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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프랑꼬 만꾸조 외 『광장』, 생각의나무 2009

광장: 유럽에서 아시아로

 

 

주경철 朱京哲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joukc@snu.ac.kr

 

 

광장

유럽 문명은 광장의 문명이며, 유럽 역사는 광장의 역사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을 비롯해서 유럽 5개국 6개 기관의 연구진들이 집필한 방대한 저서 『광장』(진영선 외 옮김)은 전편에 걸쳐 그런 주장을 개진한다. ‘유럽의 광장들, 유럽을 위한 광장들’(Squares of Europe, Squares for Europe)이라는 원제가 내용을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듯이, 유럽의 정체성은 광장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도시에서 광장은 시민들의 사회적 교류의 중심지로서,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조화를 이루어내는 중요한 결절점이다. 아시아에는 이런 의미의 광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시아의 도시에 설혹 그 비슷한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유럽 도시의 광장과는 분명 연원과 기능이 다르다. 예컨대 서울에는 여의도개발계획(1968)에 따라 ‘5·16광장’이 만들어졌지만-후일 ‘여의도광장’이라고 개명되었다가 공원화사업을 거쳐 현재는 ‘여의도공원’이 되었다-시민들의 삶 속에서 문화활동과 축제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주로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지던 무대였다. 우리나라 도시의 특징은 차라리 서민들의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수많은 골목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유럽 도시가 아시아의 도시와 다른 점은 분명 광장의 존재이며, 그것은 보기보다 훨씬 중차대한 문제라는 이 책의 논지에 우리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제2부에 소개된 유럽 각지에 소재한 60개 광장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노라면 도시의 생기가 광장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런 점은 유럽사의 초기부터 명백하게 읽을 수 있다. 아테네의 아고라나 로마의 포로 로마노(Foro Romano) 같은 고대 도시광장은 이웃 문명권의 그것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성을 보였다. 고대 페르시아와 이집트의 광장은 신전이 중심을 차지하는, 말하자면 신이 머무는 곳이었던 데 비해,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는 인간들이 모여들어 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이 책의 해석에 따르면, 유럽의 도시는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 이 땅 위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 곳이다.

“도시는 세계를 ‘우리의 공간’과 ‘타자의 공간’으로 이원화한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도시의 성벽은 군사 목적으로 건설되기 이전에 주술적 의미에서 보호기능을 수행했고, 귀신과 악마로 가득 찬 ‘혼돈의’ 공간을 외벽들이 도시의 중심을 둘러쌈으로써 인간의 질서로 조직된 영역으로 분리했다. 도시 성벽은 악마가 사는 미지의 위험하고 혼돈스러운 외부로부터 인간이 조직한 거주지를 포위한다.”(58면) 이처럼 주술적인 의미를 띠던 고대와 중세의 도시는 근대 이후 심대한 변화와 발전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광장이 핵심적인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전쟁 수행기술의 변화, 특히 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진화 방향은 외벽이 실용적 기능을 잃고 해체되는 쪽으로 나아갔다. 도시들의 역동적이고도 무질서한 발달은 산업혁명과 함께 찾아왔다. 우리 영역이자 안전한 것 그리고 외부이자 위험한 것 사이를 구분해주던 성벽의 의미는 사라졌다. 이러한 성벽의 기능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 대신 광장으로 도시 중심의 상징적 기능이 재창출되는데, 광장은 도시가 확장되어 실제 공간상의 중심 위치를 벗어나도 가치에서는 여전히 중심 위치에 남게 된다.”(같은면)

광장은 단순히 텅 빈 장소가 아니라 시민들의 삶과 문화가 펼쳐지고 그럼으로써 역사발전을 추동한 곳이다. 어떤 필자는 이를 두고 팔림프쎄스트(palimpsest)-이전에 쓴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글을 쓴, 그러나 과거의 글자 흔적이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아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양피지-라 표현하고, 다른 필자는 문명의 용기(容器)라고도 부른다. 과연 그곳에는 어떤 글이 씌었고, 어떤 내용이 담겼는가?

근대의 광장은 우선 권력의 장소였고, 자연히 국가와 연결되었다. 국가가 신과 종교를 대신하게 된 이상, 광장을 장악하려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근대 초기에는 “비례와 대칭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인간사회의 축소판에서 나온 완벽함이 추출된 르네쌍스식 도시계획”(62면)의 결과물인 기념비적인 광장이 조성되었다. 후일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런 형태의 광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예컨대 돌로 된 파싸드(출입구가 있는 정면부), 육중한 기둥과 애틱(장식벽)을 통해 새 질서의 권위를 강조하려고 한 옛 소련의 광장은 문자 그대로 고전적이다. “사회주의 광장은 지방의 미학과 개인의 힘에 대한 초국가적 믿음을 연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의 중앙집중화를 외연화한다.”(같은면)

그런데 광장이 이처럼 권력의 장소라면 같은 이유 때문에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광장에서 열리는 카니발은 일종의 미니 혁명이었다. 여기서 가장 큰 특징은 신분 바꾸기라 할 수 있다. 하인이 주인이 되고 창녀가 성녀로 둔갑하는 이 기간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초래된 긴장을 분출하는 시기다. 그럼으로써 혁명적인 폭발의 위험을 미연에 막는 안전판 역할을 했음이 흔히 거론되는 바이지만, 미국의 역사가 내털리 데이비스(Natalie Davis)는 오히려 평소에 그처럼 놀이 형태로 ‘혁명 연습’을 한 것이 나중에 실제 봉기로 이어졌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도시의 가치체계에서 광장의 지위는 변했다. 고전적인 방식 그대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들어 독재에 저항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이제 그보다는 문화소비와 오락의 기능이 훨씬 중요해졌다. 그러나 그런 기능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면 광장이 자칫 시민들의 삶과 괴리된 한낱 ‘관광명소’로 전락할 위험도 크다. 무슨 디즈니랜드처럼 관(官) 주도로 스노우보드 대회나 현란한 빛축제가 벌어지는 광화문광장이 그런 변질의 단적인 예일 것이다.

이 책이 유럽의 광장을 우리에게 설명하면서 의도하는 속뜻이 있다면 도시의 삶에 결여된 공공성의 장소인 광장을 제대로 디자인해보자는 것 아닐까. 『광장』의 책임편집을 맡은 도시설계가 김석철(金錫澈)은 “21세기 도시공간의 이상형은 유럽 도시광장”이라고 단언한다. 갈수록 사람들 간의 교류가 가상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더더욱 직접적인 접촉과 인간적 친교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광장 건설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광장에 지속촬영 카메라를 설치해 사람들의 일상적 행태를 관찰한 한 사회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광장은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에 이상적인 장소가 아니다. 사교성이 가장 높은 광장이라도 사람 사이의 어울림은 많지 않다.”(110면) 광장은 자칫 고독의 장소가 될 위험도 안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도시계획 당국은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 광장의 위계적 성격을 완화하고 다양한 소공간들을 두는 방식으로 시민들의 소통을 돕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도시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나아갈 방향을 잡는 데에 이 책에서 살피는 유럽의 경험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