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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에 부쳐 | 한국

 

황해문화

『창비』의 ‘창신’을 기대하며

 

 

김명인 金明仁

『황해문화』 주간. critikim@chollian.net

 

 

먼저 『창작과비평』 창간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40년간 『창비』가 보여주었던 지적·문화적, 그리고 운동적 실천이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문학론과 민족·민중문학론, 제3세계론, 분단체제론, 그리고 동아시아론에 이르는 『창비』발 진보담론들은 6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이르는 한국사회의 역동적 변화과정과 조응하면서 같은 시대를 호흡해온 동시대인들에게 시대와 역사를 올바로 투시하는 눈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남북긴장 완화라는 역사적 조건을 만들어낸 한국사회의 지적·문화적·운동적 역량의 상당부분은 『창비』라는 이 기념비적인 잡지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창비』의 행보에 명예와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90년대 이후 문예지이자 정론지인 『창비』를 지탱해온 두 개의 축이라 할 수 있는 민족문학론과 분단체제론이 일정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진보담론을 선도하는 잡지로서의 『창비』의 위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이는 민족문학론, 분단체제론 자체의 자기해체 현상에서 기인한다기보다는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속도가 워낙 빨랐던 데서 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민정권의 출현과 제도적 민주화, 부분적 과거청산 등 민주화투쟁의 제한적 성과가 오히려 민중적·민족적 역사전망의 현실화를 제약하고, 사회주의권의 몰락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더불어 전통적 진보세력이 기대어왔던 근대적 패러다임은 급속하게 팽창한 탈근대적 패러다임의 전면적 도전 앞에서 적지 않게 위축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담론상의 위기는 곧 『창비』의 진보적 담론 생산력의 위기로 직결되어 『창비』의 위상을 현저히 약화시킨 반면에, 90년대 이후 문학출판시장의 결코 건강하지 못한 이상팽창 증후는 오히려 출판사 창비의 호황과 이어지는 불균형을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로서 창비의 성장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잡지 『창비』의 선도적 담론생산 기능의 위축과 동전의 양면처럼 나타난 것은 분명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90년대 중반 이후 항간에 창비의 보수화·상업화 논란이 회자되는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진보진영’ 전반의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창비』가 의연히 근대성 논의, 리얼리즘 모더니즘 회통론, 그리고 동아시아 담론 등 문학과 사회과학에 걸쳐 부단하게 진보적 담론들을 생산해왔으며, 그것들은 여전히 문제적인 의제들로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부인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근자에 다시 체제를 정비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진보담론의 생산중심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하는 것은 『창비』의 오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반가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참여하는 계간지 『황해문화』는 1993년에 창간되어 처음 한동안은 항간에서 ‘인천의 『창비』’라 불리는 ‘영광’을 입은 바 있습니다. 이제 겨우 창간 12년을 넘어서서 50호 발간을 기념하고 있는 『황해문화』는 『창비』와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절로 자랑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황해문화』는 자기 전통의 무게를 가벼이할 수 없는 『창비』와는 달리 좀더 발빠르고 가볍게 90년대 이후의 변화된 현실에 직핍할 수 있는 장점 아닌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지난 수년간 나름대로 한국사회의 당면문제들과 진보담론의 추이를 따라잡아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을 사시(社是)처럼 중히 여기는 『창비』가 창간 40주년을 맞아 ‘창신’의 새 기풍을 진작하는 모습을 기대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황해문화』도 거듭 새로워지는 『창비』와 더불어 혼돈의 21세기 혼돈의 한국사회가 여전히 필요로 하는 계몽과 해방의 변증법을 수행해나가는, 성찰적이고도 생산적인 저널리즘의 한 표상으로 동반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