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낭만적 청춘의 권리장전
문진영 『담배 한 개비의 시간』
조연정 曺淵正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순진함의 유혹을 넘어서」 「멜랑꼴리 쏠리다리떼」 등이 있음. yeoner@naver.com
청춘의 상징은 속도다. 그들은 빠르게 들끓고 빠르게 식는다. 심사숙고할 겨를이 없다. 새롭고 신기한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그들 앞으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시시각각 그 모습을 달리할 무방비의 삶이 그들 앞에 매력적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스무살 청춘들이 자신만의 확고한 미래를 향해 일정한 보폭으로 차분히 한발짝씩 내딛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청춘의 비망록에 스스로도 이해 못할 궤변을 휘갈기는 것이 아니라 ‘프랭클린 플래너’ 따위에 빽빽한 스케줄을 채워넣으며 뿌듯해하고 있다면, 그 청춘은 불행하다.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미래는 누군가에게서 주어진 것임에 틀림없고, 미래를 향한 단호한 발걸음도 제 몸의 리듬에 맞을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스무살 청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미래를 너무 빨리 결정할 자유만은 없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휘청거리고 쓰러져야 할 의무만이 있다.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의 나오꼬의 말마따나 아무런 준비 없이 맞게 되는 스무살은 ‘어쩐지 바보 같은 것’ 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날 휘청거림은 더이상 청춘의 특권이 될 수 없는 듯하다. 휘청거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자신을 브랜드화할 것을 자유의지로써 강요당하는 ‘자기계발’의 시대에(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베개 2009), 한순간의 어긋남은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패배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행한 것은 청춘만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상상한다는 것이 어쩐지 허세로 느껴질 만큼 타인의 룰에 강하게 속박된 우리는 플래너의 반듯한 일상 속에서 기실 한없이 휘청거리고 있다. 방황과 유예가 자유의 행복한 조건이 되지 않고 오로지 부자유의 씁쓸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은 지금 모든 세대가 공유하는 불행이다. 패이승(敗而勝)이 불가능한 시대, ‘담배 한 개비’의 낭만과 여유가 웃음거리로 전락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문진영(文眞鍈)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창비 2010)은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청춘의 특권’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강남대로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를 중심으로, 그녀의 곁에 “물음표”(18면)처럼 떠도는 취업준비생 선배 M, 같은 편의점에서 7년째 일하는 동료J, 근처 까페에서 역시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는 ‘물고기를 닮은 여자’ 등 이십대 초반의 일상이 담담한 문체로 서술되는 이 작품은, 방황과 유예를 청춘의 지분으로서 조용히 요청하는 소설이라 할 만하다. 왜 그런가. 우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건실한(?) 청년의 이미지와 이들의 삶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저 하루하루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했다”(43면)고 말하는 ‘나’ 나, 제대로 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컨鴉’으로 사는 거(35면)라고 말하는J, “무언가가 되고 싶지 않아했던 자신과 헤어지는 것에 겁이 났”(88면)다고 고백하는 M, 그리고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118면) 삶을 꿈꾼다고 털어놓는 ‘물고기’에게서는, 해묵은 성장소설 속 청춘의 ‘보편적’ 목소리가 쉽게 환기될지언정 우리 시대 청년들의 ‘일반적’ 육성이 크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른바 생존의 문제가 아닌 실존의 문제로 고민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아르바이트의 쳇바퀴를 돌며 “최저임금의 경계”(91면)에서 심각한 박탈감 없이 나름대로 자기 삶의 ‘궤도’를 만들어보고 있는 이들은, 시대와 적극적으로 불화하며 온전한 자기 몫의 삶을 개척하는 젊은 투사는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세계에 대한 공포와 무기력으로 청춘의 열정을 소진시키는 패배자들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 소설에는 ‘88만원 세대’의 과격한 ‘짱돌’도, 호들갑스러운 칭얼거림도, 삐딱한 냉소도 없다. 이들은 그저 시대의 흐름과는 다소 무관하게 오랜 습관처럼 각자의 몸에 밴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갈 뿐이다. 약간의 불안과 쓸쓸함을 기꺼이 벗 삼아, 나름의 진지함으로 자기 존재에 관한 질문과 대면하면서 말이다. 결국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다”(173면)는 것을 알아가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삶’은 외부에서 부과된 삶을 자신의 선택으로 오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어도 ‘자유로운 삶’으로 육박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은 외부의 질서와 내면의 리듬을 조용히 어긋나게 함으로써 주체적 삶이 도무지 불가능한 우리 시대의 수치를 은근하게 지적하는 동시에 잃어버린 청춘의 특권을 향수하게 만드는 청춘의 낭만적 권리장전이 된다. 세태소설이기 이전에 청춘소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작품인 것이다. 작품의 시공간은 바로 여기이므로 저 낯익은 청춘의 의장들이 다소 부조리하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그 아슬아슬함은 작가의 발랄한 문체와 감성을 통과하며 이 소설의 성취로 격상된다. 더불어, 관찰하는 자와 고백하는 자의 역할을 두루 맡으며 자기 세대의 자리를 따뜻하게 묘파하려는 작가의 시선 속에서 『담배 한 개비의 시간』 속 청춘의 고민들은 행동을 거절한 허무한 공상이나 생존을 외면한 사치스런 명상과도 거리를 두게 된다.
투명할 정도로 단호한 문장에 담긴 청춘의 상징들은 이 소설의 매력이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다.J와 ‘물고기’의 사고와 그로 인한 상실감은 ‘나’를 갑작스레 성장의 구도로 몰아넣는데, 그 익숙한 패턴의 명료한 서사가 설득력있게 제시되지는 못한 듯하다. ‘나’와의 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인물들이 어쩐지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점도 아쉽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은 그녀의 작품목록에서 최고(最高)는 아닌 최고(最古)의 작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은 첫 작품이 지닌 미숙함으로 설명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청춘의 본질로부터 기인하는 사태로도 이해되어야 한다고 미리 말해두면 어떨까. 87년생 그녀는 지금, 청춘의 속도에 알맞게 “딱 그 정도”로(91면) “흔들거리”며(131면) 자신만의 첫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고 있으므로. 청춘의 시간을 이미 저기 두고 온 자가 필사적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회한을 또다른 청춘에게 투사함으로써 지난 시절을 애써 보상받으려는 태도일 텐데, 문진영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을 충분히 읽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태도에 맞서야 한다. 누구에게나 회한으로 남을 뿐인 청춘이지만,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 젊은 작가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 테니 말이다.
문진영은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으며 “내가 쓸 수 있는 만큼만”(수상소감) 쓰고 싶다는 진솔한 포부를 밝혔다. 거기에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역시 겹쳐져야 하리라. ‘자기 앞의 생’을 대하는 작가의 진지한 태도가 만개하고 더불어 미학적 긴장까지 갖추게 된다면 우리는 그녀가 쓰게 될 미래의 소설에서는 휘청거리는 청춘의 희뿌연 초상뿐 아니라 삶의 본질을 더 정확히 꿰뚫는 거대한 질문들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