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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영미 『그들의 새마을운동』, 푸른역사 2009

새마을의 열정, 욕망의 뉴타운

 

 

황병주 黃秉周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avianti@mest.go.kr

 

 

그들의-새마을운동-표지새로울 신(新)이 극성을 부리던 시대가 있었다. 신여성, 신소설, 신문물, 신생활, 신학문, 신시대 등등 그야말로‘新’은 곧 새로운‘神’이었다. 서구 근대와 조우하면서 한국사회는 모든 것이 일신되어야 했고, 낡은 것들은 악귀가 되어‘신’의 저주를 받아야만 했다.‘신’의 주술은 새로운 종교가 되었고 급기야 신화가 되었다. 그 주술과 신화는 개항과 식민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명개화, 근대화, 선진화는 곧 신의 축복을 열망하는 주문과도 같다.

신의 주술이 빚어낸 것 중에 새마을운동이 있었다. 마을은 마을이되 새로운 마을인 새마을은 곧‘신’의 축복을 받은‘신촌’이었다. 박정희체제는 신의 축복을 사람의 손으로 이룰 수 있음을 역설했고 방방곡곡 모든 마을에 시멘트 포대가 축복처럼 떨어졌다. 시멘트는 욕망이었다. 화려한 첨단의 도시를 빚어낸 시멘트가 드디어 시골‘깡촌’까지 강림했고, 그 마법은 도시와 농촌을 가로지르며 욕망의‘뉴타운-새마을’을 빚어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체제의 대표적인 대중동원 캠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연구성과는 그리 많지 않다. 관변 연구를 제외한다면 본격적 분석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그나마 대부분 국가정책사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었다. 새마을운동이 광범위한 대중동원 캠페인이었다면 무엇보다‘대중’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영미의 『그들의 새마을운동』은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임에 틀림없다. 민중의 생활세계와 경험세계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겠다는 문제의식하에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대중의 역사화’라는 화두를 붙잡게 된 저자의 학문적 여정을 진솔하게 서술한 다음, 2부에서는 일제시기부터 새마을운동에 이르는 한 마을의 역사를 매우 꼼꼼하게 추적하고 있다. 일제시기‘농촌 근대화운동’, 1950년대의 정미조합을 통한 공동체적 통합, 1960년대 청년 이장의 등장을 통한 마을 권력의 세대교체 등의 경험을 통해 새마을운동 이전에 이미‘새마을과 새농민’이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3부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도 급조된 새마을의 기수(旗手)가 아니라 고교 졸업 이후부터 꾸준히 활동해온 자생적 농촌운동가였다고 한다. 4부는 국가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의 주된 관심은 사실 새마을운동이 아니다. 저자는 새마을운동 이전에 새마을과 새농민들이 있었으며 이러한 민중의 아래로부터의 역동적 삶과 노력이 국가적 캠페인이었던 새마을운동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었다고 본다. 즉 이 책의 관심은 민중의 삶과 경험이지 국가의 캠페인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역사 대중화’가 아니라‘대중의 역사화’를 강조했는데, 이는 기존의 위로부터의 접근에 대비되는 중요한 연구사적 성취이다. 이 책이 학술연구서와 대중서의 중간 형태를 취하는 것 또한‘대중의 역사화’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관련된다고 하겠다.

연구방법론에 있어서도 이 책은 새로운 공헌을 하고 있다. 즉 현장조사와 함께 구술자료를 폭넓게 활용하여 기존의 문서위주 역사서술과 확연히 다른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자신의 기록을 거의 남기지 못하는 하층민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구술은 매우 중요한 방법론적 무기가 된다. 요컨대 주제의식, 연구방법 등에서 이 책의 새로운 시도는 새마을운동뿐 아니라 역사학 전반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참신하고 야심찬 도전인만큼 이 책은 많은 논쟁점을 주는데, 특히 민중의 역동성과 자율성 부분이 그러하다. 저자는 새마을운동에서 민중의 경험과 역할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노력과 에너지를 국가적으로 동원해낸 그 지점에 박정희의 영도력이 있었고 새마을운동의 성공이 있었던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새마을운동의 공적은 마땅히 민중사회와 각하가 나누어가져야 할 것”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373면)

문제는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민중사회’가 상층 중심이라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을 주도한 새마을 지도자, 이장 등은 마을의 실력자들이며 운동의 이해관계와 밀접히 관련되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이 마을 권력을 장악하고 마을 대중을 동원하는 새마을운동의 핵심 주체였다.

대표적인 예가 새마을사업을 위한 각종 토지 희사(喜捨) 압력이었다. 별다른 보상도 없었던 토지 희사는 마을총회의 결의라는 집단적 압박으로 강요되었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었다. 박정희는 마을회관이 국회의사당이요 마을총회가 국회보다 낫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이 생활 민주주의, 마을 민주주의라고 주장했지만 독재와 민주주의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새마을운동 시기 마을의 민중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었으며 그들의 목소리는 다성(多聲)적이었다. 결국 새마을운동은 마을 권력, 상층 농민을 동원한 것이었고, 이들이 새마을운동의 배경이자 동력, 주체였던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민중사회의 역동성으로 보고자 하는데, 실제 그들은 국가의 연장(延長)에 가까웠다.

이들의 역사적 형성 또한 자율적이었다고 보기 힘들다. 저자는 새마을운동 이전에‘새농민’의 역사적 형성을 강조했지만, 그 중요한 모티프는 국가와 엘리뜨 지식인들로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일제시기 농촌진흥운동, 1950년대 지역사회 개발사업 등은 국가적 프로젝트로 진행된 것이었고, 의무교육과 징병제 또한 국민형성의 중요한 장치였다. 게다가 국가 내외부에 포진한 엘리뜨 지식인들은 지식-권력을 구성해 민중의 근대적 계몽을 줄기차게 실천해왔다. 요컨대‘새농민’은 국가와 엘리뜨 지식인들의 오래된 꿈인 근대적 계몽기획이 실현된 것이지 민중의 자율성이 현실화한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청년 이장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근대적 주체들이 국가의 호명에 의해 국민이 되어가면서 근대화 프로젝트의 주체로 역할했다고 했는데, 과연 이러한 주체를 민중의 자율성과 역동성의 예로 볼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이 지점에서 산업화와 새마을운동, 농촌 근대화 프로젝트가 가지는 의미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산업화는 농업, 농촌, 농민의 희생을 통한 공업화로 이해되지만, 이와 함께 포섭의 중요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민으로의 이데올로기적 호명이 형식적 포섭이었다면 국가-자본의 농업재생산 과정 장악은 실질적 포섭이었다.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종자 구입부터 농자재 보급, 마지막 농업생산물의 가치실현에 이르기까지 농민은 철저하게 국가-자본에 종속되었다. 농민들의 자율성은 물질적 재생산과정의 압력을 통해 국가와 자본의‘포섭된 자율성’이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바로 이 농업 재생산과정에 대한 분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농업 재생산의 문제는‘잘살기 운동’, 달리 말해‘욕망의 정치’로서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저자도 인정하듯이 새마을운동을 통해 이촌향도(離村向都)가 저지되지도 못했고 농촌과 농업이 새로운 희망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새마을운동은 농민들의‘욕망’을 증폭시켰을뿐 그것을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확인된 것은 국가와 자본의 승리였고 그들이 주도하는 산업화의 비가역적 흐름이었다. 증폭된 욕망의 배출은 새마을운동보다 도시로의 탈출로써 가능했다.

그런데 근대화와 발전, 더 큰 생산력과 더 많은 소비에 대한 욕망은 이미 구조화된 세계체제의 효과였다. 그 욕망의 정치를 수행하는 단위가 지식인이든 국가든, 아니면 농촌의 청년 이장이든 그 주체가 근대화 담론에 의해 호명된 주체임은 분명했다. 요컨대 욕망은 초역사적 실체라기보다 근대의 독특한 효과로 구성된 것이었고, 그것이 새마을운동의 기원이자 결과였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형성된 이 새로운 욕망-주체들의 자율성은‘신민화’와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새마을운동”에서 그들의 자리에는 무엇이 기입될 것인가. 일차적으로 “그들”은 국가와 자본의 대명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농민과 민중이 “그들”의 욕망을 대리보충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도 역시 “그들”일 것이다. 결국 20세기 새마을의 열정은 21세기 뉴타운의 욕망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