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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문혜진 文惠眞
1976년 경북 김천 출생.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질 나쁜 연애』가 있음. summer-cloud@hanmail.net
루니의 의료관광
수술대에 누워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는 동안
맹견
바르쎌로나 동물원의 하얀 고릴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파란 눈의 야수
루니가 생각났어
메스가 스케이트날처럼 뱃가죽을 지치고
북쪽의 차가운 숲이 범람하듯
수술방에 피냄새가 차올랐지
살을 찢는 고통 너머
물속에서 아기가 출렁인다
척추에 무통주사 바늘이 꽂히자
저릿하게 파닥이는 미몽 속에서
아! 까맣게 질린 아기가 꺼내졌지
마취과 의사는 재빨리 재워버렸지만
사실 나는 깨어 있었거든
복제개가 만들어지는 동안
나는 배가 불러왔고
독침에 쏘인 후 감각을 잃었을 때
살을 찢어 피를 마시는 낙타거미의 주문
이런 찌릿한 환각으로는
어디든 갈 수 있지
인간장기농장이라 불리는
필리핀 마닐라 그랜드호텔 뒤 바세코 슬럼가
배에서 갈비뼈까지 사선의 수술자국 사내들이
푸른 이빨로 히히덕거리는 컨테이너 안
거기에도 루니가 있었어
월드컵 기간에 한국에 팔린 콩팥은
척추를 다친 아들을 살렸고
곱사등이 아들을 낳는 심정으로 루니는 배를 갈랐지
한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루니의 콩팥이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다
기내식을 맛보지 못하고
누이 같은 승무원의 친절한 억양도 들을 수 없지만
루니의 팔딱거리는 콩팥은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고
구름의 무심한 구도에 경계 없는 일탈감을 맛보았다
고귀한 것은 어렵고도 드문 것1
넬슨 만델라와의 차 한잔이
인터넷 경매싸이트에 오르는 시대
살을 찢고 밀봉한 자리에
딱딱한 흔적이 시간처럼 돋는다
소와 파리떼가 있는 유리방2
신도시 번화가 한복판에 뿔난 소가 달린다
도살장 울타리를 뛰어넘어
뿔로 행인을 들이받고
혈관처럼 흐르는 자동차의 행렬로 돌진한다
세계의 끝에 서 있는 소 한마리
어디선가 혹등고래 울음소리 들린다
분열적인 트럼펫 소리
목 쉰 늑대 울음
파리떼가 들끓는 견고한 유리방
댕강 잘린 소머리가 썩어가고 있다
눈을 부릅뜬 채
쉽게 말라버린 페인트
인위적인 피를 흩뿌리며
작은 구멍으로 연결된 또 하나의 유리방
전기스위치에 연결된 파리 교살기
소머리에서 태어난 파리가
다른 방으로 흐른다
하나의 방은 파리의 요람
또 하나는 죽음의 생산라인
소머리가 썩어가는 동안
파리의 시간은 어떠한가
신도시 고층아파트
태풍이 북상중이라고
유리창을 때리며
몸서리치게 거센 바람이 분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파리 두마리
어디선가 소 울음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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