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창비신인시인상 발표
우리 문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신인시인상’의 2009년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상금은 500만원이며,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장편소설상과 함께 11월 25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9회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작
주하림 「레드 아이」 외 4편
심사위원
박형준 진은영 신용목
2009년 10월
시 | 심사평
시에서 새로움은‘이전의 것’을 폐기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이전의 것’을 통과함으로써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인에게 기대하는 새로움 역시‘이전의 것’의 처소인 정직한 육체로부터 뽑아올린 감각의 풍경이다. 그러므로 현실의 골격을 언어의 체계로 단순하게 전환시키거나, 삶을 구성하는 현실을 삭제한 바탕에 쌓아올린 언어의 구조만으로 새로움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시가 보여주는 새로움의 전경은 분명 현실과는 다른 곳이되 현실의 총체성을 가져간 곳이기 때문이다. 신인의 시를 읽는 당혹과 기쁨은 현실 이전이 아니라 현실 이후를 보는 데 기인한 것이며, 언어 이전이 아니라 언어 이후를 탐침하는 데 따르는 것이다.
세명의 심사위원은 725명의 응모작을 한달 동안 나누어 읽고 각자 3~4명의 작품을 추천했다. 추천된 작품을 다시 열흘 동안 읽은 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대상은 강병길, 류성훈, 최설, 정귀매, 이한라, 강수, 주하림, 박성미 등 8명의 작품이었다. 선명하게 꼽을 수 있는 한명의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모두를 수상자로 결정해도 좋을 만큼 그 시적 역량이 만만찮았다. 어쩔 수 없이 한명 한명의 작품을 되짚으며 상대적으로 단점이 많은 응모자를 배제하는 것으로 최종 논의대상을 결정하기로 했다. 완성도에서 나무랄 데 없더라도 익숙한 기법을 구사하거나 도전적 사유가 부족한 경우와, 도전적이고 새로운 사유와 기법일지라도 나름의 형식으로 완결되지 못한 경우가 제외되었다.
최종적으로 「나무의 무의식」 외 14편을 보낸 박성미와 「고산병」 외 4편을 보낸 강수, 「레드 아이」 외 4편을 응모한 주하림 중에서 당선자를 내기로 했다. 우선, 박성미의 작품은 시선의 절제와 이미지의 배치가 조화를 이루며 안정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당장 시집으로 묶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독자를 잡아끄는 힘이 부족한 것과 간혹 긴 호흡의 시에서 이미지를 장악하지 못하고 되레 이미지에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신인상 수상작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남은 두명의 시를 두고 심사위원들은 오랜 논의를 거쳐야 했다. 나름의 개성과 발화방식을 지닌 그들의 시가 각각 장점과 단점을 나눠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수의 시는 발산하는 이미지를 구사하면서도 그것들을 자기만의 자장 안에 머물게 하는 매력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선하고 세련된 느낌에 비해 전체적으로 이미지들이 선명한 궤적을 형성하지 못하여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주하림의 시는 세계와 대결하려는 시선을 놓지 않으면서도 말하려는 바를 이미지로 변환해내는 능력과 그 의지가 돋보였다. 반면 가끔씩 이미지의 전개가 불필요한 얼개들에 의존하여 장황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본심에 오른 다른 작품들도 대체로 그러하지만, 둘의 시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자 세계를 구축하는 방편인 감각을 통하여 현실과 언어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조금은 가파른 잣대지만 결국 심사위원들은 주하림이 가진 패기와 열정을 높이 사기로 했다. 신인을 뽑는 일의 소임은 제출된 작품을 선정하는 것과 함께 그의 작업에 대한 전망까지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시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당돌함은 탄탄한 구성과 맞물려 신선한 파괴력을 행사한다. 단어는 낙엽처럼 타오르지만 돌멩이처럼 단단하고, 사이는 달리기처럼 숨가쁘지만 맥박처럼 균질하다. 충돌하며 확산하는 이미지가 주는 건강한 긴장은 우리 시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사례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래 지켜봐야 하고 신인은 오래 증명해야 한다. 새로운 시인과 그를 만나는 모두에게 축하하고 싶다.
박형준 진은영 신용목
수상소감
주하림
1986년생.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a. 씨크릿 러브
아름다운 문장들을 보면 곧 치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당신의 미문 뒤에 숨어 온몸에 퍼진 독을 퉤퉤 뱉어낸다. 살점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날 깨물고서야, 흉터들이 제자리에 있음에 안도한다. 차라리 이 가망없는 열망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리길 빌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찢어진 초고의 조각들이 바람을 먼저 가로질렀다. 오만과 단단한 자의식을 해머로 내리쳤던 날들. 당신은 모른다. 후회 뒤에 찾아오는 새벽. 그가 사랑한 방식을 이해하려 했을 뿐인데 당신은 떠났다. 짐가방을 비웠다. 포기하려는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내게 이해시키기 시작한다. 대상은 사라지고 나는 희미하게 남아 지옥을 바라본다. 오, 우리 사랑을 방해하던 누군가를 내 손으로 죽여 천국에 간다면 그 첫번째 입구에서 당신과 재회하기를.
당신이 영원히 전화도 받지 않고 잠에서 깨지 않고 콧구멍으로 숨도 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당신을 바퀴 달린 꽃침대에 태워 언덕으로, 언덕으로 끝없이 달리고 싶다. 내가 한 고백들이, 정말 당신을 사랑해서 꿨던 꿈들이 시가 될 때까지, 고독한 비유가 될 때까지, 마음 아프게도 당신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지옥의 열두번째 계단, 활활 타오르는 문장들을 주워 당신에게 보낼 첫번째 러브레터에 싣는다.
b. 다시 수평선
우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조덕자 김춘환 조점례! 글 열심히 써서 더 큰 TV, 맛있는 음식 사드릴게요. 꽃미녀 김완자 엄마와 남대문경찰서 주선호 아빠도 고맙습니다. 멍멍이응가 대접을 받다 요즘은 김연아 대접을 받는다는 건, 행복한 비밀로 덮어둘게요.
내 전생의 애인들-훈남 김수복 선생님, 숱하게 절교장과 폭언을 쏟아내신 F4리더 박덕규 선생님, 천방지축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어주신 강상대 선생님, 이시영 선생님, 우리 강아지 하며 쓰다듬어주신 정영주 선생님, 다크써클을 새겨주신 최수웅 선생님, 열정적이신 해이수, 임수경 선생님 그밖에 단국대 문예창작과 선생님들! 그 인간적인 애정이 없었다면 전 어두운 굴 속에서 눈먼 두더지로 살았을 겁니다.
반항적인 문학소녀를 격려해주셨던 오상수 선생님, 계성여고 아름다운 수녀님, 선생님들 모두 사랑합니다. 나의 시츄 정희야 고마워, 혜민, 민정, 미화. 어둠의 천사 아리, 준수, 예민이 노희준 언니, 여신 주미언니, 홍규 오라버니, 경선, 응원해주신 종태쌤, 사고뭉치 미림, 종용 모두 사랑하고 고마워요. 원정동인회-청초한 은영언니, 십년 동안 자기 시로 수음한 지훈선배 좋은 소식 있을 거예요! 든든한 정환, 우리선배, 성호오빠, 얼룩으로 남은 효정, 지윤, 규진까지.
절 뽑아주신 박형준, 진은영, 신용목 심사위원님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펼쳐질 생지옥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견디겠습니다. 지금 터진 함성소리가 새의 그림자로 돌아올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독자들과 소통하겠습니다. 꿈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어요. 나에 대한 용서는 끝났다. 뚱뚱하고 교활하며 묘하게 정치적인 그대들이여. 진정한 의미에서 복수는 이미 시작되었다.
제12회 창비신인소설상 발표
우리 문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신인소설상’의 2009년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상금은 700만원이며,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장편소설상과 함께 11월 25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12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이반장 「화가전」
심사위원
진정석 유희석 정혜경 윤성희 손홍규
2009년 10월
소설 | 심사평
올해 창비 신인소설상에는 총 426명의 작품 876편이 응모되었다.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중편 분량의 응모작이 많았다는 것이다. 제시된 단편소설 분량(200자 원고지 100매 이내)을 훨씬 초과하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대개 동어반복이나 군더더기를 낳는 데 머물렀다. 다양한 시도를 하더라도 스케일과 주제가 한데 어울릴 수 있어야 하며, 제한된 분량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그려내는 것이 단편소설의 덕목이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많은 작품들에 기성작가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어 아쉬웠다. 이미 보아온 익숙한 설정과 익히 예상되는 결말 등은 독자를 설레게 하거나 세계에 대한‘다른’인식으로 이끌기 어렵다. 신인이라는 단계에서 기성작가의 그림자를 극복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 어려운 문턱을 넘어서서 신선한 아이디어와 개성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최종심에서 집중 논의된 작품은 여섯편이었다. 심사회의는 예상보다 길어졌는데, 문장력 및 서사조직력, 문제의식, 작가적 자의식을 고루 갖춘 소설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휼의 「종점 만화방」은 변두리 버스종점의 나른하고 황폐한 분위기를 잘 묘사했고, 그곳을 떠나간 이들이 유품처럼 남긴 물건들을 페이소스와 함께 그려냈다. 그러나‘나’가 그곳으로 가게 된 연유라든가 그곳에서 일어나는 몇몇 사건의 설득력이 부족했다. 최상희의 「아주 우아하고 예의바른 대화의 기술」은 갑자기 소식이 끊겨버린 연인을 그리워하는‘나’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의 문제를 짚는다. 타자의 에피쏘드로 우회함으로써 감상성을 경계하면서 사랑의 문제를 탐색하려 한 점이 특색이지만,‘L의 완곡한 대화법’‘O와 배려의 기술’등 각 장의 에피쏘드들 간에 변별성이 드러나지 않아 장치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정인주의 「늪을 건너는 법」은 금기의 위반을 욕망하는 자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오랜 수련을 거쳤으리라 짐작되는 문체와 돌올하게 분위기를 부각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제목과‘늪’이라는 상징이 새롭지 않고 서사 자체의 울림이 크지 않았다. 윤혜상의 「자이로드롭」은 안정된 문장과 잘 짜인 구조를 갖춘 작품이다. 위험한 놀이기구를 탐사하는 특이한 직업도 한번 파고들어볼 만한 것이었으나, 인물들의 대사와 사건이 작위적이어서 진취성이 살아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잘 짜인 작품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굴레가 되고 말았는데, 결말이 예상되는 것도 이러한 점에서 비롯한다.
결국 주아름의 「후추들」과 이반장의 「화가전」을 놓고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일단 주아름의 소설은 걸출한 입담을 보여주었다. 「후추들」은 한때 대중음악계를 강타한 것으로 설정된 록밴드‘후추들’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액자소설로, 흥미로운 에피쏘드가 속도감있게 전개되었다. 그런데‘후추들’이 결성되고 해체되기까지의 과정이 이야기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흥밋거리 이상으로 자리매김되지 못했다.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강력한 밴드의 음악이 실은 막대한 자본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면의 진실은 결말의 독백에서 인위적으로 드러난다. 자신의 특장을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 길에 정진하길 바란다.
고심 끝에 거칠지만 신인다운 패기를 보여준 이반장의 「화가전」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그의 작품 역시 선배작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흔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적인 감성과 목소리를 과감하게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소설은 연말의 차가운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두 친구, 모두 무엇인가 “되다 만” 사람들의 남루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기차로 변신한 친구를 타고 비슷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잿빛 도시를 가로질러 내달리는 흥미로운 환상으로 나아간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상상력은 간결한 문장과 결합해 독특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환상의 힘은 최대한 감상주의를 경계하며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자들의 현실을 끌어안고 있다. 새로운 젊은 작가의 등장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진정석 유희석 정혜경 윤성희 손홍규
수상소감
이반장
1982년생. 경희대 디자인학부 디지털콘텐츠학과 재학중
제 방 어딘가에는 고양이가 한마리 살고 있습니다.
한번도 본 적 없고 소리를 들은 적도 없지만 확신합니다. 몇 안되는 이들에게 그에 대해 말해보려 했습니다. 이해시켜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애써 그를 증명해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부질없었죠. 고양이는 야속하여 절대 물증 같은 걸 남기지 않았습니다. 얄미울 만큼 주도면밀했어요. 가끔 식탁의 반찬이 흐트러져 있거나 한두 가닥 털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테니까요. 물론, 저야 상관없죠. 저는 고양이가 방에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다른 이들입니다.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믿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고양이 또한 그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너무 두려웠죠. 혼자 있고 싶어했어요. 타인의 개입을 원치 않았죠. 홀로 잠을 자거나 고독하게 상념에 잠겨 있기를 원했어요. 저는 그의 뜻대로 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그를 보이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했습니다. 그는 제 자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짐승 중 가장 완벽할 게 분명하니까요. 봐, 내겐 이토록 멋진 짐승이 있다고! 하지만 고양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입니다. 값비싼 음식과 따스한 잠자리로 유혹해보기도 했지만, 끝내 꿈쩍도 않았어요. 그를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원래대로라면 그는 제 소유가 아닌가요? 잠깐. 제 뜻대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질질 끌려다닐 뿐이니, 제가 그를 소유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저야말로 그의 소유인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드는군요. 손에 식은땀이 뱁니다. 그가 제 것이라는 걸,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지금 이 순간 당장 확인해볼 필요를 느낍니다. 자, 그를 불러봅니다.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온.
아무 반응도 없네요. 그도 그럴 게 저도 그를 본 적이 없는걸요. 눈앞에 있더라도 못 알아볼지도 몰라요. 어쩌면 고양이 따위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너무 끔찍합니다. 제 모든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전 분명 고양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사실이 아니라면……
……하지만 때마침,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네요.
휘유, 땀을 닦습니다. 이렇게 또 한시름을 덜게 되네요.
아직은 작은 울음소리뿐입니다. 하지만 그게 어딥니까. 분명 언젠간 슬그머니 발끝을, 살랑살랑 꼬리를, 뾰쪽 두 귀를, 휘둥그레 두 눈을, 그리고 또 언젠간, 분명 언젠간, 제 모습을 온전히 보일 날이 오지 않을까요. 언젠간 누군가의 배 위에 천연덕스럽게 올라 하품이나 해대고 있지 않을까요?
그가 어떤 모습일지, 여러모로 기대가 큽니다.
제16회 창비신인평론상 발표
우리 문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신인평론상’의 2009년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상금은 500만원이며,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장편소설상과 함께 11월 25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16회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작
김영희(金伶熙)
「라일락과 장미향기처럼 결합하는
-진은영 시의 ‘감성’과 ‘정치’」
심사위원
金英姬 鄭弘樹
2009년 10월
평론 | 심사평
올해 창비신인평론상의 심사 대상이 된 글은 모두 33편이었다. 20편 안팎이던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편수이다. 이미 문학세계의 안팎이 충분히 조망된 중견 시인·작가에 대한 평문도 없지는 않았지만, 최근 문학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젊은 문인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적 독해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개별 시인·작가에 대한 미시적 접근이 어떤 편의에 의한 것은 아닌지 싶을 만큼, 좀더 너른 시야에서 한국문학의 현재를 비평적으로 맥락화하는 의욕적인 글은 찾기 힘들었다. 특정 시인과 소설가의 작품세계를 가까이서 따져 들어간 경우에도 기존의 비평적 시각을 반복하거나 주석적 읽기에 그친 글들이 많았다. 응모자들에게만 그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삭혀지지 않은 외국의 유행담론에 편승해 논지를 전개하는 글이 많았던 것은 특별한 아쉬움이었다. 평자의 실존적 기투(企投)는 비평언어의 획득에서도 당연히 요구되는 기율이며, 그럴 때에만 무디면 무딘 대로 회의(懷疑)와 질문을 뚫고 고유한 자기 비평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비평적 글쓰기의 출발점에 선 분들에게라면 이러한 요구는 조금 더 엄정해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긴 해도 예년에 비해 늘어난 응모 편수가 보여주는 창비신인평론상에 대한 기대와 지지는 한국문학의 활력과 연관해서도 반가움을 아낄 이유가 없는 일이겠다. 어떤 젊은 영혼이 밤을 밝혀 시세 없는 문학평론에 자신의 시간을 던지는 모습은 왠지 가슴을 동하게 한다. 그것이 인간과 세계, 오늘의 우리 현실에 대한 막막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걸 읽는 자리가 그들이 지금 시작하고 있는 지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이야말로 이런 심사의 부끄러움이자 설렘이 아닐 수 없다. 두 심사위원이 응모작을 나누어 읽고 만난 최종심에는 모두 5편의 글이 남았다.
비평이 문학제도 안의 글쓰기라는 점을 새삼 상기시켜준 주은석의 패기 넘치는 김애란론 「달려라, 그만」은 바로 그 지점에서 문학비평의 진지함이 쉽게 양보할 수 없는 미덕임을 되새기게 했다. 기존 김애란 비평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 메타비평이 상식인의 수준에서 진행될 때 발생하는 의외의 통쾌함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 앞에서 생각을 곱씹고 머뭇거릴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다. 주은석의 글은 이 곤경 앞에서 그다지 머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한선경은 최종 논의대상에 오른 「이름 부름과 우주 한 벌 새로 짓기-박상륭의 문학관」 외에도 4편의 글을 더 보내왔다. 규정을 넘어선 응모 편수에서 알 수 있듯 한선경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으로 보였다. 상당한 인문학적 내공을 짐작 못할 바 아니나 여기엔 앞서 거론한 주은석과는 또다른 지점에서 문학비평이라는 고유한 글쓰기에 대한 점검과 성찰이 부족했다. 문학비평은 그 자체 개성적 표현을 수반한 하나의 문학적 글쓰기여야 한다. 지식의 개진이나 긴 논설을 대체할 비평언어의 문학적 정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황유정의 「‘무(無)’와‘영(零)’의 세계-‘유령’의 시간론」은 김훈 소설이 시간에 대한 응시에서 얻어지는 언어의 흔적임을 공감하면서 시작되고 있다. 이 점이 황유정의 비평적 따라읽기가 주석적 독해를 넘어서서 어느정도 설득의 힘을 마련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정작 중요한 길목에서 자신의 비평언어를 포기한다. “누구의 지적대로”“누구의 어법을 빌리자면”등등, 적시하기가 번거로울 정도다. 이 인용을 지운 자리에서 황유정의 글을 다시 보고 싶다.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을 고민에 빠뜨린 2편의 글은 공교롭게도‘문학과 정치’라는 근자의 두루 회자되는 비평적 의제에 착목하고 있었다. 비평적 글쓰기의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다고 판단된 그 두편의 글은 허준행의 「‘오타쿠적 인간들’이 사는 몇가지 방식-김중혁론」과 김영희의 「라일락과 장미향기처럼 결합하는-진은영 시의‘감성’과‘정치’」였다. 그런데‘정치’라는 단어의 비평적 복원에는 그 역사적·현실적 맥락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삶의 한 좌표로서 비평행위에 대한 자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적어도 문학비평의 야심은 그 두가지 요구를 자신의 비평언어 속에 하나의 긴장으로 숨겨놓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편의 글에서‘정치’가 그 불편한 간섭 없이 편안한 자리에 있는 듯 보인 것은 아쉬움이었다.
허준행이 김중혁의 소설에서 보고자 한‘정치성’의 비평적 사다리는‘오타쿠적 인간들’이라는 개념이었는데, 핵심 개념의 비평적 적실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탓에 논리가 감당해야 할 대목을 비평의 수사학으로 건너뛰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아즈마 히로끼의 입론을 성급히 가져오기보다는 김중혁 소설 내부에 좀더 머물렀어야 했다. “‘오타쿠적 인간들’이 사는 방식이란, 실은 나와 당신의 또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와 같은 마지막 마무리의 신선함이 다시 읽을 때 레토릭으로 느껴진 이유를 되새겨볼 일이다.
‘감성’과‘정치’의 미적 결합 가능성에서 진은영 시의 새로움을 보고자 한 김영희의 글은 무엇보다 글의 안정감에서 돋보였다. 필자는 진은영의 시편에 대한 각별한 공감과 애정을 바탕으로‘감각의 분배’를 통해 문학의 정치성을 사유하는 랑씨에르의 입론을 자신의 시론으로 녹여내었다. 문장이나 논지 전개의 유려함에서 만만찮은 비평적 단련을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대상 시편에 대한 읽기에서 기존의 평가와 다른 고유한 해석의 지평을 발견하기 어려웠고, 랑씨에르의 논의에 대한 비판적 거리의 부재 또한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모더니즘의 문제의식과 랑씨에르가 감각의 분배를 통해 말하고자 한‘정치성’이 겹치고 갈라지는 지점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부족할 때, 필자가 밝히고자 한 진은영 시의 미학적 새로움은 문학사의 기시감을 뿌리치기 어렵지 않겠는가. 글의 후반부 진은영 시의‘정치학’이 제대로 개진되지 못한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망설이게 한 이유였다. 그러나 비평적 의제를 의욕적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밀도있게 완결짓는 힘은 충분히 격려할 만한 자질이라고 판단했다.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는 앞으로의 활발한 비평활동을 기대하며 축하를 보낸다. 창비신인평론상에 응모해준 다른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김영희 정홍수
수상소감
김영희(金伶熙)
1977년생.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내가 좋아하는 것. 봄밤 심야버스의 속도, 발목이 시큰거릴 때까지 걷기, 뜨겁고 진한 커피의 쓴맛,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 그런데 이보다 더 근본적인 것 혹은 이것들이 전제로 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차창 밖으로 점멸하는 풍경에 기대어, 후배와 들길을 걸으며, 친구와 커피를 맞대고 앉아,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를 주제로. 돌아보면, 이 순간 나는‘나’에게 무수한‘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 혹은 그 말들을 다 하지 못해서. 말하고자 하는 욕구의 초과와 결핍 사이에서 나는‘쓴다’는 행위를 오래된 습관으로 지니게 된 것 같다. 그 속에서 나는 무언의 말들을 타인에게 송신하고, 나 자신에게 전달한다. 활자로 박히기 전에 공중으로 사라지는 말들이 많지만, 이것은 내가 나 자신과 그리고 타인과 소통하는 근본적인 방법이기에 절실하다. 생각해보면, 이 오래된 습관이 나에게는 문학으로 난 길이다.
이 길에서, 고마운 분들이 많다. 김인환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문학을 공부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선생님의 제자인 것이 기뻤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항상 나를 겸손하게 단련시킨다. 고려대 대학원 동학들이 고맙다. 자기 일처럼 신경써주고 기뻐해준 선배들, 함께 공부하며 생활을 공유해온 친구들. 머릿속에 맴도는 이름이 많지만, 누구를 더하고 누구를 뺄 수 없어서 난처하다. 그 이름들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며 일일이 감사를 표한다. 내 삶에 표지가 되는 BADAK선후배들, 특히 빛과 같은 지혜, 한결같은 진일에게 특별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가족. 수상으로 돌아오는 내 몫의 영광이 있다면 모두 부모님께 드리고 싶다. 내가 다름아닌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물러본 적이 없다. 언제나 다정하고 애틋한 언니, 동생들 양희, 세희, 민호가 있어 내 삶이 한결 든든하다. 마지막으로 내 글에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가능성을 지지해주신 분들께 치밀하고 진실한 글들로 보답하겠다.
요즘도 나는 독서실에서 책을 보고 글을 쓴다. 까만 어둠 속, 내 책상에 앉아 똑딱 스위치를 켜면, 환한 불빛과 함께 나만의 소우주가 펼쳐지는 느낌이다. 거기서 글을 쓸 때마다, 자주 힘겹다고 느끼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쓴다’는 행위의 고통과 황홀을 오래도록 피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미학적으로는 작품의 은폐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정치적으로는 소외된 이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두려운 마음 또한 없지 않지만, 오늘밤은 이 길의 환희에 대해서만 오래 생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