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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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백석문학상 발표

 

백석문학상의 제11회 수상자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故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제정되었으며, 상금은 1000만원입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장편소설상·창비신인문학상과 함께 11월 25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심사위원

본심: 고은 최원식 황지우 예심: 박성우 이장욱

 

2009년 11월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는 2009년 9월 18일 모임에서 제11회 백석문학상 예심위원으로 박성우·이장욱 2인을, 본심위원으로 고은·최원식·황지우 3인을 위촉하였다. 예심에서 심사규정에 따라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들을 검토한 결과, 총 12권의 시집이 본심에 올라왔다.

본심은 11월 2일에 진행되었는데, 본심 진출작 모두 각각의 영역에서 깊은 울림과 완성도를 성취하고 있어 시 읽는 즐거움과 동시에 심사의 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원규 백무산 송찬호 나희덕 안도현 시집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끝에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2008)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소중한 근원인 향토와 음식에 뿌리박은 언어를 통해 공동체의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백석의 시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개성적인 시세계를 일궈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심사위원 전원은 안도현 시인을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하는 데 합의했다.

 

 

 

심사평

 

고은(高銀) 시인

10여권의 시집을 눈여겨보는 의무에는 두어가지 느끼는 바가 들어 있겠다.

하나는, 이 시집들을 싸다듬이로 읽어내는 부담이 즐거움보다 강하다는 것. 또 하나는, 시집 하나하나를 대강 훑어보아서는 안되기에 한줄 한줄 꼼꼼하게 보아야 하는, 무슨 훈고학인 듯, 무슨 축조심의(逐條審議) 비슷한 관변의 행투를 닮는 것. 그런데도 제철을 다하는 올가을의 한동안을 우리 시단 들판의 가을걷이와 함께 보내는 일은 별수 없는 행복이었다.

이런 내 행복은 본심 독자 세 사람의 것이거니와 몇백의 시집 하나하나를 읽어낸 예심 독자 두 동료의 고역과는 또다른 것이 틀림없다.

그 혼돈 같은 몇백의 시집 가운데서, 나아가 10여권의 시집 가운데서 단 하나의 작품세계를 가려내는 일은 여기에 뽑히지 않은 시집들에 대한 죄책감을 동반한다. 더구나 뽑히지 않은 것 가운데는 이러저러한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긴 논의 끝의 포기도 무릅써야 했다. 그 시세계의 결연한 비극성이나 치열성 그리고 시대를 감내하는 시정신의 책임의식들을 놓치지 않는 언어의 단련이 어우러진 바는 실로 귀한 노릇이었다.

이와 함께 시인이라는 운명 하나로 세상의 신산에 투신하는 심신이 그대로 드러난 정직성도 좀처럼 내칠 수 없었다. 삶과 시는 도끼에 찍힌 장작인 양 두개로 빠개질 수 없으므로.

이런 고민 끝에 세 사람은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올해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정하는 일에 완전 합의를 냈다.

첫째, 이 시집은 백석 세계에 가장 잘 접속된 근친언어로 되고 있다 하겠다. 수록된 한 작품에 직접 백석이 소재가 된 것을 떠올려서가 아니라 여타 작품의 어조 전반에 걸쳐‘백석적인 것’의 근원 향토가 오롯이 배어나는 사실이 주목된다. 언어가 익을수록 그 언어는 고향을 불러내는 것 아닌가.

둘째, 이 작품들은 어디에도 명제 표출이나 돈호법의 논리 분위기가 보이지 않는 자생의 고백과 직감의 서술이 식을 줄 모르는 체온을 낳는다. 요컨대 시의 첫줄과 끝줄이 안심과 평상심의 척도를 잘도 지켜낸다.

셋째, 이 작품들 안에는 실로 소중한 향토음식에 뿌리박은 언어가 있다. 음식과 언어가 일치한다. 이는 단순한 미각기행이나 추억 반추가 아니라 오랜 농경사회에서의 식문화 유산이 어떻게 인간을 생장시키고 어떻게 언어를 숙달해왔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안도현의 대중성은 상당한 오해에 덮여 있음으로써 그의 실질은 그동안 그런 오해와 상관없이 도도하게 일관되어온 바 있다. 그는 한마리 씨암탉이다.

겨울 눈 펄펄 내리는 날 이런 시인과 함께 전내기 술동이 하나 텅 비워놓고 싶다. 축하한다.

 

최원식(崔元植) 문학평론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시집은 모두 12권. 그날따라 날씨가 제법 매워진 11월 2일의 회동에서 우리는 먼저 백무산의 『거대한 일상』과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을 논의하였다. 다른 문학상의 수상 여부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백석상의 운영규정이나, 그럼에도 가급적 중복은 회피되어야 한다는 점에도 유의하였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 뒤, 우리는 나희덕의 『야생사과』, 이원규의 『강물도 목이 마르다』, 그리고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기로 하였다. 나희덕은 이 시집에서 지움 또는 없음에 대한 사유, 즉 무(無)를 화두로 들었다. 존재론적 지평을 천착하는 변신을 꾀하고 있는 셈인데, 「불견(不見)과 발견(發見) 사이」 「누가 내 이름을」처럼 명편이 생산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과도기를 앓고 있어 후일을 기약한다. 이원규는 무엇보다 존재의 형식을 바꾼 사람이다. 물론 그 전이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시적 전신(轉身)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시집은 그 성취가 소식에 가까이 갔음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예컨대‘빈집을 구하는 아우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입산자의 노래」에 나오는, “명심하라 명산에 도인 없다”라든가, “살다 보면 너무 많이 알아도 사기다”라든가 들은 체험에서 우러난 놀라운 경구(警句)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은 시의 수준이 들쭉날쭉한 면도 없지 않다. “머리로만 생태주의를 꿈꾸”는 주지주의 또는 도시의 생태주의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살짝, 현장주의 또는 지방주의로 기운 탓도 있을진대, 출출세간(出出世間)으로 활연대오(豁然大悟)하기를 기원한다.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백석에 대한 오마주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도현 또한 이 점을 숨기지 않는다. 「백석 생각」처럼 직접 그 이름을 거론한 시는 물론이고, 음식을 제재로 한 시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한 이 시집 제2부, 아니 시집 전체에 백석은 살아 있다. 해금(1988) 이후 후배시인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시인의 하나로 꼽히지만, 우리 시대의 백석 복원이란 애당초 어리석은 기획인 것을! 아마도 이 시집의 제목이 가리키듯, 시인도 이 점을 잘 알았던 듯싶다. 그럼에도 왜 시인은‘철없이’이 작업에 매달렸을까? 하‘간절하기’때문이다. 식민지 도시화의 물결이 크게 쳤던 30년대에 백석이 그러했던 것처럼, 안도현도 농촌적인 것이 거의 절멸의 위기에 처한 21세기의 벽두에 우리 공동체의 기억을 한땀한땀 재구성함으로써 이 타락한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원규와 안도현을 놓고 최후의 토론을 벌인 뒤 우리는 안도현을 수상자로 하는 데 합의하였다. 이원규가 지방주의마저 넘어서기를 희망하면서, 아울러 기억과 현실 사이에 안도현이 놓을 다리가 과연 어떨지, 궁금해하면서.

 

황지우(黃芝雨) 시인

예심에서 넘어온 12권 시집을 다 읽고, 야 우리나라 대단하다는 자부심마저 가졌다. 이렇듯 시의 내공이 빵빵한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이원규 『강물도 목이 마르다』, 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없이』, 나희덕 『야생사과』, 이 네 시집을 간신히 골라내어 심사장소로 갔다. 한 30분 먼저 도착하게 되어, 마포의 옛 창비사가 있던 뒷골목을 찬바람 속에 산보하면서 이 네 시집에 대해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았다. 어떤‘시적인 것’이 다가오면 저절로 문이 열리는 내 마음의 쎈서. 이 시집들은 그 문을 확확 열어버렸다.‘시적인 것’의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이의 관점, 취향, 기분에 따라 달라질 뿐인 이 시집들 가운데 나는 어느 시집이 2009년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고은 선생, 최원식 교수와 한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수상작으로 하는 데 세 사람이 대신한 만장이 일치했다. 백석의 시세계로 볼진대 안도현이야말로 가장 백석문학상을 받아 마땅한 시인이라는 말에 다들 동의했지만, 나는 꼭 그 이유만으로 그가 백석이 두른 계관을 받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안도현은 이미 선수다. 그의 능란한 솜씨는 그 무엇이든 시로 성립시킨다. 스스로 빛나는 시의 발광체가 이 시집 모든 페이지에 반짝거린다. 그 가운데 이번 시집은 유독 음식들이 많이 차려져 있어 우리 시에 독보적인 영역을 마련한다. 나는 그것이 한낱 기억의 식욕에만 기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 이이가 이렇듯 걸게 차려놓고 화육(化肉)받은 이생을 거룩하게 하는 일을 도모하고 있구나, 나는 그렇게 느꼈다. 독자로서 나는 제사상을 받은 듯 시인이 다시 데운 그‘간절한’성찬들이 어찌 안타깝지 않으랴.

 

왜 빗소리는 와서 저녁을 이리도 걸게 한상 차렸는가

 

나는 빗소리가 섭섭하지 않게 마당 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둔다

 

그리고 낮에 본 무릎 꺾인 어린 방아깨비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빗소리」 부분

 

절창이다. 이런 절창들을 우리에게 선사한 그의 시집에 유보 없는 축하를 보낸다.

세월이 을씨년스럽다. 기시감마저 든다. 내가 다시 프로야구에 안달하는 거며 이것과 영 딴판인 우리 시가 다시 욱일승천하는 듯한 기세하며…… 결국 시를 이겨본 시대가 없었다는 희망을 확인한 심사소감, 몇자 적는다.

 

 

 

수상소감

 

몰두와 빈둥댐 사이의 시

 

안도현 安度昡

1961년 경북 예천에서 출생했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등이 있다.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독자와의 소통을 핑계로 인터넷 홈페이지라는 좌판을 차린 적이 있었다. 올해 봄 산수유 필 때쯤에 나는 그 집의 문을 닫았다. 폐업신고를 겸해 반성과 변명의 항복문서를 몇줄 썼다.

 

최근에 꽤 오랫동안 저는 시인으로 사는 일이 무엇인가를 자주 생각했습니다. 시인으로서 저는 크게 고장이 나서 망가져 있었습니다. 저는 고독한 이방인도 되지 못했고, 영원한 자유인도 되지 못했습니다. 골방에서 자족적인 자폐를 혼자 즐기지도 못했고, 광장에 서서 세상에 분노하면서 크게 외치지도 못했습니다. 음풍농월의 세월도 저를 비껴갔지요. 매일매일 일정표를 자주 들여다보았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기에 귀를 대야 했고, 원고마감에 쫓겨 허둥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를 저 스스로 무겁게 떠받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항복합니다. 여기에서 항복하지 않으면 곧바로 시가 실패할 것이고, 그러면 최소한의 떨림조차 없는 시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서 나는 다짐했다. 문학의 바깥으로 들락거리지 않겠다고. 그 대신에 더 몰두해서 시를 쓰겠다고, 더 오랜 시간을 빈둥댈 것이며, 더 많은 길을 천천히 배회하겠다고.

1년이 지났다. 바깥출입은 확실히 줄어들었으나, 시인으로서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시에 매달려 산 지 서른해가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시는 오리무중이다. 백석의 이름으로 주시는 이 상은 그러므로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누군가의 손바닥이다. 해서, 기뻐할 겨를이 없다. 게다가 표현의 자유가 현저하게 쪼그라들어 있는 시점에서 주시는 상이니 이 땅에서 시인된 자의 도리가 무엇인지 엄중히 생각할 기회로 삼고자 한다.

그동안 백석한테서 많이 배웠다. 그를 많이 흠모했고, 많이 찾았고, 많이 베꼈다. 가끔 평양에 드나들면서 시간 있을 때마다 그의 마지막 행적을 좇아보았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선생은 말년에 전원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육하원칙에도 이르지 못한 메아리가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문학사의 안개 속을 걸어가고 있으니 그를 추적하는 일을 시업의 푯대로 삼아도 큰 허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백석의 무덤에도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집 앞에도 창비 사옥에도 내 누옥에도 푹푹 눈이 나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