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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제13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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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崔民錫

1977년 경북 포항 출생.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업. searacer@naver.com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내 이름은 ‘유리스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다. 줄여서 ‘초이아노프스키’라 부르기도 하고, ‘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름이 꽤나 긴 탓에 태어나서 내 이름이 정식으로 불린 것은 딱 두번뿐이다. 한번은 출생신고를 할 때였고, 다른 한번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였다. 중학교 때부터는 선생님들도 ‘유리스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까지 읽다가 그냥 초이아노프스키로 불렀다.

이름 때문에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은 바라바라스키와의 일이었다. 바라바라스키는 7년을 사귄 여자친구였다. 그녀는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이스쿨 호수 앞에서 고무튜브를 빌려주는 일을 했는데, 큰 눈과 시원한 목선이 사랑스러웠다. 순수 키르키스족으로서 집에서도 매우 마음에 들어했고 섹시하면서도 조신한 맛이 있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 이름을 못 외웠기 때문이다. 7년 동안 정확히 부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차라리 그냥 줄여서 부르면 상관없겠지만, 무슨 생각인지 매번 틀리면서도 굳이 다 부르려 했다. ‘유리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사랑해’라거나, ‘유리스탄 스타코스키(×) 아르바이잔… 그리워.’ 이런 식으로 7년 넘게 들으니 나로서도 자꾸 난처해졌다.

사랑을 저버리면서까지 내가 이름을 고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 이름에 들어간 모든 이름이 내 조국 키르기스스탄을 용맹하게 지켜온 조상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아르바이잔은 러시아에 항거했고, 증조할아버지 스타노크라스카는 우즈베키스탄에, 고조할아버지 제인바라이샤는 코칸드족에게, 그보다 앞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투르크족과 몽골, 위구르족에 대항해 몸바쳤다. 지금 나 ‘유리스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가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모두 내 이름에 등장한 선조들 덕분이다. 나뿐 아니라 온 키르기스스탄 민족이 내 이름에 등장하는 선조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므로 내 이름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며, 나를 존재하게 하는 정체성과도 같다.

 

그런데, 나를 자꾸 ‘최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지금 한국의 안산에 와 있다(아…… 안산의 자장면은 정말 맛있다). 용사의 후예인 내가 왜 한국의 안산에 있는 공장까지 왔느냐면……, 일단은 돈이 궁해서였다. 카자흐스탄에서 빵을 굽는 작은삼촌에 의하면, 한국에 가서 일하면 한달에 일년치 월급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가문은 키르기스스탄의 경제 악화 탓에 주변국가로 흩어져 비즈니스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군인가문에서 상인가문으로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가장 먼저 외국에 나간 것은 작은삼촌이었고, 나 역시 그의 영향으로 이곳에 와 있다. 여동생은 샹하이에서 민속인형을 팔고 있고, 작은삼촌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식당에서 일하고 있고, 아버지는 우즈베키스탄의 양조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가문의 흐름에 역행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큰형 ‘스타로프스키…… 초이아노프스키’다(그의 이름 또한 몹시 길다. 중략이 미덕인 것 같다). 그는 자본과 결탁하는 행위야말로 가문의 수치라며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건너가 탈레반과 공모를 꾀하고 있다.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모르겠으나, 큰형만이 우리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가 무서워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이제 아홉살 된 막내여동생 유리를 위해 매달 집으로 돈을 보내고 있다. 유리는 웃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유리의 웃음을 보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다 휘발되는 것 같다. 유리가 나보다 스물다섯살이나 어린 이유는 순전히 아버지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양조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저임금의 현실을 개탄하며, ‘월급 이외의 무엇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궁리 끝에 양조장의 술을 매일밤 몰래 마시기 시작했다. 밤마다 꾸역꾸역 술을 마신 지 7년째,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다. 그러고선 무턱대고 성욕을 해결하고자, 용맹해진 남근을 과시하듯 여기저기 휘두르기 시작했다. 양조장에선 아버지의 문제를 파악하자마자 곧장 두달간 귀가조치를 취했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그날 밤, 63세의 나이로 유리를 탄생시켰다. 어머니는 훗날 닥치는 대로 달려드는 아버지를 온전히 받아주는 게 상책이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의 양조장을 생각하니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를 테러리스트로 만든 자다. 유순한 상인으로 살려고 했으나, 결국 포악한 용사로서 살게 만든 그. 나를 ‘최씨’라 부르는 사람. 우리 가발공장의 사장 ‘안면수’다. 사람들은 그를 ‘안면몰수’라 부른다. 안면몰수가 나를 최씨라고 부른 것은 나를 처음 보던 날이었다. 그는 내 이름을 ‘유리스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까지 읽다가 마지막 ‘초이아노프스키’를 보고선, 금세 최씨라 불렀다.

“어, 초이? 초이면, 최씨네. 그냥 최씨라고 해.” 안면몰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내가 본 그의 마지막 웃음이었다. 그뒤부터 그는 양 눈썹을 하나로 쭉이어 붙일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최씨, 머리 잘못 붙이면 니 머리를 뽑아버린다” “최씨 눈 삐었어? 눈깔을 뽑아버릴라” “최씨, 어제 병원 갔다왔으니 일당 깠어. 꼬우면 병신 되지 말든가” 같은 말을 습관처럼 해댔다. 사장이 일단 최씨라고 부르면 그 뒤에는 사전에도 없는 말들이 나온다. 나는 처음에 이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으나, 몽골인 바타르의 도움으로 나쁜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타르는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모두 구사하는 인텔리지만, 여기서는 그냥 박씨로 통한다.

사장은 어디서 그런 기술을 배웠는지, 직원들의 이름을 들으면 곧장 그것을 한국식으로 바꾸는 재주를 지녔다. 그것 하나만은 인정한다. 나는 최씨, 타르는 박씨, 콩고의 글레리는 주씨, 에티오피아의 워크시는 내씨, 네팔의 마리는 구씨, 이런 식이다. 인도의 시가 라씨가 된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나마 내 이름이 가장 정성들인 작명이라 한다.

그는 이렇게 모든 것에 한국식을 강요한다. 「너희 여기에 배우러 왔잖아. 너희 꼴랑 이 돈 몇푼 때문에 브로커한테 비자 사서, 배타고 비행기 타고 이까지 와서 쪽방에서 새우잠 자는 거 아니잖아. 너희는 꿈이 있어. 그 꿈을 가슴에 품고 인도양, 태평양, 대서양 넘어온 거야. 여기서 배워서, 너희 고국에 돌아가 그 정신과 기술을 전수하겠다는 꿈 말이야. 안 그래? 주씨! 너희 대통령 여기 와서 새마을운동 배워갔잖아. 간단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부터 일하는 거야. 밤 12시까지 일하고, 윗사람들 보면 90도로 인사하고, 밥 주면 두 손으로 ‘감사히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먹는 거야.」

그는 우리에게 한국의 스승을 자처했다. 한국의 스승은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서는 때로는 매를 들기도 하는 거라며, 애제자 라씨를 매로 키웠고, 몽골에서 온 여제자 치치게 지씨에게는 야간특별수업을 해줬다. 치치게는 수업을 받고 나온 후면 아랫도리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라씨는 사랑의 훈육을 받는 날이 길어질수록 허리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나는 정의를 실천해온 가문의 후예로서 이런 일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연히 라시 라씨에게 안산시청에 민원을 제기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되찾으라고 했다. 라씨는 내 말대로 민원을 제기했고, 곧바로 불법체류자인 게 탄로나 추방당했다. 그는 치치게의 강간도 함께 고발했는데, 치치게도 보건소에서 검사를 몇번 받더니 에이즈나 매독 등 기타 성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위로와 동시에, 추방명령을 받았다.

나는 바타르 박씨와 함께 대형 신문사에 제보했으나, 한국 언론의 주류임을 자처하는 그 신문사는 자신들의 자유주의 철학에 맞지 않는다며 우리 이야기를 거부했다. 결국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어느 작은 인터넷 매체에서 우리 사연을 기사화해주기로 했는데, 맙소사—————, 거기에는 우리보다 더한 사연들이 바글댔다. 폭행이나 월급착취 등은 우리가 보기에도 기사 축에 못 들 것 같았다. 오히려 기사를 내주는 것이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 기사 아래에는 ‘오늘밤 뜨거워요’ ‘저 지금 촉촉해요’ 따위의 성인광고 댓글만이 우리를 지지하는 듯했다.

 

웬만하면 참으려 했으나 나의 울분이 극에 달한 사건이 있었다. 그건 바로 콩고에서 온 주글레리 주씨의 죽음이었다. 주씨는 떡을 먹다가 죽었다. 경찰은 주씨의 죽음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흔한 자연사라고 했다. 떡 먹다 목 막혀 죽은 사람들의 무덤을 쌓아놓으면 태백산맥을 능가할 것이라며 껄껄댔다. 나와 바타르는 자연사가 아니라 산업재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들으려는 의지가 없었다.

우리가 산업재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순전히 ‘안면몰수’ 때문이다. 안면몰수는 언제나 주글레리 주씨를 느리다고 타박했다. 콩고가 가난한 것도 느려터졌기 때문이고, 콩고의 내전이 끝나지 않는 것도 느려터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장은 주글레리 주씨도 계속 느려터진 채로 있다면 새마을운동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안면몰수의 논지에 따르면 새마을운동의 요지는 바로 속도다. 초스피드로 일어나고, 초스피드로 일하고, 초스피드로 밥을 먹고, 초스피드로 똥을 싼다. 그래서 사장이 우리 공장에 걸어놓은 사훈은 ‘게 눈 감추듯 밥 먹자’다(평소 성격을 고려할 때 ‘게 눈 감추듯 똥 싸자’라고 정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주글레리 주씨가 운명하던 그날, 사장은 우리에게 떡을 돌렸다. 자기 딸이 Y대 로스쿨에 합격했다며 말이다. 한국에서는 좋은 일이 있으면 떡을 돌리는 것이라 으스대며, 역시 ‘게 눈 감추듯’ 먹고 일하라 했다. 평생 처음 떡을 맛보게 된 주글레리 주씨는 사장 눈치를 보며 떡을 한번에 열개씩 입안에 털어넣었다. 서른개째 쑤셔넣는 순간, 동공 옆으로 빨간 실뿌리들이 번지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주글레리 주씨는 가발더미에 머리를 박고 즉사했다. 경찰은 우리 말을 믿지 않았다. 바타르 박씨가 열심히 설명했으나, 옆에서 쿠마리 구씨가 ‘송편이 정말 달았다’고 증언하는 바람에 그만 주글레리의 식탐과 부주의에 의한 사망으로 단정지었다. 쿠마리 구씨는 부인이 도망가고, 딸마저 연락이 끊겨 제정신이 아니었다. 쿠마리 구씨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를 지녔는데, 자신은 삼십대라고 주장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에 탄 민둥산 같은 헤어스타일과 역시 산 같은 배 덕분에 안면몰수보다 더 사장답게 보이기도 했다.

주글레리 주씨의 장례식은 안산의 한 병원에서 치러졌는데, 조문객은 공장 사람들뿐이었다. 세상은 주씨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요일이었지만 그의 죽음 앞에 모인 우리가 게으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디선가 안면몰수가 호통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저 장례식장 휴게실에 있는 TV 소리만이 일요일 낮 동네를 지나치는 고물상 방송처럼 들려올 뿐이었다.

 

TV에서는 ‘다이내믹 코리아’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띠고 부채춤을 추고, 아이들과 아버지는 인사동을 배경으로 팔을 벌린 채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퍼나르는 노동자의 땀방울이 보이고, 몸에 붙는 슈트를 입고 서양 바이어들 앞에서 발표하는 여성이 지나가고, 웃으며 악수를 한다. 끝으로 인천공항 앞에서 부채춤을 추던 한복 입은 여인, 악수했던 서양 바이어, 제철 노동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꽃을 선물 받은 네팔, 몽골, 인도, 키르기스스탄 노동자들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마치 이곳이 낙원이라는 것처럼.

그때 나는 결심했다.

청와대를 폭파하기로.

 

*

 

일단 목표를 정하자, 언제부터 그랬는지 쿠마리 구씨가 자신은 히말라야의 후손이라며 합류했다. 바타르 박씨 역시 칭기즈 칸의 후예라며 의기투합했다. 칭기즈 칸 정도면 수많은 여자들과 잤을 테고 따지고 보면 모두 다 직계후손이 아닌가 싶긴 했지만, 일단 그의 이름은 마음에 들었다. 알고 보니 바타르 박씨의 이름은 영웅이란 뜻이었다. 이름은 일단 합격점이었다. 하지만 이름으로 따지면 나 ‘유리스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를 따라올 자가 없다. 이름 자체가 용사의 족보 아닌가.

테러를 작정하고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큰형, ‘스타로프스키’였다. 우리는 보안상 그를 ‘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별은 접촉 결과 탈레반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별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한국의 이율배반적인 외교활동에 치를 떨었다며, 탈레반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주겠노라 약속했다. 우리는 별의 지침에 따라 계획을 세웠다. 사실 쿠마리 구씨가 합류한 것도 별의 계획에 감탄해서였다. 바타르 박씨의 평가에 의하면, 우리의 계획은 똘스또이의 문장만큼이나 사려깊었고, 앤디 워홀의 그림만큼이나 대담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만큼이나 간결했다.

 

1. 별이 탈레반으로부터 공수한 폭탄재료를 가지고 입국한다.

2. 우리는 관광객을 가장하여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한다.

3. 청와대로 돌진하여 폭탄을 투척한다.

 

실로 대담하고 간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는 특히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기로 한 대목에서 감탄했다. 우리 중 누구도 그 버스를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날을 기다렸다. 시티투어버스는 한국이 내세우는 역겨운 친화적인 이미지의 대표적 허상이었는데, 그것을 탈취한다는 것이 여간 벅차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출발지점이 광화문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이 지키는 광화문에서 시티투어버스를 탈취당한다면 틀림없이 온 나라가 당황할 것이다. 승객을 인질로 납치할 것이므로 경찰이나 군대는 버스를 폭파시킬 수 없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십분 거리에 있는 청와대로 직행해 별이 제조한 폭탄을 투척할 예정이었다. 그 이후는 신에게 맡기기로 했다. 구차하게 도망 다니느니 장렬히 전사하거나, 혹시 살아남게 된다면 떳떳하게 체포돼 세상에 우리의 뜻을 알릴 것이다. 과연 전사다운 선택이었다.

디데이는 나의 비자가 만료되기 하루 전인 201041일. 그날 우리의 성전(聖戰)이 시작된다. 이 나라의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키르기스스탄의 용맹한 전사인 나 ‘유리스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와 히말라야의 자손 쿠마리 구씨, 칭기즈 칸의 후예 바타르 박씨는 각자의 검지를 베어, 사발에 담긴 물에 핏방울을 떨어뜨려 나눠 마셨다. 그날 우리는 이 땅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목숨을 건 혁명을 단행하기로 결의했다. 그 혁명은 피를 나눈 우리 손에 이룩될 것으로 보였다. 확실히 그렇게 보였다.

별이 입국을 거부당하기 전까지는.

 

*

 

별의 정식 이름은 ‘스타로프스키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다. 그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것은 지구상에서 자신과 나 두명뿐이다. 내가 정확히 아는 이유는 내 이름과 앞부분만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름이 숨차도록 길면서도 숨막히게 유사한 이유는 아버지가 이름 짓는 데 그만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혼신의 힘을 다해 형의 이름을 짓고 난 뒤, 내 이름을 지을 때는 도저히 창의력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앞글자만 TV연속극 주인공 이름으로 살짝 바꿔놓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도 여주인공이었다. 아무튼 아버지는 사랑스러운 막내 유리를 낳은 걸 빼고는 일생에 도움이 된 적이 없다. 별의 입국이 거부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아버지 때문이다.

별은 폭탄 제조에 필요한 화학재료 2kg어치를 전부 비닐봉지로 꽁꽁 싸매 줄줄이 쏘시지 모양처럼 만들어 삼켰다. 그러고는 대장 속에서 비닐봉지가 약 10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지사제 한통을 다 먹었다. 인천공항에 입국했을 때, 그의 눈은 여름 나뭇가지처럼 핏발이 뻗었고, 다리를 꼬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더 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경찰견들이 앞에 다가와 짖기 시작하자, 그는 괄약근에 더욱 힘을 주며 “원래 겨드랑이 냄새가 고약하다”고 둘러댔다. 적외선 검사대 앞에선 땀을 비 오듯 흘려, 별의 머리 위에만 소나기가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별은 적외선 검사대를 통과하자 감격에 취한 나머지 괄약근의 힘이 풀려 약품을 들킬 뻔했으나, 정작 그의 입국이 거부된 것은 그의 긴 이름 때문이었다.

탈레반이 자랑스러워하는 차세대 테러리스트 스타로프스키는 비자와 이름이 다르게 인쇄된 여권을 들고 적국에 내렸다. 여권에는 정확하게 ‘스타로프스키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라고 씌어 있었지만, 비자에는 ‘스타로프스키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 스타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라고 써 있었다. 멍청한 한국대사관 직원이 실수로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것이다. 별은 한국대사관의 착오라며 울며 항변했지만(그의 괄약근은 이미 충분히 운 상태였다), 입국심사원은 단호했다. 그는 미동도 않고 이름이 달라 입국도장을 찍어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별은 10시간을 기다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원래 별은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자마자 화장실에서 폭탄 재료를 바로 빼낼 예정이었으나, 덕분에 10시간을 더 참아야 했다. 별은 인천공항에서 다섯번의 통곡과 세번의 구토와 두번의 기절을 하고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별이 입국에 실패하자 우리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칭기즈 칸의 직속후예라는 바타르 박씨가 흔들렸다. 폭탄이 없는 테러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나도 잠시 흔들리긴 했으나, 언제부터였는지 갑자기 용맹해진 쿠마리 구씨가 아예 투어버스에 불을 붙여 청와대에 박아버리자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땅의 억압받는 모든 노동자들의 혼령이 응원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불타는 시티투어버스가 청와대 춘추관을 정면으로 들이박는 모습과 우왕좌왕하는 경비대, 이를 보도하는 전세계의 언론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나의 눈동자 역시 불타올랐고, 내가 뜨거운 기립박수를 치자 바타르 박씨도 언제 동요했냐는 듯이 곧장 박수에 동참했다. 쿠마리 구씨는 운전은 반드시 자기가 해야 한다고 선언했지만, 어차피 우리에게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별에게는 미안해져버렸지만 그의 실패 덕분에, 우리는 좀더 원초적이고 헌신적인 방법으로 세상에 정의를 알리게 되었다. 역시 이 방법은 쿠마리 구씨의 용단과 바타르 박씨의 결단, 그리고 별의 헌신—특히 대장(大腸)의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

 

41일 광화문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청량했다. 태풍 전야의 고요함이 감돌았다. 우리는 시티투어버스 앞에 나란히 섰다. 관광객처럼 보이기 위해서라며 쿠마리 구씨는 등산모자를, 바타르 박씨는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나는 라운드 면티에 건빵바지를 새로 사 입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에티오피아인 워크네시 내씨는 평소의 모습과 똑같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 몹시 기운이 빠지긴 했지만, 우리는 다시 서로의 뺨을 때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예전에 TV에서 스모선수들이 시합 전에 이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해보니 무척 아팠다. 하지만 분노는 확실히 일어났다.

쿠마르 구씨는 심판의 질주를 책임질 기갑부대 대장처럼 서울관광지도를 묵묵히 보고 있다. 눈빛에는 비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바타르 박씨는 주변을 살피며 인질로 잡을 사람들이 누군지 확인하고 있다. 바타르 박씨에 의하면 오늘의 인질은 중국인 단체관광객 12명과 태국인 가족 3명이었다. 역시 바타르는 정확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인원이 모두 탑승했다. 바타르는 현대전은 정보전이라며, 쓰레기통에서 주운 예약자 명단을 자랑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뭔가, 오늘은 일진이 좋아 보인다.

우리의 작전은 이렇다. 버스가 출발하면 내가 칼을 꺼내 기사를 운전대에서 물러나게 한다. 쿠마리 구씨가 운전대를 물려받고, 나는 기사를 보조석에 묶어놓는다. 그동안 바타르 박씨는 인질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총으로 위협한다. 물론 가짜 총이다. 용산전자랜드 취미용품점에서 샀는데, 꽤 그럴싸하다. 에나멜 물감까지 칠하니 쇠가 약간 벗겨진 느낌마저 난다. 그러면 나는 가방에서 준비해온 시너를 바닥에 뿌리고 청와대 춘추관에 당도할 즈음 불을 붙이고 우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린다.

이번에도 역시 대담하고 간결한 작전이다. 특별히 혼선을 빚거나 헷갈릴 일은 없었다.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대머리의 운전기사는 20cm길이의 회칼을 꺼내자마자 바로 차를 갓길에 세웠다. 통역을 하는 오이처럼 생긴 이십대의 여자는 칼을 보자마자 바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바타르 박씨가 총을 꺼내들자 버스 안은 잠시 술렁였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별은 버스를 탈취할 때 외부에 들키지 않도록 반드시 흉기를 허리 높이에서 휘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시티투어버스의 차창은 안에서 집단살인사건이나 난교가 벌어진다 해도 전혀 모를 정도로 진하게 썬팅돼 있었다.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통용되는 지침을 한국에서 실행하려니 약간 차이가 생겼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바타르 박씨는 총을 한번 꺼내 보여주고는 이내 빵봉투를 구겨 그 안에 총을 넣었다. 그리고 총구만 밖으로 꺼내 인질들 쪽을 겨냥했다. 이 역시 별이 가르쳐준 것이다. 별이 이렇게 하라고 한 이유는 창밖으로 총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우리는 모조품인 게 탄로날까 싶어 봉투 안에 총을 숨겼다. 테러에는 은근히 임시변통적인 순발력이 필요했다. 구씨는 외국인이 운전하면 의심받을 수 있다면서 ‘라이방’ 썬글라스와 ‘그린 호넷’에서 브루스 리가 썼던 50년대 미국 리무진 운전사의 모자를 썼는데, 아무리 봐도 눈에 더 띄는 것 같았다. 하긴, 어차피 칠흑처럼 썬팅이 돼 있어서 상관없었다.

이제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차는 덕수궁을 지나 남대문 방향으로 간다. 이때 구씨는 갑자기 차를 돌려 삼청동 쪽으로 돌격할 것이다. 이 불합리하고 악으로 가득찬 나라가 심판받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세상은 우리를 주목하고, 이 땅의 부조리가 온 세계에 낱낱이 파헤쳐져야 하는데…… 쿠마리 구씨가 계속 직진만 하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서울역이 보인다.

바타르 박씨는 여전히 빵봉투에 포장된 장난감 총을, 진품이라는 표정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향해 겨누고 있다.

“쿠마리, 어떻게 된 거야. 뭐 해, 차 안 꺾고?” 내가 다그쳤다.

순간 쿠마리는 고개를 돌리더니 울상이 되어 말했다.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모… 모… 못 꺾겠어. 버스 중앙차선이 있는 줄은 몰랐어. 게다가 서울은 처음이야.”

 

그랬다. 쿠마리 구씨는 한국에 온 뒤 인천공항에서 브로커의 손에 이끌려 바로 안산 공장으로 왔다. 그리고 쭉 안산에만 있었다. 그가 주말에 한 일이라고는 방에서 가요 순위프로그램을 본 것이 전부였다.

“그냥 꺾어버려!” 내가 소리치자, 바타르 박씨가 끼어들었다.

“아… 아냐. 교통신호를 잘 지켜야 해. 우리의 목적은 청와대 폭파지, 교통법규 위반이 아니야.” 내가 바타르를 노려보았다. 바타르는 떨리는 눈으로 “그리고…”라며 얼버무렸다.

“그리고 뭐!”

“지금 불법유턴하면 교통경찰한테 걸려. 그럼 우린 청와대까지 가기도 전에 잡힐지 몰라. 일단 목적지까지는 교통법규를 준수하면서 가야 해.”

똑똑한 녀석. 녀석은 정말 천재다. 역시 몽골국립대학을 나오고 3개국어까지 하는 녀석은 다르다. 하지만 나는 화낸 기색이 있으므로, 밖으로는 절대 감탄하지 않은 척했다.

그때, 짝. 짝. 짝. 박수가 터져나왔다. 통역을 하는 젊은 여자였다. 얼굴이 기다랗고, 피부가 울퉁불퉁한 게 꼭 깎지 않은 오이처럼 생겼다. 오이는 합성소재의 줄무늬 셔츠를 입고, 남색 사무용 치마를 입어 마치 은행창구 직원 같다. 돈을 쥐여주면 바로 예금통장을 개설해줄 것 같았다. 아마 따분한 인생을 대표하는 모델을 찾는다면 그녀가 적격일 듯했다. 오이는 백년침묵의 저주가 지금 막 풀린 사람처럼 갑자기 바쁘게 말을 쏟아댔다. “맞아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할 줄 알아야 해요. ‘펀치를 날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우선 한발 뒤로 빼는 것이다’,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라고 하더니 턱을 앞으로 내밀며 ‘피~스’ 하고 말을 길게 쭈욱 뺐다. “넌 뭐야!” 내가 인상을 그으며 다그치자, 오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노순영”이라고 대답했다.

“아니, 누가 이름 물었냐고. 입 다물고 있어!”

“………”

“대답 안해?!”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입 다물라고 해서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젠장. 나는 대답 정도는 해야 알아들을 거 아니냐고 되받았고, 오이는 그럼 처음부터 대답할 땐 빼고 입 다물라고 했으면 오해 없었을 것 아니냐고 되받아쳤다. 나는 한국어가 서툴러서 그랬다고 얼버무렸고, 오이는 내 한국어가 그렇게 나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그 와중에 바타르 박씨는 한국어는 자기가 제일 잘한다고 끼어들었고, 쿠마리 구씨는 질 수 없다는 듯 ‘간장 공장 공장장은 장공장 공장장, 장공장 공장장은 간장공장공장장’을 되풀이했다.

쿠마리 구씨는 여전히 직진중이었다. 그린 호넷 모자에 눌린 옆머리 사이로 땀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구씨는 좀 벗어나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이태원에 와보니 참 좋다고 했다. 운전이나 똑바로 하라고 다그쳤지만, 실은 나도 이태원은 한번 와보고 싶었다. 이태원에 오면 왠지 내 마음을 알아줄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투어버스가 이태원 해밀턴 소방서 앞을 지나자, 쇼핑백을 한아름 든 흑인 두명이 버스를 보고 택시를 잡듯이 손을 흔들어댔다. 미친놈들. 같은 외국인이라도 이렇게 똥인지 된장인지 못 가리는 놈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순간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 급브레이크였다.

“왜 그래!”

“아…… 미…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주글레리 주씨’인 줄 알았어.”

맞다. 떡 먹다 죽은 주글레리 주씨. 그를 잊어선 안된다. 우린 지금 ‘안면몰수’의 작태와 이를 방관하는 이 국가의 위선을 알리려 하는 것이다. 주씨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 이런 생각으로 각오를 되새기고 있는데, 옆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바타르 박씨였다. 박씨는 ‘주글레. 주글레. 주글레’ 하고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울먹거리는데, 오이는 죽으면 안된다며 또 끼어들고 있다. 표정을 보니 진심인 것 같기는 하고, 박씨는 울먹이며 총을 든 손으로 눈물을 닦는데 손이 너무 가볍게 올라간다. 진짜 총인 척하려면 손을 저렇게 가볍게 올려서는 안되는데. 쿠마리는 계속 직진하고, 바타르는 긴장이 풀어졌는지 어설픈 행동을 해대고, 오이는 말이 많아지고 있다. 이거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의 대담하고, 간결하고, 위대한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왜 버스를 탈취하려는 거죠?」 오이가 물었다. 이쯤에서 동지들에게 우리가 행동에 나선 이유를 상기시키고, 인질들에게도 그 이유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언론 앞에서 말하기 위해 여러번 연습해온 간결하고 또렷한 러시아 액센트 영어로 말했다.

「더 코-리아 유노 이-즈 어 베리 어-글리 마-스크.(너희가 알고 있는 한국은 잘못됐다. 한국은 인권을 유린하고 반인륜적인 가면을 쓰고 있다. 너희가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라는 게 나의 요지다.) 아이 투크 더 버스 투 인폼 어글리 코리아.(나는 한국의 위선과 허위와 극악한 행위를 전세계에 알리고자 오늘 역사적인 버스 탈취를 감행했다.) 디스 컨츄리 이즈 킬링 어스, 워킹 피플(이 나라가 우리, 즉 삶에 대한 순수한 열망으로 가득찬 외국인 노동자를 학살하고 있다.)」

버스 안은 순간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전사의 후예다운 나의 러시안 억양이 울려퍼지자, 사람들은 호흡을 멈춘 듯이 집중했다. 정적이 버스 안을 가득 메웠고, 시간은 흘러가길 포기한 것처럼 멈춘 듯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버스는 고요한 채로 계속 남대문을 향해 직진하고 있었다.

그때 뒤쪽 좌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 같기도 했고, 절규 같기도 했다. 아무튼 무지 비장했다. 한눈에 중국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는 녀석이었는데,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곳까지 교복을 입고 왔기 때문이다. 중국인이라는 것을 몸으로 증명할 요량인지 차이나식 교복 재킷 단추를 목젖에 닿을 듯이 채우고 있었다. 머리는 소림사 수도승처럼 박박 밀었고, 자기 얼굴만한 검은 뿔테안경을 끼고 있었다. 녀석은 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 파씨블. 노 파씨블.(그럴 리가 없어요.) 하… 하우. 하우.(어떻게.) 코리아. 코…… 코리아…… 한궈(한국이. 아마 ‘한국이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현명한 고등학생이라면 비열하고 냉엄한 국제정세쯤은 이해할 텐데, 녀석은 아마 학교공부에 열심인 것 같진 않았다. 멋모르는 아이에게도 지금의 경험이 상처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교복에게 손을 내밀었다. 교복은 내 손을 잡으며 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한…국…은…」 나는 녀석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한…한…국…은… 엉…… 흐흑…… 원더걸스의 나라잖아요.」

이런 얼빠진 녀석. 이런 녀석들 때문에 이 나라의 위선이 덮이는 것이다. 나는 녀석의 손을 내치고 머리를 가격하려는데, 앞쪽에서 태국소녀가 혀짧은 소리로 따발총을 발사하듯 외쳐댔다.

「노. 노노노노. 노웨이. 뚜삐엠. 뚜삐엠 껀뜨리. 굿 껀뜨리.(아니다. 한국은 2PM의 나라다. 좋은 나라일 수밖에 없다, 라는 것 같았다.) 싸와디카— 닉쿤.」 옆에선 중국 관광객 몇명이 중국어처럼 둥글둥글한 발음으로 “네~ 마—님”,거리며 대장금 흉내를 내고 있었다. 차이나 교복은 나라를 되찾을 기세로 울먹이며 원더걸스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나는 더욱 전의에 불탔다. 겉과 속이 다른 이 나라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나는 바타르 박씨에게 눈길을 주었다. 바타르는 허상에 속아넘어간 이들의 모습과 이 나라의 위선적인 선전 전략에 분노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바타르 박씨는 “조국을 침략당하고도 할리우드 영화라면 환장하는 이라크 녀석 같으니”라며 총을 높이 들어 머리를 내리칠 태세를 취했다. 나는 잽싸게 몸을 날려 총을 높이 치켜든 박씨의 오른팔을 잡았다. 인질이 걱정됐다, 라기보다는 그대로 내리쳤다가는 모조품 총이라는 게 탄로나기 때문이었다. 바타르 박씨는 인질이 우리를 비웃고 있다는 사실과 이들의 화날 만큼의 무지와 뻔뻔함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쿠마리 구씨가 그렁거리며 신음하는 소리를 내더니 울분에 참지 못하는 기세를 보였다. 나는 박씨의 등을 진정시키듯 쓰다듬다 다시 쿠마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울분을 참지 못하는 쿠마리가 언성을 높였다.

「불쉿! 불쉿!(Bullshit! Bullshit!) 헛소리!」 고개를 격하게 흔들며 내뱉더니, 버스가 떠나갈 듯이 울먹이며 외쳤다.

「소—녀—시—대—. 소녀시대라고!」

맙소사. 녀석은 완전히 한국화됐다. 녀석이 네팔에서 마오주의자였느니, 히말라야의 자손이니 하는 것은 죄다 헛소리다. 구씨의 몸에는 히말라야 인근에서 포터 노릇을 할 때부터 자본의 때가 끼었다. 히말라야를 욕되게 하고 한국에 영혼을 팔아버렸다. 김밥천국을 즐기고, 롯데리아의 데리버거를 탐닉하고, 술을 마시면 트로트를 메들리로 불러젖히는 녀석이다. 게다가 아직도 직진중이다. 용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적에게 영혼을 팔고, 할 줄 아는 것은 직진밖에 없는 망할 녀석.

진정한 혁명주의자 바타르와 나는 핸들을 뺏어 곧장 청와대로 돌진하기로 했다.

 

*

 

차이나 교복은 멤버들의 이름을 한명씩 외치며 울다가, 소희의 이름을 부를 때 절규했다. 태국 소녀는 질세라 2PM 멤버들의 이름을 외쳤고, 중국인 아줌마들은 계속해서 대장금 흉내를 내고 있다. 이 와중에 바타르는 교통신호만은 지켜야 한다며 버스중앙차선이 끝나는 곳에서 유턴하겠다고 한다.

서울시내 교통은 지독했다. 중앙차선 안의 버스만이 무법자처럼 쌩쌩 달렸고, 나머지 세개 차선에선 차들이 피난열차에 올라타려는 피난민처럼 얽히고설켰다.

바타르는 막히지 않는 길로 돌아가겠다며 교통방송을 틀었다. “남대문에서 서소문까지 양방향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 청와대에서는 한류스타 연예인 문화훈장 수여식이 있어, 경복궁에서 삼청동 방향 환영인파가 몰려 혼잡한 상황입니다.”

바타르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잽싸게 다른 방송으로 돌리니 마침 뉴스가 나왔다. 내용인즉, 오늘 오후 2시부터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한류스타들에게 훈장을 준다는 것이었다. 수상자는 소녀시대, 동방신기, 보아, 배용준, 이병헌이었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소액대출과 무료결혼식을 지원한 청량리의 한 목사에게도 ‘자랑스러운 대한국민상’이 수여된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극심한 동요를 보인 것은 쿠마리 구씨였다. 그는 비폭력 집회 연설대에 선 간디처럼 결의에 차서 말했다.

「국가는 미워해도, 소녀시대를 미워할 수는 없다」고.

나야 소녀시대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의외로 바타르의 생각도 구씨와 비슷했다. 바타르 박씨는 청량리 목사가 목표지에 있다는 소식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씨는 작년에 안산까지 찾아와 이발도 해주고 식사도 대접하는 그 목사를 보고 감명받아 훌쩍거리기도 했었다. 나는 이 모두가 체제를 공고히하기 위한 선전이며, 결국 목사도 정부의 소행을 덮기 위한 위선책일 뿐이라 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계획을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구씨였다. 아니, 구씨 표현에 따르면 ‘연기’하자는 것이었다.

“오늘 작전을 실행하면 무고한 사람이 너무 많이 희생당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이러는 건 이 땅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인데, 오늘은 그 정신에 맞지 않아”라고 말했으나, 실상은 소녀시대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확신한 이유는 이대로 청와대로 돌진하면 제시카1를 실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의 눈에서 광채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참 뒤 몹시 낙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더니, 아무래도 다음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구씨의 멱살을 잡고 우리가 꿈꾸는 새 세상은 어떻게 되냐고 따졌다. 구씨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실은 자기가 꿈꾸던 세상을 오늘 이뤘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구씨? 우린 오늘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도대체 뭘 이뤘다는 거야! 구씨!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나는 격분했다.

구씨는 작지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토록 진지한 그의 눈빛을 나는 이때껏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내 꿈이 버스 운전기사였거든. 난 오늘 꿈을 이뤘어.”

 

*

 

구씨의 고향에서 차를 가진 사람은 부자라고 했다. 차가 크면 클수록 더 부자로 알아준다. 그래서 구씨는 가장 큰 차를 모는 버스 운전사가 되는 게 어릴 적부터 소원이었다. 죽기 전에 꼭 버스를 몰아보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구씨에게 석달 전에 편지가 한통 왔다. 내용인즉 아내가 가난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남은 두 딸 역시 카트만두로 돈 번다며 떠나버렸다는 것이었다. 구씨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평일에는 사장 말대로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하며 시간을 보냈고, 주말에는 외출할 의지도 기운도 없이 그저 TV만 봤다. 망연자실한 채로 멍청히 TV만 보던 어느날, 구씨는 딸을 보았다. 눈이 맑고 해맑게 웃던 아홉명의 요정 같은 딸들을. 소녀시대였다. (나는 이 대목을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는데, 도무지 연배를 가늠할 수 없는 구씨의 얼굴에서 소녀시대 같은 딸들이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씨는 이미 폭포 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구씨는 딸들에게 편지를 써봤지만 답장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한달 전에 답장을 받았는데, 딸들은 모두 새아빠를 따라갔으며 이제 더는 연락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구씨는 우리의 테러 이야기를 들었고, 그는 청와대까지 불붙은 버스를 몰고 가 뛰어내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아까처럼 오이가 살아야 한다고 주책없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말했고, 바타르도 딸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며 구씨의 손을 끈적하게 잡아주었다. 그 와중에도 오이의 격려는 마치 한구절만 녹음해 반복재생하는 야채 아주머니의 방송처럼 창의성이 없었다.

다행히 구씨는 우리의 격려에 감복했는지, 태도를 바꾸어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평소에 우유부단하기로 소문난 구씨가 갑자기 결단력있게 자살계획을 포기하자, 애당초 죽을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었나 의심스러웠지만 그걸 묻기에는 그리 적당한 상황이 아니었다. 구씨는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이 힘을 주어 “살아남아서 우리의 뜻을 꼭 세상에 알리겠어. 살아남아서, 정의를 실천하고, 그래서 당당히 딸들 앞에 다시 나타날 거야”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선 구씨의 의뭉스러운 눈동자를 보니 그가 말한 딸이 네팔에 있는 딸을 말하는 건지, 소녀시대를 말하는 건지 역시 헷갈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걸 묻기에는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구씨의 사연 때문에 상황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버리자, 박씨도 흔들렸다.

“오늘은 하늘이 심판의 피를 허락하지 않는군.”

“아— 박씨. 너까지 왜 이래.”

나의 목에서는 평소에는 전혀 나오지 못하는, 마치 목이 꺾이는 순간, 닭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나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안되겠어. 오늘은 심판을 감행할 사자가 피 대신 눈물을 흘리는 날이야. 심판은 다음에 해야겠네, 동지.” 바타르 박씨는 근엄한 말투로 말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일이면 나의 비자는 만료되는데……

똘스또이의 문장만큼이나 사려깊었던 계획은 난독증 환자의 문장처럼 갈피를 잃어갔고, 앤디 워홀의 그림처럼 뚜렷했던 대담함은 겁에 질린 훈련병처럼 쪼그라들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비견할 만하다며 감탄했던 간결한 계획 역시 부패정치인의 채무관계처럼 복잡해져버렸다.

 

계획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내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사이, 박씨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관광버스에 앉아 있다. 얼핏 보면 애초부터 관광버스에 탄 승객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뭔가에 홀린 사람 같기도 하다. 아무튼 알 수 없는 표정이다. 확실한 점은 그의 영혼이 지금 빠른 속도로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불현듯 박씨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바다에 가고 싶어.”

 

나는 그만 아연하고 말았다. 박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위산은 박씨의 말을 명령으로 이해했다는 듯이 몸 구석구석으로 급속하게 퍼져갔고, 장 역시 질 수 없다는 듯이 긴박하게 자신을 마구마구 꼬아댔다. 박씨는—물론 이러한 나의 내부사정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하던 말을 이어갔다.

“나도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 이 상황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바다에 가고 싶어. 내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박씨는 어찌된 영문인지, 어느샌가, 촉촉히 젖어든, 눈망울로 “내륙국가에서 태어나 바다를 실제로 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다의 바람, 냄새, 모래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며 호소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어이가 없었는데, 구씨와 나 모두 바다에 가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네팔도, 키르기스스탄도 모두 국경이 다른 나라에 둘러싸인 내륙국가고, 우리에게 바다를 간다는 것은 외국을 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그만 흔들리고 말았다.

나는, 이때껏, 사진과 TV로만 보았다, 바다를.

오이는 우리의 말을 듣자 바다는 ‘주문진이 최고’라며 여전히 주책없이 반복재생했고, 중국인 관광객들과 태국인 부부는 오이에게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나왔던 바다가 어디냐고 물어댔다. 오이는 능청스레 숨도 안 쉬고, ‘당연히 주문진’이라고 선을 그은 뒤, ‘한국의 모든 바다 씬은 죄다 주문진에서 찍은 것’이라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순간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단결했다. 목적지는 순식간에 주문진으로 변경됐다.

나도 내심 바다가 궁금하긴 했지만, 전사의 후예로서 거사를 이따위로 포기할 순 없었다. 당연히 나는 결사반대를 했는데…, 상황이 갑자기 역전돼버렸다.

바타르와 인질들이 나를 포박해버린 것이다.

이들은 순식간에 한패가 되었다. 운전사는 안대에 눈을 가려 아무것도 못 봤다고 증언하면 된다고 했다. 오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인질들은 어차피 관광하러 왔으니 아무래도 좋다 했다. 인질과 납치범들 사이에 담합이 이뤄지자 차는 급속히 주문진으로 향했다. 운전대는 다시 대머리 운전사가 잡았다. 그는 주문진 회가 한국에서 최고라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차 안에는 운전기사가 평생의 꿈이던 히말라야의 후예 구씨와, 내륙국가에서 태어나 바다를 한번도 못 본 칭기즈 칸의 후예 박씨, 그리고 키르기스스탄 전사의 족보를 자랑스럽게 이름에 달고 있으나 일시적으로 포박당한 나 ‘유리스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가 함께 있다.

아, 빠듯한 직장생활에 시달려 그토록 좋아하는 주문진 회 먹을 여유조차 없었다는 운전사 김씨, 원더걸스의 이름을 울먹이며 부르는 중국소년과 그 옆에서 질세라 2PM을 외치는 태국소녀, 그리고 드라마 촬영지라며 마냥 들떠 있는 중국인 관광객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괴상한 조합이 한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나는 결심했다. 비자가 끝나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면, 별을 따라 아프가니스탄에 가겠다고. 그곳에서 탈레반으로 인정받아 별과 함께 이곳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전까지는 구씨와 박씨에게 청와대를 잘 지키고 있으라고 해야겠다. 청와대를 폭파하는 것은 용맹한 키르기스스탄의 전사인 별과 나의 몫이니까. 손을 뒤로 묶인 채 창밖을 돌아보니 온통 물인 세상이 보인다. 푸르다. 물이 계속 우리 쪽으로 떠밀려오고, 하얀 새가 물 위를 떠다닌다. 박씨가 내게 와서 밧줄을 풀어준다. “이제 바다를 즐겨야지.” 귀를 찰싹거리며 때리는 파도 소리, 발이 기분 좋게 폭폭 꺼지는 느낌, 약간 짭조름한 냄새, 마음까지 식혀주는 바람. 이게 바다인가 보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그래. 다음에 좀더 잔인한 탈레반이 돼서 돌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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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녀시대의 한 멤버. 새침한 안무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