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운 논쟁
● 최근 창비에 오랜만에 한국사 관련 글이 실렸다. 독자로서 김흥규와 윤선태 두분의 글과 논쟁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간 국사학계에서는 7세기 이후의 한국사 인식틀로 크게 ‘통일신라론’과 ‘남북국시대론’이 제기되었다. 1975년 『창작과비평』 38호에 실린 이우성(李佑成) 선생의 「남북국시대와 최치원」이라는 글은 ‘남북국시대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바 있다. 삼국통일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이번 논쟁 역시 창비에서 이루어지는 점이 의미있게 느껴졌다.
김흥규는 신라 삼국통일론은 일통삼한(一統三韓) 인식에서 출발해 전통시대 이래 존재해온 것으로 식민사학의 유산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내놓은 반면, 윤선태는 전통시대의 삼국통일에 대한 역사인식과 식민사학의 삼국통일에 대한 이해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두 글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전통시대 이래 오늘날과 같은 삼국통일론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그런 인식이 오늘날까지 유지되어온 배경과 원인은 무엇일까 하는 점과, 전통시대 이래의 삼국통일 인식과 식민사학의 삼국통일에 대한 이해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전통시대 이래의 신라 삼국통일론을 식민사학의 입장에서 재창조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아무튼 창비에서의 이번 논쟁이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윤성환 bul6334@hanmail.net
우리 학술담론의 현주소는?
● 역사학과 정치경제학에 관심있는 학생이다. 지난 계절의 신라통일론 논쟁은 역사관의 의미와 더불어 근대가 창조한 ‘전통’이라는 것, 한국의 역사교육 문제, 최근의 탈근대담론 등을 여러모로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역사가 서술가에 의해 재구성된 과거’라는 관점은 역사학 전공자든 그렇지 않든 간과하기 쉽다. 김흥규의 글에서 지적한 ‘하야시가 나당대립의 과정을 축소하거나 모호하게 처리했다’‘하야시는 『삼국사기』의 기사를 다수 인용했음에도 윤선태는 이를 무시하거나 몰랐다’는 것은 어쩌면 국지적인 지적에 지나지 않는다. 기사를 얼마나 인용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고, 중요한 것은 ‘김부식의 역사적 과거’ 역시 재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적 정체성이 재구성된 담론의 산물임은 김흥규의 글에도 명시되어 있다. 다만 김흥규는 윤선태가 전근대의 유산을 무시하고 근대를 특권화했다고 보는데, 윤선태의 주된 논점은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김흥규가 주장한 ‘근간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담론에 대한 범례적 문제제기’ 역시 새겨볼 점이 있다. 실제로 탈식민, 탈근대 담론은 단순한 근대의 역(逆)을 지향하면서 오히려 근대를 특권화해온 면이 있다. 윤선태의 반론에서 ‘통일신라가 식민사학의 발명이다’라는 부분에 발끈하는 것도 그러한 폐해가 사고의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의 지식사회는 현재 민족주의적 경향과 탈근대적 성향,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담론 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는 양상이다. 이 속에서 우리가 담론을 펼치는 의미가 무엇인지, 담론의 성립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되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신영민 springofego@naver.com
이론을 통해 ‘윤리’와 ‘정치’를 고민한다면
● 황정아의 「이방인, 법, 보편주의에 관한 물음」은 오늘날 한국문단에서 문학과 정치의 관계 및 윤리에 대한 관심이 ‘이론’의 수용과 더불어 대두한 상황 자체를 검토하는 글로서 ‘우리시대의 문학/담론이 묻는 것’이라는 지난호 특집의 취지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느꼈다. “지금 새로이 부각되는 강력하고도 정언적인 윤리의 환기는 정치성의 포기에 대한 더욱 은밀한 댓가 혹은 보상인가, 아니면 한층 정당하고 진정성있는 정치를 향한 요청이자 진전인가”라는 그의 물음은 오늘날 현대철학을 읽으며 ‘윤리’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하는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지적하듯 “‘윤리’라는 주제가 과거에 빈번하게 정치에 대한 회피나 억압으로 활용”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대체로 ‘타자’라는 개념으로 수렴”되는 오늘날 비평에서의 윤리담론을 논하면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전개한다. ‘절대적 타자’니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니 하는 개념들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황정아에 따르면, 바디우는 기존 사회의 질서가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진정으로 보편적인 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과연 이 새로운 법이 기존의 법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분명치 않다. 황정아는 아감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미 법은 자신의 위반을 통해 작동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존의 법을 폐기하는 메시아적인 법의 도래가 가능한가? 이론을 통해 윤리와 정치를 고민하려면 이론을 문학적 수사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론이 사회를 고민하는 데 얼마나 의의가 있는지 다각도로 조명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할 때, 황정아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매우 적절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특정한 이론가들에 대한 논의에 집중한 점은 아쉽다.
라임 님의 블로그에서 http://telos.egloos.com/2506618
주체적 학문역량 바탕으로 동아시아 문명에 기여를
● 임형택 교수와 함께한 대화를 관심있게 읽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실사(實事)를 어떻게 찾아 해석하며 어디서 끌어올 것이냐 하는 논점은 상당히 의미있다고 본다. 결국 이는 우리의 공동체적 삶이 처한 현재적 상황과 미래를 예측하는 가운데서 구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당장의 문제는 아니지만 동아시아문명론도 실사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는 점차 국경을 초월하여 지역과 세계 단위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의 지역성을 문제삼고 그 문명론까지 언급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하겠다. 한국이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의 결성과 그 문명의 형성에 기여하는 일도 중요하며, 실사의 차원에서 이를 연구하고 실제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쌓아온 한국학의 성과를 토대로 이 방면에 노력하는 일이 앞으로의 학문적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고려가 조선으로 바뀐 역사의 전환이 원-명의 교체와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것이 서유럽의 르네쌍스 운동과 연계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다. 르네쌍스의 인간중심 사유를 고려-조선의 전환에서 찾아 이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고려가 서양 중세처럼 신권이 지배하던 시대가 아니었던 만큼 조선의 건국에 특별히 인간중심적 사유를 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화기의 사회주의 수용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분석도 일견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능력이 더 높아진 것으로 보아야지 사회주의를 수용하면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현실 분석과 그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사회주의가 수용된 1920년대 이전에도 우리에게 있었고, 사회주의자가 아니면서도 일제하에서 언론인으로서 많은 논설을 썼던 안재홍의 경우도 생각해볼 일이다.
이광수 songpajong@naver.com
시인의 격렬한 고투에 동참하게 해준 평론
●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작인 김영희(金伶熙)의 평론을 인상깊게 읽었다. 최근 진은영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을 갸우뚱하면서 읽었던 나로서는 가렵던 부위가 시원해지는 글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익숙한 의미체계에 종속된 이미지들을 방생하여 온존하게 독립시키는 일이 진은영 시의 주된 작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은영의 시를 대할 때 갖게 되는 다소 피로하고 공허한 느낌을, 이 평론을 읽기 전까지는 그저 이미지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의미가 빈곤해져버린 탓이라고 치부했는데, 그간의 내 평가가 피상적인 이해에서 비롯한 것은 아닌지 재고하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읽는 동안 느꼈던 시종 건강하고 씩씩한 기백이야말로 “감성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서로를 투신하여 미적으로 결합”하는 시의 경지를 위해 시인이 치르는 “격렬한 고투”의 추진력이 아닐까 싶다.
정회림 sisyphus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