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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宋鎭權
1970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제4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 likearoad@hanmail.net
맹꽁이 울음소리
소란스레 후두둑 막 퍼붓다가
들이붓다가 흙탕물 이뤄 떠난 것들을
따라가지 못한 물방울들이 칭얼대며
머위 잎이나 오동나무 새순에 엉긴 밤이구요
똑똑 물방울 듣는 소리 사이사이로 듣는
저 소린 분명 맹꽁이 울음소리인데요
황소가 영각을 쓰며 벽을 들이받듯
세상의 옆구릴 들이받는
이 소릴 따라 찬찬히 가보면
청솔가지 매운 연기 매캐한 집안
눈물 많은 식구 중 하나가
눈물 훔치며 똑똑 나뭇가질
분질러 아궁이에 불을 넣고 있을 거구요
내가 아직
뿔이 돋기 전
이도 나기 전
그저 하나의 숨이었을 때
보드라운 살덩이 하나로
살붙이들 가슴에 안겨서 들었을 이 소리 속에는
고모며 고모부며 그 고모의 아들딸들이며
마실 온 이웃 아주머니들까지
둘러앉아 감자에 소금 찍어먹으며
왁자하게 웃고 떠들며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지요
해서 이 소리는
솥뚜껑 여는 소리를 내며
감자 익듯 긴 밤을 저 혼자 익어가서
폭신하게 익은 보름달을
둥그렇게 밀어올리는 것이지요
점이지대
죽은 가죽나무에 능소화가 피어올랐다
껍질도 다 터져 흉한 나무에
마디마디 뿌리박으며
잎 내고 꽃 피운 능소화
얼크러진 몸뚱이들 사랑놀음이 한창이다
둘이 한참 엉겨붙어 자못 음탕하다
삶이 죽음과 얼크러져 논다
아니 죽음이 삶과 얼크러지든가
죽은 몸 덮으며 꼭대기까지 핀 능소화
꽃이 지면 진 만큼 또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
가죽나무가 아직 살았을 때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나무가
언제 이렇게 나무를 몇갈래나 타고 올랐는지
굵은 덩굴이 굼실굼실
나무의 아랫도리를 감고 있다
한참 달뜬 몸들이
서로를 탐하며 끌어안은 손아귀
굵은 심줄이 도드라졌다
삶도 죽음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가죽나무 둘레에도
꽃은 떨어져 쌓여 있다
떨어진 꽃은 그대로 붉은 이불이 된다
해가 기울고 길어진 그림자가
이불 속에 들어가 눕는다
이제
제대로 한판 엉겨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