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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안주철 安舟徹
1975년 강원도 원주 출생. 2002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rire010@empal.com
굿바이 코리아
침대 매트리스는 사내의 혀처럼 놓여 있네
밤에 주워온
이제 용도까지 버려진 거실장에 앉아
사내는 담배를 피우고 서랍을 열어
꽁초를 비벼 끄네
늘 앉았던 자리는 칠이 벗겨져
나무 달이 뜨고
서랍도 옆면도 여기저기 떨어져
달빛들이 박혀 있네
사내의 목과 얼굴엔 주름 열매가 가득하네
따서 먹으면 늙어서 죽겠네
잔업을 쑤셔넣은 포장지 같은 팔뚝 불룩하네
새로운 길을 걸어보지 못한 종아리엔
사람들의 복잡한 가슴이 뭉쳐 있네
매일 걷는 길들이 퉁퉁 불어 있네
벽을 타고 흘러내린 빗줄기들은
벽지에 나무뿌리로 말라붙어 있네
등을 기대고 앉은 벽지엔
여름 땀들이 사내들의 등을 누렇게 둘러 찍어놓았네
하나 둘 셋 넷 가을처럼 따로따로네
사내는 벽지에 찍혀 있는 누런 등들을 바라보네
누런 사내들은 컨테이너 벽에 낀 채
등에 힘을 주고 밖을 내다보네
겁이 많아 십오년째 뒤돌아보지 못하네
사내는 자신의 누런 등을 바라보다
문신을 새기네
Good Bye Korea October 23 2010
맑은 어둠
비가 끌고 내려온 하늘을 사내는 올려다본다
하늘에 반짝거리며 기어다니는 별들
먼지뭉치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잔털이 잘게 날리고
소심함과 배가 튀어나온 사내는 생라면을 씹는다
지금은 새벽 3시, 아침 8시에 출근한 사내는 행복하다
일의 양은 일을 끝낸 행복과 맞먹을 수 없다
잠시 후 사내는 아침 8시까지 출근해야 하지만
사내의 행복이 밤하늘의 어둠처럼 맑다
어둠에도 종류가 있다는 거, 그중 맑은 어둠은
밀린 월급보다 탁월하고 위력적이라는 거
혀에 허옇게 뭉쳐 있는 달빛 같은 라면 덩어리
부러진 나뭇가지 같은 사내의 손가락이
먼지와 수프를 찍어올려 입으로 가져가고
사내는 짜다 생각하면서 생라면을 하나 더 집어넣는다
입속에 수프와 먼지가 들어가자 사내의 얼굴 위로
다시 맑은 어둠 얇게 펴진다
달빛, 문 닫은 별들
어둠 그리고
사내의 맑은 어둠이 입을 벌리고 뛰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