술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면서 동시에 정당화될 수 없는 특정 이해관계에 따라 세계를 짜맞추어놓는 서사라는 발상인바, 독자로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려면 그런 이해관계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결정적인 폭로를 그보다 더 대담하고 철저하게 수행한 작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사후 회고록』의 독자들은 실상 자신의 이익 도모에 불과한 화자의 지원을 거부해야 하고, 할 수 있다면 회의와 비판정신을 총동원하여 이 지원에 대항하면서 결을 거슬러 읽어야 한다. 작가의 의도를 찾기보다는 이 의도가 그저 한 부분에 불과한 전체 형태의 의미를 해독할 필요가 있다. 일단 화자의 권위가 의심받게 되면, 읽으면서 보고 듣는 것을 해석하는 일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외따로 남은 적극적이고 현명하고 자립적인 독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진정한 근대문학이 일종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창조하고자 한 독자의 모습이다.

 

 

문명의 적응력

 

결론적으로 식민지를 겪은 나라의 지방소설에서 매우 선진적인 마샤두의 저작에 이르는 단계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은 어떤 것이었나? 먼저 과거 식민지 시절의 국제적 주변성과 가난한 자들의 권리 부재에서 계승된 신생독립국의 특이하고 변칙적인 측면들이 있었다. 그같은 조건에서 선진세계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근대적 사유와 문화형식들을 수입하는 일은 일종의 애국적 임무였다. 하지만 현지의 인간관계라는 세계는 그와는 다른 성격이었기에 수입된 당대의 사유와 형식들이 뜻밖의 용도와 시험을 거쳐야 했으므로, 그것대로 특별한 어려움을 야기했다. 그런 예로 사실주의 소설을 향한 알렝까르의 시도가 동기에서 전혀 사실주의적이지 않았음을 살펴보았다. 그의 시도는 현재 혹은 이전의 사회관계들에 대한 비판적 수정보다는, 서구 대도시의 유행을 잘 안다는 과시라든지 모델이 되는 사회를 따라잡으려는 욕구와 더 관련이 있었다. 더구나 직접적 모방은 사실주의에서 특유의 분명한 시각과 비판의 날을 잃게 만들고 예술가로 하여금 브라질 사회의 결정적 면모를 보지 못하게 했다.

알렝까르보다 젊고 더 예리했던 마샤두는 이런 손상을 복원하려고 했다. 그는 최근 유럽사의 중요한 국면들에서 문제를 뽑아낸 사실주의의 표준적 주제들을 포기하고, 대신 브라질의 지배적 사회관계라는 덜 세련된 소재에 강조점을 두었다. 현지의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그의 시도가 낳은 의도치 않은 결과는 이 시기 그의 작품이 당대 세계 전반과의 접점을 상실한 점이었다. 그의 작품은 알렝까르의 소설보다 덜 순진하고 더 복잡했지만, 그것만큼이나 지방적이었고 현재에 관한 폭넓은 개념에서는 심지어 더 멀기도 했다.

네편의 소설을 더 쓰면서 8년의 시간을 보낸 다음, 마샤두는 종합을 성취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사회적 발견들을 고수했지만 그 발견들에 대해 전보다 덜 동정적인 관점을 취했다. 이제 그는 선의의 소설가가 전하는 합리적 권고로는 브라질 특권층의 행태를 개선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들이 하층민을 다루는 방식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 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었다. 그만큼 착잡한 또다른 사실은 이 방식이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을 넘어 문화영역에까지, 사실상 서구 전통 전체로까지 확장되었고, 그리하여 서구 전통은 본래의 구속력을 상실한 채 브라질식 하층계급 괴롭히기와 타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이미 마샤두는 마땅히 바뀌어야 하는데 도무지 바뀌지 않는 일을 어떻게 해보려는 시도를 포기한 뒤였다. 대신 변화에 실패한 브라질 사회의 결과를 가능한 한 완벽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초기 소설에는 가진자들의 독단적 권위가 개혁 가능한 애석하고 우발적인 결함으로 그려졌고, 이것이 플롯의 극적 중심축을 제공했다. 『사후 회고록』에서 마샤두는 이 권위를 훨씬 더 중요한 위치로 옮겨놓았으며 화자의 행동을 관장하는 법칙으로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권위를 흉내내고 철저히 양식화한 화자를 등장시켜 이를 국민생활의 항구적이고 구석구석 만연한 부정적 환경으로 그려낸다.

섄디식의 재주(로런스 스턴의 소설 『트리스트람 섄디』의 화자가 구사하는 기발한 여담과 희극적 장치 등을 말한다-옮긴이)를 끝없이 부리는 이 변덕스럽고 신뢰할 수 없는 화자는 맹렬히 근대적이다. 브라스 꾸바스라는 화자는 『사후 회고록』 이전의 브라질 소설의 핵심 내용을 형식으로 전환시킨 문학적 장치이다. 그런 장치로서 이 화자는 진정한 변증법적 대체물이며, 브라질 문학의 개념을 다른 곳의 선진적 개념과 동등하게 만들어준 획기적 발전이었다. 마샤두는 헨리 제임스(H. James)와 동시대인이며 흔히 그에 비견되곤 한다. 제임스처럼 그도 시점(視點)으로 매개되지 않는 현실을 믿지 않았다. 마샤두의 작품에서 그런 매개는 개인심리의 문제를 넘어 계급갈등의 성격을 띤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목소리는 명백히 사회적인 음성이며 사회적 문제의 핵심이고,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사실주의와 협력한다. 교양이 지나친 이 화자는 또한 문명 일반과 식민의 흔적이 남은 제한되고 반쯤 격리된 영역, 근대세계의 일종의 뒷마당에 해당하는 이 영역 사이를 매개해준다.

이러한 매개작용은 그 계급적인 성격에 비추어 결코 선량할 수가 없다. 달리 표현하면 화자는 이야기의 소재이자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무지몽매한 인물들로부터 교양있는 사람들을 분리해주는 심연(深淵)에 아주 만족한다. 표면에 드러난 희극은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들을 배신하고 그들의 낙담에 불행을 느끼지 않는 엘리뜨를 연출한다. 이 소설의 덜 명백하고 더욱 근대적인 효과는, 문명이라는 개념 자체와 상반되는 목적에도 잘 맞추어가는 문명의 적응력을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시기가 제국주의 전성기였음을 고려하면, 최상의 문명적 자원의 파렴치한 이용을 겨냥한 마샤두의 풍자는 지방적 배경을 초월하는 울림을 만들어낸다. 지방 차원에서 그와같은 조건을 극복할 뚜렷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든 아니면 당대의 전지구적 흐름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든, 이 소설과 더불어 브라질 문학은 세계의 현재를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유리한 고지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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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ulo Emílio Salles Gomes, Cinema: trajetória no subdesenvolvimento, Rio de Janeiro 1980, 77면.
  2. 영어 번역본은‘Epitaph of a Small Winner’라는 제목으로 1952년에 나왔다.〔이후 원제를 그대로 살린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The Posthumous Memoirs of Bras Cubas, trans. G. Rabassa, Oxford Univ. Press 1998-옮긴이.〕
  3. 이 전략은 하이네와 플로베르, 보들레르의 반부르주아 미학과 상통한다. Dolf Oehler, Ein Höllensturz der AltenWelt, Frankfurt am Main 198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