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길상호 吉相鎬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2001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모르는 척』등이 있음. 482635@hanmail.net

 

 

 

벽돌공장 그녀는

 

 

모래 속에 사는 물고기

세상 뭐 볼 게 있냐고

질끈 아래 위 눈썹 지퍼를 채우고

모래 씹으며 사는 물고기

물살의 부드러운 손길도 잊은 지 오래

푸른 물풀의 손짓도 잊은 지 오래

성긴 아가미로 시간을 걸러

사각 틀에 꾹꾹 다져넣다 보면

수북이 쌓여가는 모래벽돌

건들기만 해도 허물어질 몸으로

단단한 집 한번 지어보겠다고

지느러미 쉬지 않는 물고기

몸에 박힌 모래 알갱이

햇빛 아래 반짝이는 비늘이라고

애써 흔들리는 웃음 지어보지만

낮잠 시간이 되면 아무데서나

무게를 못 이기고 스르륵

모래더미로 내려앉는 물고기

 

 

 

먹그늘나비

 

 

그이 발등에 나비가 내려앉은 건

막둥이가 태어날 무렵이었어요

그후로 그인 진물을 빼며 살았지요

그늘만 먹고 사는 게 불쌍하다며

고로쇠 같은 발목 번번이 칼집을 냈어요

나비 날개에 박힌 뱀눈 무늬는

그이 상처를 빨수록 선명해졌고

그만큼 집 안 햇빛은 면적을 좁혔지요

아무리 뜯어말려도 소용없는 게

비늘가루에 뭔 주술이 걸려 있는지

날갯짓 한번이면 그인 꼼짝 못했어요

누구도 손댈 수 없었지요

끝내 그늘은 아이들까지 차례로 갉아먹고서

그이 뼈 깊숙이 알을 심었어요

부어오른 발목 혹을 쓰다듬으며

날개야 어서 피어라, 그이는

주문을 외우다 잠이 들었고

새벽이면 흠뻑 젖은 채 눈을 떴지요

그이가 젖은 날개 말리는 동안

나는 싸리비를 들고 나와서

날마다 넓어진 그늘을 지워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