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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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발표

 

참신한 상상력과 힘찬 서사를 발굴해 한국소설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의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상금은 3000만원이며,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신인문학상과 함께 11월 25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문진영 『담배 한개비의 시간』

 

심사위원

구효서 김인숙 백지연 임규찬

 

2009년 11월

 

 

 

심사평

 

최근 몇년간 장편소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장편 창작에 대한 문학제도의 지원과 조명도 가속화되는 추세이다. 각 문예지의 장편 연재가 온라인 연재의 활성화로 이어지면서, 작가들의 작품 생산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더불어 장편소설의 제도적 활황은 장르를 넘나드는 서사물의 구축을 시도하는 단계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문학상을 통한 장편소설 공모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예술장르와의 연계를 염두에 두며 흡인력있는 컨텐츠로서의‘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장편소설에 대한 안팎의 높은 기대와 요구는 급변하는 대중문화 현실에서 문학작품이 독자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개성적 영역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올해 3회를 맞은 창비장편소설상에는 총 170편이 응모되어 장편 창작에 대한 작가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열기를 드러냈다. 작품들이 다루는 주제도 다양해 청년실업, 가족 갈등, 환경 및 생태 문제, 소외된 농어촌의 삶, 교육문제, 감각적인 소비일상문화 등 어느 한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 폭넓은 이야기의 지층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이삼십대의 세대적 감수성을 담아낸 청년 성장서사에 관한 주목은 최근 문학계의 관심사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응모작의 상당수가 보여준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의 구축에 대한 관심은 문학이 현실의 문제에 직핍하여 보여줄 수 있는 활력과 상상력을 긍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반면에 많은 작품들이 소재의 사실적 활용이나 에피쏘드들의 부분적 재미에 치우쳐 장편소설이 지녀야 할 서사적 응집력과 문제의식의 치열함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응모작을 나누어 읽은 후 10월 30일에 한자리에 모인 심사위원들은 김유리의 『과테말라의 염소들』, 남재홍의 『종의 비명』, 이노루의 『백 행을 쓰고 싶다』, 문진영의 『담배 한개비의 시간』, 김류의 『버터플라이』 총 5편을 놓고 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이노루, 김유리, 문진영의 작품에 집중적인 논의가 모아졌다.

이노루의 『백 행을 쓰고 싶다』는 소외된 십대 청소년의 일상과 문화를 재기어린 상징과 화법으로 포착한다. 이주노동자의 성매매를 알선하는 부모 밑에서 방황하는 십대 소년들의 일탈과 광기를 다룬 이 작품은 폭력과 성, 글쓰기의 욕망과 정체성 탐구의 주제를 다양하게 아우르고 있다. 사회 주변부의 소외된 삶을 드러내는 개별인물들을 묘사하는 데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지만 그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부분도 눈에 많이 띄었다. 무엇보다도 인물들의 일탈양상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서사적인 연관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과도한 상징이나 일관되지 않은 서술형식이 드러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면이 큰 문제로 지적되었다.

김유리의 『과테말라의 염소들』은 성장이라는 테마에 대한 차분하고 섬세한 성찰을 보여준다. 방송국 구성작가인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는 딸의 시선을 중심에 둔 이 작품은 애증에 얽힌 전통적 모녀관계에서 벗어나려 시도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각자의 삶이 갖는 고유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시대의 가족모델을 염두에 둔 듯한 모녀의 모습은 공감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삶의 비극 속에서 좌절하지 않는 긍정적이고 초연한 태도를 구현하려는 소설 화자의 의도된 시선은 풍부한 인물의 형상화를 차단하는 한계를 가져왔다.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에피쏘드의 배치에 비해서 주인공과 엄마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드러난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한계는 엄마가 남긴 비디오테이프나 과테말라 염소의 상징, 전선생과 엄마의 관계 등 풍부한 장치들이 각자의 위치를 넘어서 서사의 중심부에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 대목과도 연관된다.

문진영의 『담배 한개비의 시간』은 경쾌한 화법과 일관된 주제를 전개하는 서술의 능력이 돋보인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대생을 중심으로 부유하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려낸 이 작품은 청년세대가 고유하게 포착할 수 있는 일상세태의 현실과 문화적 감수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듯한 인물들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유머와 발랄한 감수성은 이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편의점, 고시원, 까페, 피씨방은 그 어느 곳에도 소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청년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다.‘최저임금법의 경계’에서 떠도는 불안한 젊은이들이‘강남대로 한복판의 편의점’에서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의 세밀한 포착은 여운과 공감의 폭을 넓힌다. 더불어 비관적 현실을 담담하게 수락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유대를 포기하지 않는, 성숙하고도 건강한 감수성의 세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대가 끌어내는 서사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했다. 물론 제한된 공간과 인물을 다루는 이 소설의 성장구도에 대해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극적 상황이 극적인 설정에 머무르면서 장편 서사에 부응하는 긴장과 밀도를 확보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긴 시간 집중적인 토론과 상세한 논의를 거듭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안정된 호흡과 당대의 일상현실을 투시하는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의 힘에 신뢰를 보내면서 『담배 한개비의 시간』을 수상작으로 정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청년세대의 솔직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작가의 힘찬 행보가 자기 세계의 확장과 심화를 거듭하여 앞으로 더욱 좋은 소설을 쓰는 데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이제 신인작가로서 첫발을 뗀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장편소설상에 기대와 관심을 보내주신 많은 응모자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구효서 김인숙 백지연 임규찬

 

 

 

수상소감

 

 

문진영

1987년 춘천 출생.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재학중.

 

 

그해 여름, 나는 도서관 양지바른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글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

이듬해 여름, 나는 학교를 떠날 생각만 했다.

그 이듬해 여름에는, 한국을 떠날 생각만 했다.

 

나는 항상 이곳을 떠날 생각만을 했다.

여기만 아니면 될 것 같았다.

 

문득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을 때,

나는 낯선 나라, 낯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곳은 겨울이었고, 지나치게 추웠다.

나는 단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추위로부터 도망치듯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곳은 지나치게 더웠다. 장마가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첫 문장을 머릿속에서 옮겨적었다.

 

애초부터, 장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곳이 어디든 나는 결국 내 세상 안에 있어야 했다.

그렇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다만 내가 파악하는 세상이란 고작 이뿐이어서,

나는 내가 속해 있지 않은 다른 곳의 이야기는 쓸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다행이다.

 

알고 있다. 나는 먼지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우주다.

 

애초에 나를 이 지구별에 점지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리하여 끝없이 방황하는 이 생명체를 사람답게 만들어가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사랑하는 우리 가족,

늘 꿈꿔왔지만 꿈만으로도 벅찼던 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신 심사위원들께,

그리고 한번쯤은 곁에서 살아 숨쉬어주었기에 이 글에 적을 수 있었던 내 지난 시간의 등장인물들에게 감사한다.

 

늘 방황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황이란 건 그다지 치열하지도, 그렇다고 비겁하지도 않다.

그것은 늘 내게 적당해서, 나는 거기 몸을 묻고 편안해한다.

나는 계속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내가 쓸 수 있는 만큼만 쓰고 싶다.

내 글이 나와 함께 방황하고 꿈꾸고 나이 들어가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