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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에 부쳐 | 대만 홍콩 중국

 

21세기(二十一世紀)

계몽운동과 비판의식을 위해

 

 

진 꽌타오, 리우칭펑 金觀濤, 劉靑峰

『二十一世紀』편집위원

 

 

2005년 12월 중순 WTO세계무역기구 회의가 홍콩에서 개최되었다. 그곳에서 수천 명의 한국농민들은 반WTO시위를 벌이면서 합리적인 요구를 제기했다. 그들의 고도로 조직적이고 지혜로운 행동은 홍콩인들의 기억에 지워지지 않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의 대중운동이 중국인에게 계몽을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동아시아 현대사에서 드문 일도 아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1919년 한국의 3·1운동이다. 그것은 중국의 5·4운동과 영광을 같이한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심지어, 20세기 중국인의 국가주권과 민족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최초의 폭발인 5·4운동이 한국의 3·1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정치·군사·사회운동의 경우와 달리, 중국과 한국의 사상적 교류와 상호계발은 상대적으로 줄곧 빈약했다. 최근에 와서야 한국과 중국의 지식인들은 동아시아에서 계몽사상의 의미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깨어 있는 비판정신으로, 이념대립과 협애한 민족정서로 인해 동아시아 삼국 사이에 오랫동안 쌓여온 벽을 적극적으로 허물기 시작했다.

중국과 한국은 서로 다른 계몽운동과 비판의식 성장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에 대한 나름의 전통과 표현방식을 형성해왔다. 근대 중국지식인의 비판의식은 5·4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8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5·4운동은 비단 민족주의 저항운동일 뿐 아니라, 당대 중국문화를 조직한 신문화운동이기도 하다. 바로 이 신문화운동 속에서 중국지식인은 ‘일체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몽사상과 비판정신의 구호를 제출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중국지식인들은 사회나 문화에 위기가 일어날 때마다 5·4로 돌아가 비판과 반성의 사상적 자원을 찾았다. 서구의 지식인이 근대성과 사회문제를 사고할 때 프랑스대혁명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신계몽운동이 일어난 1980년은 5·4 이후 20세기에서 두번째로 비판의식의 고양을 맞은 시기이다. 마오 쩌뚱이 서거한 후, 문화대혁명이 가져온 거대한 재난에 맞서, 중국지식인들은 혁명이데올로기와 그것의 중국적 전화(마오사상)가 사회에 가져온 후과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계몽운동은 중국지식계에 공공의 토론장을 열었고, 거기서 풍성한 성과들이 나왔다. 『미래를 향하여(走向未來)』 총서, 중국문화서원, 학술지 『문화: 중국과 세계』 등 민간문화사업이 적극적으로 일어났고, 이는 사람들의 사고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8년의 비판정신은 장강(長江) 남북을 풍미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하상(河殤)」에 대한 반성적 토론을 일으켜 제2차 계몽운동의 고조를 이루었지만, 1989년 세계를 경악케 한 6·4 톈안먼(天安門)사건이 일어나면서 급작스럽게 단절되었다.

이러한 1980년대의 계몽정신과 비판의식을 계승하기 위하여 격월간 『21세기』가 1990년 홍콩중문대학(香港中文大學)에서 창간되어, 현재까지 총 92호를 발행했다. 90년대 지식인들이 벌였던, 급진과 보수, 근대성과 문명충돌 등 영향력있는 논쟁들은 모두 『21세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1995년 이후 『21세기』는 동아시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과거 100여년간 중국인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서구를 향해 있었고 자신의 이웃에 대해서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등한시해왔다. 상대에 대한 이러한 냉대와 무지는 역사적으로도 그렇지만 현재도 적지 않은 문제들을 낳고 있다. 사실상 동아시아사회의 근대성은 서구의 그것과 구별되지만, 같은 유가적 정치·문화적 배경을 가진 한·중·일 삼국의 근대성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다원적 근대성과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은 우리 잡지의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개방적이면서 반성적인 공공의 무대를 건립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또한 문화비평과 사상적 논의를 전개하되, 민족주의를 넘어서 동아시아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건설적 전망을 내는 장이 되기 위해서도 힘쓸 것이다. 『21세기』를 창간할 때 우리는 ‘중국의 문화건설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세운 바 있다. 이 구호는 ‘중국문화의 건설을 위하여’와는 크게 다르다. 후자는 중국 고유의 문화를 본위로 삼지만, 전자는 개방적 마음으로 동아시아와 세계의 우수한 가치를 흡수하여 개방적이면서도 반성적 정신을 담은 신중국문화를 건립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중국은 1980년대의 사상해방을 통해 빠른 속도의 경제발전을 지속해왔으며, 21세기에 이르러 국력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판과 반성의 눈으로 사회발전 속에 내포된 문제들을 직시하며, 주변 및 세계 각국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올해는 『21세기』 창간 16주년이자 『창작과비평』 탄생 40주년이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발발하던 1966년에 창간된 『창비』는 군사독재정권의 강도 높은 억압 속에서 폐간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이라는 진보적 신념을 잃지 않았다. 이 귀중한 경험은 우리의 귀감이 될 것이다. 불가항력적으로 보이는 전지구화의 물결 속에서 지식은 나날이 전문화되고 사상은 점점 엷어져 심지어 절명의 위기에 이르고 있다. 시위자들의 항거에 대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 지금, 『21세기』와 『창비』처럼 사상성과 비판성을 자임하는 잡지는 공통의 화제를 상실할 위기에 놓여 있다. 어떻게 이 시대의 새로운 도전에 맞서, 지식인과 사상가의 책임을 용감하게 떠안을 것인가. 이는 우리 공동의 사명이다.

〔백지운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