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조이스 캐럴 오츠 『멀베이니 가족』, 창비 2008
가족, 그 평범함의 기적
이경란 李京蘭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 krlee@ewha.ac.kr
조이스 캐럴 오츠(Joyce Carol Oates)는 스물여섯살에 첫 소설 『떨리는 가을』(With Shuddering Fall, 1964)을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50여편이 넘는 장편, 1000여편이 넘는 단편을 비롯하여 시, 에쎄이, 희곡, 비평 등 거의 모든 문학분야에서 놀라운 창작력을 보여 온 미국 여성작가다. 하지만 그녀는 남달리 다작하는 작가라는 평가에 대해, 자신은 단지 열심히 지속적으로 글을 쓸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극히 드물지만 이전에 존재했던, 발자끄, 디킨스, 헨리 제임스, 이디스 워튼, 도스또옙스끼처럼 열심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하는” 작가들의 전통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포스트모던 시기인 20세기 후반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면서도 자신을 19세기 사실주의 작가의 전통에 위치짓는 오츠의 작가적 자의식은 그녀의 작품, 특히 2001년작 『멀베이니 가족』(We Were the Mulvaneys, 민승남 옮김)에 담긴,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놀랍게 빛나는 사실주의적 세부묘사의 힘을 설명해준다. 수많은 동물과 사람들이 쉴새없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농장의 삶, “얼굴이 너덜너덜해진 채 고개를 꺾고 마치 취객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해바라기”를 포함한 주변의 자연, 여섯 식구의 온갖 잡동사니가 자연스럽게 쌓이는 계단이나 라디오 소리, 새소리, 어머니에게 칭얼대는 아이들 소리로 가득한 부엌 같은 집 안의 일상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작가는 멀베이니 형제들이 완벽하게 행복하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의 가정, 즉 “동화 속의 집”에 대한 향수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이렇게 소설 초반에 환기된 가족간의 감정적 충만함과 친밀함이 바로 이 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가족의 해체와 붕괴와 복원’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미국 소도시에서 맨손으로 회사를 일궈낸 아버지 마이클, 하이포인트 농장을 역동적인 대가족적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어머니 코린, 고등학교 때 풋볼선수로 인기가 많았던 맏아들 마이크 주니어, 뛰어난 머리로 코넬대학 장학생이 된 둘째아들 패트릭, 눈부시게 예쁘고 착하고 인기 많은 셋째딸 매리앤, 그리고 귀여운 막내아들 저드.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을 만큼 자랑스럽고 행복했던 이 가족은 그러나 매리앤이 발렌타인데이에 학교파티에서 상급반 남학생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으로 가차없이 붕괴된다. 매리앤은 가해자 남학생만큼이나‘자신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다’는 허영과 자만심에 그를 따라나선 자신도‘그 사건’에 책임이 있다며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을 거부한다. 아버지는 딸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좌절과 분노로 무너져내리고, 어머니는 절망에 빠진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딸을 먼 친척집으로 보낸다. 두 아들은 딸을 버리는 부모에게 분노하고 누이에게 적절한 보호와 위로를 해주지 못하는 스스로를 혐오하면서 집을 떠난다. 그렇게 흩어진 가족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다시 한자리에 모이기까지 걸린 15년이라는 세월은 가족이 다함께 모이는 평범한 일상이 기적 같은 일임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상적으로 보이던 한 가족의 붕괴와 해체 서사인 이 이야기가 다른 한편으로 가족을 구축하는 다양한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멀베이니 가족’에‘멀베이니’라는 이름을 부여한 아버지 마이클의 가족구축 서사는 전형적인 개인주의적 남성중심의‘미국의 꿈’에 대한 것이다. 피츠버그의 노동자계급 출신인 그는 열여덟살에 집을 나와 혼자 힘으로 땅과 돈과 명망 그리고 단란한 가정을 갖춘 미국의 사업가로 자기 자신을 재창조한다. 일찍 결혼해 낳은 아이들, “고동치는 따뜻한 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보드라운 피부, 아빠를 열망하는 얼굴”을 가진 아이들은 그의 불안정한 삶을 단단하게 잡아줄 바닥짐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사랑한다고 믿었던 딸이 남자로서의, 가부장으로서의, 마을 상류층 일원으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그는 딸의 상처보다 자기 상처에 더 몰두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창조된 가족의 해체를 촉진한다.
멀베이니 가족의 아내요 어머니인 코린의 가족구축 서사는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가부장 가정의 아내/어머니 서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안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서사다. 코린은 마이클과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음으로써 홀로였던 한 남자에게‘가족’을 만들어주고, 그의 이름으로 엮어진‘멀베이니 가족’이 한 가족으로 유지되도록 구체적인 의식주와 사랑, 유머, 질서를 제공한다. 그녀는 사랑하는 딸을 가족에서 추방하면서까지 남편과 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지키고자 한 충실한 아내이며, 뿔뿔이 흩어져 있는 아이들에게 한 가족으로서의 감정적 유대의 원천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어머니이다. 하지만 남편이 죽은 뒤 그녀가 형성한 독립적이면서도 친밀한 여성들끼리의 공동주거 형태의 집과 마지막 장에서 “가족 상봉”이라는 이름으로 그녀가 불러 모은 스물여섯명의 다양한 가족집단 모임은 이성애적, 남성중심적, 혈연중심적 가족에 대한 대안적 가족 형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이기도 하다.
멀베이니 가족 개개인의 이야기를 “가족 앨범”으로 묶어내어 멀베이니 가족서사를 구축하는 중심인물은 이 소설의 중심의식이며 화자인 저드다. 가족의 역사에 가장 늦게 참여한 막내라는 자의식은 가족들에게 일어났던 과거의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그들 역사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갈망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가족의 해체과정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보아야 했던 경험은 가족들이 서로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 서로에게 품었던 오해들, 서로 나누지 못했던 아픔과 상처들을 드러내어 진실한 가족서사를 구축하겠다는 욕망을 발전시킨다. 그러므로 “추억 없는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라고 질문하며 기억과 상상으로 가족서사를 창조하는 저드의 시도는 곧 멀베이니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구축함으로써 가족 자체를 창조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제 서른살이 된 막내아들 저드의 눈으로 이 작품이 서술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마도 딸의 상처보다 가부장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데 몰두하는 아버지 마이클의 행위는 비판적으로 묘사되면서도 여동생이 당한 고통에 대한 “정의 실현”을 단지 남성들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간주하는 형 패트릭의 행위는 극히 공감적으로 그려지는 모순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전지적 시점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목소리, 가족 외부의 시점이 아닌 내부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작가 오츠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정상가족 형태인 혈연중심의 가족이 그 내부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과 감정에 미치는 그 미묘하고 강력한 영향들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멀베이니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이란 서로에게 상처와 수치를 주는 일원들까지도 보듬어 안을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하며, 가족간의 진정한 소통은 서로를 집단의 구성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독립된 개성과 정체성을 지닌 개인들로 인정할 때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