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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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도

1957년 충남 부여 출생. 1985년 『민중교육』으로 등단. 시집 『교사일기』 『사십세』 『그 나라』 『백제시편』 등이 있음. mvwhwoeh@hanmail.net

 

 

 

내 아는 사람이 그러는디, 자기 엄니 아부지가 일흔둘에 예순아홉인디, 아부지가 직장암인가 대장암인가로 똥구멍을 뗘냈댜. 똥구멍을 뗘내고 옆구리에 똥주머니 같은 걸 차고 사는디, 보통때 보면 뜨드미지근한 누런 똥이 비닐팩 같은 똥주머니에 차는 것이 보인댜. 그 똥주머니를 즤 엄니가 갈아주는디, 암만 남편이래두 그 주머니 비울 때마다 구역질이 올라와 은단도 깨물고 담배연기도 쐰다더먼. 또 그 아부지도 정신은 풀 멕인 광목처럼 짱짱헌디 구겨진 신세가 하두 기가 막혀 북어처럼 입만 딱 벌리고 한숨만 폭폭 내쉬는 게 일이랴. 헌데 어느날 두 냥반이 마음을 아주 싹 고쳐먹었다느먼. 그러니께 그게 뭐냐면 티콘가 뭔가 허는 쬐그만 중고차 한대 사가지고 무서운 말 하루도 빠짐없이 집밖으로 나돌아댕기는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시청 문화원 백화점 시민단체 할 것 없이 할 만한 디는 빠짐없이 전화해, 주부 대상 노인 대상 행사 프로그램을 빼곡히 적어놓고, 도시락 싸들고 빠짐없이 쫓아댕기며 어느 땐 수건, 어느 땐 밥그릇 등, 경품이란 경품은 죄다 받아온다는겨. 그래, 한번은 무슨무슨 마라톤 대회에까지 나가 두 노인네가 똥주머니 받쳐들고 뛰다 걷다 하였는디, 그 바람에 운동화 두켤레랑 츄리링 두벌 돈으로 따져 십만원어치는 빠지잖게 받아와,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아들내미 딸내미헌티 전화걸어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는다는디, 그러면서 그이 하는 말, 사람 사는 일이 정말 맘먹기에 달렸지유?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 듣는 말이 아닌데도 정말 그런 것 같아, 그 말이 문득 무섭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가만 있자 그러니까 그게 거, 할 때의 그 가만 있자에 대하여

 

 

어떤 말이 저렇게 깨달음의 등불을 오롯이 드러낼까

어떤 말이 저렇게 강물처럼 흘러 순간마다 빛날까

어떤 말이 늘 서서 걸으며 달려가는 우릴 멈추게 하겠는가

그 자리에 멈추어, 앉아, 되돌아보게 하겠는가

가만 있자의 그 순간이 어디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소주집에 앉아 씩둑거리는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날아오를 자리 가늠하며 대가리 까댁이는

미루나무 꼭대기의 저 까치에게도

주춤대며 개천 다리 건너오는

오늘 아침 샛강의 자욱한 안개에도

그러니까 그 자세, 가만 있자의

낮은 걸음 자세는 깃들어 있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순간 불티처럼 튀어나온 그 깨달음에

극(極)으로 치닫던 마음이 돌아앉는다

제 몸 진저리치며 세우는 그 자리에

고양이

쥐의 일에

슬퍼도 하고

밭에서 돌아온 소가

부어오른 제 발등을 핥기도 한다

 

어느 말이 저렇게 어두운 골방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담뱃불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