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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2003년 『창작과비평』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가 있음. brokenname@empas.com
장편연재 3
두근두근 내 인생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알고, 아버지는 난생처음 기도란 걸 해봤다. 여름이 막 끝나갈 무렵, 가을이 갓 시작될 즈음. 수천번의 계절 안에서 수천번의 간절(間節)을 살아, 엄청 늙은 고목 아래서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벌거벗은 채 웅덩이에 대(大)자로 떠 있었다. 언젠가 만화책에서 본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라는 삽화 속 사내와 비슷한 폼을 하고서였다. 지나가는 미풍 하나에도 소름이 돋는 게, 수영을 하기엔 너무 늦은 날씨였지만. 무력하게 출렁이는 고환 역시 영문을 모른 채 오그라들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한동안 계속 그러고 있었다. 달뜬 몸을 식히려는 것도, 강이 좋아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러는 건 ‘생각’을 하기 위해서였다. 혹은 원인이 있는 장소에는 반드시 해답도 있으리라는 미신적인 기대 때문인지도 몰랐다.
‘생각은’
나무들이 춤을 추며 노래했다.
‘그짓을 하기 전에 했어야지……’
숲 어디서, 무언가 툭— 툭— 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무에 붙어 있던 매미들이 낙과처럼 하나둘 떨어진 거였다.
‘이젠 더이상 여름이 아닌 게지?’
언젠가 그렇게 읊조리며 돌아서는 어머니의 발밑에도 매미 시체가 깔려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입을 맞춘 마지막 저녁이었다. 어두워진 얼굴로 이제 막 사춘기의 길목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걸음을 따라, 그 길에선, 바스락 매미 부서지는 소리가 났더랬다.
‘아이는’
아버지가 항변했다.
‘생각으로 만드는 게 아니잖아.’
절벽 위에 비뚜름히 자리잡은 노송 한그루가 의아한 듯 아버지를 굽어봤다.
‘그렇다고’
아버지는 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는 대상에게 골을 냈다.
‘생각으로 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바람이 불자, 아버지의 몸이 출렁였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라고 그냥 놔두었다. 그러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때 우리는 그걸 원했어. 그때 우리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우리는 그걸 한번 더 했어. 우리는 그걸 계속 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게 몹시……
‘좋았어.’
순간 나는 ‘아이고, 아버지’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노트북 화면 위에 ‘좋았다’는 말을 쓴 뒤 갑자기 먹먹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좋았다고 써드리고 싶었는데. 실제로도 좋았을 것 같은데. 그 문장을 적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나는 화면 속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십칠세. 세상 어떤 노인에게 욕먹어도 쌀 만큼 어리석고 싱그럽고 대책없는 아버지의 몸이 거기 있었다. 아름다운 몸이었다. 나는 ‘그랬어요? 아버지?’ 쓸쓸하게 웃은 뒤 다음에 벌어질 일을 기다렸다.
주위는 어둑해지고 있었다. 가을을 어서 모셔오려는 듯, 바람이 구름의 옷자락을 계속 잡아끈 거였다. 계절을 계절답게 하는 건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니까. 여름에 부역하던 모든 것이 시치미를 떼며 일제히 가을을 공모하고 있었으니까. 낮고 두터운 구름의 이동을 따라 아버지의 얼굴에도 천천히 그늘이 드리워졌다. 지나치게 건강한 나머지 도리어 비극을 애호하게 마련인, 사춘기 특유의 도취가 서린 얼굴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버지는 갈등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지금까지는 자기 삶만 궁리하면 됐는데, 이제는 세 사람의 인생을 한꺼번에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서였다. 그리고 그런 건 살면서 한번도 안해본 일 중 하나였다.
두둑—
빗방울 하나가 아버지의 이마를 때렸다. 차고 맑은 타격이었다. 그것은 이내 수를 불려 빠르게 낙하했다. 한차례 내리고 말 소나기였지만 숲 전체를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계곡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초가을 여우비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이대로 병에 걸려버렸으면. 무언가 더 큰 문제가 생겨주었으면. 차라리 그냥…… 죽어버릴까?’
웅덩이 위로 타닥타닥 쉴 새 없이 동그라미가 돋아났다. 아버지의 알몸 위로도 무수한 파문이 인 뒤 사라졌다 다시 생겼다. 그야말로 시끌벅적한 원들의 합창이었다. 아버지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동그라미의 세례를 받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도 지금 이런 기분이겠지?’
같은 시간, 양수 속에서 타닥타닥 비트(bit, beat)비를 맞고 있을 나를 향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점점 원들의 아우성을 견디기 힘들었다. 원들의 주장, 원들의 요구에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사방에선 물안개가 피어났다. 아버지는 배영 자세를 풀고, 양서류처럼 물속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그러곤 비에 젖어, 평소보다 더 시커매 보이는 큰어른나무 앞에 섰다. 신선한 숲 냄새가 아버지의 폐를 파랗게 적셨다. 아버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당장 덤벼들 듯 나무를 노려봤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먹보다 먼저 움직인 건 무릎이었다. 아버지는 털썩 나무 앞에 꿇어앉았다. 그러곤 글썽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
큰어른나무는 묵묵부답이었다. 주위에선 희망을 가질 만한 어떤 징조나 신호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뭔가 모자란 것 같아 한번 더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지가 아니 되게 해주세요, 네?”
그건 아버지가 생애 최초로, 자신의 전존재를 걸고, 온힘으로, 정성을 다해 올린 기도였다. 물론 그 전에도 ‘여자친구 하나만’ 만들어달라는 청을 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장난이었다. 만일 정말 신이란 게 있다면, 근엄하고 점잖으신 분이 그런 걸 그리 쉽게, 신속하게 들어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지각있는 신이라면, 그렇게 막 까부느라 올린 기도를, 그렇게 진지하게 들어주면 안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나’만 봐도 알 수 있듯, 아버지의 신은 아버지의 첫째 부탁만 들어주고 둘째는 이뤄주지 않으셨다. ‘진심’ 하나면 신하고도 얘기가 다 통할 거라 믿었던 아버지는 좌절했다. 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물론 아버지의 짐작처럼 세상 많은 신들은 미물의 기도하는 마음과 경건함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가 몰랐던 게 하나 있는데, 신에게도 유머감각이 있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한참 올린 기도 탓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근육이 땅기고, 턱이 달달 떨리는 게, 서러워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그래봤자 넌 나무라고, 포유류의 고충 따위 관심 없다 이건가? 어찌됐든 네 새끼지 내 새끼가 아니다 이거야? 아버지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시발. 뭐라 대꾸 좀 해봐. 엉엉. 다 듣고 있는 거 안다고. 왜 소원을 한번에 하나만 들어주느냔 말이야. 그럴 줄 알았으면. 흑흑. 좀더 신중하게 골랐을 거 아니야. 엉엉.
감기, 그리고 열병의 나날이 지나갔다. 몇번의 큰 비와 뒤척임. 일교차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그래프의 곡선과 먼지의 운동. 낮과 밤. 빛의 마블링. 그런 것이 지나갔다. 그 사이 간절(間節)을 앓는 것은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철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조금씩 아팠다. 면역을 배우느라 그랬고, 나이를 잡숫느라 그랬다. ‘철이 든다’는 건, 철을 겪었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계절에 제법 물들어봤단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이따금 열이 오른 아버지가 투병중 ‘황홀’을 경험하게 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의 꿈속에서 만나, 누구의 꿈자리서 나누는 건지 모를 아득한 대화를 했다. 한사람은 벌거벗은 채 웅덩이에 떠 있고, 다른 한사람은 공중에서 상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굽어보는 쪽의 얼굴은 웅덩이 위의 하늘을 꽉 채울 만큼 커다랬다. 마치 한사람이 다른 이의 신이라도 된 양 그랬다. 아버지는 사지에 힘을 풀고, 하염없이 먼 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하늘에서부터 거대한 얼굴을 들이밀며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왜 당신을 당신의 아버지라 불러?”
어머니의 목소리는 왕왕거리며 산 너머로 퍼져갔다. 큰어른나무 주위의 오목한 공간이 그 자체로 하나의 스피커가 된 모양새였다. 잠시 후, 아버지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아버지니까……”
아버지의 목소리는 겹겹의 원을 그리며 숲 너머로 번져갔다. ‘나는— 나는— 하고, ‘아버지니까— 아버지니까—’ 하고. 가장 나중에 그려진 동심원 밖에서 파드득 새떼가 날아올랐다. 그 소리는 메아리쳐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아닌 산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얼마 뒤, 두 사람의 위치는 바뀌어 있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비트루비우스의 자세로 물에 떠 있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내려다보는 형상이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먼 하늘서 큰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당신은 왜 당신을 당신의 어머니라 불러?”
그러자 어머니는 기쁜 듯 차분하고 슬픈 듯 들뜬 목소리로 대꾸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어머니니까……”
말하자면 몸살, 그리고 환절(換節)의 날들이었다. 하늘은 높고, 말라죽은 매미의 텅 빈 눈동자 위로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뭉게구름이 지나갔다. 산이 꾸는 꿈속에서, 매미들은 죽어서도 노래했다. 그때 우리는 그걸 원했어. 그때 우리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그때 우린 그걸 한번 더 했어. 그때 우린 그걸 계속 했어. 그리고 그런 뒤 우리는.
‘나무에서 떨어졌어.’
그러자 다른 매미들도 후렴구를 따라했다.
‘떨어졌어, 떨어졌어…… 나무에서 떨어졌어.’
이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음 입맞추었던 때로 돌아가 보는 게 좋겠다. 숲속에서 처음 만나, ‘누구세요?’ 물은 뒤, ‘아름답군요, 아름답군요’ 하기 전으로. 뒤척이고 설레어하며 서로를 힐끔대던 막간의 풍경으로 말이다. 그 즈음,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일 많이 한 것은 다름 아닌 ‘이야기’였다. 그게 자연스러운 순서였고, 그것 말곤 딱히 할 게 없어서기도 했다. 아버지가 수음중인 동기생을 구타한 사연을 털어놓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머니가 자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은 사람?”
“응. 나은 사람.”
“노래로?”
“응. 노래로.”
“그게 돼?”
“어쩌면.”
누군가 자신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단 사실만으로 자신이 귀한 사람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비밀과 거짓말. 유혹과 딴청. 진담 혹은 우스갯소리가 얼마간 이어지던 시기. 작게 웃고, 공감하고, 귀 기울이던 나날. 하지만 연인들이 차려놓은 대화의 식탁에 꼭 밀담만 있으라는 법은 없었다. 거기에는 오히려 둘만의 밀어를 보호하기 위한, 무수한 딴 얘기와 시치미가 필요했다. 시시껄렁한 얘기도 좋고, 범박한 소재라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 말들을 통해 두 사람이 뭔가 ‘축조’해나가고 있다는 거였다. 자기들도 모르게.
‘자기들도 모르게?’
지나가는 바람이 갸웃대면
‘응. 모르게.’
오고 있는 바람이 대답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버지는 모자란 화젯거리를 주로 만화방에서 얻었다. 이를 테면 물속으로 뛰어들며 아버지가 던지는 이런 말 같은 것.
“원숭이는 원래 헤엄치지 않는대.”
“정말?”
“응.”
“근데 사람은 하잖아?”
“응.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대.”
아버지가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러곤 어머니가 ‘정말?’ 하고 물을 때, 단어의 뒤꿈치가 사뿐 들리는, 그 가볍고 다정한 억양이 퍽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헤엄치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신이 나 어머니 앞에서 재주를 부렸다. 순서대로 폼을 바꿔가며, 온갖 영법을 선보인 거였다. 자! 이건 자유영! 이건 배영! 봐라, 접영!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평영! 아버지는 오두방정을 떨며 잘난 체를 했다.
“으하, 그거 웃기다!”
“뭐?”
“네가 지금 하는 거 말이야.”
“평영?”
“응. 꼭 개구리 같아. 하나도 안 멋있어. 그건 어디 가서 하지 마.”
그러자 아버지는, 훗날 자기 삶에 기본이 될지도 모를 중요하고 암시적인 말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야, 이게 이래 웃겨 보여도, 물속에서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영법이야.”
아버지가 어머니 앞에서 그런 잡스러운 지식을 늘어놓는 데는 체고생의 콤플렉스도 한몫했다. 아버지는 어디서든 ‘뭔가 있어 보인다’ 싶은 정보들은 단단히 기억해두었다가, 적당한 순간 써먹곤 했다. 사내로서, 한 여자에게 이 세계의 질서에 대해 설명해줄 때의 뿌듯함도 한몫했다. 물론 그 인용이 항상 적절했던 것은 아니다. 문맥에서 벗어난 경우도, 끼워맞춘 듯 억지스런 순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천진한 표정으로 내숭을 떨며 아버지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저 동공 좀 봐……’
도발을 모르는 도발. 혹은 도발을 약간 아는 도발. 활짝 열린 어머니의 동공 속엔 분명 그런 것이 있었다. 조금은 어머니가 의도한 거였다고 해도 말이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가십성 과학잡지에서 읽어온 얘기로 어머니의 환심을 샀다.
“나무 하나가 하루 동안 두 사람이 마실 양의 산소를 만들어낸대.”
그러고는 넌지시 먼 하늘을 보는 척했다. 동시에 쓸쓸한 듯 서정적인 눈빛도 잊지 않았다. 조금 전 웅덩이에서 나온 탓에 아버지의 몸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한기에 살짝 곤두선 아버지의 솜털 위로 미세한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정말?”
“응. 정말.”
아버지는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우리가 남에 숨을 먹고 산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어머니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나무도 우리 숨을 먹잖아.”
큰어른나무의 가지가 조그맣게 흔들리며, 어머니의 얘기를 긍정했다. 아버지는 ‘맞다……!’ 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거기까진 미처 생각지 못한 거였다. 그게 아버지의 한계였다. 잠시 후, 아버지가 진지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미라야.”
“응?”
아버지가 한번 더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최미라.”
“왜?”
아버지가 말했다.
“노래해봐.”
“뭐?”
“너, 성악 배웠다며. 것 좀 해봐.”
어머니가 얼굴을 붉혔다.
“싫어.”
“왜?”
“못해.”
“아이, 참. 한번 해봐.”
“실은 그렇게 잘하지 못해.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야.”
“괜찮아. 나는, 잘하는 노래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네가 하는 노래를 듣고 싶은 거야.”
“몰라.”
“한번만. 응?”
“………”
두 사람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아버지의 설득과 아첨, 어머니의 새침과 딴청이 줄다리기를 했다. 어머니가 고집을 피우자,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토라진 척했다. 같은 사내들 앞에서는 절대 못 부릴 앙탈. 발각되는 즉시, 열댓명의 체고생이 달려와 일제히 이단옆차기를 날릴 법한 애교였다. 이윽고, 어머니가 못 이기는 척 운을 뗐다.
“듣고 싶어?”
“응.”
“진짜?”
“아, 그렇다니까.”
어머니가 주저하다 고백했다.
“근데 나, 아는 거 별로 없어.”
“별로?”
“어.”
“근데 그게 꿈이야? 성악가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째려봤다.
“됐어. 안해.”
아버지가 다급히 어머니를 달랬다.
“아니야. 해. 해. 꼭 해. 제발 해. 응? 얼른 해.”
어머니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를 제외하곤 지금껏 누구 앞에서도 해본 적 없는 곡이었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아버지로부터 조금 떨어져, 높은 너럭바위 위에 섰다. 어머니는 배꼽 아래로 조붓이 양손을 모았다. 얼굴에는 보기 드문 엄숙함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세는 숫자. 하나, 둘, 셋……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은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한참 뒤 어머니가 물었다.
“어땠어?”
한참 뒤 아버지가 말했다.
“좋아서 혼났어.”
얼마 뒤 어머니가 물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가 말했다.
“슬프다……”
두 사람은 다시 나무 밑에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더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쉬지 않고 재잘댔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노랫소린 이미 흩어져 사라지고 난 뒤였다. 하지만 아득하고 정갈한 여운이 계곡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상은 고요했고 나무들은 풍요롭게 너울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야릇하고 암시적인 침묵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흔들려야 할 것은 흔들리라고, 벌어져야 할 것은 벌어지라고,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 하루 동안 두 사람의 몫의 산소를 만들어내는 나무 한그루와 소년, 그리고 소녀가 있었다. 말 그대로 오롯한 삼각형이었다. 이윽고 땅바닥을 내려다보던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어머니는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뜬금없이, 쌀쌀맞게 말했다.
“이 고장 남자랑은 안해.”
더벅머리 아버지가 어안이 벙벙해져 물었다.
“뭐라고?”
어머니가 반복했다.
“이 고장 남자랑은 안해. 절대로 안해……”
그러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격렬하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신령하고 오래된, 점잖은 큰어른나무 아래서의 일이었다. 헛기침하듯 하늘하늘 흔들리던 나뭇잎 하나가 어머니의 손등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산에 있어 푸르던 것이 살〔肉〕에 앉으니 더욱 선명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그건 정말 예쁜 초록이었다.
그날 아버지가 깨달은 것은 크게 두가지였다. ‘아! 사람 혀는 다른 혀와 닿았을 때 가장 부드러워지는구나’라는 것과 ‘아! 이런. 어쩐지 이거, 앞으로 계속 하고 싶어질 것 같구나’라는 거였다. 아버지의 예감은 적중했다. 아버지는 키스를 하자마자 키스에 중독됐다. 적어도 어머니와 몸을 섞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버지는 하루 중 반나절 이상을 키스를 반추하고, 키스를 기억하며, 키스를 계획하고, 키스를 소망하는 일로 보냈다. ‘다음에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와 같은 각오를, 첫키스의 순간부터 이미 하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입맞추는 내내 자신의 입맞춤을 아쉬워했다. 그 안타까움. 그 감질. 그 한숨. 만족 속의 불만족이, 불만족 속의 만족이 더운 숨에 섞여 몸을 틀었다. 마치 한쪽 귀퉁이가 찢어진 풍선에, 자꾸만 타인의 숨을 불어넣는 기분이었다. 부풀어 빵 터져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정말 존재의 시원함을 느낄 것 같은데. 날아오를 듯, 오를 듯, 안달나 돌아보면 풍선 끝이 땅에 묶여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앞으로 두 청춘이 평생 안고 살 거대한 허기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키스가 아니라 더한 일을 치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허기라니, 마찬가지라니. 그게 대체 어떤 느낌이냐고. 실제로 아버지에게 물어보진 못했다. 어머니에게는 더욱더 물어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만일 내가 아버지라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 같다.
“해변에 문이 하나 있어. 문 뒤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걸 열어봐야 한다는 건 알아. 그래서 온힘을 다해 달려가. 그때 나는 파도야. 내 몸은 내 힘으로 무너뜨렸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지. 그래서 그 문도 그렇게 열어젖힐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가. 달과 바다가 그러라고 도와. 내 심장도 그러라고 명해. 하지만 나는 항상 문틀까지 꼭 한발짝을 남겨두고 번번이 물러서지. 그것만 열면, 평생 그토록 쉬고 싶었던 큰 한숨을 개운하게 토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바다로 다시 쓸려가고 말아. 그래서 한번 더, 또 한번 더, 죽어라고 달려가게 되는 거지.”
“그래서요?”
“그래서? 그래서 같은 건 없어. 그게 다야.”
“고작?”
“응. 고작. 하지만 그 ‘고작’이 파도가 하는 일이지. 그 파도가 계절을 만들고. 운이 좋으면 더한 것을 만들어내기도 해.”
“어떤 거요?”
“이를테면,”
“이를테면?”
“너 같은 거.”
“……예?”
“그리고 한참 후 파도는 이런 생각을 해. 그렇게 연거푸 문까지 가는 동안, 존재의 시원함 따윈 결코 맛보지 못했지만, 시원함의 ‘기미’ 같은 건 늘 느껴왔던 듯하다고. 그래서 더 달려갔나보다. 그렇다면 뭐, 그걸로 됐다. 애초에 그것이 기미로 세워진 문이었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이야.”
“진짜요?”
“하하, 그럴 리가. 하지만 만일 네가 그걸 진짜라 믿고 싶다면, 혹 그럴 마음이 있다면 말이야.”
“네.”
“그래도 돼.”
나는 잠시 무언가 궁리하다 입을 뗀다.
“그런데요, 아빠.”
“응.”
“그 문 말이에요.”
“그래.”
“파도가 못 다다른 게 아니라. 파도는 늘 그 앞까지 다 갔는데, 그때마다 그 문이 물러선 거 아닐까요? 반 발짝씩.”
아버지가 싱겁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럴 리가.”
물론 다 상상 속의 대화다. 그것도 그냥 한 상상이 아닌 아주 열심히 한 상상.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그 역시 이걸 진짜라고 믿고 싶다면, 소리 죽여, 수줍게 말하건대, 정말이지…… 그래도 된다.
“아름아 뭐 하니?”
어머니가 문틈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헉, 깜짝이야.’
나는 재빨리 쓰던 문서 창을 내린 뒤 짜증을 냈다. 이 집에선 정말 비밀을 갖기 어렵다.
“엄마! 노크!”
어머니는 ‘아차’ 하다, 도리어 큰소리를 냈다.
“노크는 무슨 노크. 지금 방송 시작하는데. 안 봐?”
“벌써 할 때 됐어요?”
“응. 광고하고 있어. 빨리 나와.”
어머니가 얘기하는 방송이란 얼마 전 촬영을 마친 <이웃에게 희망을>이란 프로였다. 나도 방송국 웹싸이트에 들어가 예고편을 봤었다. 설렘과 어색함, 신기함과 민망함이 섞여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사실 동영상을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아! 나는 저거보단 훨씬 괜찮게 생겼는데……’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이 실제보다 못해 억울하고 섭섭한 거였다. 연예인도 실제로 보면 두배는 더 예쁘고 멋있다는데.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그러니 보통사람이라면 오죽하겠는가. 더구나 방송 한번에 이리 심란한 기분이라니, 연예인이 되려면 자기를 여간 좋아하지 않고선 힘들겠구나 싶었다. 문밖에 선 어머니가 ‘근데’ 하고 덧붙였다.
“왜 그렇게 놀라? 뭐 이상한 거 보고 있었던 거 아냐?”
나는 부루퉁해져 꿍얼댔다.
“내가 뭐 아빤 줄 아나……”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그쳤다.
“아빠? 아빠가 그래?”
나는 ‘그러긴 뭘 그러느냐’며 ‘곧 나갈 테니 얼른 문 닫으라’ 핀잔을 줬다. 어머니는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못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나는 작업하던 문서를 저장하고, 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고편을 한번 더 돌려봤다.
‘실제 나이 17세. 신체 나이 80세. 누구보다 빨리 자라, 누구보다 아픈 아이 아름. 각종 합병증에 시달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름에게 어느날 시련이 닥쳐오는데……’
다시 봐도 낯선 영상이었다. 17. 80. 합병증. 웃음…… 하나하나 짚어보면 다 맞는 말인데. 그게 그렇게 알뜰하게 배열된 걸 보니 사실 같지 않았다.
‘괜히 하자고 한 걸까?’
막상 완성된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송출될 생각을 하니 걱정스러웠다. 내가 모르는 이들에게 나를 보여준다는 게 언짢기도 했다. 정확한 건 본방송이 끝난 후에 알게 될 터였다. 나는 컴퓨터 전원을 끈 뒤 거실로 나갔다.
*
사전 인터뷰가 끝나고 약간 문제가 있었다. 승찬 아저씨가 차를 못 빼서 곤란을 겪은 거였다. 우리 집은 다세대주택이 밀집된 골목 안쪽에 있어 차 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골목 폭이 하도 좁아 들어오는 차와 나가는 차 사이에 자주 실랑이가 벌어졌고, 한밤중에도 자리다툼이 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날, 아저씨의 승용차가 다른 차들에 포위돼 꼼짝할 수 없게 되고 만 거다. 조금 전까지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와 말을 섞고, 눈을 맞춘 아저씨의 얼굴은 일순 경직됐다. 다음 스케줄 때문에 빨리 이동해야 하는데 차주인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당황한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게 다 자기 잘못인 양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평소 어머니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저씨가 애써 ‘괜찮다’고 해도 별 수 없었다. 작별 시간이 어정쩡하게 지연되자, 어머니는 나더러 먼저 집에 가 있으라 했다. 나는 그들에게 꾸벅 인사한 뒤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창문을 등지고 앉아 벽에 기대 소설책을 읽었다.
“2744! 차 좀 빼주세요!”
승찬 아저씨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왔다.
“3579! 계세요?”
작가 누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곧이어 집 앞에서 시끄러운 경적이 들려왔다. 참다 못한 승찬 아저씨가 자기 차에 올라타 클랙슨을 눌러댄 거였다. 그것은 한동안 아주 길게, 신경질적으로 울려댔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몇몇 이웃이 ‘그만 좀 하라’ 항의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클랙슨 소리는 계속됐다. 상황은 한 20분 쯤 지나, 입에 이쑤시개를 문 사내가 어슬렁 나타나면서 정리됐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어디서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소동이었다. 문제는 차 주인이 등장하기 전, 어머니가 자리를 뜬 틈에 일어났다. 어머니가 급한 마음에 다른 골목을 살피러 간 사이, 아저씨와 작가 누나는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잠시 담배를 태웠다. 그러곤 그날 인터뷰에 대한 이런저런 소회를 나눴다. 반지하, 쇠창살 아래로 아저씨의 담배연기가 스며왔다. 나는 방에 앉아 소설책을 읽으며 그들의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작가 누나가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저, 피디님,”
“응?”
“저 아이도…… 성욕이 있을까요?”
승찬 아저씨는 멈칫하다 무심하게 답했다.
“그런 걸 왜 물어?”
‘요즘 애들은 이렇게 다 대범한가?’ 싶으면서도 촌스럽게 정색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드러난 말투였다.
“아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열일곱인데, 어떨까 싶어서요.”
“글쎄…… 애 엄마 말로는 2차성징이 없었다고 하니까, 아마 성욕도 없지 않을까?”
작가 누나가 물었다.
“그런 게 없을 수도 있을까요, 사람이……?”
승찬 아저씨가 바닥에 꽁초를 비벼 껐다. 창살 너머로 아저씨의 빨간 컨버스 운동화가 보였다.
“나도 모르겠네, 어떨지. 그래도 보통 애들이랑은 좀 다르지 않겠어?”
작가 누나가 말없이 끄덕이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저, 그런데 피디님.”
“왜, 또?”
“아, 아니에요.”
“왜? 뭔데 그래?”
“저, 이런 말하면 벌 받을 것 같은데, 정말 이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 아는데요,”
“………”
“저 아이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까,”
“응.”
작가 누나가 가까스로, 흥분을 누르며 입을 뗐다.
“이번 회, 대박 날 것 같아요.”
촬영 하루 전날, 우리 식구는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인 채 거실에 누워 있었다. 보습 기능이 있는 천원짜리였다. 부모님의 마음이 편치 않을까봐 내가 먼저 하자고 졸라댄 거였다. 수분 시트는 아버지에게 딱 맞았고, 어머니에게는 조금 컸고, 내 얼굴은 다 덮고도 남았다. 아버지는 한손에 손거울을 들고, 다른 손으로 시트 주름을 꼼꼼히 펴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풀어보려 능청스런 말투로 물었다.
“근데 우리 이런 거 해도 괜찮을까요? 좀 초췌해 보여야 하는 거 아녜요?”
어머니가 덧붙였다.
“맞아. 내가 집 치운다고 하니까 작가 아가씨가 그냥 놔두라고 하더라. 그게 더 좋다고. 아직 시집을 안 가서 그런가 여자 맘을 모르나봐.”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거 있다! 『안네의 일기』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안네 엄마가 게슈타포 들이닥치기 전에 급하게 집 청소 하는 거였어요. 독일군이 집을 뒤지다가도 ‘이 집 안주인은 살림을 참 잘했군’ 생각해주길 바란 거예요.”
어머니가 짧게 탄식했다.
“어머.”
“그러니까 너도……”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더 초라해 보여야 한다거나 없어 보여야 한다거나 하는 낡아빠진 생각은 버려. 사람들은 똑같이 안된 처지라도 곱상한 사람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거든. 저번에 티브이에서 무슨 실험하는 거 보니까, 짐승들도 다 예쁜 아가씨한테 가더라.”
나는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린가’ 싶었지만, 풀이 죽은 척하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전 이미 미남이 아닌걸요.”
아버지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괜찮아. 내가 미남이니까.”
촬영은 크게 세 군데에서 이뤄졌다. 집과 병원, 그리고 놀이터였다. 그중 첫째 녹화는 우리 집에서 했다. 전체 분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공간이었다.
<이웃에게 희망을>은 시청률이 낮은 공익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재미보단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다시 말해 평소대로만 해도 본전을 건지는 방송이란 거였다. 하지만 승찬 아저씨는 이번 기획에 꽤 공을 들였다. 어머니와의 친분 때문일 수도 있고, 프로듀서 특유의 동물적인 직감이 작용한 듯도 했다. 아저씨가 적당한 위치를 찾고, 작가 누나가 주의사항을 일러주는 사이, 부모님은 카메라 뒤에서 줄곧 근심어린 눈으로 나를 지켜봤다.
“여기서 합시다.”
아까부터 계속 ‘각이 안 나온다’고 투덜대던 촬영감독을 달래, 승찬 아저씨가 내 방 한쪽에 사람들을 모았다. 우리 집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으로, 가위로 오린 듯 네모난 햇빛이 시간대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며 몸을 뉘었다.
“이제 곧 시작할 건데, 준비됐니?”
“그럼요.”
“음, 여긴 실내니까 썬글라스 벗을까?”
문지방 너머로 부모님이 머뭇대는 모습이 보였다.
“근데 조명이 너무 세서 눈을 잘 못 뜨겠는데요?”
“처음에는 다 그래. 조금 있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시청자와 눈을 맞춰야 더 편안한 인상을 줄 수 있고.”
나는 알았다고 끄덕인 뒤 썬글라스를 벗어 책상 한쪽에 놓았다. 그러곤 허리를 꼿꼿이 편 뒤, 눈썹 없이 퀭한 눈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처음으로 내 맨얼굴을 보게 된 승찬 아저씨는 자기도 모르게 흠칫하다, 재빨리 표정을 숨기며 프로답게 말했다.
“혹시 모자도 벗을 수 있니?”
“저어……”
그때까지 가만 있던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모자는 그냥 두면 안될까요?”
작가 누나가 설명했다.
“그러면 화면에 얼굴이 잘 안 나와서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 애가 모자 벗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승찬 아저씨가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네, 저희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게 방송이라, 어느정도 얼굴이 보이는 게 좋아요. 사람들은 자기가 누굴 돕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거든요.”
아버지는 녹화 내내, 내가 상처받지 않을지 염려하는 듯했다. 밤새 ‘미남’이고 어쩌고 하던 호방함은 간 데 없고,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은 안해도 어머니 역시 긴장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두 사람 다 이런 식으로 병원비를 마련하는 게 옳은지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 걱정은 따로 있었다. 혹 시청자들이 내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면 어떡하나 하는 거였다. 나는 내가 너무 괜찮아 보여도, 지나치게 혐오감을 줘도 안된단 걸 알았다. 사람들이 직시할 수 있을 정도의 불행. 기부 프로그램의 소재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찬 아저씨의 말도 맞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누굴 돕고 있는지 알고 싶어할 거다. 그리고 그건 곧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부모님께 괜찮다는 눈짓을 보낸 뒤, 한손을 들어 가볍게 모자를 벗었다.
승찬 아저씨는 그날따라 왠지 근사해 보였다. 컷! 컷! 단호하게 외치는 모습도 그랬고, 뭔가 결정하기 전 근심에 잠긴 옆얼굴도 그랬다. 그리고 그건 어머니도 이미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의 동공은 빛에 놀란 조리개처럼, 순간순간 크게 벌어졌다 다시 움츠러들었다. 반면 그 ‘빛’ 곁에 선 부모님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늙어보였다. 서른넷. 정말 한창 나이라고, 열일곱 난 자식을 두기엔 여전히 지나치게 젊은 나이라고 믿어왔는데 옷차림 때문인지 표정 때문인지 동갑인 승찬 아저씨보다 예닐곱살은 더 많아 보였다. 서른 이후의 젊음은, 혹은 아름다움은 ‘관리’를 통해 이뤄진단 말이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아저씨를 자꾸 흘끔거렸다. 그리고, 그러느라, 아버지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단 걸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카메라맨 아저씨는 습관적으로 ‘그림’이란 단어를 자주 썼다. ‘그림이 잘 안 나온다’든가 ‘그림 괜찮네’라는 말이 처음엔 좀 거슬렸지만, 듣다 보니 그냥 ‘업계’용어이려니 싶어 무감각해졌다. 질문 순서는 지난번과 비슷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도 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인터뷰에 응했고, 나도 모르게 침울해질 때면, 스태프들이 다른 일을 하는 사이, 방바닥에 비친 네모난 햇빛을 한손으로 만졌다 놓았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자기가 말주변이 없다 생각했는지 묻는 말에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작가 누나의 요구에 부응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작가 누나는 꼭 힘들었던 얘기만 할 필요는 없다고, 되도록 편안하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고 권했다. 그런 게 오히려 우리 가족의 사연을 생생하게 풍부하게 해줄 거라고.
“그래요?”
“네. 그러다 뜻밖에 좋은 게 나오기도 하거든요.”
“에고, 뭘 말하나……”
“아름이가 어렸을 때 재밌는 일화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어머니는 잠시 고민하다 ‘아’ 하고 운을 뗐다.
“아름이가 다섯살 때, 방에서 만화영화를 보다 놀란 얼굴로 제게 뛰어온 적이 있어요. 그러더니 숨넘어갈 듯 ‘엄마, 백설공주가, 백설공주가……’라고 호들갑을 떨더라고요.”
“네.”
“그래서 얘가 독살 장면에 충격을 받았나보다 하고 ‘어, 왜?’ 하고 물었더니 ‘사과를…… 사과를……’ 하고 계속 헐떡거리는 거예요.”
“아.”
“그래서 또 ‘어, 사과를?’ 하고 추궁했더니,”
“네.”
“백설공주가 있지 ‘사과를 안 깎아 먹어’ 그러더라고요. 그때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요.”
촬영장 분위기는 다소 부드러워졌다. 승찬 아저씨의 얼굴에도 얼핏 미소가 스쳤다. 어쩌면 자기 자식 생각이 나서였는지도 몰랐다. 맞아, 아이들은 다 그렇지. 아이들은 정말 뛰어난 바보들이지 하고 조금 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또 없나요?”
작가 누나의 격려에 어머니가 눈을 굴렸다.
“아, 그리고 이런 적도 있어요. 한날 티브이를 보는데 웬 박사님이 과자가 몸에 해롭다는 얘길 했어요. 그걸 빤히 쳐다보다가 아름이가 ‘엄마, 과자 먹으면 죽어?’라고 묻더라고요. 그 즈음 얘가 쓸데없는 질문을 하도 많이 하던 때라 제가 귀찮아서 그냥 ‘응, 죽어’라고 대꾸해버렸는데, 다음날 놀러 나갔다 울상이 돼서 돌아온 거예요. 그래서 얘를 붙잡고 ‘아름아, 왜 그래?’ ‘누가 때렸어?’ 물었더니, 글쎄 ‘엄마, 애들이 자꾸 나 죽으라고 과자 줘. 으앙’ 하고 울어버리더라고요.”
나는 ‘하아’ 하고 웃었다.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인간만큼 자기 얘기 듣길 좋아하는 동물도 없다던데. 이런 이야기라면 정말 몇날 며칠이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일순 어색해졌다. 아마 ‘죽는다’는 표현이 나와서 그런 듯했다. 사람들은 아직 웃을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눈치였다. 거기서 웃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어머니가 난처한 듯 물었다.
“저어…… 안 웃긴가요?”
작가 누나가 얼른 대답했다.
“아니에요. 웃겨요, 어머님. 웃깁니다.”
카메라 앞에서 가장 서투른 사람은 아버지였다. 무슨 말을 하든 시작부터 더듬댔고,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해 주위를 계속 당황시켰다.
“아버님, 전에 여러가지 일을 하셨다고……”
“예.”
“주로 어떤 일들이었나요?”
“어려선 주로 조끼 입는 일들을 했습니다.”
“네?”
“왜 주유소 조끼, 편의점 조끼, 택배 조끼, 중국집 조끼 그런 거요.”
“아……”
작가 누나가 대본을 한번 확인한 뒤 물었다.
“지금은 운수업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생활이 무척 어려우시겠어요?”
그때까지 어물대던 아버지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차갑게 말했다.
“그래도 먹고살 정도는 됩니다.”
“컷!”
승찬 아저씨가 흐름을 끊었다. 그러곤 한손으로 뒷덜미를 만지며 나무라는 건지 부탁하는 건지 모를 말투로 얘기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아버님.”
아버지가 얼굴을 찡그렸다. 지나 나나 같은 또래인데 누구더러 아버님이라고 하나 싶어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사실이 그런데요.”
당당한 대꾸에, 작가 누나가 눈치껏 끼어들었다.
“예, 아버님더러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생활하긴 괜찮아도 병원비를 대기에는 부담이 되지 않으시냐, 그런 뜻이었어요.”
승찬 아저씨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그럼 뭐’ 하는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 작가 누나가 겨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님은 아름이를 키우는 동안 언제 가장 힘드셨어요?”
아버지의 얼굴에 살짝 악의적인 기운이 서렸다.
“오늘이요.”
“컷!”
아저씨가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대수씨, 좀 진지하게 말씀해주실 수 없으세요?”
아버지가 정색하며 맞섰다.
“말한다고 사람들이 알 것 같아요? 어차피 이해도 못할 말을 해서 뭐합니까?”
아저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셔야 해요.”
“………”
“하시라고요. 그 이해도 못할 말.”
그러곤 주위가 썰렁해지자 큰 소리로 외쳤다.
“담배 한대 태우고 갑시다.”
그리고 얼마간 작은 신경전이 벌어졌다. 내 방 창문 위, 그러니까 예전에도 승찬 아저씨가 작가 누나와 담배를 태웠던 바로 그 자리에서였다. 쇠창살 너머로, 아저씨의 컨버스 운동화가 보였다. 지난번과 달리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번데기처럼 구겨진 아버지의 낡은 구두가 있었다. 승찬 아저씨는 예의바르게, 그러나 또 노골적으로 아버지를 채근했다. 아버지가 껄렁하게 반항하는 기척도 들렸다. 소곤소곤 표 안 나게 싸우는 거였지만, 긴장감이 내 방에까지 전해져왔다. 그사이 어머니는 내게 약을 챙겨 먹이며 몸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어머니도 밖이 신경쓰이는 듯했다. 아저씨는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해외동포도 연락을 해온다’ ‘뽑히기도 사실 굉장히 어렵다’는 말을 늘어놨다. 나는 아버지가 승찬 아저씨를 때리지나 않을지 걱정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는 쪽은 아버지였다. 문득 ‘입원’ 어쩌고 하는 아저씨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그래도 정 불편하시다면…… 지금이라도 촬영을 접죠.”
그 뒤에 아버지의 침묵이 이어졌다. 사실, 나를 낳은 이후 누굴 제대로 이겨본 적 없는 아버지였다.
촬영이 재개됐다. 작가 누나는 물을 한모금 마시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어머님 말씀으론 정확한 병명을 안 게 네살 때라고 하시던데요?”
“네.”
작가 누나가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는 아까보다 기운이 빠져 보였다.
“괜찮다면 그때 얘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언제요?”
“아름이가 아프단 걸 처음 알게 되셨을 때요.”
아버지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침묵으로 사람들은 긴장시키더니, 속으로 뭔가 결정한 듯 천천히 입을 뗐다.
“아, 그날 일이라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작가 누나가 기대 어린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었다.
“네.”
“봄이었는데, 골목에서 추어탕 냄새가 나더라고요.”
승찬 아저씨 낯빛에 살짝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 전과 달리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예, 그날요. 그렇게 큰 병원은 처음 가보는 거라 애 엄마도 저도 잔뜩 긴장했었어요. 초행길은 그 자체로 엄청 피곤하잖아요. 길도 모르고, 병원 구조도 복잡하고, 사람도 차도 많고 시끄럽고. 그래도 동네병원서 1년 되도록 모르던 걸 서울서 알았어요. 알고도 믿지 못했죠. 그래서 처음엔 별 느낌이 없었어요.”
“그러셨어요?”
“네. 내가 뭘 느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름인 옆에서 계속 침 흘리며 종알거리고. 일단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점심때가 됐으니 애 밥을 먹여야겠다는 거였어요.”
작가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계속하세요.”
“애 엄마랑 병원을 나와서 밥집을 찾다, 그냥 근처에 있는 추어탕집에 갔어요. 신을 벗고 들어가는 데였는데, 우리가 좀 늦게 왔는지 손님이 거의 없더라고요. 근데 옆에 어린 아기랑 젊은 부부 한쌍이 있었어요. 애가 기어다니는 걸 보니까 한살쯤 된 거 같았죠. 이쁘더라고요, 통통해가지고.”
“………”
“예전엔 어린애들 보면 그냥 애구나 했는데, 낳고 보니까 저만큼 키우는 데 얼마나 씻기고 입히고 먹였을지, 얼마나 혼났을지가 다 보이더라고요. 아가씨도 시집가면 아마 그럴 거예요.”
작가 누나가 살짝 웃었다.
“네.”
“부모 얼굴을 보니까, 애한테 홀딱 빠져 있더라고요. 멀찍이서 애한테 자꾸 컵 굴리고, 애가 컵을 밀어내면 다시 주워 또르르르 굴리고. 그렇게 계속 장난치며 웃더라고요.”
나는 아버지가 왜 딴 아이 얘기만 자꾸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생각보다 아버지가 말을 잘한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었다.
‘어른이었구나, 우리 아버지……’
피디 아저씨도 그제야 조금 안심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름 엄마랑 저는 검사결과도 있고 해서, 별 말 없이 그냥 음식만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아름이는 수족관에 코를 박고 있고. 평소처럼 쓸데없는 질문 막 해대고. 근데 자꾸 신경 쓰여, 옆에가. 이상하더라고.”
“왜요? 아버님?”
“그게, 우리도 나중에 알았는데. 그 부부가 말을 못하더라고요. 한참 뒤 둘이 수화하는 거 보고 나서야 알았어요.”
“아……”
“그리고 그때 알았어. 애 아버지가 왜 자꾸 애한테 컵을 굴렸는지.”
카메라 주위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작가 누나가 적극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것 같으셨는데요……?”
“말을 걸고 싶었던 거지. 얼마나 부르고 싶겠어, 자기 애 이름을. 나 같았어도 불러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살면서 한번이라도. 소리 내서 말이에요. 그때그때 반응해주고. 얘기도 하고. 애기 땐 더하지. 안 그렇겠어요? 애들은 자기 이름 듣고 자라는데.”
작가 누나는 긍정하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다 곧 주문한 음식이 나왔어요. 우리 식구는 별 말 없이 밥을 먹었고요. 그리고…… 그게 다예요.”
“네?”
“아름이 병을 처음 안 날. 어땠냐고 물어봤잖아요. 그때 생각하면 이상하게 다른 건 잘 모르겠고, 그냥 우리 옆에서 조용히 병 굴리던 남자 모습이 떠올라요. 우리가 더 낫다는 안도감도 아니고, 무슨 동질감 같은 것도 아니었는데. 지워지지가 않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잘 설명됐음 이렇게 기억하고 있지도 않을 테지만. 어쨌든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게 답니다.”
작가 누나는 좀 당황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게……”
아버지는 서둘러 말을 잘랐다.
“근데 이거 편집하면 안되나요?”
“왜요, 아버님?”
“아니,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도 쓸데없는 말 같아서……”
복병은 또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카메라 뒤 문지방에서 장씨 할아버지가 알찐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방송 장비가 신기했는지 ‘참견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기회를 엿봤다. 곁에서 어머니가 인상을 찌푸리고 눈치를 줘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결국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자, 폭탄 선언하듯 큰 소리로 외쳤다.
“아름이 쟤는 내가 잘 압니다.”
순간 사람들이 모두 장씨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부모님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아이에 대해 안다고? 당신이? 뭘? 얼마 뒤, 승찬 아저씨는 짬을 내, 장씨 할아버지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잘만 하면 편집해, 좋은 쏘스로 이어붙일 수 있겠단 계산인 듯했다. 작가 누나가 경우바르게 물었다.
“이웃집 할아버지 되시죠? 평소 아름이는 어떤 아이인가요?”
장씨 할아버지가 비장하게 말했다.
“아름이 쟤는 아주 나쁜 아이입니다.”
“네?”
우리는 한번 더 장씨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왜요?”
“쟤는 저를 무슨 동네 형 대하듯 하거든요. 집에서 아주 버릇없이 키운 게 틀림없습니다. 지가 무슨 진짜 내 또래인 줄 알아요.”
작가 누나가 예의상, 진짜 예의상 한번 더 물었다. 대충 받아주고 어서 끝내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아름이가 정말 할아버지를 형처럼 대하나요?”
할아버지가 어이없고 기가 막힌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그럼 할아버지는 아름이를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그러자 장씨 할아버지는 새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쑥스러워하며 한마디했다.
“친구요……”
나머지 일정은 순조로웠다. 놀이터에서의 촬영도 집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경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공간을 안배한 것뿐이었다. 공중화장실 뒤에서 담배를 태우던 중학생 몇몇이 카메라를 보자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촬영감독 아저씨가 ‘쯧쯧’ 하고 혀를 차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벤치에 앉아 조명을 받는 동안, 어머니는 자양강장제를 사와 스태프에게 돌렸다. 몇몇 이들이 길을 가다 멈춰 우리를 쳐다봤다.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나는 끝까지 카메라 조명에 적응하지 못했다. 너무 환해 공격적인 느낌이 들었고, 사람을 자꾸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금방 피로해졌다. 눈은 진작부터 욱신거렸는데, 덩달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루면 된다고. 이제 다 됐다고. 그 하루로 아낄 수 있는 부모님의 노동이 몇년치일지 꼽아봤다. 병원에선 의사선생님들의 소견을 묻고, 내가 검사받는 장면 몇개를 찍었다. 방송은 2주 뒤 화요일 6시에 나갈 거라고 했다. 원래는 한달쯤 기다려야 하는 건데, 승찬 아저씨가 손을 썼다고 했다. 우리는 높은 언덕에 있는 대학병원 정문 앞에서 헤어졌다. 야트막한 구릉 너머로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봐도 좋을 만큼 멋진 노을이었다. 승용차에 오르기 전, 아저씨는 부모님과 짤막한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 내 쪽으로 허리 숙여 다정하게 말했다.
“아름아.”
“네?”
“오늘 잘했어.”
나는 대답 대신 ‘저어’ 하고 어물대다, 전부터 묻고 싶었던 얘길 꺼냈다.
“아저씨.”
“응?”
“사람들이 낫지 않는 병에도 돈을 내려 할까요?”
승찬 아저씨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노골적으로 돈 얘기를 꺼내자 당황한 눈치였다.
“솔직하게?”
“네, 솔직하게.”
작가 누나는 이미 차에 올라탄 채 멀찍이서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낫는 쪽을 더 좋아하겠지. 자기 행동이 세상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켰다고 믿고 싶어할 테니까. 결과는 두고 봐야 알 테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오늘 너는 그걸 했어.”
“………”
알고 있었다. 내가 오늘 그걸 했다는 걸. 실은 승찬 아저씨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걸 원했기 때문이다. 무심한 척, 쿨한 척 대답하는 와중에도 나는 내가 괜찮은 아이란 걸 보여주려 애썼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가끔은 얼굴이 홧홧해질 정도로 문학적인 말들을 해가며, 마치 소개팅에 나가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 앞에서 한껏 말재주를 부리는 사내처럼 말이다.
“대답이 됐니?”
“네.”
아저씨가 방긋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름아.”
“네?”
“또 보자.”
나는 망설이다 아저씨의 손을 잡았다. 누군가와 ‘또 보자’는 약속을 해보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찬 아저씨의 차에 올라탄 작가 누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어정쩡하게 한 손을 들어 인사에 응했다.
“에고, 이별이 길다. 그치?”
뒤에서 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았다. 이윽고 방송국 차량과 아저씨의 차가 시야에서 멀어졌다.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서, 그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그러곤 시내까지 걸어와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퇴근시간대라 버스 안엔 빈자리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야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의자에 노곤해진 몸을 기댄 채 덜컹이는 창밖을 바라봤다. 가는 내내, 저물녘 도심을 보며 각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꿀 때가 있다. 그럴 땐 보통 나쁜 일과 연결돼 있기 마련이라는데, 내 경우엔 행복했던 경험과 관련이 깊다. 바야흐로 10년 전. 내가 일곱살, 아버지가 스물다섯 먹었을 때의 일이다. 그 즈음 우리 집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내가 ‘성장’도 ‘성숙’도 아닌 희귀한 병의 첫 징후를 보이고부터, 몇년 동안 쭉 나쁜 일만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선 아버지의 스포츠용품 매장이 문을 닫았다. 거듭되는 적자에 빚까지 안고서였다. 아버지의 사업수완이 워낙 허술하기도 했고, 전국적인 경기불황에 시골사람들 씀씀이론 고가 브랜드 매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마침 외할아버지가 풍으로 쓰러졌다. 평소에도 혈압이 높으셨던 분인데. 사람들은 사위가 가게를 말아먹었기 때문이라고 쑥덕거렸다. 누군가는 손자가 이상한 병에 걸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라고 했다. 아버지는 가게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래봐야 체고 동기들에게 제품을 담은 택배를 보낸 뒤 ‘돈은 천천히 줘도 된다’고 하거나, 중학교 후배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으름장을 놓는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방 한구석에서 전화선을 한손으로 돌돌 말며 추궁했다.
“야, 내가 저번에 오락실서 보니까 너 아디다스 입고 있는 거 같더라?”
그러면 수화기 너머의 후배는 쩔쩔매며 대답했다.
“예? 아니에요, 형. 그거 다 짝퉁이에요.”
“내가 분명히 네 등짝에 붙은 작대기 세개를 봤는데.”
“아우, 형. 진짜 아니에요.”
가게를 닫은 뒤 아버지를 포함해 외가 식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나이키 복장을 하고 다녔다. 마치 우리집 전체가 하루아침에 태릉선수촌으로 바뀐 것 같았다. 혹은 조직폭력배의 계보를 가진 수상한 집안처럼 보였다. 심지어 풍으로 누운 외할아버지조차,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슴에 앙증맞은 로고가 새겨진 ‘추리닝’을 입고 계셔야 했다. 이상한 점은 전부 진품인데도 우리 식구가 걸치면 가짜처럼 보인다는 거였다. 외할아버지는 자기가 평생 하대한 외할머니의 수발을 받으며 독방에 누워 계셨다. 거동은 물론 말씀도 잘 못하셨는데, 차용증 없이 돈을 꾸어 쓴 이웃들은 내심 안도하는 눈치였다. 괴팍하고 고집센 나의 외할아버지는 사위에게 하고 싶은 욕과 잔소리가 엄청 많으신 듯했으나, 그때마다 절박하고 어눌한 ‘어어’ 소리밖에 못 내셨다. 당시 외가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어린애인 나와 외할아버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생생하셔서, 아버지를 볼 때마다 노여운 살의를 비치셨다. 아버지는 되도록 외할아버지 방을 피해 살금살금 다녔다. 그러곤 방으로 들어와 멋쩍은 듯 ‘붕우유신’ 가훈이 걸린 액자를 소매로 닦아냈다. 따뜻한 입김을 불어, 가끔 광까지 내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저 유명한 문구처럼—
‘나쁜 일은 한꺼번에 일어났다.’
그리고 그 몰락의 도미노 맨 앞에는 내가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마을은 물에 잠겨 을씨년스러운 유원지가 됐다. 물길을 따라 가다 보면 공중관람차가 나오고, 또다시 한참을 가면 궤도열차가 나타나는 식의 수상공원이었다. 대호관광단지는 조성 과정중 갑자기 건설회사가 바뀌고, 재정난을 겪으면서 애물단지가 됐다. 공사를 계속할 수도 중단할 수도 없어 한동안 방치됐던 거다. 그 와중에도 물이끼가 낀 놀이기구들은 안개 속에서 천천히 돌아갔다. 오리배가 묶여 있는 선착장 근처에선 표 파는 아가씨가 하품을 했다. 그 깊고 탁한 수면 아래엔, 내 고향이 있었다. 내 조상의 고향이자 내가 태어난 곳이었다. 거처를 읍내 어디로 옮긴 외할머니는 다섯 아들의 불화 속에서 천천히 늙어가셨다. 반목의 이유는 물론 ‘돈’이었다. 우리 식구가 연고 하나 없는 서울로 이사를 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내 치료가 주목적이었지만, 처가에 더이상 면목이 없었던 아버지의 입장도 한몫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이른바 ‘조끼’ 인생이 시작됐다.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는 주유소, 편의점, 택배 및 중국집 조끼의 시절이었다. 중졸에 자격증 하나 없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혹은 많다 해도, 아버지가 하는 일은 누구도 ‘장래희망’란에 적지 않는 그런 종류뿐이었다. 아버지는 노동하고 또 노동했다. 세상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 속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는 건 없을 거라는 비관 속에서.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어른’의 표정을 갖게 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쿨렁쿨렁 기름을 많이 먹는 고물 자동차처럼 아버지의 젊음을 한껏 빨아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성이 안 차 더 달라 떼쓰고 울었을 게 뻔했다. 어느날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내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깜빡 잠이 들었던 아버지는 몸을 떨며 일어났다.
“응? 뭐라고?”
나는 책 속 마술사의 대사를 가리키며 다시 한번 물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냐고.”
아버지는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니. 보이는 것만 믿기도 힘든 세상이야.”
아버지가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아마 아버지는 기억 못할 테지만. 그런 시기가 있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10년 전 5월, 우리는 시내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동안의 내 병력으로 볼 때, 그날도 분명 좋은 소식을 들었을 리 없었을 거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병원 정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쯤 되면 제법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버지는 무대에서 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하는 초짜 배우처럼, 한동안 자기 앞에 놓인 불운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했다.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자식이지만, 부모가 진짜 부모가 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진료실을 나설 때마다, 아버지가 어머니 모르게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집에 가기 전 나를 데리고 오락실에 가는 거였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가 게임을 그리 좋아한 것 같지는 않다. 중고생이 바글거리는, 어둡고 더러운 공간을 편안해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꼭 치러야 할 세금을 납부하듯 꼬박꼬박 오락실에 들렀다. 그러고는 등받이도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 한시간씩 전자오락에 몰두했다. 주로 ‘갤러그’나 ‘스트리트파이터’ 같은 유행 지난 전투물이었다. 아버지는 거기서 적의 기함을 쳐부수고, 엄청난 양의 폭탄을 퍼붓고, 에너지를 충전하고, 점프하고, 포복하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아버지가 이단옆차기를 하거나, 주먹을 뻗을 때는 펑펑, 쾅, 뿅뿅— 하는 전자음이 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담배는 피우지 않았지만, 초조할 때 한쪽 다리를 떠는 습관은 변함이 없었다. 나도 처음에는 아버지를 따라 ‘보글보글’이나 ‘테트리스’를 했다. 하지만 얼마 안돼 내가 오락에 별 소질과 흥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주로 아버지 옆에 죽치고 앉아 몸을 배배 꼬거나 동전 심부름을 했다. 어느 때는 혼자 간이노래방에 들어가 헤드셋을 쓴 채 유행가를 불렀다. DDR에 도전해보고도 싶었는데 동작을 일러주는 모니터가 너무 높아 결국 하지 못했다. 지루할 땐 골이 나 ‘빨리 집에 가자’며 아버지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판만 깨고 가자’면서 자꾸 시간을 끌었다. 그러고는 내 주머니에 오백원이고 천원이고 용돈을 찔러줬다. 가끔은 ‘와’ ‘헉’ ‘아이씨’ 등의 탄성을 지르며 흥분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온갖 섬광이 얼비치는 아버지의 옆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구부정한 자세에 손동작은 현란했지만 눈빛엔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병원이라는 데가 워낙 기다리는 게 일인 곳인지라 어머니도 별달리 의심을 하진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일은 1년 쯤 지속됐다. 왜 시작됐고, 어쩌다 끝나게 된 건지는 아버지도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또 언제였을까? 아버지가 내 곁에 있으면서도, 어쩐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그건 딱 한번, 어머니가 집을 나갔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고작 일주일이었지만. 어머니의 가출은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척했다. 누구도 그때 일을 먼저 입에 올리지 않았고, 질문도 해명도 회상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하도 어렸을 때 일이라 내가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훗날 그때 얘길 먼저 꺼낸 것은 어머니였다. 1년 전,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길 듣고 병상에 누워 있을 때였다. 죽을고비야 그동안에도 수없이 넘겨왔지만 그날은 분위기가 달랐다. 심박 곡선이 몹시 불안정했던데다, 나와 같은 병을 앓는 환자 중 내 나이를 넘긴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밤새 내 곁을 지키며 병세를 지켜봤다. 나 역시 이게 마지막이란 느낌에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어 여의치 않았다. 죽음에 대해 그렇게 많이 상상해왔는데, 내 앞의 그것은 너무나 감각적이고 물리적이기만 했다. 기관들의 기능에 집중하느라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고통이 생각을 갉아먹고 있었다. 한 숨, 한 숨 힘겹게 이어나가는 나를 보고, 그날 밤 결국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새삼 자기가 가출했을 때 얘기를 꺼내며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아름아,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속눈썹 없는 눈꺼풀을 천천히 깜빡이며 어머니 얘길 그냥 듣고 있었다. 산소마스크 위로 뿌연 김이 서렸다.
“엄마, 나는……”
나는 오랜 세월 가슴으로 만지고 또 만졌던 말을 어머니께 했다.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도, 내 맘이 편하자고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내가 믿는 그대로를 전해드린 거였다.
“응? 뭐라고?”
어머니가 상체를 바싹 기울였다. 옆에선 아버지가 어머니의 어깨를 붙들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더듬더듬 힘주어 입을 뗐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여전히 잘 전달되지 않는 듯했다. 그때 내가 가까스로 전하려 한 말은 이랬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어머니가 내 입술에 귀를 갖다댔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입을 여는 대신 어머니의 손을 잡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곤 곧 긴 잠에 빠져들었고, 다음날,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기억나는 한 장면. 아버지와 나는 조제실과 수납실이 있는 병원 로비를 막 빠져나오고 있었다. 현관 앞에서, 아버지는 일곱장이 넘는 병원 영수증을 주머니에 구겨넣고, 면도도 안한 푸석한 얼굴로 갓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버지의 턱엔 살비듬이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갈까?”
“네.”
아버지가 내 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발을 떼었다. 평소 우리의 동선대로라면 곧장 오락실에 가야 맞는 거였다. 그런데 그날, 뜻밖의 풍경이 아버지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마치 튀밥처럼, 멀리서, 한무리의 아이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길 반복했던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저게 뭔가 싶어 눈을 끔벅거렸다. 아버지와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며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푸른 잔디밭 위로 알록달록한 놀이기구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중에는 고무에 공기를 넣어 만든 푹신한 미끄럼틀도 있었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스프링 목마와 다트 판자도 있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병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한 모양이었다. 기구들 중 단연 인기가 높은 건 ‘방방이’라 불리는 트램펄린이었다. 커다란 원형철제 테두리에 검은 천을 스프링으로 연결해 만든 거였다. 우리는 잠시 그 앞에 멈춰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하늘로 오르내릴 때마다 까르르 까르르 미친 듯이 청명하게 웃어댔다. 도약이 신나 그러고, 추락이 웃겨 그러는 것 같았다. 그중에는 환자복을 입은 아이들도 여럿 섞여 있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 지나간 생각은 단 하나였다.
‘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만 있을 뿐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아버지였다.
“아름아 우리도 저거 할까?”
나는 3초쯤 고민하다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리고 점프—
한번 더 점프—
아, 나는 지금도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퉁— 하고 내가 튀어오르면 퉁— 하고 다시 아버지가 뛰어오르고. 다시 퉁— 하고 아버지가 날아오르면, 퉁— 하고 내가 따라 오르던 봄날의 호흡. 만일 인생의 가장 환한 장면이란 게 따로있다면, 바로 그런 순간이지 않을까? 시원하고 개운한 바람. 펄떡이는 심장. 발밑의 탄력. 넘어지며 웃고, 웃으면서 자빠지던 우리의 야단법석. 기구 주위로 아이들이 둥그렇게 모여 입을 벌린 채 우리를 올려다봤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버지와 나는 그날 참으로 오랜만에 얼굴이 벌게져라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은, 아버지는 그해 들어 처음으로, 오락실에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한 날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지금도 내가 반복해서 꾸는 꿈은 이거다. 나이를 먹지 않은 내가, 그때로 돌아가 아버지와 텀블링을 하는 것. 그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바뀌며 여러가지 변주를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퉁— 하고 내가 뛰어오른 뒤 아버지가 돼 내려오고, 퉁— 하고 아버지가 날아오른 뒤 내가 되어 내려오는 것. 혹은 이럴 때도 있다. 내가 한번씩 점프할 때마다 점점 젊어지는 것. 80이었다가 60이었다가 열일곱이 되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진짜 내 나이가 되는 것. 그래서 한번도 보지 못한 내 얼굴을 보는 것. 하지만 꿈속 그림은 너무 아스라해, 나는 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다. 만져보고 확인하고 싶은데 꿈 속 카메라가 점점 뒤로 멀어져 원경으로 빠진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젊어졌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자마자 잠에서 깬다.
*
방송은 정확히 6시에 시작됐다. 우리는 거실에 앉아 멀뚱히 티브이를 바라봤다. 영화관람이라도 하는 양 숨을 죽인 채였다. 화면 위로 광고 몇개가 지나갔다. 그중에는 애꿎게 대기업의 암보험과 영양제 광고도 끼어 있었다.
“엄마, 쥐포 없어?”
실없는 말에, 바로 핀잔이 돌아왔다.
“축구 보냐?”
아버지는 여느때와 달리 한쪽 팔을 괴고 눕는 대신 내무실의 이등병처럼 정좌로 앉아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오도카니 앉아 두 눈을 끔벅였다. 잠시 후, ‘이웃에게 희망을’이란 글자가 오케스트라 음악과 함께 브라운관 위로 떠올랐다. ‘아무렴. 인생은 드라마지, 그렇고말고’ 주장하는 듯한 느낌의 웅장한 협주곡이었다. 프로그램 제목 뒤로 하트모양의 연둣빛 새싹이 둥글게 돋아났다. 이윽고 낭창하게 들려오는 성우의 목소리.
“이웃에게 희망을!”
순간 나는 ‘으음’ 하고 낮게 신음했지만, 재빨리 스스로를 타일렀다.
‘뭘 바란 거야. 바보야. 불평하지 마.’
짧은 사이. 곧이어 내 얼굴이 나타났다. 해질녘 병원 앞에서 붉게 물든 구름을 배경으로 얼굴을 클로즈업해 찍은 거였다. 얼굴 아래론 <한아름, 17세>라는 자막이 짧게 나타났다. 앵글 밖, 작가 누나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뭐가 되고 싶었어요, 아름인?”
승찬 아저씨는 처음부터 음악도, 설명도 없이 바로 훅을 날리는 전략을 취한 듯했다. 우선 질문으로 시청자를 집중하게 만든 뒤,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모양이었다. 작가 누나의 질문은 고스란히 자막처리 돼 화면 아래에 나왔다. 순간 티브이 속의 내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뗐다.
“저는……”
나머지 말이 전해지려는 찰나, 경쾌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곧바로 다음 장면이 이어졌다. 내 대답은 중간이나 마지막에 끼워넣은 모양이었다. 우리 동네를 원경으로 잡은 화면 위로 ‘누구보다 키 큰 아이, 아름’이란 소제목이 드러났다. 곧이어 내가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러곤 작가 누나와 나눈 짧은 대화가 나왔다. 일전에 사전 인터뷰 때 다 나온 말들이었다.
“아름이는 올해 열일곱살이다. 독서와 농담, 팥빙수를 좋아하고 콩이 들어간 밥과 추위, 유원지를 싫어한다. 하지만 아름이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건 엄마, 아빠다. 아름이의 바람은 내년에 열여덟살 생일을 맞는 것. 얼핏 보면 평범한 꿈이지만, 아름이에겐 오래전부터 혼자 감당해온 아픔이 있다.”
이어서 어머니의 왼쪽 옆얼굴이 비쳤다.
“세살 때 애가 자꾸 열이 나고 설사를 했어요. 병원에선 그냥 감기라 하고, 배탈이라 하고……”
아버지의 얼굴은 어머니와 반대로 카메라 오른쪽에서 잡혀 있었다.
“내가 뭘 느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점심때가 됐으니 애 밥을 먹여야겠다는 거였어요.”
그러곤 내 어릴 때 사진이 한장, 한장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갔다. 한살, 두살, 다섯살과 열살 이후의 모습들이었다. 돌잡이 때 명주실을 잡고 배시시 웃고 있는 얼굴, 커다란 기저귀를 찬 채 엉덩이를 번쩍 들고 카메라를 돌아보는 모습, 대야 속에 담기기 전 엄마 손 위에서 질끈 눈을 감고 있는 사진 등이었다. 어느 집 앨범에나 있는 ‘가장 보통의’ 풍경들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온 사진들은 좀 달랐다. 내 몸이 갓 태어났을 때로 다시 돌아가듯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한사람이 순식간에 폭삭 늙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남들보다 네배에서 열배까지 빠른 성장속도를 보이게 되죠.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뼈와 장기의 노화도 동반되고요. 하지만 아름이가 가장 힘든 부분은,”
‘어? 김숙진 원장님이다!’
나는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에 있는 선생님을 보고 반색했다. 티브이로 보니 괜히 신기한 게 알은체를 하고 싶었다.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내가 MRI 기계에 들어가는 모습이 오버랩됐다.
“아마 정서적인 부분일 겁니다.”
그리고 뒤이어, 이런저런 검사장면과 함께 차분한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조로증은 아이들에게 조기 노화현상이 나타나는 치명적이고 희귀한 질환이다. 지금까지 세계에 보고된 것만 100건 정도. 한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를 10년처럼 살고 있는 아름이는 현재 심장마비와 각종 합병증의 위험을 안고 있다. 최근에는 황반변성으로 한쪽 시력마저 잃은 상태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하루 속히 권하지만 현재 아름이네 형편으론 쉽지가 않은데—”
“오랫동안 치료받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니?”
“그게…… 음, 혼자라는 생각이요.”
“그래?”
“아니요. 부모님이 저를 외롭게 두셨다는 뜻이 아니고. 아플 때는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요. 철저하게 혼자라는. 고통은 사랑만큼 쉽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더욱이 그게 육체적 고통이라면 그런 것 같아요.”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뭐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그래서 아직 기도를 못했어요.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뒤 나는 겸연쩍은 듯 말을 돌리고 있었다.
“하느님은 감기도 안 걸리실 텐데. 그죠?”
그리고 다시 성우의 목소리.
“조로증의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질문은 사연 사이사이, 드문드문, 적절하게 안배됐다. 문맥과 리듬에 신경 쓴 피디 아저씨의 노력이 엿보이는 편집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가장 부러울 때는 언제야?”
“에고. 많죠! 정말 많은데…… 음, 가장 최근에는 티브이에서 무슨 가요프로그램을 봤을 때예요.”
“가요프로그램이면, 아이돌 말이니?”
“아니요. 비슷한 건데. 아이돌이 될 사람을 뽑는 경연대회 같은 거였어요.”
“그래?”
“네. 근데 그 오디션에 제 또래 애들이 오십만명 넘게 응시했대요. 뭔가 되고 싶어하는 애들이 그렇게 많다는 데 좀 놀랐어요.”
“부러웠구나? 꿈을 이룬 아이들이.”
“아니요. 그 반대예요.”
“반대라니?”
“제 눈에 자꾸 걸렸던 건 거기서 떨어진 친구들이었어요. 결과를 알고 시험장 문을 열고 나오는데. 대부분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 품에 안기더라고요. 진짜 어린애처럼. 세상의 상처는 다 받은 것 같은 얼굴로요. 근데 그 순간 그애들이 무지무지 부러운 거예요. 그애들의 실패가.”
“왜 그런 생각을 했니?”
“그애들, 앞으로도 그러고 살겠죠? 거절당하고 실망하고, 수치를 느끼고. 그러면서 또 이것저것을 해보고.”
“아마 그렇겠지?”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 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
“실패해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고 싶었어요.”
그러고는 예상대로 부모님의 인터뷰, 의사들의 소견, 어릴 때 일화 등이 번갈아 소개됐다. 그 사이엔 ‘그래도 제가 누나보다 오래 살았을 걸요?’라는 농담과, 지난번 작가 누나를 당황하게 만든 ‘빨리 늙는 기분’ 같은 얘기도 들어 있었다. 모니터 상단에는 방송 내내 조그맣게 ARS 번호가 붙박여 있었다. 기부는 전화뿐 아니라 일반후원금도 온라인으로 모금하고 있으며, 신용카드 포인트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방송은 어느새 막바지로 향해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계를 보며, 조금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한테 그렇게 많은 말을 시키더니 겨우 몇마디 인용해놓은 게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심지어는 조금 섭섭해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초반에 건너뛴 부분이 다시 재생되자 두 사람은 다시 방송에 집중했다. 녹화 당시, 부모님도 못 봤던 장면이었다.
“그래서 뭐가 되고 싶었어요? 아름인?”
“저는……”
한참 뜸을 들이다 나는 수줍게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었어요.”
“좀더 설명해줄래?”
“누가 그러는데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대요.”
“응, 그렇지.”
“건강한 것. 형제간에 의 좋은 것. 공부를 잘하는 것. 운동을 잘하는 것.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것. 그리고 부모보다 오래 사는 것…… 많잖아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중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냈어요. 그럼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자식이 되자고.”
“그래?”
“네.”
카메라는 얼마간 그렇게 가만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비췄다. 그러곤 잠깐 그 상태로 먼추더니 곧바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랐다. 프로듀서 채승찬, 글・구성 박나래…… 내레이션, 촬영, 음향 스태프 등의 이름이 줄을 이었다. 끝으로 방송사 로고가 보일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셋 다 처음 겪는 일이라, 정신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그런데 때마침 현관에서 ‘쿵쿵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데없고 성마른 소리였다. 우리 가족은 모두 깜짝 놀라 문 쪽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경계하듯 소리쳤다.
“누구세요?”
“날세.”
“누구요?”
“나야. 옆집 장씨.”
아버지는 우릴 보고 어깨를 으쓱한 뒤, 현관문을 딸깍 열었다. 장씨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거실로 들어서며 숨을 헐떡였다. 그러고는 충격을 받은 듯한 태도로 내게 물었다.
“아름아, 방송 봤니?”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답했다.
“네.”
장씨 할아버지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재차 물었다.
“정말? 정말 봤어?”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그러자 장씨 할아버지는 머리를 감싸안은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안 나와……”
*
입원 후 내 몸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이젠 마음놓고 아파도 된다’고 몸이 허락한 듯했다. 다행히 아직 중환자실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3인실에 머물며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받았다. 늘 해온 거고, 하지 않고는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짐은 책과 노트북, 간단한 옷가지가 전부였다. 필요한 책은 아버지가 구립 도서관에서 빌려다 줬다. 안과 원장님은 내게 되도록 먼 곳을 보고, 컴퓨터를 오래 하거나 책을 들여다보는 일은 피하라 했다. 하지만 그건 병원에서의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 선생님이 모르고 하는 말씀이셨다. 잦은 통원생활 동안, 나는 ‘심심해 죽을 것 같은’ 환자를 정말 여럿 봐왔다. ‘아, 사람이 심심하면 사나워질 수도 있구나’라고 깨달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병을 통해 쉽게 친해지는만큼, 서로의 무기력을 미워하고 권태에 겨워했다. 그래서 까닭 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시비가 붙기도 했다. 그건 성질이 못돼 그런 게 아니라, 모두 제 속의 어떤 감정들을 사용하고 싶어 그러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결국 심심해서 그런단 거였다. 나는 주로 책을 보고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리를 비웠을 때 짬짬이 원고를 썼다. 아직 끝을 맺지 못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이따금 아버지는 물었다.
“아름아 뭐 읽어?”
나는 조글조글한 입술을 오물대며 떠들었다.
“그냥 에쎄이예요. 아빠, 이 작가는 서른여덟에 둘째를 낳았는데, 분만실 앞에서 손을 꼽고 있었대요.”
“왜?”
“그러니까 이분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병원 복도에서, 둘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앞으로 이십오년을 더 벌어야 하는구나. 육십대 중반까지 죽어라고 일을 해야 하는구나, 생각하셨다나 봐요. 혼자.”
그러자 아버지는 한동안 말을 안하더니, 처음으로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누가 쓴 거니?”
또 어느날은 어머니가 물었다.
“아름아 뭐 읽니?”
나는 책장을 쥔 손을 달달 떨며 어머니께 말했다.
“시집이요. 엄마. 여기 이 작가가 쓴 세번째 책이에요.”
어머니가 책날개 안쪽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엄마, 있죠, 여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그래? 그게 누군데?”
나는 비실비실 웃으며 뜸을 들였다.
“그러게요?”
어머니가 물었다.
“에이 누군데 그래?”
“엄마, 이 사람이 그러는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사라질 것 같은 사람이래요.”
어머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곤 한없이 슬픈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름아.”
“네?”
“그 책 읽지 마라.”
어느날엔 간호사 누나가 내게 물었다.
“아름아 뭘 보니?”
나는 우쭐해져 말했다.
“그냥 책이요. 수기 같기도 하고 교양서 같기도 하고 짬뽕된 거예요.”
간호사 누나가 링거액을 확인했다. 그녀의 몸짓에는 적어도 어떤 일을 천번 이상 반복해온 사람의 능숙함이 배어 있었다.
“눈 안 아파?”
“괜찮아요. 그런데 누나,”
“응?”
“이 사람이 그러는데 여드름은 청소년이 지적, 육체적으로 부모 자격을 갖출 때까지 몇년 동안 그의 주변에서 잠재적인 배우자를 내쫓는 역할을 한대요.”
간호사 누나가 의학적 지식에 흥미를 보이며 반응했다.
“음, 그럴 듯한데?”
“누나도 여드름 나봤어요?”
간호사 누나가 차트에 뭔가를 적으며 예의 사무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럼. 미칠 뻔했지.”
“그래서 누나도 사춘기 때 잠재적 배우자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어요?”
그녀는 추억에 잠긴 표정을 짓다, 어딘가 매혹적인 미소를 보이며 내게 답했다.
“그랬음 의대 갔지.”
<이웃에게 희망을>을 통해 모인 성금은 생각보다 많았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액수였다. 나는 부모님의 소원대로 병원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또한 식당일을 그만두고 간호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게 방송이, 우리 삶에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일은 따로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그 아이’를 만나게 된 거였다.
부모님과 <누구보다 키 큰 아이, 아름>을 본 뒤, 그날 밤 방송국 싸이트에 들어갔다. 이래저래 심란하기도 하고, 사람들 반응이 궁금해서였다. ‘재밌는 얘기가 있으면 잘 기억해뒀다 부모님께 들려줘야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홈페이지 상단엔 다시보기, 미리보기, 시청자소감, 사연신청 등의 메뉴가 나열돼 있었다. 나는 시청자 소감란에 들어가 게시물을 살폈다. 게시판엔 벌써 여러개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그중 가장 최근에 오른 사연을 클릭했다. ‘방송 잘 봤습니다’라는 평범한 제목의 글이었다. 마우스를 쥔 손이 조금 떨려왔다. 어쩌면 우리가 공식적으로 받아보는 첫번째 ‘편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그전에 나도 온라인 채팅이나 커뮤니티 활동을 했었다. 어떤 클럽에서는 꽤 인기있는 회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한밤중 자기와 신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희귀병에 걸린 소년이라고 상상할 수도 없겠거니와, 내 쪽에서 먼저 밝힌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안다……’
알고 쓴 편지다……라고 생각하니 읽기도 전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숨죽인 채 첫번째 편지의 봉인을 뜯었다.
‘이번주에 방송된 <누구보다 키 큰 아이, 아름> 편 잘 보았습니다.’
나는 긴장한 채 다음 문장을 읽었다.
‘거기 오프닝에 나온 음악, 제목이 뭔가요?’
“……?”
잠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러곤 헛기침을 한 뒤 재빨리 다음 목록으로 넘어갔다. 아이디 ‘푸른 하늘’의 ‘문의드립니다’라는 글이었다.
‘지난달에 <미소 천사, 정희>편을 인상 깊게 본 시청자입니다. 방송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기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고지서를 보니, 저는 분명 1000원으로 알고 전화를 건 건데, 2000원이 결제돼 있더군요. 전산오류인가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제가 1000원이 아까워서 이러는 건 아닙니다.’
“………”
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게시판에는 정말 별별 말이 다 올라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개중에는 지난 방송을 보고, ‘왜 외국인을 돕느냐’라는 항의도 있었고, ‘H병원 레지던트 너무 훈남인 것 같아요’라는 반응도 있었다. ‘내레이터가 미혼모인 걸로 아는데, 공영방송에서 그런 여자를 써도 되냐’라는 훈계도, ‘여기 게시판 넘 예뻐요’라는 여담도 있었다. 그리고 몇번의 클릭 끝에, 나는 우리 가족을 향해 쓴 격려의 메씨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아름군 힘내세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랑스런 아이, 아름’ ‘돕고 싶습니다’ 같은 제목의 글들이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용기를 잃지 마시란 얘길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름군도, 부모님도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나요. 제가 5년간 항암치료를 받아봐서 아름군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하지 못하는 말이 많다는 것도 압니다. 할 수 없는 말도, 해선 안되는 말도 있지요. 아름이는 나이에 비해 정말 씩씩하더군요. 하지만 아름이도 아마 저처럼 악을 쓰며 세상에 저주를 퍼붓고 싶을 때가 있었겠지요. 괜찮다면 아름군, 그러고 싶을 땐 부디 그래주세요. 웃다 지친 사람은 더 약해집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정이 북받쳐서 글을 올렸습니다. 힘내주세요. 응원하겠습니다.’
‘아름이형! 저는 안산에 사는 열두살 지홍이라고 해요. 오늘 방송을 보고 부모님이 그러셨어요. 아이들이 걸음마를 뗄 때,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졸업할 때, 박수를 쳐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요. 자라는 건 놀랍고 어려운 일이래요. 그러니까 형은 남들보다 빨리 자라느라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아름이형! 저는 오늘 처음으로 제 돼지저금통을 깼어요. 얼마 안되지만 이 돈은 병원비 말고 형 비상금으로 써주지 않을래요? 그러면 제가 기쁠 거예요.’
‘서울 사는 대학생입니다. 아름이가 하는 말들이 왜 제 마음을 흔드는지 생각해봤습니다. 무례한 말씀입니다만, 그건 아마 아름이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서였던 것 같아요. 마치 예전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라도 했던 양. 부끄러운 밤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를 낳은 후 제 삶은 많이 변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고요. 세상엔 정말 경험해보지 않곤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서른 넘어 첫애를 가졌는데, 출산이 두려웠습니다. 부모가 되는 즉시, 제 삶이 평범해지고 말 것 같았으니까요. 이십대 때만 해도, 뭔가 더 특별한 사람이 될 거란 기대 속에 살았는데 ‘이제 나는 그냥 엄마밖에 될 수 없겠구나, 그걸로 끝이겠구나’ 싶어 불안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시시하게 살 사람이 아닌데’ 하고요. 하지만 첫애를 보고 나서, 제가 스스로를 무척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지 않게 헤어진 예전 애인에게조차 순수하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요. 아마 아름이 부모님도 그러셨겠지요? 어느날 저처럼 엄마가 된 아름이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 방송을 보니 두분이 아름이를 얼마나 잘 키우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름이 말대로 공부 잘하는 아이, 운동 잘하는 아이는 부모를 기쁘게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을 선하게 키우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지요. 힘내시란 말씀은 쉽게 못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대단한 일을 하셨다고, 이 말만은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여러 글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해라는 말, 예전에는 나도 참 싫어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 건네주는 따뜻한 악수가 먹먹했다. 터무니없단 걸 알면서도, 또 번번이 저항하면서도, 우리는 이해라는 단어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은 그렇게 이해를 바라는 존재로 태어나버리게 된 걸까? 그리고 왜 그토록 자기가 느낀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는 걸까? 공짜가 없는 이 세상에, 가끔은 교환이 아니라 손해를 바라고, 그러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또 왜 존재하는 걸까. 나는 몇개의 글을 더 훑어봤다. 그러는 동안 내가 조금은 덜 외로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 뒤, 나는 마지막으로 ‘대단하다’는 제목의 게시물을 클릭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대단하다. 나라면 자살했을 텐데……ㅋㅋㅋ’
그애의 메일이 도착한 건 이틀 뒤였다. 제목은 ‘Antifreeze’. 그래서 처음에는 스팸메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혹시나 하고 열어본 페이지에, 그 아이가 있었다. 발신 시간은 하루 전, 자정께로 표기돼 있었다.
아름에게
안녕? 나는 이서하라고 해. 열일곱. 너랑 같은 나이야.
그리고 나도 너처럼 머리카락이 없지. 그렇게 된 지 한참 됐어.
엊그제 <이웃에게 희망을>을 보고 편지를 써.
네 주소는 방송국을 통해 알았어. 혹시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처음엔 안 가르쳐주려고 하는 걸, 설득해서 받아냈어.
아마 나도 아픈 아이라는 걸 알고 알려줬나봐.
네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야.
그날, 너는 네가 완전한 노인도 완전한 아이도 아니라서 힘들다고 했지?
너무 빨리 먹은 시간들이 네 속에 가득 구겨져 있다고.
네가 제작진을 향해 ‘그래도 제가 더 오래 살았을 걸요?’라고 말했을 때 웃었어.
너만큼은 아니어도, 일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에 대해 나도 조금은 알고 있거든.
그리고 괜찮다면, 네 속의 시간들에 대해 내가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
처음으로 떠오른 단어는 한라산!
음, 뭐, 백두산도 괜찮고 그냥 높은 산이면 돼.
예전에 지리시간에 그런 얘길 들었거든.
그 산들은 너무 높아서, 고도별로 다른 꽃이 핀다고.
같은 시간, 한 공간 안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식물이 공존한다고 말이야.
그곳에는 사계가 함께 있어, 여름에도 겨울이 있고, 가을에도 봄이 있대. 무슨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야.
그래서 내 멋대로 그렇게 정했어.
남들은 너를 ‘조로’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냥 너를 ‘산’이라고 부르겠다고.
아, 그리고 음악 하나.
맞아, 선물.
…… 행운을 빌어.
메일 하단에 ‘Antifreeze, 검정치마’라는 글자가 보였다. 나는 바로 첨부파일을 열어보았다. 음악 재생프로그램이 떴다. 소리의 운동에 따라 추상적인 그림이 춤을 추는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짧은 사이.
노래가 노래가 되기 전의, 음악이 음악이려 할 때의, 조용한 ‘기미’에 숨이 막혔다. 그건 내가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경쾌한 드럼 소리와 함께 키보드 연주가 시작됐다. 몽환적이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이곳보단 조금 먼 데’를 상상하게 만드는 멜로디였다. 쿵쿵 짝, 쿵쿵 짝. 드럼 박자에 맞춰 내 심장도 덩달아 두근대는 것이 느껴졌다.
“우린 오래전부터 어쩔 수 없는 거였어. 우주 속을 홀로 떠돌며 많이 외로워하다가”
나는 노트북과 연결된 스피커 볼륨을 좀더 올렸다. 그런 뒤 꼼짝 않고 앉아 ‘Antifreeze’를 들었다.
“어느 순간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될 때면”
쿵쿵 짝, 쿵쿵 짝……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쿵쿵 짝, 쿵쿵 짝, 쿵쿵쿵쿵 짝짝짝……
“하늘에선 비만 내렸어 뼛속까지 다 젖었어
얼마 있다 비가 그쳤어 대신 눈이 내리더니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불 때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니가 건네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떠도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숨이 막힐 거같이 차가웠던 공기 속에
너의 체온이 내게 스며들어오고 있어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또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 어떡해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우우우우 우우우우우”
파일 속 목소리는 헐겁고 다정했다. 따뜻한 곡조가 아니었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가볍게 비행하던 여러개의 음은 ‘우우우우—’ 하는 활주로를 따라 안정감있게 착륙했다. 첫음이 시작되기 전의 고요와는 또다른, 마지막음이 사라진 뒤의 조용함이 주위에 내려앉았다. 방안 공기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무언가 나타났다 사라진 자리에 남게 되는 흔적이었다.
‘아버지가 처음, <남촌>을 들었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것들이 뭔가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게 이상했다. 마음이 어떻게 그걸 알고 제 모양새랑 가장 닮은 음을 찾아가려 한다는 것도…… 나는 노래를 몇번 더 돌려 들었다. 가사도 근사하고, 보컬 형의 목소리도 담담하니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곡이었다. 아니 그보다 나는, 편지를 여는 순간부터 이미 그 노래를 좋아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애가 혹 <남행열차>나 <차표 한장>을 보내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나는 모니터 속 메일을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았다. ‘안녕? 나는 이서하라고 해. 열일곱. 너랑 같은 나이야’ ‘네 속 시간들에 대해 내가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 ‘여름에도 겨울이 있고, 가을에도 봄이 있대’ 그 아이의 목소리가 내 속에서 메아리쳐 자꾸 울렸다. 그래서 그애 말대로, 내가 정말 산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같은 나이야, 같은 나이야…… 봄이 있대, 봄이 있대……’
내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그런 메씨지를 받아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남자아이였음, 그랬으면 달랐을까? 아마 달랐을 거다. 부끄럽지만 사실 그랬다. 그 아이는 왠지 여느 여자애들과는 달라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십대 소녀에 대해 잘 안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 아이의 글 속에선 어떤 특별하고 친숙한 ‘시간성’이 느껴졌다. 아울러 그건 열일곱의 시간도, 스무살의 시간도 아니었다. 그건 ‘혼자 오래 있어본 사람의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이 아이는 어쩌다 이런 조숙한 시선을 갖게 된 걸까?’
나는 그 아이의 문장을 눈으로 만지며 고민했다. 그러자 곧 단순하고 명료한 답이, 수면으로 내려앉는 낙엽처럼 내 가슴에 떨어졌다.
‘아팠으니까’
어느 작가의 말대로, 아픈 사람은 다 늙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걸까? 머리카락이 없다는 걸로 봐서 가벼운 병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애가 쓴 문장과 호흡 사이에 숨겨진 의미와 암시를 찾으려 애썼다. 다시 보고 한번 더 보니, 몇구절은 아예 외워버릴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행운을 빌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어디였을까? 어디서였지?
‘그래, 내 소설 안에서였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곡에서 처음 만났을 때, 놀라 두리번거리는 아버지를 향해, 내가 조그맣게 건네드린 말.
‘행운을 빌어요.”
그러자 갑자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뭔가 거대한 몸집을 가진 존재가 저쪽에서부터 한발짝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손으로 왼쪽 가슴팍 아래를 쥐어잡았다. 그러곤 할 말을 잃고,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답장을 보내진 않았다. 막상 책상 앞에 앉으니 겁이 났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어쩌면 내가 이 아이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에. 그리고 어떤 한사람을 좋아하게 된 탓에, 이세상도 덩달아 좋아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겐…… 자격이 없어 보였다. 나는 ‘서하에게’라는 말을 썼다 지웠다. ‘안녕, 나는 아름이야’라는 문장도 썼다 지웠다.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뒤 자리에 누웠다.
‘잊어버리자.’
사실 시청자 게시판에 오른 글도 말하자면 다 편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저 감사하며 지나가자고.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타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그애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남들은 너를 조로라고 부르지. 나는 너를 산이라고 부를래.’
적어도 이런 문장을 쓰는 아이가 나쁜 아이일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아이도 친구가 필요한 건지도 몰랐다. 그 생각을 하자 다시 심장 한쪽이 심하게 아려왔다. 하지만 널을 뛰는 가슴과 달리, 내 머리는 나더러 자꾸 차분해지라 권하고 있었다. 어느 사려깊은 사람이 보낸, 응원의 메일일 뿐이라고. 너는 이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않느냐고. 아픈 사람이 다 선한 건 아니라고. 아픈 아이들만큼 영악한 존재도 없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그때부터 별별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이 아이, 모든 연애의 시작엔 반드시 음악이 있다는 걸, 벌써부터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혹시 좀 노는 애는 아니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남과 다르고 싶어’ 불행을 애호하게 된, 허영심 강한 소녀이지는 않을까. 그래 특별해지고 싶어서, 나를 이용하려는 건지도 몰라. 나를 통해, 그래도 자기 삶은 괜찮은 편이라고 위안받고 싶은 건지도. ……그나저나 연애라니, 나는 또 왜 이렇게 혼자 멀리 가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날 꿈을 하나 꿨는데, 평소에도 종종 반복해서 꾸는 바로 그 꿈이었다. 하늘은 푸르고 잔디는 싱싱했다. 끝없이 펼쳐진 언덕 위에 엄청나게 큰 트램펄린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나는 깡충대며 놀고 있었다. 어쩌면 심장질환 때문에 숨이 가빠, 꿈속에서도 내가 운동중이라 착각하고 있는지 몰랐다. 나는 퉁— 하고 뛰어오른 뒤 시원하게 웃고, 다시 퉁— 하고 날아오른 뒤 눈을 감았다. 공중에 머무는 시간은 꽤 길었다. 짧은 정지화면처럼, 몸이 떴을 때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런데 그 풍경 위로 느닷없이 배경음악이 깔렸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르는 기타와 피아노, 드럼 소리도 연이어 울려퍼졌다. 나는 반주에 맞춰 계속 폴짝거렸다. 그러곤 하늘 높이 솟을 때마다 만세 자세를 취한 뒤,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나는 방방 뜨며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쿵쿵 짝 쿵쿵 짝……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쿵쿵 짝 쿵쿵 짝……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그렇게 몇번이고.
“몇번이고?”
지나가는 바람이 되물으면
“몇번이고.”
오고 있는 바람이 대답할 때까지 말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