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는 지난 9월 8일 제12회 백석문학상 예심위원으로 문태준 진은영 2인을, 본심위원으로 백낙청 황현산 도종환 3인을 위촉하고 심사를 진행했다. 예심에서 심사규정에 따라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들을 검토한 결과, 총 11권의 시집이 본심에 올라왔다.
고영민 『공손한 손』, 김소연 『눈물이라는 뼈』, 나희덕 『야생사과』, 박철 『불을 지펴야겠다』, 손택수 『나무의 수사학』,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신해욱 『생물성』, 이대흠 『귀가 서럽다』, 이영광 『아픈 천국』, 이정록 『정말』, 조연호 『천문』(가나다 순)
본심은 10월 29일에 진행되었는데, 대상 시집 모두 다채롭고 개성적인 언어와 뛰어난 시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어 심사위원 각자 3~4권의 최종 후보를 우선 추천하기로 한 작업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고영민 나희덕 박철 손택수 송경동 이영광 이정록 시집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끝에 박철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문학동네 2009)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불을 지펴야겠다』는 차분한 목소리에 드러나는 진솔함과 순정함이 눈에 띄고 무엇보다 과장된 수사 없이 치열한 시정신을 지켜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심사위원 전원은 박철 시인을 제12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심사평
황현산(黃鉉産) 문학평론가
예심을 거쳐 온 11권의 시집에는 좋은 시집이 많아, 최종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할 3권을 뽑아내는 일이 아주 힘들었다. 시집들을 읽은 소감을 간결하게 적는다.
고영민 시집 『공손한 손』에는 말의 정확한 뜻에서 새로운 언어가 있으며, 농경시의 다른 경지가 있다.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진솔하고 단순한 진술이 자주 삶과 자연을 경건하게 받들어 올리고, 구태여 형식을 갖추지 않아도 기승전결이 저절로(가 아니겠지만) 생겨난다는 점에서, 그의 조용한 언어는 뒤에 말하게 될 송경동의 날카로운 언어와 어깨를 겨룬다. 김소연의 『눈물이라는 뼈』는 발랄한 상상력과 적확한 표현들이 아름답다. 이들 빛나는 생각의 밑자리에는 하나의 생물로 살아야 하는 존재들의 슬픔이 있다. 주제가 다소 제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힘찬 말들이 팍팍한 삶의 껍질을 기필코 뚫고 나온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읽는 사람의 가슴이 아프다. 이미 단단한 세계 하나를 안고 있는 나희덕의 시집 『야생사과』에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시인의 고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새 세계가 영글기를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벌써 말은 리듬이 순탄하고, 음영이 깊다. 남의 눈에 들어 있는 나를 수정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손택수의 시집 『나무의 수사학』에는 생활과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이 많아서 때로는 시집을 무겁게 한다. 이 성찰이 더욱 깊어지면 그의 서정에 낯선 음조도 만들어줄 것이며, 말의 새로운 활로도 열어줄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도 다른 땅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은 투쟁하는 노동자의 시집이다. 강건하고 직접적인 토로의 말들이 사유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아울러 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운 일이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말들은 늘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가. 송경동에게서 한 노동자의 자부심은 곧 시의 자부심이다. 이대흠의 시집 『귀가 서럽다』는 모질고도 착하게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서, 그 삶을 대표하는 ‘어머니’에게서, 결코 마르지 않을 언어를 길러낸다. 그가 잠시 한 옆에 미뤄두고 있는 ‘현대적인’ 언어에도 이제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 시인 자신이 썼듯이 “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이영광의 『아픈 천국』에서는 굵고도 섬세한 감정이 끊임없이 용솟음친다. 현실의 절박함 앞에서도, 정신의 어두운 구멍 앞에서도, 그의 생각은 늘 살아 꿈틀거린다. 첫번째 시집보다는 두번째 시집이, 그보다는 세번째 시집인 이 시집이 더 좋다. 이 걸음이면 더 높은 산에 오를 만하다. 수상자인 박철의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는 내가 그 해설을 썼으니 소감을 생략하고, 다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좋은 시집이 많아 심사가 어려웠으나 그만큼 쉽기도 했다. 어느 시집을 골라도 옳은 결정이었을 테니까.
도종환(都鍾煥) 시인
송경동의 시는 치열하다. 송경동의 시는 온몸을 던져 온몸으로 쓰는 시다. 문학상 심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기륭전자 농성장 포크레인에서 떨어져 발목뼈를 다쳤다는 소리가 들린다. 노동으로 살아내기 어려운 세상, 사람답게 사는 일이 참으로 힘든 세상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있고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뒤집어엎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현장에서 읽은 시, 죽은 이를 위한 시이면서도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를 비롯한 작품들은 읽는 동안 눈물을 참을 수 없게 한다. 이 시대에 눈물 흘리며 시를 읽게 하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다만 뒷부분으로 오면서 느슨해지고 동어반복의 진술이 등장하는 등 작품의 편차가 큰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손택수의 시는 탄력이 있다. 언어가 생동하며 살아 있다. 한 행 한 행도 그냥 쓴 게 없다. 문학적 긴장을 팽팽하게 끌고 가 완성도 높은 시를 만들어낸다. 「모과」 「망치」 「쓰레기왕」 같은 시들이 그렇다. 벌레든 길바닥에서 파닥이는 물고기든 노숙자든,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들의 처절함과 난감함을 따뜻함과 연민으로 감싸며 잘 형상화하고 있다. 손택수의 시는 이 거대한 도시에 뿌리내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며 때론 부끄러움이고 치욕인지 정직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도 날벌레들처럼 환한 무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어리석은 몸짓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탄탄한 시들로 꽉 찬 『나무의 수사학』은 어떤 상을 받아도 좋을 시집이라고 생각했다.
박철의 시는 외롭다. 박철의 시는 대로변에 있지 않고 가등 희미한 골목에 있다. 큰 목소리로 앞에 나서지 않고 헛개나무 뒤에 슬며시 숨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의 시는 가난하고 우수에 가득 차 있다. 그의 시는 치열하지 않다. 모두들 뜨겁게 살기 위해 달려갈 때도 그는 천천히 간다. 그가 불을 이야기해도 그 불은 외로운 불일뿐이다. 그의 시에는 과장된 목청이나 허풍이 없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순정이 있다. 거짓 없는 솔직함이 있다. 시를 쓰면서 사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순정함이 거기 있다. 그걸 지키며 사는 일은 치열한 일이 아닐까? 안으로 치열한 삶과 문학,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자 애쓰는 과정은 치열하다고 말할 수 없을까?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문학이 되찾아야 할 정신이 아닐까? 현란하지 않은 잔잔함을 지니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 아닌가. 요란하면서도 차가운 시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불을 지펴야겠다』에 실린 그의 시들은 고요하고 쓸쓸하여 따뜻하다. 그의 외로운 정신이 불 지피고 있는 시에 백석문학상을 주자는 데 심사위원들은 동의했다. 더 외로운 길을 가기 바란다.
백낙청(白樂晴) 문학평론가
예심을 통과한 11권이 근래 나온 좋은 시집의 전부도 아니련만 그 수를 일단 절반 정도로 줄이려는 시도조차 벅찼다. 나 자신 최소한 두세권은 더 올리고 싶었는데 각자가 자제할 대로 자제하고도 무려 7권이 최종후보가 선정되었다.
그중 박철 시인이 수상하게 된 것이 조금은 의외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맑은 시심을 지키며 더러 백석을 상기시키는 시세계를 키워온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불을 지펴야겠다』가 경합하는 훌륭한 시집들을 다 물리치기에는 범상하고 낯익은 시들이 많지 않은가? 수록작품 중에 그런 시가 아주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게다. 그러나 범상한 소재를 갖고 특별히 생소하기를 바라지도 않는 언어로 그 자신만의 시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저자의 드문 내공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시집의 해설에서도 잘 지적된) 박철 특유의 치열성이기도 하다.
이 시집이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진지한 가락을 기조로 삼고 있다 해도 실제 내용은 꽤나 다양하다. 예컨대 「행주강」은 외롭고 쓸쓸한 정서를 담은 여러 시 중 하나면서 숨이 긴 시행(詩行)을 다루는 솜씨가 남다르고, 「걸레」와 「인연」은 둘 다 서민들의 ‘사람 냄새’로 훈훈하지만 전자는 한편의 군더더기 없는 단편소설 같고 후자는 웃음기가 도는 현장중계 끝에 “밤하늘 흰 구름이 배꼽 잡으며 달아나고/흰 구름 사이사이 별은 또 왜 저리 철없이 반짝이나”라는 구절로 멋스럽게 끝난다. 「온전한 사랑—아, 분단」은 특이한 종류의 ‘분단시’요, 「향수—봐야 믿는 세상」은 ‘향수’라는 제목과 자칫 안 어울릴 법한 추억이 자못 복합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최종후보들 중에는 아직 젊은 편이라 앞날의 더 좋은 성취를 기다려보자는 합의가 쉽게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한쪽의 뚜렷한 선호와 다른 쪽의 다소 유보적인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나는 박철 시집을 수상작으로 뽑는 데는 이의를 다는 이가 없었다.
수상소감
박철朴哲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7년 『창비 1987』에 「김포」 외 1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험준한 사랑』 『사랑을 쓰다』, 소설집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 등이 있다.
찬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밀 무렵,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매년 있는 창비 행사의 참석 여부를 묻는 전화로 알아들었습니다. 다시 한해가 가고 있구나 어림잡으며 가겠노라, 가도록 노력해보겠노라며 대충 끊으려 할 때 그 상이 제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김성동 선배 식으로 호흡하여, 어라?
솔직히 저는 요즘 매우 지친 상태입니다. 불행히 글만 써야 하는 처지가 되어 30여년을 보내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사위는 적막하고 앞산은 첩첩하며 뒷산은 겹겹이었습니다. 돌아가자니 멀고 나아가자니 아득하여 맥을 놓고 앉아 망연히 먼산이나 바라보는 시절이었습니다.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이 무망하여 차제에 차라리 절필을 하면 어떨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해보던 차에 백석이란 웃어른이 손가락에 볼펜을 끼워 붕대를 감아버리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괴로웠지만, 시인으로서는 저는 가장 행복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 누군 신동엽을 닮았다고 하고 뒤엔 김수영이 돌아왔다는 말도 자주 들었습니다. 외모만은 천상 시인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제 겉모습이 아닌 속살이, 글정신에 백석의 이름을 얹어주니 저로서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갈대처럼 살아가는 저에게 항용 벗들이 안부를 물을 때 저는 늘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고 짧게 답을 띄웠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정말 백석의 글귀를 빌려 쓸 만큼 맑고 고결하게 외롭고 높고 쓸쓸한지 자문할 땐 부끄러움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옛김포라 부르는 강서구 개화동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별다른 명승지도 인물도 없는 들판에서 양천현감을 지낸 겸재가 양천팔경의 하나로 명명해준 서해낙조를 바라보며 어렴풋이 내 인생도 저렇게 붉고 아름답게 타올랐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끓는 가슴은 있으나 아름답게 타오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번 시집은 그렇게 가슴속으로만 애면글면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 세상의 힘들고 지친 이들을 위해 불을 지펴야겠다는 결의로서 지어낸 자술서입니다.
요즘 시대에 크게 돈이 되지 않는 시문학으로 일생을 보낸다는 것은 낭비에 가까우며 시대를 호흡하지 못하는 우매함으로 보일 것입니다. 다만 고교시절 문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풍진 세상 난장의 흥을 돋우는 이가 있으면 누군가는 노고를 달래며 뒷정리를 해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다소, 때론 지나치게 외롭고 쓸쓸한 제 문학이 함께 울어주고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서는 위안의 손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상은 창비가 저를 두번 시인으로 만들어준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새파랗게 어린 청년에게 시인의 관을 씌워줬고 이제 하얀 새치 분주하게 자라나는 어린 중년에게 다시 한번 제대로 써보라는 격려와 잔치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오랜 세월 믿음으로 지켜주신 망년우 현기영 선생을 비롯하여 참으로 고마운 선후배 동료 문인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자, 이제 기운을 내 일어서서 다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